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60화 (60/260)

EP.60 060─시엘 미드포드

쓰러진 시엘 미드포드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새하얀 연기가 불어오는 밤바람에 흩어진다.

살갗이 그을어 벗겨진 피부는, 그러한 바람에 닿을 때 마다 적지 않은 고통을 불러일으켰으나 시엘 미드포드는 자그마한 신음조차 입 밖으로 흘리지 않았다.

“……”

방금 전, 이나스 왕자가 패배를 선언했던 말을 듣고 결투가 종료되었음을 시엘도 인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쥐고 있는 검을 내려놓지 않았다.

저 멀리서 피로한 얼굴로 걸음을 내딛는 페르젠, 마력이 거의 소모 되었을 무방비한 상태의 그를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앞으로 몇 번이나 있을까.

꽈악──!

핏줄이 도드라지며,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이미 끝나버린 결투에서, 그를 죽여 버리게 된다면……

자신은 둘째 치고, 로벨리움 왕국도 난처하게 되겠지.

볼품없는 자신을 기사로 받아준 은혜를 불충으로 갚게 되는 꼴이지만, 어차피 에르네스 제국의 황실에 소속된 흑마법사가 자신의 시신을 가지고 피드백을 받는다면 자연스레 독단이라는 전말이 밝혀지게 되리라.

“고생했네.”

곁으로 다가온 이나스 왕자가, 시엘 미드포드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그의 고생을 치하한다.

그리고는 엘리자베스 황녀 곁에 서있는, 여제──그레모리를 향해 넌지시 고개를 돌리며 주먹을 꾸욱! 말아 쥐었다.

‘이 정도면……’

틀림없이, 엘마르크 제국의 비호를 받을 수 있으리라.

“죄송합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나? 죄송할 건 하나도 없어! 그대는 충분히 로벨리움 왕국을 위해서 헌신한 명예로운 기사일세. 당당히 허리를……”

너무나도 무력하게 패배를 해서 이러는 걸까 싶어, 이나스 왕자는 안쓰러운 마음에 시엘 미드포드의 사기를 북돋아 주려 했지만……

파앗──!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순식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시엘 미드포드의 돌발 행동에 멍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 * * * *

“아……”

졌소.

이나스 덴 프로이센 로벨리움.

그의 한 마디가 잔잔하게 울려 퍼지며, 결투의 끝을 알리자 유페미아는 순식간에 긴장이 풀려 몸을 휘청 였다.

그리고는 자신에게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페르젠을 보며, 기도하듯 모으고 있었던 두 손을 풀고 조심스레 마중을 나갔다.

‘정말……’

약속을 지켜주었구나.

솔직히 페르젠이라면, 그러한 서약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시엘을 죽여 버리지 않을까하는……

그런 불길한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던 유페미아였지만, 페르젠은 정말로 자신의 과거를 짓밟지 않았다.

‘시엘……’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유페미아는 한 때 자신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그를 바라보았다.

갑옷이 가려주지 않은, 얼굴에 화상을 입고 다친 상태로 서있는 그를 보면 마음이 아파오지만……

이게 올바른 길이라고, 유페미아는 믿었다.

심지가 굳은 그라면 당장은 좌절감을 머금지 않겠으나, 서서히 페르젠과 그의 뒤에 서있는 브뤼테인이라는 가문의 높다란 벽을 느끼고 현실에 순응하게 되리라.

루에르그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단란히 살아가던, 그 때의 그 시절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일이 고착되었고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버렸다.

일개 왕국 기사가,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리기에는 너무나도 가혹한 현실이었기에 유페미아는 오늘을 계기로 시엘이 자신이라는 후회와 미련을 떨쳐 버린 채……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랐다.

그리 상당히 오래 머물렀던, 시엘로부터의 시선을 거두고.

유페미아는 페르젠 쪽으로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푸욱──!

하지만 그 순간, 말로 이루지 못할 충격과 경악이 유페미아의 금빛 눈동자에 스며들었다.

왜냐하면 마치 고개를 돌리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듯, 먼발치에 서있었던 시엘이 찰나의 순간을 넘어 자신의 검으로 페르젠을 꿰뚫었기에.

고작 한 번의 시선이동.

그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난 일이라, 유페미아는 현실 감각이 없어 자신이 환각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코로 스며드는, 페르젠의 비릿한 피 냄새에.

결코, 환각이 아님을 깨달았다.

* * * * *

원래 시엘이 노렸던 건, 페르젠의 등──심장 부근이었으나.

의도적으로 일말의 마력을 남겨두었던 페르젠이, 이사벨의 시신을 사역하여 대기 중에 간섭해 공기저항을 극도로 높인 뒤 궤도를 비틀었기에……

“끄, 커헉──!”

시엘의 검은, 페르젠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그리고 아무리 공기저항을 높였어도, 가속했던 관성은 어느 정도 남아 있었기에 페르젠은 들소처럼 자신의 몸을 들이 박은 시엘과 함께 밀려나듯 바닥을 쭈욱 미끄러졌다.

동시에 가속했던 관성이 서서히 약해지자, 자연스레 시엘과 페르젠은 처절하게 바닥을 굴렀고.

흑마법사인 페르젠과 다르게, 오러 나이트인 시엘은 자신의 오른발을 디딤 삼아 억지로 구르려는 몸을 멈춰 세운 뒤 왼손으로 페르젠의 목을 움켜쥐고 옆구리에 틀어박힌 검을 강제로 뽑아냈다.

촤악!

그러자 틀어박힌 검에 의해 억제되고 있던 출혈이 물 흐르듯 끊임없이 쏟아지며, 페르젠의 정장과 셔츠를 물들인 끝에 자욱한 웅덩이를 만들어낸다.

곧이어 올곧게 치켜든 검으로, 페르젠의 심장 부근을 단숨에 내리 찍으려던 시엘이었지만……

파앙──!

코앞에서 대량의 공기가 압축되어 터져나가자, 그러지 못하고 순식간에 3m 가량을 튕겨져 날아갔다.

“로벨리움 왕국은,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

에르네스 제국, 황실 마도 병단의 지휘자.

로즈웰 공작가의 어르신, 테오르가 격노하며 걸어 나온다.

그리고는 충격의 여파로 몸을 비틀거리는 시엘 주변으로, 고체의 특성을 입힌 불꽃을 일으켜 감옥을 만들어냈고.

이나스 왕자는 황실 기사들에게 제압당해, 그 자리에서 무릎이 꿇려진 채로 목덜미에 칼이 들이밀어졌다.

‘시엘, 미드포드……’

여기에는 주인공이라면 반드시 죽음을 회피시키고, 생존을 도모해주는 높다란 절벽과 그 아래에 흐르는 거센 강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소설이라는 틀을 벗고, 하나의 현실이 되어버린 이 세계에서.

‘너는……’

모든 상황이 죽음을 가리키는 이 덫을, 절대로 피할 수 없겠지.

“의원에게 데려가기 전에 출혈부터 막아라! 그리고 루에르그 백작과 동일한 혈액형을 가진 사람들을 빠르게 차출해!”

“쿨럭……!”

자신 주변으로 달라붙어 응급 처치를 실시하는 사람들을 보며, 페르젠은 힘겹게 고개를 돌려 외로이 서있는 유페미아를 바라보았다.

‘유페미아……’

약속대로, 나는 너를 슬프게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네가 그리 지키고 싶어 했던, 소중한 과거의 인연이 도리어 너를 짙은 슬픔에 잠기게 만들겠구나.

‘보아라……’

시엘 미드포드.

그는 스스로 걸음을 내딛어 단두대 위에 올라.

자신의 목을 내밀었다.

그의 삶은, 에필로그 조차 존재하지 않을 비극적인 형태로 막을 내리게 되겠지.

길고 길었던 무대의 끝, 커튼콜이 내려올 시간이었다.

* * * * *

“애송아, 건드리지 마라. 재가 된다.”

노여움 가득한 목소리로, 테오르는 시엘을 향해 충고했다.

“……”

하지만 그 충고에도 불구하고, 시엘은 손을 뻗어 자신을 가두고 있는 불꽃의 창살을 움켜쥐었다.

화르륵!

순식간에 손바닥의 피부가 녹아내리며, 사람의 살이 타는 불쾌한 냄새를 주변으로 자욱이 흘려보낸다.

그리고 그 불꽃은, 시엘의 손바닥을 타고 전신으로 옮겨 붙어 그의 몸을 순식간에 집어 삼켰다.

입고 있는 갑옷이 녹아내리며, 타오르고 있는 피부에 눅진히 달라붙어 보기 흉하게 뒤섞인다.

화형은, 죽음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형태.

때문에 아프고 고통스러운, 인간의 가장 원초적 감정을 느끼며 시엘은 몸부림쳤으나……

‘그 때와 똑같이……’

전신이 상처 입는다면, 응어리진 마력이 녹아 움직이지 않을까.

그러한 일념 하나로, 시엘은 창살을 더욱 거칠게 붙들었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언제 그를 죽일 수 있을지 모른다.

새장 속에 가두어진, 유페미아를 언제 꺼내줄 수 있을지 모른다.

아니…… 이 순간이 지나면 이라는 가정 자체가, 의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다음이라는 기약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하늘이시여……’

녹아내리는 밀랍처럼, 시엘 미드포드의 전신이 일그러진다.

아폴리온 등급의 원소마법사가 자신의 마력을 형질 변환 시킨 불꽃은, 그 만큼 위력적인 것이었다.

어정쩡한 수준으로 재구성된 육체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

‘많은 불행을, 겪었습니다……’

몰락 귀족인 아버지는 성만 남은 채로 마을의 아낙네와 결혼해 자신과 동생을 낳았고.

자신과 동생은, 자라나면서 언제나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어머니의 희생과 고통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리 고통으로 점칠 된 삶속에서, 처음으로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낀 순간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고서, 행복과 불행은 함께 찾아온다는 말 또한 그 때 깨닫게 되었다.

그리 순식간에 천애고아가 되어버린 자신과 동생은 뒷골목을 전전하다 용병 세계에 뛰어들었지만, 의뢰를 수행하는 도중 위기에 빠진 자신을 대신하여 동생은 목숨을 잃었다.

소중했고, 사랑했던……

그 모두를, 자신의 품에 안고 지켜내지 못했다.

그리하여 넋을 잃고, 죽을 묘비를 찾아다니듯 쉴 새 없이 의뢰를 수행하던 끝에 도달한 곳이 루에르그였고.

거기서 시엘은 유페미아와 만났다.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었으나, 굴하지 않고 악착같이 영지를 운영해나가던 여인.

처음에는 동질감을 느꼈다.

그래서 의뢰가 끝나고도, 시엘은 루에르그에 남아 생활했다.

젊은 성인 남자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에, 자연스레 자신은 유페미아와 함께 영지 내의 일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그 과정에서 시엘은, 닳고 헤집어진 자신의 마음속 상처에 새살이 돋아 오르는 간질거리는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애써 인지하지 않으려 했다.

사랑하고, 소중하게 느꼈던 모든 이들이 자신의 곁에서 어떤 최후를 겪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감정이 이성의 통제를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면,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는 순간 마법 같다고 느끼지 않았으리라.

때문에 시엘은 성숙한 상사병을 앓으며, 조심스레 유페미아를 향한 마음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그게 문제였을까.

결국 저주처럼 소중한 사람들을 옥죄는 불행은 눈앞에서 그녀를 강탈당하게 만들었고, 도망친 루에르그의 설산에 파묻혀 새하얀 죽음을 기다리던 시엘은 세상을 원망했다.

하지만 저주받은 삶은 죽음을 거부했으며, 그 끝에 마력을 깨우치고 시엘은 왕도로 들어섰다.

이후, 지금까지의 불행을 한꺼번에 보상이라도 받듯 펼쳐진 행운의 연속에 자신은 왕국의 기사가 되었지만……

기뻐하지 못했다.

고개를 조금만 숙이면, 자신의 발밑에 소중했던 이들의 불행이 시체더미처럼 쌓여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으니까.

‘살아서 행복할 수 없는 저주 받은 몸이라면……’

적어도 죽음만큼은 행복이라는 형태를 이룰 수 있도록, 시엘은 간절히 바라며 왼팔을 들어 올렸다.

“……”

시엘 미드포드라는 이름이 새겨진, 볼품없는 구리 팔찌.

유페미아 엘 로렌느 루에르그, 그녀가 처음으로 고생했다고 수줍게 자신에게 건네주었던 선물.

한시도 빼놓지 않았던 그곳에 시엘을 고개를 숙여, 순수하고 헌신적인 사랑을 담아 입술을 맞추었다.

파삭……

직후, 그 간단한 자극에 팔찌가 먼지가 되어 바스라 졌으나……

시엘은 아련한 눈빛으로 그 흔적을 쫓고는, 검을 쥐어들었다.

전신을 집어 삼킨 불꽃이, 더욱 화려하게 불타오른다.

누구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있다고 했던가.

그러면 부디, 그것이 지금이기를.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려는 한 남자의 생애를……

찬란하게 비추어 주기를.

시엘은 간절히 염원하며, 걸음을 내딛었다.

화르륵……!

아폴리온 등급의 원소 마법사가 자신의 마력을 불로 형질 변환 시켜 이루어낸 감옥이 흔들린다.

시엘 미드포드의 주변으로 흘러나오고 있는 폭발적인 마력이 간섭하여 형체를 일그러트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말 그대로 낭비되듯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기에 항마의 성질은 아주 불완전했다.

하지만 불완전하더라도, 마치 연기처럼 시엘 미드포드의 주변으로 일렁거리는 마력은 불길을 뚫고.

그에게 길을 마련해주었다.

그래, 이것이 시엘 미드포드에게 주어진 능력.

일념일로(一念一路).

변치 않는 하나의 마음으로, 오직 한 가지 길만을 걷도록 서약하는 순간 세상이 그에게 내려주는 찬사(讚辭)와 헌사(獻詞).

파앗──!

곧이어 시엘 미드포드의 주변으로 수많은 반딧불이 아름답게 퍼져 나가더니, 녹색 머리를 가진 여인의 형체를 이루어낸다.

그리고 그 여인은 애틋하고 자상한 눈빛으로, 처절하게 망가진 시엘 미드포드의 몸을 뒤에서 끌어안아 주었다.

저것은 오복신(五福神)중에서도, 수호를 관장하는 여신의 축복.

목숨보다 소중한 이를 지키려 할 때면, 가지고 있는 본연의 힘을 증폭시켜주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형태가 없는 보물.

‘제가……’

당신을 가두고 있는 새장의 열쇠가 될 수 있기를.

‘부디……’

꺾여버린 당신의 날개를 다시금 펼칠 수 있게 해주기를.

그 다음은, 걱정하지 않는다.

시엘 미드포드가 아는 유페미아는, 심지가 굳은 여인이었으니까.

날아갈 수 있는 방법은, 금세 다시 깨우칠 수 있으리라.

그러니…… 걱정은 하지 않고.

시엘 미드포드는,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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