EP.61 061─시엘 미드포드
아팠다.
베여 들어간 장기들의 불협화음이 척추를 타고 고스란히 뇌리로 파고들었기에, 들려 옮겨지는 와중에도 막대한 고통이 스며들었다.
흘려진 피는 얼마나 많은지 안경을 쓰고 있어도 시야가 흐릿했고.
어두운 밤하늘은 연보라색으로 빛이 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와중에도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건, 한 쪽만 꿰뚫린 옆구리로 인해 대칭이 어긋난 몸 때문이었다.
수술에 들어갈 의원에게, 반대쪽 옆구리도 가른 뒤 동일한 흉터 자국을 남겨 달라고 해야 할까.
그러한 시답잖은 생각을 머금기도 잠시, 조심스레 들고 옮겨주는 사람들의 걸음이 멈추어 서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시선의 끝에서……
아폴리온 등급의 원소 마법사, 로즈웰 공작가의 어르신이 만들어낸 불의 감옥을 뚫고 걸어 나오는 시엘 미드포드를 보며 허탈하기 그지 없는 실소를 자아냈다.
‘유페미아……’
너는 시엘 미드포드에게……
좌절감을 안겨주면, 현실에 굴복하게 될 거라고 했지.
하지만 보아라……
주인공이란 본디 저런 족속들이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절망하고, 좌절하게 될 상황 속에서도.
그것을 극복하고, 찬란히 빛이 나는 기적을 머금은 채 운명의 대척점에 서있는 악을 무찌르려 하지.
‘그래……’
해피 엔딩을 머금든.
베드 엔딩을 머금든.
주인공의 삶의 형태와 별개로.
‘이 세상은……’
나의…… 악당의 죽음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 * * * *
하지만 명계(冥界)는, 그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
* * * * *
쿠웅!
끼익……!
원치도 않았는데, 페르젠 앞으로 거대한 명계의 문이 강림해 억지로 열리더니 무형의 쇠사슬이 안으로 파고 들어간다.
동시에 명계의 문, 그 위에 새겨진 명패가 강제로 고정 되고.
너머에서 끌려나오는 무언가는……
──메에에!
어쩌면 정겹다고 할 수도 있는, 염소의 울음소리를 내며 불완전한 항마의 기운을 머금고 있는 시엘 미드포드의 검을 먹어 치웠다.
팔락!
팔락!
팔락!
그리고 바람이 불지도 않았는데, 갑작스레 나타난 불길한 기운을 풀풀 풍기는 책은 특정 페이지를 피더니 유독 기나긴 한 이름을 밝게 빛내며 마치 읽어 달라는 듯 페르젠에게 요구했다.
“ξμφφ……”
분명 알지 못하는 언어인데.
페르젠은 그것을 자연스레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페르젠이 이름을 언급하는 순간, 밤하늘 위로 떠오른 달에서 어둠보다 짙은 액체가 뚝뚝 떨어지더니 명계의 문을 적셔나갔다.
동시에 고개만을 빼꼼 내밀고 있던, 염소의 울음소리를 내는 명계의 괴이가 그것을 윤활유 삼아 매끄럽게 걸어 나온다.
울음소리는 염소이면서, 정작 염소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명계의 2층──라우라바(Raurava)에 서식하는 괴이.
‘일반적으로는, 접선이 되지 않을 괴이가 어째서……’
명계의 1층에서부터 승격하여 이름을 부여 받고, 거래 실적을 쌓아 조금씩 층을 올라가는 괴이가 있는가 하면.
번식을 통해 낳아진 괴이는, 모친의 층까지 자연스레 ‘성장’할 수 있는 특성을 부여 받는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 덕분에, 해당 괴이들은 일반적으로 흑마법사들의 요청에 응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
지끈!
페르젠은 머리가 아파왔다.
이 정보는, 이 세상에 퍼져 있지 않은.
그 어떠한 흑마법사들도 알지 못했던 사실인데.
자신은 어째서……
저 괴이가 번식을 통해 낳아진 존재라는 걸 알아보았고.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연관 지식을 떠올릴 수 있었던 걸까.
모르겠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간신히 버텨내던 정신이 마모되고, 눈이 감겨온다.
옆구리의 상처와, 출혈까지 대량으로 일어난 상황인데.
쥐꼬리만큼 남아 있던 마력이 명계의 문에 의하여 강제로 소모되니, 마력 탈진 현상 까지 찾아와 페르젠은 그만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 소환자인 페르젠의 의식이 끊겨 버리자, 자신의 촉수로 시엘의 몸뚱이를 꿰뚫었던 괴이는 자연스레 명계로 자취를 감추었고……
5월 7일, 황실의 연회는 파란(波瀾)만을 남긴 채 종료되었다.
* * * * *
“흐음……”
어수선하게 정리 되고 있는 연회의 결말을 바라보며, 그레모리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이나스 덴 프로이센 로벨리움, 그가 페르젠을 일부러 모욕하고 도발했던 이유를 그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기개를 속으로 칭찬하며 자신을 위해 벌이는 연극을 재미있게 감상하고 있었는데……
브뤼테인의 혈통을 해하려는 모습을 보고서, 도대체 어디까지가 연극인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의문은, 감옥으로 이끌려가는 이나스 왕자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해결해주었다.
모든 건 페르젠 폰 슈바이크 루에르그와 사전에 협의 했던 일.
또한, 그를 시해하려 한 일은 시엘 미드포드라는 기사의 독단.
‘그 모든 게 사실이라면……’
페르젠이 무사히 일어난다는 가정하에.
충분히, 다듬을 수 있는 판 같았다.
오히려 일의 경과에 따라, 일석이조를 취할 수도 있으리라.
* * * * *
“……”
짙은 피냄새가 풍겨온다.
수술실 안쪽으로 길게 늘여진, 페르젠의 핏자국.
그리고 그를 위해 사람들에게서 피를 뽑아내고 안쪽으로 전달하는 의원들을 보며, 유페미아는 자신이 그의 아내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불청객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수술은, 언제 끝이 나는 걸까.
벌써 새벽 3시가 다되어 간다.
의료 쪽으로 아는 게 없는 유페미아이지만,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짐작할 수 있었다.
벌컥……
수술복을 입은, 피로한 얼굴의 의원이 걸어 나온다.
소독된 특유의 가운은 붉디붉은 피로 얼룩져 있었고, 퀭한 그의 눈빛은 마치 죽은 사람인 것 같았다.
“교대해주게……”
“경과는……”
“들어가서 보면 알걸세.”
오랜 시간이 걸리는 대수술은, 적지 않은 피로를 누적 시킨다.
더군다나 그 대상이, 브뤼테인의 혈통이라면……
일반적인 환자보다, 더더욱 압박감을 느끼고 있을 의원들의 부담감은 말로 이루지 못할 수준이리라.
까득!
이윽고 교대한 의원이 안으로 들어서자, 밖으로 나온 의원은 장갑을 벗으며 생크림이 가득 얹힌 쿠키를 주워 억지로 씹어 먹었다.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섭취해, 최대한 가성비적으로 소모된 체력을 회복시키려 하는 것이다.
“피를 더 뽑아두게……”
“이미 충분히 뽑아서 전달하지 않았나?”
“부족해…… 출혈을 도저히 잡을 수가 없어…… 환자의 체력이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게 용할 지경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목이 날아갈 각오까지 하고 있다네.”
보호자인 유페미아가 근처에 앉아 있어, 최대한 숨죽인 목소리로 말을 하는 의원들이지만……
고요하기 그지 없는 장소였기에, 그들의 대화 내용은 희미하면서도 정확하게 유페미아의 귓가로 파고들었다.
“제, 제가……!”
그에 다급하게, 앉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그녀는 눈앞의 의원에게 다가가 소매를 걷고 자신의 새하얀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제 피를…… 뽑아 주세요……”
“……혈액형은 동일하십니까?”
“……”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이러는 유페미아에게 의아함을 품으며 의원은 가장 기초적인 질문을 던졌으나 유페미아는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왜냐하면 같은지, 다른지를 떠나서……
페르젠의 혈액형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루에르그 백작님은…… B형 이십니다.”
“아……”
의원의 말에, 유페미아는 조심스레 떨리는 팔을 거두었다.
그리고는 휘청 이는 걸음을 내딛어,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가 힘없이 주저앉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어째서, 수술실 안에 있는 그에게 조금의 도움도 되지 못하는 현실에 아련한 통증이 가슴을 후벼 파는 걸까.
……죄책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를 죽이려 했던 시엘을, 끝까지 옹호하고 지켜주려 했던 건 명백히 자신이었으니까.
하지만, 정말로 유페미아는……
시엘이, 시엘 미드포드가.
그렇게 까지 할 줄은 몰랐다.
자신을 위해서,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페르젠을 죽이려 할지 몰랐다.
그리고 유페미아는 그의 희생에……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슬픔만을 낳았고, 분노조차 꽃피웠다.
이렇게 까지 해봤자, 남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
가장 최악의 형태로, 서로가 서로에게 고통만을 안겨주지 않나.
황궁의 감옥에 갇혀 처형을 기다리는 시엘 미드포드.
수술실에서 생사를 오가고 있는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
그리고 무기력한 자신, 유페미아 엘 로렌느 루에르그.
툭.
그녀의 금빛 눈동자에서, 눈물이 쏟아진다.
‘시엘……’
네가 나에게 안겨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나아가는 과정이 이리도 고통스럽다면.
차라리……
페르젠에게 길들여진 채로 살아가는 삶이, 훨씬 낫다고.
유페미아는 치맛단을 꼬옥 움켜쥔 채, 목 놓아 슬피 울었다.
* * * * *
그리하여.
새벽 6시.
아직까지도, 페르젠은 수술실을 나오지 않았다.
* * * * *
태양만이 조용히 떠오르며, 아침임을 알려온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항상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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