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49화 (49/260)

EP.49 049─3주

“……”

4월 27일의 아침, 비가 추적추적 쏟아진다.

끼릭.

수도 부근의 호화로운 저택, 그곳의 복도에서 휠체어를 이끌다 문득 멈춰선 리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알프레드 가문과 클로디아 가문의 혼례.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해졌다는 건, 분명 좋지 않은 쪽으로 클로디아 가문이──정확히는 자신의 첫째 오빠인 로에르가 감당해야 할 무언가가 있으리라고……

리지는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가주의 자리를 둘째 오빠에게 넘겨주던 시기가, 너무 공교로웠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행복의 희생이…… 대가를 받을 수 있기는 할까.’

노력을 한다고 꿈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건 아니듯, 세상은 무수한 부조리와 불합리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거대하게 피워낸 불꽃 속에서, 자신들만 재가 된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게 없겠지.

하지만 생존자가 없을 거라 믿었던 화재 속에서, 이따금 기적같이 목숨을 건진 이는 나오기 마련이다.

등가교환만으로 흘러가는 정직한 세상이었다면 걱정을 하지도 않았겠으나, 그러지 않음을 리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한숨을 내쉬며 휠체어를 이끌었다.

‘나는, 언제쯤 유클리드 등급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

마력은 후천적인 각성이 불가능하다.

오직 태어날 때부터 몸에 품고 있어야하는, 선천적인 축복.

때문에 마력은 자연스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육체의 주인과 함께 성장을 한다.

그 성장 속도와 최대치 또한, 마력을 품은 자들 사이에서 희비가 갈리게 만드는 재능.

예시로 페르젠과 유리엘이, 해당 재능이 뛰어난 편에 속했다.

물론, 성장 속도가 느리고 최대치가 고작 케테르 등급에 한할 뿐이더라도 그것을 뚫어낼 방법은 존재하고 있었다.

가정사가 불우한 아이는 유난히 같은 나이 또래의 아이에 비해 성숙하지 않던가.

마력 또한, 고진 풍파를 견뎌내면 폭발적인 성장을 한다.

아니, 견디어 낸 다기 보다는 극복이라는 말이 옳을 것이다.

실제로 자포자기한 채 망가졌던 리지가, 곧 유클리드 등급에 도달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마력의 상승을 보여주었던 건 페르젠에게 복수를 결심하고 본인의 의지를 다잡았기 때문.

‘그러니……’

리지는 어렴풋하게 감을 잡고 있었다.

페르젠이 자신에게 새겨 넣은 트라우마, 그것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날이 다가 온다면 틀림없이……

그 남자를,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고.

* * * * *

“리지, 웃는 모습을 좀……”

“싫어.”

수도의 대성당, 그곳의 4층.

오복신(五福神) 중에서도, 사랑을 관장하는 신을 기려 만든 곳.

클로디아 가문 측 입장 대기실에서, 자신의 오빠와 단 둘이 있는 리지는 로에르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가족의 희생을 애써 외면하며, 웃고 싶지는 않아.”

“나는, 희생 같은 게……”

“나…… 아이, 아니야. 침상에 누워 무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때는 지나갔어. 그러니 과보호 같은 거 하려고 하지 마. 결혼도 할 수 있는 나이고, 아이도 가질 수 있는…… 어른이야.”

“……”

“이제 와서 세상의 좋은 면만, 밝은 면만 보여주려고 할 필요 없어. 이미 그렇지 않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흉터와 굳은살이 가득한 로에르의 손을 붙잡으며, 상냥하게 쓰다듬는 리지가 서글픈 미소를 짓는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거야. 오빠 선에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 가족이라는 배에 선장은 없으니까. 그러니 나아가는 항해의 방향은…… 모두의 합의야.”

“……”

휠체어에 앉아 있는 리지를 내려다보며, 로에르는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오래전의 과거들을 조용히 되뇌었다.

제대로 된 말조차 하지 못하고, 옹알이만을 내뱉으며 자신에게 고사리 같았던 손을 뻗어 방긋방긋 웃어주었던 리지.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부모님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었지.

아장아장 걸어와 자신의 품에 안겨, 귀엽고 사랑스러운 애교를 부려줄 때는 어떠했던가.

……설령 이 세상의 모두가 이 아이를 적으로 돌리더라도, 나만큼은 변하지 않는 아군이 되어 지켜주겠다고 맹세했었지.

어리숙한 걸음걸이를 졸업하고, 꼬마 아가씨가 되어 졸졸 자신의 뒤를 따라 다닐 때는.

……곁을 떠나가지 않고, 언제나 머물러주었으면 했지.

그러다 페르젠에 의하여 발목이 다친 뒤, 더는 본인 마음대로 걸을 수조차 없게 되어 피폐하게 망가져 가던 모습을 보고.

……재가 되어 바스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을 했었지.

“많이……”

하지만 그러한 과거를 지나, 작금에 이르른 현재에서는.

“컸구나,”

자신의 그늘에서 벗어나, 오히려 함께 걸으려 하고 있었다.

“오빠 눈에만 아직 소녀로 보일 뿐이지, 다른 사람들 눈에는 엄연히 여인이야.”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리지가 허리춤에 손을 얹히고 훈계라도 하듯이 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그래……”

부드럽게, 리지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로에르는 웃었다.

벌컥!

그리고 그 때,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불쑥 들어오는 유리엘.

“뭐예요. 이 애틋한 분위기는, 누가 보면 신랑 신부가 거기 두 사람인줄 알겠는데.”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농담인 걸 알면 좀 받아주지…… 아무튼 나오세요. 이제 하객들을 맞이할 시간이니까.”

10시 30분, 때가 되었기에 로에르는 리지의 휠체어를 이끌며 4층 대성당의 문 앞으로 다가섰다.

이내, 그 커다란 문이 열리자 너머에서 북적거리는 사람들의 인파가 한눈에 들어왔다.

저들 모두가, 보내온 초청장을 가지고 참석해주는 이들.

클로디아 가문으로서는 모으는 게 불가능했을 인맥.

물론, 좁은 인간관계는 브뤼테인과의 갈등이 제일 컸다.

자세한 사정이 밖으로 새나가지는 않았지만, 클로디아 가문이 브뤼테인과 갈등을 겪고 찍혔다는 사실만은 명백했으니.

그 활로를 조금이라도 뚫고자, 로에르는 황실 기사단에 들어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 했었다.

브뤼테인의 압박이 유일하게 닿지 않는 곳은, 세상의 음지와 오직 황실뿐이었으니까.

“어서 오십시오.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서 오세요.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차례차례, 로에르와 리지가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들어서는 하객들은, 형식적인 치레로 그것을 받아준 뒤 건너편의 알프레드 가문──신부 엘리스와, 그녀의 동생 유리엘 쪽으로 몸을 옮겨 보다 살갑게 굴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현실이었기에, 로에르와 리지는 겉으로 아무런 티를 내지 않았다.

“……”

하지만, 오직 한 명.

알프레드 가문에게, 아첨을 하지 않는 남자가 있었다.

“어서, 오세요…… 참석 해주셔서, 감사 합니다……”

“그래.”

페르젠 폰 슈바이크 루에르그.

알프레드 가문 정도는 고작이라 치부할 수 있는 듯한 존재감을 내뿜는 그가, 옆에는 자신의 아내를 대동한 채 무심히 인사를 건네받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알프레드는 너무 벽이 높아, 상대적으로 대하기가 편안한 자신들에게 은근한 호의를 보내오던 이들이……

매정하다 싶을 정도로 등을 돌리더니, 페르젠 곁으로 다가가 비굴하게 아부를 떨어대기 시작한다.

얼마 되지 않는 미약한 빛줄기조차 가려버리는 잔혹함.

역시, 리지는 그가 너무나도 싫었다.

* * * * *

‘왕자들은, 아직 오지 않았나……’

북적거리는 인파에 눈살을 찌푸리며, 개미떼처럼 몰려들었던 사람들을 물린 뒤 유페미아와 함께 단란히 앉았다.

“……”

슬며시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화사한 웨딩 드레스를 차려 입고 있는 알프레드 쪽 신부──엘리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유페미아가 보였다.

“어차피 이 결혼 또한 정략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 텐데, 부럽기라도 한가.”

“그다지……”

건네던 시선을 떼어내고, 유페미아가 나를 바라본다.

생각해보니, 결혼식을 올린 적은 없었다.

과정이 과정이다 보니, 의미가 없고 불필요 하다 느꼈었는데.

“실례합니다.”

“……”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잠시 생각을 접고, 고개를 돌렸다.

“베로니카 리엘 레이나 로젠베르크가 인사를 드려요.”

“아……”

성은 로젠베르크이지만, 로젠베르크의 미들 네임──드(De)가 아닌 걸로 봐서는 라우라의 모친일 확률이 높았다.

“신세지고 있는 딸아이, 라우라의 어머니 되는 몸입니다.”

“그런가…… 그리 정중히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으니, 고개를 들도록 하지. 라우라는 좋은 학생이야.”

“안 그래도 편지에 백작님에 대한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

내 강의를 듣는 자식들을 빙자삼아 말을 걸어오는 귀족들은 안 그래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로젠베르크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텐데, 이야기의 주제를 계속해서 라우라로 삼으며 대화를 이어 나가려 한다.

너무 노골적이다 싶을 정도로.

“이 기간에, 라우라가 로젠베르크로 내려오지를 않더군요.”

“……”

“백작님은, 우리 딸아이를 그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로젠베르크에 원하는 게 있다면, 일차적으로 라우라를 통하기로 약속했으니 굳이 지금 압박할 필요는 없겠지.

더군다나 로젠베르크의 영주가 아닌, 그의 부인이라면 더더욱.

“무언가를 배우려는 의지가 강한 아이라, 이 기간에도 개인적으로 나를 찾아와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는 했다. 학생들을 편애해서는 안 되지만 그 열의가 대단하여 개인교습을 몇 번 해주었지.”

만월의 괴벽 때문에 내려가지 못하는 것이겠지만, 그걸 곧이 고대로 말할 수는 없을 테니 라우라도 나름대로의 명분은 필요하리라.

그것을 거들어 주는 정도라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어머……”

답변을 들은 로젠베르크의 부인이, 손에 들고 있는 부채를 피더니 자신의 입가를 가리고 내 옆에 앉아 있는 유페미아를 힐끔 쳐다보며 묘한 눈웃음을 짓는다.

“……”

머릿속으로 무슨 결론을 내린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을 한 번 캐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하여 입을 열려고 했는데……

주변이 웅성거린다.

그리고 앉아있는 하객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대성당의 정문 쪽을 향해 정중히 예의를 차리기 시작했다.

‘알프레드라 하더라도, 고작 장녀의 결혼식에 황실의 두 황자들이 참석을 한다라……’

5월 7일에 있을 연회가, 황위 쟁탈전의 서막을 올리는 무대라는 것을 너무 당연히 알려주는 꼴이다.

곧이어 황자들의 뒤를 따라, 제국의 체스판──두 왕국의 왕자들도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곁에는 관료와 대신들을 비롯해, 왕국 내에서 나름 권세가 있는 가문의 귀족들이 자리를 매김하고 있었으며 소수의 기사들이 신변을 지키는 중이었다.

당연히 나는 그 소수의 기사들을 유심히 지켜보았지만……

‘없나……’

보이지 않는다.

시엘 미드포드가.

족히 3개월이 흘러가는 시점, 주인공이라면 분명 두각을 드러내어 5월 7일의 연회에 참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 전의 행사인 알프레드 가문과 클로디아 가문의 결혼식에서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 믿었거늘 오산이었던 걸까.

‘왕도로 향하기는 했지만, 정착한 곳이 오베른인가?’

두 제국의 간접적인 힘겨루기가 될 장소가 아닌, 아직 왕위가 교체 될 시기가 많이 남아 있는 친(親) 엘마르크 왕국 오베른.

분명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기 위하여, 난세가 펼쳐질 두 왕국 중 어딘가에 몸을 담았을 거라 판단을 했었는데.

아니면, 아직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나?

그게 아니라면, 루에르그의 설산 어딘가에서 정말로 목숨을 잃은 걸지도 모른다.

왕도로 향하는 시엘 미드포드를 봤다는 상단주의 증언은, 어쩌면 비슷한 사람을 본 것일 수도 있으리라.

애초에 그도, 초상화를 보고서 확답은 내리지 못했으니까.

아무튼, 시엘 미드포드가 없다면 흥미를 가질 이유는 없었기에 깔끔히 관심을 거두어 들였다.

“아……”

아니, 그러려고 했다.

옆에 서있는 유페미아가, 몸을 떨며 놀란 눈초리로 아련한 시선을 건네지 않았다면 말이다.

“……”

있는 건가?

있단 말인가.

왕국의 인사들을 호위하고 있는 기사들, 그들을 다시 한 번 면밀히 살펴보았지만 역시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거짓말과 연기에 서투른 이 여자가 보여준 반응이 거짓일리는 없겠지.

“앗……”

유페미아의 허리춤에 손을 얹혀 휘감는다.

그리고는 곁으로 바짝 끌어 당겨,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다정하게 속삭이듯 고개를 숙였다.

“긴장하지마라. 황실의 황자들이더라도, 왕국의 왕자들이더라도 어색해할 거 없다. 오히려 그들 입장에서는, 네가 더 어려울 테지.”

“으, 응……”

말을 더듬으며, 자신의 허리춤을 휘감은 내 손 위로 두 손을 얹히는 유페미아가 어색하게 웃는다.

그 두 손에 힘은 들어가지 않았다.

자존감이 밑바닥을 치는 현재의 그녀가,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이자 반항일 터.

움찔!

조심히, 하지만 억압적이게.

유페미아의 두 손을 붙잡아, 아래로 내린다.

그 순간, 느껴졌다.

진득하고, 강렬하고, 질척하고, 매서운 한 쌍의 시선이.

“……”

고개를 돌렸을 때, 그 시선은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가지런히 군기가 잡혀 있는 왕국의 기사들 중, 유난히 흐트러진 한 명의 사내가 도드라지게 눈에 띄었으니까.

그래, 저 남자가……

그래, 저 사내가……

나라는 운명의 대척점에 서서, 심장에 검을 겨누려드는.

이 소설의, 이 세계의 주인공──시엘 미드포드이리라.

머리색이 바뀌었다.

인상도, 거의 격변해버린 수준.

하지만 확신을 가지고 뜯어보니, 그의 흔적이 분명히 남아 있는 얼굴이었다.

‘어서 와라.’

시엘 미드포드.

너는 모르겠지.

‘5월 7일……’

황실에서 열리는 연회, 그곳에서……

나는, 반드시 너를 죽일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50화는 집필 도중 중간에 전개상 오류, 그러니까 모순 되는 점이 생겨서

수정을 하고 올리겠습니다.

오후 안으로 올라 갈거에요.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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