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51화 (51/260)

EP.51 051─3주

오후 7시.

먹구름에 가려져 달빛조차 비추어지지 않는 밤.

라우라의 괴벽을 통제하는 집에서, 홀로 의자에 앉아있는 나는 조용히 손님을 기다렸다.

끼익……

오랜 시간 끝에, 천천히 열리는 문.

너머에서 들어오는 건 족히 70세는 되어 보이는, 노년의 남성.

“오셨습니까.”

형식상 존대를 취했다.

그에 흉내쟁이의 능력을 빌려, 노년의 남성으로 위장했던 로벨리움 왕국의 제 2 왕자는 지팡이를 옆에 두고서 구부정한 허리를 반듯이 피더니 곁으로 다가와 나를 마주보며 앉았다.

“어렴풋하게 의중을 읽고 있었을 줄은 몰랐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들었는데, 정세를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시군.”

“과거와 다르게, 변했던 변수는 하나이지 않습니까.”

“대성당에서 잠깐 마주했을 때, 그대의 예상을 부정하지는 않았으니…… 여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은 허락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한가?”

“당연한 말씀을.”

빙그레 웃었다.

제국의 체스판으로 놀아나는 왕국의 왕자들은, 왕위라는 자리에 목을 매지 않는다.

어차피 허울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왕자라는 고귀한 신분 또한, 각 제국을 대리할 수 있는 장기말의 자격일 뿐이었다.

때문에 왕국의 왕자들은, 지지하는 세력을 등에 업고서 서로 으르렁 거리는 연기를 취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왕국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합의하여 움직인다.

지금까지는 그 세력이 에르네스 제국뿐이었기에 황자들의 격식 있는 내전에 불과했지만, 이번에는 두 왕국을 포기하고 오직 오베른 왕국만을 사수했던 엘마르크 제국이 참전을 했으니 양상이 많이 달라진다고 볼 수 있었다.

그도 그럴게 항상 에르네스 제국의 손에 간택 되어 왕위에 오르는 결과가 확정인 상태라면, 갈등을 격화 시켜 얻어낼 콩고물을 얼마나 부풀릴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제는, 명백한 경쟁 상대가 있었다.

그러나 엘마르크 제국이 남동쪽의 우환을 제거한 건 비교적 최근이었고, 에르네스 제국은 오래전부터 두 왕국에 손을 뻗고 있었으니 엘마르크 제국이 안심하고 지원할 대상을 고르게끔 유도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명분을 제공해야 했다.

특히, 로벨리움에는 현재 왕위를 계승할 왕자──장기말이 두 개 뿐이었기에 가장 중요한 곳.

때문에, 나는 그 중에서도 제 1 황자의 지지를 받고 있는 로벨리움의 2 왕자에게 접근을 한 것이다.

왜냐하면 제 1 황자는, 알프레드 가문이 지지를 하고 있으니까.

그러한 황자의 지지를 받는 왕자가, 에르네스 제국의 품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엘마르크 제국도 안심하고 손을 건네겠지.

왕국 입장에서는 그것으로 경쟁을 부추겨, 결과적으로 누가 왕위에 오르든 기존보다 좋은 보상이 따라 올 테니 이득이었다.

단, 그러기 위해서는 알프레드 가문의 입지와 황실의 눈치에도 굴하지 않을 수 있는 협력자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협력자로서……

‘브뤼테인의 적자만큼, 적합한 이는 없겠지.’

그래, 브뤼테인의 핏줄이라면 행할 수 없는 일인 만큼 이 보다 적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안 그래도 그 점 때문에, 깊숙이 자리 잡은 페르젠의 자아는 당장 이 자리를 파하라고 강요를 하고 있었지만 억지로 눌러 참았다.

나는, 살고 싶었으니까.

“그러면 믿고, 나는 5월 7일. 에르네스 제국의 황실에서 감히 브뤼테인의 차남을 무시하는 천하의 개망나니가 되겠소. 하지만 어디까지나 연기이니, 그런 나의 보잘 것 없는 명예를 지켜보겠다고 나설 기사에게는 손속을 베풀어 주시오.”

“그 기사는……”

내가 정하겠다고 말을 하려던 찰나.

“이미 정해두었소. 시엘 미드포드 경이라고…… 그대는 모르겠지만 출신이 몰락 귀족, 사실상 성만 있는 평민이라 떨어질 명예도 없어 가장 적합한 자이지.”

“……”

“그 보다 일이 너무 술술 풀려서 무섭기는 하군. 제 1 황자가 알프레드 가문을 등에 업고 있는 상태라 그대를 포섭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라 믿었지만, 설마 먼저 제안을 해올 줄은…… 브뤼테인은 황실에 해가 되는 짓은 하지 않는 게 최우선 아니었소?”

찔러만 보러온 감이 굴러 떨어져 발밑으로 오니 떨떠름하기라도 한 걸까, 이제 와서 2 왕자는 괜스레 헛기침을 해왔다.

“브뤼테인의 적자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제 성은 루에르그입니다. 이것으로 충분한 답변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그런가……”

“그렇습니다.”

제 2 왕자는 손속을 베풀어 달라고 했지만, 적어도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연극이라고는 해도, 가끔씩 사고가 나지 않는가.

시엘 미드포드를 죽이는 동시에, 알프레드 가문의 영향력 까지 떨어트려 클로디아 가문을 견제할 수 있는 일거삼득의 상황.

말 그대로,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

절대 놓칠 수가 없었다.

로벨리움 왕국의 장기말 중 하나가 엘마르크 제국으로 넘어 가게 되니 황실의 눈치가 조금 보이기는 하겠지만, 어차피 명분은 제 2 왕자가 제공을 해주니……

오히려 문제는, 루에르그라는 성으로 연회에 참여를 하더라도 뒷골을 잡을 형님을 앞으로 어떻게 보느냐 였다.

‘어차피 그건, 나중에 생각할 일이겠지.’

밀회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싶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제 2 왕자도, 나를 따라서 일어난다.

“아무도 브뤼테인의 핏줄이 연회에 참석할 거라 믿고 있지 않을 텐데, 그날 밤 사람들의 반응은 볼만 하겠어.”

지팡이를 쥐고, 다시금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는 2 왕자.

“왕자 저하.”

“말하시게.”

“왼손으로 지팡이를 쥐고, 세 걸음만 내딛어 주십시오.”

“……?”

“이런 간단한 부탁 정도는, 들어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건, 그러한데…… 특별한 의미라도 있나?”

의아해하면서도, 제 2 왕자는 이 방으로 들어와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쥐고 내딛었던 세 걸음만큼.

왼손으로 지팡이를 쥐고 세 걸음을 내딛어주었다.

그에 처음부터 지적할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괜히 분위기를 흩트리기 싫어 강박의 발작을 억제하고 있었던 나는 진심에서 우러러 나오는 미소로 그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 밖으로 나섰다.

“……”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 * * * *

똑똑.

‘……?’

밤 8시.

밖에서 울려 퍼지는 노크 소리에, 라우라는 의아함을 머금는 한 편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제단을 쓰다듬어 아공간을 연 뒤 마력을 방사해 시신을 사역했다.

아무래도 습격이 있었던 만큼, 야심한 시각에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경계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기에, 괜히 분위기가 을씨년스러워 라우라는……

……라우라!

깜짝!

……언제까지 엄마를 밖에서 기다리게 할 거니!

“지, 지, 지금! 여, 여, 열게요……!”

라우라는 당황했다.

이 시각에, 어째서 로젠베르크에 있어야 할 자신의 어머니가 아카데미의 기숙사로 찾아온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클로디아 가문과 알프레드 가문의 결혼식이 오늘 열렸다고 들었는데.

초청을 받아 참석을 한 걸까?

‘참석을 한다고, 미리 서신 정도를 보내줬으면……’

딸칵!

“어, 어서…… 오세요……”

“남자가 생기더니, 오랜만에 보는 엄마의 얼굴에도 기뻐하지를 않네. 할 말이 많으니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자꾸나.”

“그……”

오해를 하게끔 편지의 내용을 바꾸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연심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이게끔 했는데.

남자가 생겼다는 말을 대뜸 내뱉는 걸 보니, 조금 과장 되게 받아들인 감이 없잖아 있어 보인다.

“앉아 보렴.”

“……”

“시신은 관에 넣어서, 다시 아공간에 수납하고.”

“네……”

고분고분, 라우라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자신의 아버지는 너무 유순했고, 어머니는 여장부에 가까웠기에 라우라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몇 배는 대하는 게 어려웠다.

“라우라, 너는 어쩌고 싶은 거니?”

“네?”

“루에르그 백작.”

“……”

“축복을 받은 악기를 무상으로 건네줄 정도라면, 너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하고 있는……”

“그! 저, 저의…… 이, 일방적인…… 짜, 짝사랑 이예요.”

편지의 내용 때문에, 페르젠이 강제적으로 로젠베르크에 보내게 만들었던 피아노가 그런 식으로도 비추어 질수 있다는 걸……

라우라는 이제 와서야 깨달았다.

“오늘 클로디아 가문과 알프레드 가문의 혼례에 참석해, 루에르그 백작과 이야기를 하고 왔는데……”

“네……”

“로젠베르크에 내려오지 않는 대신, 이따금 찾아가 개인 교습을 몇 번 받았다고 하더구나?”

“아……”

만월의 괴벽 때문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것의 핑계거리를 페르젠이 직접 만들어주었다는 걸 곧바로 눈치 채고 라우라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짝!

“아얏!”

짝!

“아, 아파요……!”

“이 엄마 마음도 속이 터질 것 같아 아파요!”

대뜸 등짝을 때려오는 손길에 라우라가 울상을 지으며 달아나려 했지만, 어머니의 팔은 여장부답게 굳세서 자신을 놓아주지 않았다.

“너는 결혼도 안한 처녀가, 이미 결혼한 남자에게 벌써부터 몸을 허락해버리면 나중의 일은 생각을 하지 않는 거니?”

“네, 네……?”

“설마 설마 했지만, 너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단순한 부채감 때문에 그 피아노를 보내온 것일 수도 있겠구나.”

“아, 아니……”

“항사 침착하고 조심성이 많더니, 사랑은 어찌 그리 뒤도 생각하지 않고 다 퍼주고 보는 거니.”

개인 교습을 위한 만남이, 정말 배움을 받으러 가는 게 아니라.

밀회라는 뜻으로, 자신의 어머니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과대망상도 이런 과대망상이 없다 싶어, 라우라는 잔뜩 얼굴을 붉힌 채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 저는! 아, 아직…… 처, 처, 처녀에요!”

“너는, 이 상황에 발뺌을……”

“저, 저, 정말…… 이, 이에요! 교, 교, 교수님과 모, 몸을 서, 섞은 적은 어, 없어요!”

개와 돼지의 울음소리를 낸다던가.

손가락을 정성스레 핥는 다던가.

눈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다던가.

엉덩이에 손찌검을 당하고 훌쩍인다던가.

밧줄에 묶여도 보고, 볼개그로 입을 막혀도 보는 등……

불순한 일은 많았어도, 관계를 가진 적은 정말로 없었기에 라우라는 한사코 결백을 주장했다.

“……”

그에 라우라의 어머니인 베로니카는, 딸아이가 이 정도로 극구 부인을 하자 괜히 자신이 착각을 한 게 아닐까 싶어 조금은 화를 누그러트렸다.

아니, 깔끔히 식혔다.

저 말이 정말 사실이고, 라우라는 개인적인 연심만을 품은 채 건전한 관계만을 유지해 왔다면……

고작, 그것만으로도.

페르젠은 자신의 딸아이에게, 축복이 깃든 피아노를 무상으로 영지에 제공해줄 만큼 사랑에 빠졌다는 소리가 아닌가.

“어머……”

이제 보니,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자신의 딸아이는, 영악하게 남자를 잘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많이 늦었죠.

근데 별거 아닌거 같아 보여도, 중요해서 ㅠㅠ…… 수정한다고 고생을 좀 했습니다.

3주 파트는 이걸로 끝이네요.

그간 글들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코멘트 답변을 많이 못해드렸는데, 여유 있는 지금 해드리겠습니다.

Q. 페르젠과 이서진의 자아관련 부분.

A. 이따금 언급을 하기는 하지만, 이서진의 자아가 영향을 주었다고 나오는 서술과.

페르젠이라기 보다는 두 인격이 합쳐진 제 3자, 실제로 이서진과 페르젠을 주인공이 언급할 때는 '나' 라는 표현을 한 번도 쓰지 않았음.

등이 있는데…… 사실 이것만으로는, 그냥 지식 아는 페르젠 아님? 할 수도 있을 거에요.

네. 사실 부정은 못하겠어요.

일단 집필을 하면서 자아 충돌에 따른 갈등을…… 서술해야 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이건 처음부터 그랬어요.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하고 마음먹었습니다.

정확히는 분량을 할애하지 않기로요.

왜냐하면 이 자아의 충돌이라는 게…… 조금 비유를 쉽게 들어주자면 TS 소설에서 바뀌어 버린 몸과, 그로 인한 환경에 대한 성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그런 주제가 있잖아요?

이건 잘 다루면 재미있는데, 자칫 잘못하면 개똥철학으로 바로 바뀌어 버려서 건드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제 주제를 알고 커트를 한 것이죠.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Q. 아 ㅋㅋㅋ 작가 공인 해피엔딩이라고 했지만 계속 떡밥이 불길한 쪽으로만 던져지는데 불안하네요.

A. 이 소설은 악당 주인공의 하렘 조교 ( 순애 ) 를 곁들인 해피 엔딩 섹스킹 일대기 입니다.

장담컨데 베드 엔딩이 되면 여장하고 롤린이라도 추겠습니다.

Q. 연재 주기 널널히 잡으시는 게, 차라리 어떨까요?

A. 타이트하게 압박을 받게끔 잡는 게 당장은 나은 거 같아요. 글 쓰는 속도가 느리고, 스트레스도 조금 받는 편인데.

그런 압박이 없게끔 널널하게 잡아 버리면 던져 버릴 가능성이 오히려 더 큰거 같습니다.

어차피 퀄리티 맘에 들지 않으면 저는 업로드 안해요.

후원 거부 관련 문의 했더니, 최소 n명 이상의 작가들이 더 문의를 주셔야 검토를 해본다고 하시네요.

모르겠다……

후원 주신 분들 코멘트에 따른, 감사 편지를 개인당 정성스레 써서 공지를 뜯어 고칠 예정이니, 후원하신 분들은 나중에 시간 나실 때 찾아 봐주세요.

수정 날짜가 바뀌면요.

그리고 후원 금액은 일러스트를 뽑는데 사용을 하고 싶으나, 4월 달에 어금니 치아파절 된거 크라운 하는데 보탬을 하겠습니다 ㅠㅠ

그 때 영수증도 함께 첨부해서 올리도록 할게요.

님! 추천 부탁드려요!

나 이거 오랜만에 써보는데 깜짝 놀랐을까?

한 동안 쓰지 않았으니 ㅎㅎ……

오늘 하루도 행복하고, 힘내시길 바라!

사랑해.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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