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7 047─3주
다음 날 아침, 옷을 갈아입고 나는 출근할 준비를 했다.
강의는 없는 날이지만, 차후 방침을 전해 듣기는 해야 했기에.
물론, 출근을 하기 전 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서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침실로 돌아왔다.
그러자 몸을 움츠리는 유페미아가, 의아하게 묻는다.
“출근, 안 해……?”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왜, 얼른 사라져줬으면 좋겠나.”
“그, 그런 뜻은! 결코…… 아, 아니야……”
덤덤한 목소리로 답변을 해주자, 유페미아는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부정을 해왔다.
평소보다 자존감이 많이 결여 되어 있는 모습, 보기가 좋다.
삐걱!
침대에 올라가 등을 기대고, 편하게 두 다리를 뻗는다.
“가까이 오지.”
“응……”
틈만 나면 내뱉던 “왜?” 라는 반문은 사라지고, 얌전히 엉금엉금 기어와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옆에 주저앉는 유페미아.
스륵.
그에 두 팔을 벌리자, 알아서 내 품으로 살포시 안겨온다.
부드럽게 짓눌리는 가슴.
솔솔 풍기는 특유의 체향.
따뜻하게 전해오는 체온,
“팔, 아프다고……”
“이 정도는 괜찮다.”
유페미아의 가느다란 허리 쪽으로 손을 얹히고, 잠시 동안 이 순간을 조용히 만끽했다.
“……”
열린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잔잔한 봄바람.
침대 위로는 따스한 햇살이 포근하게 비추어 내린다.
출근하기가 싫어지는, 그런 게으름과 평온함이……
빗물에 적셔지는 옷자락처럼 스며들어왔다.
“유페미아.”
어느덧 15분의 시간이 흘렀다.
출근해야 할 시간이 지척으로 다가왔기에,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응.”
그러자 조금 느린 대답을 하며, 유페미아가 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올린다.
얕은 잠에 빠져 있었던 건지, 아름다운 금색 눈동자에는 몽롱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
“아……”
하지만 곧이어, 자신의 치마 사이로 파고드는 내 다리의 감촉에 정신을 차린다.
“으, 읏……”
다리를 오므리면 편하겠으나, 유페미아는 그러지 않고 미련하게 허리를 조금씩 치켜들었다.
그에 나는 점점 올라가는 높이에 맞추어, 구부린 무릎을 유페미아의 고간에 가져다대고 살살 문질렀다.
“앙…… 흐, 응……”
강아지처럼 네발로 서서, 누워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얼굴을 붉힌 유페미아가 달뜬 신음을 수줍게 내뱉는다.
그녀의 몸을 탐하는 것도 좋았지만, 이리 흐트러진 얼굴을 관람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유페미아.”
“흐, 으…… 응……”
“고개를 조금 숙이지.”
“아……”
잠깐 망설임을 보이기는 했으나, 유페미아는 시킨 대로 고개를 살짝 숙여 내 얼굴과의 거리를 좁혀왔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내 뺨을 간지럽힌다.
스륵.
그리고 유페미아는, 내게 희롱 당하고 있는 와중에도 기특하게 그런 자신의 머리카락을 치워내는 정성을 보여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칭찬을 해주고 싶으나, 나는 짓궂은 웃음을 머금고 그녀에게 재촉하듯 말했다.
“더.”
“……”
이쯤 되니 그녀도 내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를 눈치 챘는지, 두 눈을 질끈 감고 스스로 어설픈 키스를 건네 왔다.
아니, 키스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했다.
입술이 잠깐 겹쳤다, 떨어질 뿐이었으니까.
그래도 이만하면 충분하겠다 싶어……
“흐, 앙……!”
반대쪽 무릎을 들어 유페미아를 마저 희롱한 뒤, 출근을 위해 몸을 일으켰다.
말끔했던 옷은,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선명한 주름이 새겨졌기에 용모단정의 재능을 이용해 다시금 말끔히 펴냈다.
그리고는 걸음을 내딛어, 방문의 문고리를 붙잡아 돌리는데……
“다, 다녀와……”
두 다리를 오므린 채 침대위에 널브러져 헐떡이고 있던 유페미아가, 다급히 몸을 일으켜 나지막한 목소리로 출근인사를 건네 온다.
“……”
어물쩍 넘어가더라도 충분히 모르는 척 해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 얼마나 어리숙하고 순진한 여자란 말인가.
“그래……”
시키지도 않은 걸 알아서 해오는 건 반길 일이었지만, 그게 채찍을 휘두르고 난 이후라면 오히려 채찍의 효용성만을 상대방에게 부각시켜주는 꼴이다.
“다녀오마.”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 * * * *
A 교육관과 본관은 1/3이 매몰되었기에, 그것을 수복하기 위해 투입된 수많은 인력들이 아침부터 작업을 하고 있었다.
“교수님들은 모두 B 교육관의 강당으로 이동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공사 소음에 소리가 묻히지 않기 위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행정 조교들이 푯말을 들고서 나를 비롯한 교수들에게 안내사항을 전달해온다.
‘수복 기간 동안, 운영이 중지 되려나……’
돈과 인력을 때려 박고 있으니, 아마 완전히 수복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추 2 ~ 3주이리라.
황실 입장에서는 그 기간 동안 운영을 계속 하고 싶겠지만, 사실 거기까지 욕심을 내는 건 무리라고 본다.
어차피 2 ~ 3주의 시간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애매한 시간이었기에, 본인의 영지가 수도와 가깝지 않은 학생들은 수도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각 귀족가의 자제들을 볼모로 잡아둔다는 아카데미의 본질적 목적만큼은, 그 기간 동안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계속 이루어지는 것이다.
‘해당 2 ~ 3주간, 중지된 강의 일수를 이월하여 하기 방학을 줄이느냐. 아니면 삭감을 하느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안을 꺼내 들 수도 있겠지만, 보편적으로 황실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이 두 가지뿐이다.
그래서 유페미아에게도, 아카데미의 출근은 일정이 조절 될 수도 있다고 말을 해둔 것이었다.
“……”
B 교육관으로 들어서는 길, 그 옆의 B 기숙사의 입구에서 제대로 치우지 못한 말라비틀어진 혈흔이 드문드문 보인다.
정확한 사상자의 수는 전해 듣지 못했지만, 피해가 클 거라 보고 있지는 않았다.
원소 마도학에 재능이 있는 평민들이라면, 일반인 상대로 죽을 일은 없을 테고……
해당 시신을 배정 받은 흑마법사들만 사망을 했겠지.
입구 쪽의 혈흔들은 오히려, 학생들의 피라기보다는 가사상태로 위장하고 있던 적들의 피일 가능성이 컸다.
“아, 오셨습니까. 페르젠 교수님.”
B 교육관의 강당 안으로 들어가, 아무 자리에 안착하자 옆에 있는 교수가 내게 인사를 해온다.
이름은 모르겠다.
대충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아주고는, 눈을 감았다.
보통 이러면 말을 걸어오지 않는 게 정상 일 텐데……
“페르젠 교수님은 누구의 소행이라고 보십니까? 저는……”
“……”
심지어 건네 오는 대화조차 영양가가 없는 것이다.
그도 그럴게 누군가의 소행이라고 명백히 결정지을 증거 같은 게 있었다면, 아카데미의 강당에 교수들을 모으는 게 아니라 각 영지의 가주들을 모아 황실에서 회담을 가졌겠지.
“아……! 교수님이 명계의 괴이를 제압하는 과정도 정말 훌륭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 칭찬 받을 게 아니야.”
“겸손하시군요. 그 보다…… 시체로 위장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게, 참으로 꺼림칙하지 않습니까?”
“……”
해당 발언에 나는 자연히 인상이 찌푸려졌다.
말이 통하지 않았던 그 벽창호 같던 적이 떠올라서.
물론, 이제는 가사상태에 빠지는 수단에 아무런 가치가 없다.
해당 정보를 아는 사람이 없고, 공개적으로 퍼지지 않았다는 대전제가 성립 되어야 시신으로 위장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
“아! 어서 오십시오. 유리엘 교수님.”
“안녕하세요. 멜빈 교수님. 그리고…… 페르젠 교수님도요.”
“그래, 좋은 아침이다. 유리엘 교수,”
“팔은…… 조금 어때요.”
“이제 하루가 지났는데, 무슨 기대를 하고 묻는 가.”
“그것도 그러네요. 자, 받아요.”
사역 중인 이사벨의 시신에게, 유리엘이 서신 한통을 건넨다.
아니, 서신이라 하기에는 봉투의 외관이 지나치게 화려했다.
“……결혼식의 초청장인가.”
“네.”
클로디아 가문의 장남과, 알프레드 가문의 장녀의 결혼식은 어찌 되었든 클로디아 가문이 알프레드 가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외부 하객의 초청도, 전적으로 알프레드 가문이 담당하고 있는 거겠지.
그러지 않았다면, 내 앞으로 이것이 올 리가 없다.
“전해 주라고 하셔서 전해 주는 거지만……”
흐린 뒷말에 생략된 내용이 무언지는, 너무나도 뻔했다.
“생각은 해보지.”
“……그러세요.”
서신을 조용히 품안으로 넣자, 강당의 단상 위로 백금발을 아름답게 늘어트린 엘리자베스 황녀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 때의 독설이 의미는 있었는지, 독창적이다 못해 개 같은 액세서리는 더 이상 몸에 차고 있지 않았다.
“어제의 불미스러운 일에 관하여……”
형식적인 겉치레가 지루하게 이어진다.
“이에 황실은 부서진 건물이 수복 되는 기간 동안, 기숙사를 제외하고 아카데미의 운영을 전면 중지하며 해당 일수는 이월하지 않겠습니다.”
“……”
예상했던 바에서, 크게 벗어나는 점은 없었다.
“그러니 각 교수님들께서는, 해당 기간 동안 이번년도 상반기 강의 계획을 조절하여 다시금 제출 해주시길 바랍니다.”
조금 더 강경하게 나가려면, 나갈 수는 있었을 텐데.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뜻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상태와 같았기에, 굳게 마음을 먹는다면 그 화살의 표적을 황실 임의대로 지정할 수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 소행은 황실에 반감을 품은 귀족들의 소행이라고 일단락 지은 뒤, 아카데미의 운영에 지적을 해오는 순간 마녀사냥을 해버려 매장을 시키는……
물론, 이건 앞서 말했다시피 과욕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힘겨루기를 하려면 못할 것도 없었다.
‘조용히 묻으려는 생각 같은데…… 무슨 의도지.’
하다못해 엘마르크 제국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그리 발표만 해도 되지 않나?
“……그러면, 오늘 말씀드린 사안을 유념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치맛단을 두 손으로 붙잡아 살짝 올린 뒤, 정중하게 인사를 마친 엘리자베스 황녀가 단상을 내려가 자취를 감춘다.
‘너무 예상했던 대로, 아무 탈 없이, 무난하게 흘러가는 군……’
묘한 찝찝함을 느끼며 강당을 나오자, 어느 새 옆으로 따라붙은 유리엘이 나를 보며 말했다.
“바로 돌아가려고요?”
“글쎄……”
“밥 한 끼, 사드릴게요.”
“쓸데없이 내게 부채감을 가지지 마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이런 걸로 후회하지는……”
“아내가 있는 몸이다. 결혼도 하지 않은 여인과 단란히 앉아 식사를 할 생각은 없어. 그것이 사적인 자리라면 더더욱.”
“애처가 납셨네. 당신, 그 여자한테도 맨날 가슴 크다고 희롱하면서 살아요? 그러지 않으면 조금 억울할 것 같은데.”
“커봤자 인간의 기준이지.”
“그거…… 무슨 뜻이에요.”
두 눈을 치켜뜬 유리엘이 나를 매섭게 노려본다.
“너는 목장에 있어도, 위화감이 없을 것 같은데.”
“이, 이 사람이 진짜 미쳤나봐……!”
씩씩 거리며 얼굴이 붉힌 유리엘이 자신의 가슴을 감싸 안고 성을 내지만, 나는 어울려줄 생각이 없었기에 가볍게 무시를 하며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는 수복되고 있는 A 교육관과 본관을 잠시 바라보는데……
“짜증난다. 어제 지켜보면서 명계의 괴이가 제발 흑마도학 강의실 좀 철저하게 부숴주기를 바랐는데…… 기어코 그 쪽은 건드리지 않더라? 어이가 없어서.”
“명계의 괴이도 똥이 더러워서 피한거지. 전쟁이 나면 꼭 이상하게 유능한 사람부터 먼저 죽고는 하잖아. 쓸모없는 사람들보다는.”
“……”
뒷모습이 익숙하다 싶었더니,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다.
“박살나도 어차피 그대로 원상 복구 시킬 것이다.”
“아……”
“앗……!”
사이좋게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는 두 명의 학생.
“그, 그게……”
“안녕하세요…… 교수님.”
“과제 제출이 4월 12일 까지 인 건 알고 있나. 당분간 강의가 중단 될 거라고 발표가 났는데, 본인의 영지가 가깝더라도 이 과제를 빠르게 해결하지 못하면 어차피 기숙사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네, 네…… 물론이죠. 열심히 하고 있어요!”
“저, 저도요.”
“그래, 그러면 너희 둘이 제출한 과제는 내가 아주 꼼꼼히 읽어보도록 하마.”
“……”
울상을 짓는 학생들이, 고개를 숙인 뒤 호다닥 달아난다.
원치 않아도, 저런 말을 들어 버리니……
괜스레 악의 같은 게 샘솟는다.
다음 번 강의는 일부러, 세력이 강한 귀족가의 자제와 그러지 않은 귀족가의 자제들을 묶어 조별 과제를 시켜버릴까.
“……”
아니다.
이건 너무 개새끼인 것 같아 나는 고개를 저은 뒤, 마차에 올라타 저택으로 돌아왔다.
“가주님께서, 서신을 보내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시녀 한명이 정중하게 형님으로부터 도착한 편지를 내게 내민다.
“그래, 하던 일을 마저 하도록.”
시기가 조금 공교로운 면이 있어서, 저택의 화단으로 나와 벤치에 앉은 뒤 이사벨의 사역해 봉투를 뜯었다.
‘……’
브뤼테인으로부터 도착한 서신의 내용은, 5월 7일.
황실에서 연회가 열릴 예정이라는 정보가 담겨 있었다.
나라면 어차피 참석하지 않을 거라 믿었는지, 이 이상의 자세한 내용은 써져 있지 않고 안부를 묻는 글귀만이 빼곡했다.
‘이건……’
하지만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유리엘로부터 받은 결혼식의 초청장을 뜯어 살펴보았다.
‘4월 27일, 그런가……’
우연이라 보기에는 어려웠다.
이 4월 27일은, 5월 7일에 열리는 연회의 참석자들을 배려한 시일일 가능성이 크겠지.
게다가 알프레드가 배려라는 구색을 갖출 정도라면……
‘두 왕국의, 왕자들도 오는 건가.’
잠시 고민을 하다, 결혼식의 초청장을 곱게 접었다.
‘아무래도 불편한 하객이 되겠지만……’
참석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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