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0 050─3주
페르젠도, 유페미아도.
더는 이 대성당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관심이 없었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시엘……’
치맛자락을 움켜쥐며, 유페미아는 조용히……
잊을 수 없었던, 한 남자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많은 게 바뀌어 있었지만, 유페미아는 한 눈에 알아보았다.
‘성공, 했구나.’
자신의 곁에서 어설프게 기사 흉내를 내던 이가, 이제는 당당히 기사가 되어 저곳에 서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유페미아는 기쁨을 느꼈다.
아무런 대가도 받을 수 없었던, 초라하기 그지 없는 자신에게 헌신했던 시간들을 일제히 보답 받은 것 같아서.
조금 더 그 모습을 눈에 담고 싶었지만, 유페미아는 그러지 않고 시선을 애써 엉뚱한 곳으로 고정시켰다.
3개월.
90일.
2160시간.
그 기간 동안, 유페미아는 한 번도 시엘 미드포드에 대하여 언급을 하지 않았다.
페르젠도 그러지 않은 걸로 봐서는, 기억에서 말끔히 지웠다는 모종의 확신이 든다.
아니, 지우지는 않았겠지.
다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에.
변해버린 그의 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거리라.
‘이거면, 됐어……’
도와달라는, 그딴 어설픈 부탁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럴 거였다면, 애초에 그 당시 루에르그에서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던 시엘의 손을 잡고 탈출을 했으리라.
괜히 자신과 엮이게 만들어, 간신히 스스로의 손으로 일구어낸 저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인생의 순간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이미 분기점에서 평행선으로 갈려버린 인연.
손을 뻗으려 해서도 안 되고.
손을 뻗어 와도 안 된다.
‘그래도……’
기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보다 기사처럼 유일하게 자신의 곁에서 힘이 되어주었던 남자.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힘들었지만, 행복하게 아등바등 보내왔던 시간의 추억들.
시엘 미드포드──그 이름을, 언제나 기억하리라.
* * * * *
고행의 연속이었다.
한 때 귀족이었던 자신의 아비는 몰락하여, 초라하게 성만을 가진 채로 마을 아낙네와 결혼을 하였고.
그리 태어난 자신과 동생은……
폭력 속에서 시름시름 앓아가는 어머니를 보며 살아왔다.
지옥 같던 삶에서, 처음으로 행복이라는 감정을 깨우친 순간은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였다.
하지만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비참한 광경을 보고서, 시엘 미드포드는 불행과 행복은 항상 같이 찾아온다는 말을 뒤늦게 이해했다.
그리 천애 고아가 되어, 용병 세계에 뛰어 들었지만……
유일한 가족이었던 동생은, 함께 의뢰를 수행하던 도중 자신을 지키다 사망했다.
이후, 시엘 미드포드는 정처 없이 떠돌았다.
자포자기한 채로 자신이 묻힐 무덤을 찾아가듯 쉬지 않고 의뢰를 받아 수행했으며, 그 끝에 마지막일거라 생각하고 도달한 곳이 루에르그였다.
그리고 거기서, 유페미아를 만났다.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악착같이 영지를 이끌어가던 여인.
어쩌면 처음은 동병상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엘 미드포드는, 의뢰를 완수하고도 루에르그에 남아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유페미아와 교류를 가지게 되었고.
시엘 미드포드는, 결코 아물 것 같지 않던 자신의 상처에 새살이 돋아나는 간질간질한 감각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감정을, 애써 인지하지 않으려 들었다.
소중했던 것들, 사랑했던 것들……
그 모두가, 자신의 곁에서는 먼지처럼 바스라 졌기에.
그러나 사람의 감정은, 이성이라는 목줄에 감겨 착실히 통제에 따르는 게 아니었다.
만약 그러했다면,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은 그 순간이 마법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리라.
때문에 시엘 미드포드는 성숙한 상사병을 앓았다.
상사병이라는 것에 성숙함이 수식 될 수 있다는 게 의아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시엘 미드포드는 그러했다.
그리고……
그 동안의 운명의 굴레는 마치 저주처럼.
눈앞에서, 그녀를 강탈당하게 만들었다.
세상이 원망스러웠고, 무력한 자신과 유페미아를 빼앗아간 페르젠이 증오스러웠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여 도망친 설산의 어딘가에서는, 새하얀 죽음만이 자신을 반기고 있었기에 시엘 미드포드는 눈을 감았다.
끝없이 쌓여가는 눈 속에 파묻혀, 눈물조차 흘러나오지 않는 울음을 토해내며 임종을 기다렸다.
하지만 죽지 않았다.
동상에 걸려 파괴되고 손상된 피부들과, 저체온증으로 철저히 망가졌던 신체는 따스한 무언가에 의해 재생을 반복했으니까.
고통스럽고, 괴로운 순간이었지만……
그것들이 일깨워주는 감각에, 시엘 미드포드는 목표를 정한 뒤 쌓여버린 눈들을 파헤치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설산을 악착같이 거닐었고, 그 과정에서 죽음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던 기운이 마력이라는 것도 눈치를 챘다.
이후, 왕도에 도착했을 때는 그간의 불행을 보답받기라도 하듯 끝없는 행운이 내려앉더니 로벨리움 왕국의 기사가 되었다.
하지만 시엘 미드포드는 기뻐하지 않았다.
고개를 조금만 숙이면, 자신의 발밑에 그간 겪어왔던 불행들이 시체더미들처럼 쌓여 있었기에.
그 불행에 엮여 들어간 어머니, 동생, 유페미아……
기사가 되어 있는 자신은, 그들의 괴로움을 머금고 피어난 동충하초에 지나지 않았다.
“시엘, 가서 좀 쉬다오지 그래.”
“괜찮습니다.”
“이번 사절에 네가 무슨 역할로 참여했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니까 입 닥치고 갔다 와라. 분위기 전환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
“그래. 눈치 보지 말고가. 어차피 피로연은 상당히 길어질 듯하니 5시가 되기 전에만 돌아오면 될 거야.”
“예. 그러면…… 실례하겠습니다.”
선배 기사님들의 말에, 시엘 미드포드는 꾸벅 고개를 숙인 뒤 피로연이 한참인 4층의 대성당을 빠져나왔다.
어색했던 갑옷도,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진다.
“……”
1층으로 내려오니, 여전히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기에 시엘 미드포드는 우산을 피고 대성당의 뒤쪽으로 향했다.
보내준 선배들은 제국의 수도를 구경하며 기분 전환이나 하라고 했지만, 미련한 자신은 꾸역꾸역 마차들이 늘어서있는 주차장으로 향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아……”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피로연을 뒤로하고, 먼저 대성당을 빠져나갔던……
유페미아와, 그녀의 곁에 서있는 페르젠을.
“……”
빠득!
우산의 손잡이에 금이 간다.
자신도 모르게 힘 조절을 실패한 것이다.
빠각!
툭!
망가진 우산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고, 차디찬 빗방울이 갑옷 사이사이로 스며들어온다.
유페미아…… 엘 로렌느 루에르그.
그녀가 스스로 까치발을 들어, 페르젠의 목에 두 손을 두른 뒤 자진해서 입맞춤을 건네고 있었다.
“……”
쏴아아아!
빗줄기가 급격히 거세진다.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흠뻑 젖어들고, 눈앞이 흐릿해졌지만……
유페미아와 시엘, 두 사람은 확실히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자 유페미아는 특유의 금빛 눈동자를 크게 치켜뜨더니, 아련한 서글픔을 머금고 스르륵 감아 버린다.
“……”
이내 길고긴 입맞춤이 끝나자, 페르젠은 칭찬이라도 하듯 유페미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더니 대성당의 후문으로 걸어 나갔다.
투둑, 투두둑.
거센 빗줄기가 갑옷을 때린다.
울려 퍼지는 소음은 시끄러웠지만, 시엘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찰박……
어느 새, 걸음을 내딛고 있는 자신이 보인다.
우산을 쓰고 있는 그녀는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움직일 생각이 없다는 듯 가만히 제자리에 서있었다.
찰박……
거리가 가까워진다.
그녀의 뒷모습이 너무나 왜소해보였다.
이리도 약한 여인이 아니었는데.
고작 3개월 만에, 그녀는 이리도 약해져있었다.
찰박……
지척으로 도착하자, 유페미아의 몸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음을 시엘 미드포드는 알 수 있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어떤 말을 해야……
“내 곁에, 와서는 안 돼.”
걱정이 가득 담겨 있는, 유페미아의 자그마한 한 마디.
얼마나 듣고 싶었던, 그리운 목소리의 울림인가.
“아가씨.”
이 호칭으로 불러보았던 게, 얼마만이였더라.
“행복하십니까?”
“응……”
“그러면 당신의 행복한 모습을…… 제게도 보여주십시오.”
“……”
유페미아는 끝끝내 몸을 돌리지 않았다.
시엘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리고 시엘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답변이 되었다는 듯 유페미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기억하고 계십니까.”
“……”
“당신은 나의 기사가 아니니, 나를 위해 희생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던 말씀을.”
“……”
“그래서 기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당신을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결연하고, 확고한 의지가 담긴 그 말에.
유페미아는 걸음을 내딛어, 마차의 문을 열었다.
“시엘. 그런 삶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어. 내 마지막 부탁이니까. 타인을 위해서…… 살아가지 마.”
타악!
마차의 문이 닫힌다.
그리고 마차는 빗속을 헤치며, 매정하게 나아갔다.
하지만 그 매정함이 무슨 의미인지, 시엘은 알고 있었다.
“알고 계십니까……”
소중했던 것들, 사랑했던 것들.
그 모든 것들을, 단 한 번도 지켜낸 적이 없었기에.
시엘 미드포드는, 그러한 것들을 지켜내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설령,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이 죽음이라 할지라도.
‘슬퍼하지 마십시오……’
시엘도 인간이었다.
왜, 유페미아와 단란히 살아가는 순간을 꿈꾸지 않겠는가.
하지만 브뤼테인이라는 가문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다.
그래서 시엘은 유페미아와 함께하는 미래를 포기하고, 그녀가 자유로이 살아갈 수 있는 미래를 그리기로 결심했다.
마지막에 가서, 물감이 다해 자신은 그릴 수 없더라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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