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6 056─시엘 미드포드
“4월 12일까지 제출 마감이었던 과제의 평가 기준은, 얼마나 겹치지 않는 정보가 많이 있느냐로 하였다. 그러니 반대로 겹치는 정보가 많을수록 점수는 적게 받겠지.”
유페미아에게 출석 명단을 넘겨받고, 강의실 안으로 들어선 나는 가장 먼저 과제에 대한 알림을 먼저 읊었다.
“평가 점수는 상반기 기말고사가 종료됨과 동시에 발표가 될 것이고, 그 때 다음 신입생들에게 배포될 교과서 작업도 동시에 진행될 예정이다. 그러면……”
힐끔, 유난히 안색이 파리해 보이는 리지를 보고서 나는 칠판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학생 프로필에 잔병치레를 자주 앓았다는 점이 기재 되어 있기는 했지만, 정말 강의를 못들을 정도로 몸이 아픈 거라면 본인이 알아서 판단을 하리라.
“마지막, 4주차 강의 때 오러 나이트에 대하여 설명을 하던 도중 누군가가 해당 수련 경험을 똑같이 겪어야 구현율을 올릴 수 있지 않느냐고 했었지.”
“저, 저 입니다!”
“그래, 그건 훌륭한 질문이었다.”
번쩍 손을 들고 헤실헤실 웃는 남학생을 보며, 나는 칠판에 기억을 적고 동그라미를 쳤다.
“사역하려는 시신의 생애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에 따라, 그것은 이해력으로 직결되어 구현율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지. 허나……”
A라는 기억에서 피드백을 받을 때, 그 기억에서 비롯된 생전의 감정 같은 걸 공감할 수 있다면 더욱 높은 수치의 이득을 얻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이 사실은, 대다수의 흑마법사들이 모르고 살아간다.
왜냐하면 기쁨, 슬픔, 분노, 증오 같은 감정들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어보는 편린이었고, 사역하는 시신의 구현율을 높이기 위해 특정 기억에서 피드백을 받는 순간에도 일반적으로는 그러한 감정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으니까.
그러나, 공감하기 힘든 유니크한 감정들은 분명 존재했다.
대표적인 예시가 전쟁의 참사로 느끼는 감정들.
허면, 해당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 흑마법사는 반드시 동일한 경험을 겪어야 하는가?
그건 아니었다.
물론, 전쟁의 참사로 느끼는 감정들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대체제로 삼을 경험이 반복적인 영지전을 제외하면 거의 존재하지 않겠지만……
“이사벨 론 피에르 제노바, 내가 사역하고 있는 제국의 마녀를 교재로 삼자면…… 제노바 백작가는 근친혼을 시행했던 가문이었기에 당시 이사벨은 자신의 오빠와 결혼하는 것에 배덕감을 느꼈다.”
“……”
“여기서 배덕감이라는 감정은, 이사벨처럼 꼭 근친혼을 시행하지 않아도 충분히 다른 일을 통해 겪어 볼 수 있지.”
그래서 흑마법사는, 많은 것을 알고.
또, 많은 것을 경험해봐야 했다.
그러면 필요한 순간에, 그것들이 대체제가 되어 줄 테니.
“더불어, 음……”
목이 아파온다.
그에 잠시 말을 마치고, 홍차를 한 모금 머금어 갈증이 일어나는 목을 축였다.
이후, 다시금 강의를 이어 나가려 하는데……
“……”
라우라가 특유의 다홍색 눈동자로 나를 지그시 노려보고 있었다.
강의 내용에 불만이라도 있는 걸까.
그보다 뒷자리에 앉아, 앞에 있는 학생의 덩치를 방패삼는 다면 내게 보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어리숙해서 웃음이 나왔다.
엮인 시간이 많았기에 귀여운 반기 정도로 보였지만, 나는 짓궂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라우라 드 샤를 로젠베르크, 내게 할 말이라도 있나?”
“히끅!”
13명의 학생들이 일제히 자신을 바라보자, 라우라는 딸꾹질을 하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대답을 저런 식으로 하는 건 버릇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말더듬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얌전히 넘어 가주고서 강의를 속행했다.
이후…… 마치기 10분전.
나는 배정될 시신의 기본적인 정보가 적혀 있는 차트를 학생들에게 차례대로 나누어주었다.
“읽어 보면 알겠지만, 14구의 시신 모두 생전에 용병으로 활동을 했었다. 각기 반대 되는 성별을 지급한 건 의도한 사안이니 건의는 받지 않도록 하마. 생략된 중간고사를 대신하여 기말고사 때, 배정받은 시신을 자율통제해서 몬스터를 토벌하는 시험을 치르게 될 예정이니 열심히 구현율을 올려두도록.”
걸음의 마지막, 리지의 책상 앞에 서서 차트를 건네주었다.
그러자 리지는 나와 시선조차 마주 하지 않고, 힘없는 손길로 그것을 조심스레 받아들었다.
“리지.”
“네……”
“몸이 아프면, 의원에게 가보도록 해라. 미련하게 강의를 듣고 있지 말고. 병결은 출석 점수에서 까지 않는다.”
“아프지, 않습니다……”
“확실하나.”
“네……”
아무리 봐도 생기가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본인이 이렇게 까지 말을 하니 내가 간섭할 영역은 아니다 싶어 그대로 강의를 종료하고 본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 *
심심하고, 적막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페르젠의 교수실.
그곳의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엎드린 유페미아는 눈을 감았다.
‘뭐였을까……’
페르젠을 대신하여 출석을 부를 때, 몇몇 학생들은 자신이 이름을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여학생들만 그랬다면 짐작 가는 바가 있었겠으나, 남학생들도 그랬기에 유페미아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자신이 그리도 만만해보였던 걸까?
아니, 유페미아 엘 로렌느 루에르그라는 여인은 만만할지라도……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의 아내라는 위치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걸 유페미아는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만만해 보인다고, 초면에 적의를 비추지는 않겠지.
‘……’
페르젠의 교수실 옆, 그곳에 근무하는 여인도 그러더니……
수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어찌 하나 같이 자신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 인걸까.
출석을 부를 때 대답을 하지 않는 학생들이 있다고 페르젠에게 고자질을 하면 편하겠으나, 솔직히 겨우 이런 일에 도움을 받는 건 싫었다.
벌컥.
“……”
강의를 마친 페르젠이 교수실로 들어선다.
이 단조로운 방안에는 앉을 곳이 책상 앞의 의자 한 곳밖에 없었기에, 유페미아는 가까이 다가오는 페르젠을 보고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그가 의자에 편히 앉는 걸 보고서,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무릎 위로 살포시 걸터앉았지만……
“……”
돌아오는 반응이 시원찮았다.
“서…… 있을까?”
눈치를 보며 엉거주춤 엉덩이를 들어 올리자, 자신의 허리에 손을 얹는 그가 책상 쪽으로 몸을 민다.
그에 자연스레, 살짝 까치발을 들어 책상 위로 걸터앉은 유페미아는 다리를 오므려 치마 안의 속옷이 보이지 않게 했다.
“유페미아.”
하지만 그런 조신함을 혼내듯, 자신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부르는 페르젠의 목소리에 유페미아는 오므렸던 다리를 다시금 벌려서 입고 있는 새하얀 팬티를 수줍게 드러냈다.
“흐, 응……”
페르젠의 손이, 자신의 맨다리를 더듬는다.
물론, 거기서 끝나지 않고 점점 위로 올라오는 손은 치마 안쪽으로 파고들어 허벅지 근처를 야릇하게 주물러댔다.
이것은, 일종의 신호 인걸까……
속으로 약간의 내적갈등을 겪다, 유페미아는 치맛단을 붙잡아 스스로 끌어 올렸다.
쪽.
“앙……!”
그러자 달아나지 못하도록 자신의 허리를 붙잡은 페르젠이, 고개를 숙이고서 배꼽 부근에 상냥히 키스를 해왔다.
쪽.
“응……!”
그것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고, 수차례에 걸쳐 아주 진득이 자신을 희롱해온 터라 유페미아는 신음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입을 틀어막았다.
“힉……!”
하지만 내밀어가 혀가 앙증맞게 파여 들어간 배꼽을 쿡! 찌르자 더는 참지 못하고 헛숨을 들이키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흐응! 응……! 아앙……!”
아랫배 전체가 성감대라도 되어버린 듯한 느낌, 오싹오싹한 쾌감이 끊이지 않고 올라온다.
이윽고 페르젠의 손이 자신의 가슴을 부근을 살포시 누르자, 유페미아는 힘없이 책상 위로 쓰러져 배를 드러내고 누운 강아지처럼 무방비하게 희롱 당했다.
“응, 흐응……”
잠시 뒤……
페르젠이 고개를 떼어냈을 때는, 흘러나온 애액으로 질척해진 새하얀 팬티가 도톰하게 살이 오른 음부에 야릇하게 달라붙어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꾸욱!
“응……!”
그에 검지와 중지를 이어 붙인 페르젠이, 유페미아의 고간 위를 천천히 내리누르자 끈적거리는 애액이 천박하게 스며 나왔다.
팬티를 살짝 옆으로 젖히면, 뻐끔뻐끔 거리는 분홍색 음부가 남자를 유혹하는 암컷의 냄새를 진득하게 풍겨온다.
정말이지, 고혹적인 광경이었다.
“유페미아.”
보지는 않았지만, 강의실에 홀로 들어간 그녀는 몇몇 학생들에게 선명한 적의를 받았으리라.
그러한 그녀에게, 자신이 입 발린 말로 상냥히 위로해봤자 과연 얼마나 먹혀들겠나.
하지만 흔들다리 효과라는 게 있다.
사람의 적의에 노출되어 움츠러든 상태에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성욕을 자극해 해소시켜준다면 결과적으로……
자신은, 유일하게 커다란 기쁨을 선사해주는 사람으로 남겠지.
“엎드려 봐라.”
“……”
아무래도 장소가 장소이다 보니, 얼굴을 붉힌 유페미아는 심리적인 저항을 느끼는 듯 했다.
“얼른.”
하지만 허벅지를 토닥이며 재촉하자……
유페미아는 스스로 몸을 뒤집은 뒤, 자신의 엉덩이를 내밀고 얌전히 엎드려 누웠다.
“아……”
새하얀 팬티가 내려가, 발목에 걸쳐진다.
찌걱……
그리고 젖어든 음부 안으로 파고드는 페르젠의 손가락이, 갈고리처럼 휘어져 익숙하게 특정 부근을 누르며 살살 긁어댔다.
“으응……!”
싫어도, 아양을 떨 듯 탐스러운 엉덩이가 흔들린다.
배움의 터, 사교의 장──아카데미.
그러한 곳에서, 엉덩이를 들이밀고 음부를 쑤셔지고 있으니 유페미아는 마치 나쁜 아이가 된듯해 배덕감을 느꼈지만……
중지뿐만이 아니라, 검지까지 파고든 페르젠의 손가락이 거침없이 질내를 휘젓자 유페미아는 쾌락에 헐떡이며 파고든 손가락들을 연신 꾸욱꾸욱 조여 댔다.
“흐, 읏! 읍……”
몸을 일으킨 페르젠이, 고개를 숙여 상냥히 키스를 해온다.
자신의 음부에 파고든 손가락은 여전히 질벽을 긁어내고 있었기에 유페미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어설프게 혀를 움직였지만……
페르젠은 능숙히, 유페미아의 그런 혀를 옭아매고 애정이 흘러넘치는 진한 입맞춤을 이어갔다.
“힉……! 끄흥! 으응……!”
곧이어 유페미아의 몸이 파르르 떨리자, 페르젠은 손가락을 조금 더 깊숙이 넣고서 오돌토돌한 부근 근처를 꾸욱! 눌렀다.
“흐……! 아, 앗……!”
그러자 떨리다 못해, 거의 경련을 일으키는 유페미아를 보고서 페르젠은 그녀의 몸을 짓누르듯 끌어안았다.
움찔!
움찔!
자신의 품안에서 전해지는 가냘픈 떨림 하나하나가, 어찌 이리도 애틋할 수가 있는 건지.
찰박.
“흐앙……”
흥건해진 음부를 손바닥으로 토닥이니, 물이 튀기는 듯한 천박하고 음란한 소음이 옅게 퍼져 나간다.
책상 위에 놓인 새하얀 종이들은, 떨어져 내린 유페미아의 애액을 머금고 저마다 빗방울 같은 얼룩이 새겨져 있었다.
훌쩍……
이후, 절정의 여운이 천천히 가시자 유페미아는 왠지 모를 서글픔과 자괴감에 길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훌쩍였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눈물을 핥으며 허벅지를 툭툭 두드리는 페르젠의 손에, 유페미아는 다리를 벌린 뒤 엉거주춤하게 허리를 들어 올렸다.
스륵……
“응……”
그러자 페르젠은 무척이나 상냥하게, 축축해진 자신의 음부를 닦아주고서는 발목에 걸쳐져 있는 팬티를 도로 올려서 입혀주었다.
이처럼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도, 언제나 그의 손길이 스며든다.
“흑, 으응……”
병 주고 약주는 거라는 걸, 유페미아도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지만 루에르그를 떠난 이후로 선의를 보여주었던 사람은 한명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끌어당기는 그의 품에 안겨 고개를 묻고 뺨을 비비적거렸다.
사막 한 가운데서 발견한 물웅덩이가, 설령 깨끗하지 않은 흙탕물이라 하더라도 마시지 않고 지나갈 수가 있겠는가.
“슬슬 배가 고플 테니, 식사를 하러 가도록 하지.”
“응……”
시간이 어느 새,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었기에 두 사람은 함께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옅은 여운이 남아 있는 유페미아의 다리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송아지처럼 간간히 후들거렸다.
그에 페르젠은 팔짱을 끼기 쉽도록 자신의 팔을 내밀어주었고, 유페미아는 그곳에 자신의 팔을 얹힌 뒤 반쯤 몸을 기댄 채로 교수실을 나섰다.
멀리서만 보면 두 사람의 뒷모습은……
더 할 나위 없이, 금슬 좋은 부부의 표본이었다.
* * * * *
지금 불편해하는 모든 것들은, 흐르는 시간 속에 결국 사소한 것들로 바뀌어 버리고 만다.
그 말처럼, 나는 신경을 쓰고 있는 모든 일들이 내일 밤에는 와인 한잔을 마시며 곁들일 수 있는 농담이 되어버리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
고작 6일의 시간은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가, 벌써 5월 7일.
저 멀리서 고고히 치솟아, 오늘 따라 유난히 화려한 불빛을 머금고 있는 황궁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연초 한 대를 꼬나물었다.
명분이 마련된 자리의 형성에는 문제가 없으리라.
관건은, 죽이느냐 죽이지 못하느냐 뿐이겠지.
어제──5월 6일에는 라우라의 괴벽을 관리해주며 밤을 샜기에, 점심을 먹은 이후로는 쭉 침대에 누워 깊은 숙면을 취했다.
그 덕분에 일어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은 지금, 정신은 맑았다.
컨디션은 가히 아무런 하자 없는 최상의 상태.
“저……”
발코니의 문을 열고, 눈처럼 화사한 드레스를 입은 유페미아가 빼꼼 고개를 내민다.
주문을 했던 대로, 과한 치장 같은 건 없었다.
말 그대로, 기품을 통한 아름다움을 내뿜는 드레스.
과연, 아젤리아의 솜씨라 할 수 있었다.
“그래, 가도록 하지.”
조금 안절부절 못하는 유페미아의 손을 붙잡는다.
그녀도 황궁의 연회에 들어서는 순간, 그곳에 시엘 미드포드가 있으리라는 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도, 나도.
그것을 언급하지 않았고, 티를 내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차에 올라타, 우리는 황궁으로 나아갔다.
창밖을 통해 바라보는 밤하늘, 그곳에 무수히 놓인 별들은 곧이어 재밌는 일이 일어날 거라는 걸 짐작이라도 한 듯 기울어진 달 곁에 옹기종기 모여 밤을 비추어 내렸다.
* * * * *
‘다 왔나……’
거대한 황실의 연회장, 그곳의 문 앞에 서서 명단을 들고 있는 관료는 피로한 눈을 찌푸렸다.
초청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들어서지 않은 자들은 8명.
물론, 명단이 완성되는 순간 진작 불참으로 체크 되어 버린……
페르젠 폰 슈바이크 루에르그.
제레미아 폰 그리엘 브뤼테인.
두 사람을 포함하면, 10명이기는 했다.
당일도 아니고, 명단이 작성된 시점에 바로 불참으로 기록 해버린 건 그들이 브뤼테인의 핏줄이기 때문이다.
브뤼테인의 혈통을 이은 그들이, 황실 주관하의──그것도 차후 황위 쟁탈전의 서막을 올리는 자리에 참석할리는 없었으니까.
“음……?”
조금 있으면 9시 30분.
슬슬 자리를 떠도 될 시점이라 판단했던 관료였지만, 마차 한 대가 언덕을 올라와 황궁 안으로 들어선다.
“허……”
9시 30분에 연회가 시작이기는 했으나, 9시까지 도착하는 게 예의이거늘 저게 대체 무슨 배짱이란 말인가?
아니, 하다못해 황제 폐하 보다는 일찍 와야 하지 않나.
연회장 안에는 이미, 에르네스 제국의 황제 폐하와 그의 황비가 자리에 앉아 있는데……
이대로 들어서는 건, 감히 내가 이 연회의 주인이오 하는 버릇없고 오만한 행동이라 할 수 있었다.
차라리 그대로 불참하고, 나중에 원하는 황자에게 따로 접선을 하는 게 나을 거라는 걸 모르나?
‘흥…… 중앙에는 얼쩡거리지도 못하는 지방 귀족인가 보군. 입장할 때 내가 우렁찬 목소리로 그대의 이름을 크게 외쳐주마.’
황실의 권력이 강해지는 만큼, 거기에 소속된 관료들도 황실을 위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크나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헌데 그러한 자신들의 주인, 황제 폐하를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니 자연히 속이 뒤틀릴 수밖에 없었다.
“어……”
하지만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마차에 불빛이 내려앉아 새겨진 가문의 문양이 드러나자, 입구를 지키고 있던 관료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이윽고 마차에서 내리는, 언제나 단정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는 페르젠이 자신의 아내인 유페미아와 함께 걸음을 내딛는다.
“……”
“받지. 언제까지 내가 들고 서있어야 하나.”
“예, 예……”
장신의 키를 가진 그가, 특유의 붉은 눈동자로 자신을 굽어다보자 관료는 숨이 턱 막히는 듯한 압박감을 느끼며 얼른 내미는 초청장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연회장의 문을 열어줘야 했지만……
머리가 혼란스러운 관료는 그러지를 못했다.
그에 페르젠은 무심하게 관료를 지나쳐, 연회장의 거대한 문 앞에 서서는 잔뜩 긴장해있는 유페미아를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허리를 펴라.”
“으응……”
“어려워 할 거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라보기만 할 뿐, 다가오려 하지도 않을 테니까.”
“……”
“그러니 한 가지 사실만 명심하도록 해라.”
고개를 숙이는 페르젠이, 유페미아의 귓가에 대고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머리를 숙여도 되는 건, 오직 이 제국의 황제 폐하뿐이다.”
이윽고 앞으로 손을 내미는 페르젠이, 연회장의 문을 열었다.
그 너머에서는 화려한 불빛과, 궁중 악단들의 음악이 새어나왔고.
격식 있게 차려 입은 귀족들이,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
페르젠은 어려워 할 게 없다고 말을 했지만, 유페미아는 곧장 주눅이 들었다.
살면서 이런 규모의 연회에는, 참석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흔들림 없이 걸음을 내딛는, 격조 있는 페르젠의 발걸음이 이정표가 되어주자 유페미아도 서툴게 나아갔다.
동시에……
“페,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께서 입장하십니다!”
문 앞을 지키던 관료가, 정신을 차리고 뒤늦게 페르젠의 입장을 연회장 안의 사람들에게 알린다.
경황이 없어서 바뀌기 전의 성, 심지어 아내로서 참석한 유페미아의 이름조차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브뤼테인이라는 가문의 이름, 그 하나만으로도 연회장 안에 있는 모든 귀족들의 시선을 일제히 집중시키게 만들었다.
저벅……
또각……
이내 에르네스 제국의 황제와 황비, 그 앞에 서서 페르젠은 방금 전의 외침을 정정이라도 해주듯 입을 열었다.
“저, 페르젠 폰 슈바이크 루에르그가……”
“유, 유페미아 엘 로렌느 루에르그가……”
……제국의 태양과, 달을 뵙습니다.
소란스러웠던 장내가 숨죽인 듯 고요해진다.
아니, 유일하게 궁중 악단들만큼은 연주를 멈추지 않았기에.
연회장은 일순간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귀족이라는 관객들을 모아두었을 뿐인 음악회로 변질되어버렸다.
그것이 브뤼테인이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무게와 값어치.
실제로 황위를 옥좌에 비유 한다면……
제관(帝冠)은 브뤼테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이 오만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의 역사로 증명해온 산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러한 제관(帝冠)의 핏줄이, 현재 눈앞에 있었다.
* * * * *
‘시엘, 미드포드……’
로벨리움 왕국의 두 번째 왕자, 그의 곁에 서있는 이 세계의 주인공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사람이 삶이라는 무대 위에 세워진 연기자들이라고 한다면.
관객석은 대척점에 위치 해있는 죽음, 명계라 볼 수 있겠지.
그래, 그러니……
커튼콜(Curtain call)을 내리자.
나는, 네게 주어진 배역을 거두고.
명계라는 관객석으로 보내, 나라는 인간이 연기하는 삶의 무대를 지켜볼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 줄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9100자……
두 편이나 다름이 없으니, 양해를 부탁할 수 있을 까요 ㅠㅠ
죄송합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