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55화 (55/260)

EP.55 055─시엘 미드포드

“……”

밤을 지새운 유페미아는 고개를 돌렸다.

조금씩 어둠을 몰아내며, 밝아오는 아침.

교태 아닌 교태를 부리며, 스스로 그의 품에 안긴 횟수가 몇 번이었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때의 짙은 살내음을 대신해, 이불 안쪽에서 풍겨오는 정사 이후의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지나간 밤의 열기를 어렴풋하게 유페미아에게 되새겨주었다.

주륵……

다리를 살짝 오므렸을 뿐인데, 질내에서 울컥이며 역류하는 정액이 추잡스레 흘러나온다.

그에 멍하니, 페르젠의 품에 안겨 엉덩이 아래쪽의 침대 시트가 젖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유페미아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두려움과 슬픔 같은, 애한 섞인 감정들조차 전부 타버렸는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공허하기만 했다.

어쩌면 그래서,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페르젠의 품안으로 아이처럼 더욱 깊숙이 파고들려 하는 걸지도 몰랐다.

부스럭……

연신 꼼지락 거렸기 때문일까.

고작 새벽 6시임에도 불구하고, 잠에서 깨어난 페르젠이 자신의 뒷머리를 느릿하게 쓸어내린다.

“밤을, 샜나.”

“응……”

눈썰미가 좋은 남자니, 이런 것도 금방 알아차리는 구나.

“오늘은 아카데미에 출근하는 날인데, 그러면 일을 하는데 지장이 생기지 않나. 원한다면 쉬어도……”

“당신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할게.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수차례 당신의 씨를 받아 내고도, 이리 멀쩡히 눈을 뜨고 있는걸.”

“……”

뒷머리를 쓸어내려주던 페르젠의 손길이 멈춘다.

혹시 실수를 했던 걸까?

유페미아는 어깨를 움츠리며, 페르젠을 올려다보았다.

“이르지만, 목욕을 하러 가도록 하지. 짧게 자는 것 보다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구는 게, 피로를 풀어내는데 훨씬 효과적일 테니.”

상냥하게, 이마에 키스를 해주는 그가 이불을 걷어낸다.

움찔.

그에 바깥 공기에 전라가 노출된 유페미아는 옅게 떨며, 상체를 일으키는 페르젠의 품속에서 몸을 웅크렸다.

“아……”

그러자 이번에는 보다 많은, 마르지 않은 정액이 자신의 냄새와 뒤섞여 비릿하면서도 야릇한 내음을 풍겨온다.

“조금은 닦고 가야겠군.”

“내가, 할게. 수건 이리 줘……”

“됐다. 내가 해주마.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

쉽고 어려움에 속하는 영역이 아니라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을 텐데, 굳이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

정말, 고약한 성격이다.

“누워 보도록.”

“그…… 내가, 다리를 벌릴 테니까……”

“유페미아.”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가 이불보를 토닥이며 특유의 붉은 눈동자를 살포시 찌푸린다.

“응…… 알았어요……”

사사로운 것 하나하나에도, 굴복하고 복종하기를 바라는 거라면.

따를 수밖에 없으리라.

“읏……”

기저귀를 갈아주는 아기처럼, 유페미아의 두 다리를 반듯이 모아 올린 페르젠이 음부에서부터 항문으로 걸쭉히 흘러내리는 정액을 수건으로 닦아 내린다.

자신의 치부를 전부 보여주고 있다는 수치심도 수치심이지만……

이런 간단한 행위조차 스스로 하지 못하고, 아기처럼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것이 짙은 무력감을 불러 일으켰다.

“다 되었다.”

정액이 가득 묻은 수건을 옆으로 내려두고, 다리를 붙들고 있는 손을 풀어주는 페르젠이 근처에서 담요를 가져와 자신의 나신을 덮어준다.

“……”

그리고는 두 팔을 살짝 벌리는 모습을 보며, 유페미아는 침대 위에서 엉기적엉기적 기어가 페르젠의 목덜미에 두 손을 휘감고 공주님처럼 안겨들었다.

“말끔히 치우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문을 열고, 밖에 서있는 시녀들에게 간단한 명령을 내린 페르젠이 천천히 복도를 거닐어 욕실로 들어선다.

“아……”

거기서 담요를 벗고, 자신의 나신을 내려다 본 유페미아는 일순간 옅은 실소를 터트렸다.

쇄골, 가슴, 옆구리는 물론 이거니와……

허벅지 근처에도, 그가 새겨 넣은 흔적이 적나라하다.

“이러지 않아도, 나는…… 당신거야……”

힘없는 손으로, 붉은 흔적을 일일이 짚으며 유페미아는 페르젠에게 말했다.

“하다못해, 옷을 입었을 때 가려지는 부위에만 해줘…… 목덜미하고 발목은, 너무 하잖아……”

“그래, 그 정도는 앞으로 생각해보마.”

탈의를 마친 페르젠이, 무심하게 대답을 하며 자신의 손을 붙잡은 뒤 욕조 안으로 이끈다.

첨벙……

“흐, 으……”

적절하게 데워진 따뜻한 물이, 정사의 피로를 풀어내며 온 몸을 노근하게 풀어주자 유페미아는 나지막한 신음을 흘렸다.

“흐윽……!”

하지만 자신의 두 다리를 좌우로 벌리고, 음부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는 페르젠이 정액을 부드럽게 긁어내기 시작하자 유페미아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전신을 파르르 떨었다.

“아, 아응……”

손목을 조심스레 붙잡아 보았지만, 힘줄이 도드라지는 페르젠의 손은 그런 저항쯤이야 가볍게 무시하고 연신 자신의 질내를 휘저으며 걸쭉한 정액을 밖으로 끄집어냈다.

“흐, 앙……”

반대쪽, 질내를 희롱하지 않는 페르젠의 왼손이 아랫배로 올라와 자궁 근처를 부드럽게 내리 누른다.

그에 유페미아는 자신도 모르게, 질내를 꾸욱! 수축했다.

길들여질 대로 길들여진 몸은, 이제 외부에서 자궁을 압박하는 손길에도 서서히 쾌락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꾸욱!

“앙……!”

꾸욱!

“응……!”

리듬감 있게, 자궁 부근을 내리누르는 페르젠의 손길에 따라 유페미아는 질내에 파고든 페르젠의 중지를 조였다 풀어주기를 음란하게 반복했다.

다른 건, 아주 사소한 정보라도 알려주지 않으면서……

이처럼 자신의 손길에 어떻게 조금이라도 더 쾌락을 느낄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너무나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아니, 알려주다 못해 절대 잊지 말라고.

그는 자신의 몸에 각인을 시켜주었다.

부르르!

“흐, 윽…………!”

기어코 자궁을 눌러주는 손길과, 질내를 긁어내는 손가락에 절정을 맞이한 유페미아는 발가락을 꼬옥 오므리며 가느다란 허리를 애처로울 만큼 떨어댔다.

“……”

이후,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린 유페미아는 페르젠의 품안에 힘없이 몸을 기대고 초점이 풀린 몽롱한 눈동자로 앞을 바라보았다.

“졸, 려……”

따뜻한 물은 이불 같았고.

페르젠의 품안은 부드러운 침대 같았기에.

“잘, 래……”

몰려오는 수마를 견디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유페미아는 아기처럼 칭얼거리다 두 눈을 감았다.

목욕을 해야 하는 걸 알고는 있으나……

귀찮았다.

어차피 자신은 소유된 물건이니, 주인인 그가 알아서 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쓰고 난 물건을 제자리에 두거나 깨끗이 정리하는 건 원래 사용자의 몫이었으니까.

그리, 유페미아는 페르젠의 가슴팍에 고개를 묻고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뱉으며 단잠에 빠져들었다.

* * * * *

“……”

마차의 창가에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다, 시선을 내렸다.

욕실에서 잠이든 유페미아는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고, 내 무릎에 고개를 배고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슬슬 아카데미에 도착하니, 일어나주지 않으면 곤란한데……’

주차장에서부터 교수실까지 유페미아를 안고 올라갔다간──정확히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학생이 있다면 그 동안 일체형 책걸상으로 쌓여진 적의가 드러나지 않으리라.

‘……’

하지만 지금 와서는, 상관없지 않을까 싶었다.

이미 유페미아의 자존감은 밑바닥까지 떨어져, 내게 굴복과 복종을 스스로 자처하는 수준에 이르렀으니.

“으응……”

하지만 마차가 아카데미의 정문을 지나가는 순간, 유페미아는 옅은 신음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도착한 시각은 오전 8시 35분.

고작 2시간 정도를 잠들었을 뿐이라, 피로가 풀리지 않은 퇴폐적인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그 모습이 어째서, 이리도 야릇하게 느껴지는지……

“왜……?”

몸을 일으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돈하던 유페미아도 그런 내 시선을 느끼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바, 밖에…… 보일 수도 있어……”

곁으로 조금씩 거리를 좁히자, 유페미아는 몸을 움찔하며 나름 합리적인 구실로 나를 설득하려 했다.

“읍……”

하지만 기본적으로 마차 내부의 창문이란,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용도지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용도가 아니었다.

안 될 건 없겠지만, 그리 예의 없고 버릇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

있었다.

혹시나 해서 입맞춤을 하며 힐끔 창밖을 바라보니, 보라색 꽃잎의 문양──알프레드 가문의 마차에서 내리는 유리엘이 나와 시선이 마주친다.

눈치라는 게 있으면 얼른 자리를 떠나야 할 텐데.

오히려 공적인 장소에서 키스를 하고 있는 내가 잘못했다는 것처럼, 끝까지 시선을 거두지 않고 훈계를 하듯 쳐다보고 있다.

“하……”

그것에 기가차서 고개를 떼어내자, 유리엘은 어느새 본관 쪽으로 걸음을 옮겨 자취를 감추어 버린 상태였다.

정작 본인은 웃기지도 않는 커다란 가슴을 출렁이며 걸어 다니는 주제에, 마차 안에서 나누는 키스가 부적절하다고 지랄하는 건 무슨 심보인지 알 수가 없었다.

* * * * *

끼릭……

휠체어를 움직여, 강의실 앞으로 도착한 리지는 손을 뻗어 문을 열려고 했지만 갑작스레 튀어나온 남자의 손이 그것을 대신해주었다.

뒤로 고개를 돌리니, 평소에는 인사도 건네지 않는 로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학우가 보인다.

“……”

클로디아 가문과 알프레드 가문이 결혼을 하고 나서……

아니, 정확히는 페르젠이 그곳에 참석을 했기에.

그 날 이후부터, 종종 자신에게 속이 뻔히 보이는 인위적인 친절을 베풀어주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고마워요.”

물론, 인위적인 친절을 베풀어주는 사람들은 권세가 약한 편에 속하는 귀족가의 자제들이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혼자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장애가 있는 자신이라면 간단히 결혼을 하여 조금씩 부흥의 조짐을 보이는 클로디아 가문과 엮어질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거겠지.

역겹기는 했지만……

리지는 자신에게 정략적인 가치가 생겨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을 하고 있었다.

그리 강의실 안으로 들어서니, 시각은 8시 50분.

조금 있으면 그가 들어올 거라 생각 했지만, 놀랍게도 먼저 모습을 드러내는 건 녹색 머리의 여인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녀가 누구인지 몰라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리지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예식을 진행하는 대성당에서 보기도 했고.

자신의 생일을, 가장 초라하게 만들어준 장본인이었으니까.

“저는……”

이윽고 유페미아의 자기소개가 이어진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리지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는……’

아카데미 내에서도, 당신의 행복한 순간을 지켜봐야 하는 걸까.

과연, 저 여자는 당신의 민낯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참으로 웃기는 일이었다.

정작 아내인 그녀 보다……

자신이 페르젠에 대해서, 더 많은 걸 알고 있다니.

그리고 그것이, 리지는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보여주어서는 안 될 면모라는 걸 알고 있기에, 그도 꽁꽁 감추고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어째서, 자신에게는 그 이면을 보여주었는지.

리지는 알 수가 없었다.

브뤼테인에 비하면, 장난감처럼 마음대로 밟고 부서도 되는 그런 장난감 같은 위치에 있는 가문이라서 그랬나?

하지만, 루에르그는 클로디아 가문보다 훨씬 변방에 있는 쓰레기 같은 영지에 지나지 않는데.

그녀는 어째서, 당신에게 학대당하는 게 아니라 그리도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있는 걸까.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이윽고, 출석 체크를 위해 불리는 자신의 이름을 들으며 리지는 유페미아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네.”

대답을 하자, 그녀 또한 자신을 눈동자에 담는다.

이름과 연관지어, 똑똑히 기억하기 위함이겠지.

그래, 절대로 잊지 말아주세요.

지금 나의 모습을, 당신의 뇌리에 선명히 각인 시켜주세요.

당신의 남편,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에게 철저히 망가지고 부서져버린 여인의 삶이 여기에 있으니까.

이후, 들어온 페르젠이 강의를 시작했지만……

리지는 그의 목소리가, 귓가로 하나도 들려오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ㅠㅠㅠㅠㅠㅠ……

영양가 없는 편이라 미안해……

내가 힘내서 56편 진짜 재밌게 가지고 올게……

후원자에 대한 감사편지도 56편이 올라오고 난 후에 업데이트 할게요……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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