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44화 (44/260)

EP.44 044─Dawn of the Dead?

“B 기숙사 쪽에만 지랄 난 게 아니잖아……!”

시체가 살아 움직여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급보에, 대기 중이던 병력들의 1/3이 그쪽으로 가버린 상황이었는데.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A 교육관에서 기괴한 형상을 가진 명계의 괴이가 튀어나오자 유리엘은 얼굴이 핼쑥해졌다.

왜 하필이면 자신이 당직을 서는 날, 이런 개 같은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그 와중에 연초를 피러가 자신의 옆에 없는 페르젠을 속으로 곱씹으며, 유리엘은 남아 있는 2/3의 기사단들과 마도 병단들을 데리고 A 기숙사 앞으로 집결했다.

“다, 당신……!”

그리고 그 때, 저 멀리서 페르젠이 걸어오자 유리엘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무슨 연초를 그리 오래 피우는 거야──!”

“가는 김에 화장실도 들렸다.”

“……”

“그 보다 마도 병단은 남아 있고, 기사단들은 물러나지.”

“뭐라고 하셨습니까?”

“물러나라고 했다.”

이사벨의 시신을 사역해, 명계의 괴이가 있는 방향 쪽으로 페르젠은 전류를 방사시켰다.

그러자 자석의 성질을 지닌 괴이의 몸 주변으로 형성된 자기장에 이끌려 날아가는 전류가, 곧 이어 방향을 틀어 하늘로 선회하더니 은은한 빛줄기를 남기고 사라진다.

“물러나지 않을 거라면, 적어도 갑옷과 무기는 버려야 한다. 저 괴이는 자력을 다루는 듯 하니 그 꼴로 돌격했다간 닿지도 못하고 튕겨져 나가거나 원치 않게 이끌려 좋은 먹잇감이 되겠지.”

“아……”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충고였음을 알고, 기분이 불쾌해졌던 기사단들은 오해를 푼 뒤 갑옷을 벗기 시작했다.

“뭐하나……?”

“상대하려면 무기와 갑옷을 벗으라 하지 않았습니까?”

“……”

그래, 페르젠은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어차피 저들은 몸 자체가 일종의 검이자 방패인데, 갑옷과 무기가 무슨 상관이랴.

“아……!”

뽑아낸 철근을 자력을 이용해 띄운 명계의 괴이가, A 기숙사 쪽으로 가차 없이 던져온다.

그에 페르젠과 유리엘을 비롯한, 황실 마도 병단들 중에서 대지에 간섭할 수 있는 자들은 땅을 솟구치게 만들어 커다란 장벽을 만들어냈다.

“용기는 가상하지만, 저기에는 뽑혀져 나간 철근들이 무수히 존재하고 있다. 너희는 아직 극의에 도달하지 않아 마력으로 신체를 재구성하지 않은 부분이 있을 텐데……”

일종의 아킬레스건과 같은, 그러한 부위에 타격을 당하면 설령 오러 나이트의 길을 걷는 자라 해도 비명횡사 할 것이다.

“좋은 방법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자력이 거슬린다면, 자력을 없애면 되는 것이지.”

아공간을 열어, 브뤼테인의 문양이 새겨진 관을 꺼내든 페르젠은 잠시 이사벨의 시신을 통제하던 마력의 연결을 끊었다.

그리고는 27대 가주, 바이에른 폰 그리엘 브뤼테인의 시신을 사역해 관에서 정중히 일으켰다.

이사벨이 뛰어난 원소 마법사 이기는 했으나, 마력을 불로 형질 변환할 수 없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유리엘.”

“왜요.”

“네가 주축이 되어라. 나와 황실 마도 병단은 그러한 네 마법의 구성식에 마력을 연결하여 공명하겠다.”

“당신이 어쩐 일이래……”

쿠웅!

콰앙!

콰직!

날아드는 철근이 대지를 일으켜 세운 장벽을 두드리고, 깨부수고, 파고들고, 다시 돌아가 같은 과정을 되풀이한다.

명계의 괴이는 마력 같은 걸 사용하는 게 아니기에, 쓸데없이 장기전으로 가서 소모전을 할 필요가 없었다.

“변환은 뭐로 해요?”

“불이다.”

“불?”

“해보면 알 테니 호기심은 집어 치우고, 내 말을 따라라.”

“하윽!”

상황이 상황인데 쓸데없이 꼬리말을 물고 늘어지는 유리엘을 보며 페르젠은 그녀의 배꼽을 손가락으로 쿡 쑤셨다.

그러자 망측한 신음을 뱉어내며 얼굴을 붉힌 유리엘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 몸을 거칠게 돌린다.

유클리드 등급에 해당하는 마법의 구성식은 면이었기에, 그 면을 무수히 이어 붙여 일종의 광활한 전개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합동 마법의 원리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주축이 된 유리엘이 변환하고자 하는 형질이 불이었기에 마력을 불로 형질을 변환 시키지 못하는 마법사는 여기에 참여하는 게 불가능했다.

“가요──!”

이어 붙인 마력들이 공명하고, 그것을 컨트롤하는 유리엘은 장벽을 살짝 뚫어 그 너머에 서있는 명계의 괴이를 보더니 포화 상태로 넘쳐흐르기 시작하는 마력을 단숨에 불로 형질 변환시켰다.

화륵──!

마력으로 만들어낸 불꽃은 산소와 결합하여 연소 하는 게 아니라 마력과 결합해 일으키는 연소 과정이라 할 수 있었기에, 중심점뿐만이 아닌 모든 부위가 완전 연소를 거친다.

그래서 일렁이는 모든 불꽃이 검붉은색에서 붉은색으로……

붉은색에서 주황색으로 나아가는 선명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불꽃의 온도는 대략 1727°C

──────!

처음에는 돌고래의 목소리와 같은 비명이 귓가를 강타했으나, 서서히 데시벨이 높아지더니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없는 영역으로 들어서며 말 그대로 소리 없는 비명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녹지 않은 철근들을 띄어 공격을 해보려 하지만, 그 철근들이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대단하기는 하군……’

강자성체는, 특정 온도에서 해당 성질을 잃는다.

이것을 퀴리 온도라고 하며, 눈앞의 괴이는 무려 철의 2.3배 되는 퀴리 온도에 도달하고 나서야 자력을 상실한 것이다.

“유리엘. 눈을 감아라.”

“미쳤어요? 저 정도 화력이 주변에 닿지 않게 세세한 조정을 하려면 똑바로 보고 있어야 한다고!”

마력을 불로 형질변환 시킨 것은 무력화 시킬 수 있다.

마력을 얼음으로 형질변환 시킨 것은 무력화 시킬 수 있다.

단, 그러한 불과 얼음이 만나 일으키는 수증기는 무력화 시키는 게 불가능하다.

이것은 원소 마도학의 가장 기초적인 이해.

한 마디로 저 불꽃이 어딘가로 옮겨 붙게 된다면, 그 불은 더 이상 마법이라는 영역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유리엘은 필사적으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

그에 페르젠은 말하기를 포기하고, 이사벨의 시신을 사역했다.

명계의 괴이가 자력을 상실한 이상, 27대 가주의 시신을 계속 사역할 필요는 없었기에.

파지직!

보유한 마력의 8할을 소모한다.

이대로 쏟아내도 되겠지만, 조금 더 꼼수를 부려……

하늘의 구름들을 음으로 가득 대전시키고, 명계의 괴이 주변을 양으로 대전시킨다.

“어, 어……”

하지만 강한 화력을 내뿜는 불꽃 때문에, 외려 상대적인 지표면──페르젠 근처에 있는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허공으로 부웅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번개가 어느 곳으로 내려칠지 명확했기에, 페르젠은 추가적인 마력을 소모해 이끄는 자리를 올바르게 유도한 후 형성된 전기장의 세기를 급격히 늘렸다.

“꺄악──!”

그리고 그 순간, 유일하게 뚫린 방벽의 틈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유리엘의 두 눈을 가리며 페르젠은 몸을 깊숙이 숙였다.

번──쩍!

어두웠던 하늘이 순식간에 밝아지며, 푸르다 못해 새하얀 빛줄기가 하늘에서 지상으로 낙하한다.

무지하지 않은 자들은 저것을 번개라 부르며 경이로워하고.

무지한 자들은 저것을 천벌이라 부르며 두려워한다.

콰아앙!

내려치는 번개에 의해 박살난 대지의 파편들이 주변으로 비산하며, 지상의 양전하들이 하늘로 솟구치더니 한 번 더 밝은 불빛을 자아내고 깔끔히 방전되어버린다.

쿠르릉……!

뒤이어,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야.

빛보다 느린 소리가 고요한 적막을 깨트렸다.

“대처는 빨랐어. 훌륭하다. 유리엘.”

“……”

무수히 많은 번개다발이 한 지점으로 내려치는 그 순간, 구성식을 흩트려 불꽃을 거두어들인 것을 칭찬하는 페르젠이었으나……

유리엘은 기뻐하지 못했다.

자신의 눈을 가리고 품안으로 끌어안은 행동 때문에, 당황하여 집중이 깨졌을 뿐이었으니까.

“비, 비켜요”

두 손으로 페르젠을 쳐내고.

거리를 벌린 유리엘이 챙모자를 고쳐 썼다.

그리고는 뒷수습을 하기 위해 장벽을 가라앉힌 뒤, 중심가로 나아가는데 만신창이가 된 명계의 괴이──그 몸뚱이가 급속도로 수축하기 시작했다.

“아……”

해당 과정이 완료 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3초.

이후, 막대한 자기장이 중심가에 생성되더니 주변의 철근들을 모조리 빨아들이고……

퍼엉!

터져 버린다.

그 순간 하늘을 물들인 무수한 철근은, 마치 전장에서 대량으로 쏘아낸 화살비 같아 유리엘뿐만이 아니라 근처의 있는 사람들도 온 몸이 뻣뻣이 굳어 버렸다.

파지직!

하지만 오직 혼자, 한 걸음을 내딛은 페르젠은.

이사벨의 시신을 사역해, 남아 있는 쥐꼬리만한 마력으로 상대적으로 중심가에 위치한 철근들과 그러지 않은 철근들을 각기 반대되는 전하를 뛰도록 대전시켰다.

콰앙!

콰앙!

콰앙!

그러자 서커스단의 신묘한 묘기처럼, 다방면으로 퍼져나가는 철근들이 중앙으로 방향을 틀어 뭉치더니……

쿠웅──!

거대한 고슴도치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진다.

물론, 그런 식으로 해결하지 못한 철근들도 많았지만 그 철근들이 나아가던 방향은 사람이 없는 교육관과 본관이었다.

“흐, 아……”

그리고 바로 자신의 앞에, 하늘을 수놓았던 철근의 뭉치가 끼익 거리며 소름끼치는 괴음을 자아내자 유리엘은 뒤늦게 걸음을 뒤로 물렸다.

콰르륵!

허나 굳었던 몸의 움직임은 너무 느렸고, 일시적으로 형성되어졌던 자력이 사라져 쏟아지는 철근 속에서 한줌의 마력도 남지 않은 유리엘은 두 눈을 질끈 감았……

“켁──!”

두 눈을 감을 여유도 없이, 목덜미를 잡아당긴 페르젠이 유리엘을 뒤쪽으로 패대기친다.

동시에 기사단들도 재빨리 움직여 페르젠의 앞을 가로 막고 철근들을 튕겨내고 쳐내보지만……

끼긱!

쿵!

아주 극소한 간발의 차이로, 하나의 철근이 페르젠의 몸뚱이를 덮쳐 바닥으로 넘어트렸다.

“…………큭!”

처음에는 아무런 통증이 없었으나, 깔려 버린 오른팔이 뒤늦게 고통을 뇌리로 전달하자 페르젠은 눈살을 찌푸렸다.

‘시발……’

미묘한 안도와, 짙은 후회가 공존한다.

본래는 자연스레, 알프레드 가문의 전력이 줄어드는 순간임을 파악하고 방관을 하려 했으나……

이서진의 자아가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부분, 도덕적 관념이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하기야……’

어차피 기사단들의 대응이 빨라서, 방관을 했다고 한들 유리엘이 사망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괜찮으십니까?”

“글쎄……”

철근을 치워 내주는 기사단의 배려에 몸을 일으키나, 오른팔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이 계속 올라온다.

부러진 것 같지는 않아도, 확실히 금은 간 듯 했다.

그러나 핵심적인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

금이 간 오른팔, 멀쩡한 왼팔.

그 어긋난 대칭이…… 페르젠은 몹시나 거슬렸다.

* * * * *

밤 11시.

늦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아카데미를 들어갔다 나갔다를 끝없이 반복한다.

“……”

그리고 유리엘 웨인 데이나 알프레드.

그녀는, 조심스레 병실 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누워있는 페르젠을 힐끔 쳐다보고서 고개를 푹 숙였다.

“어……?”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유리엘은 의아함을 가득 머금고 페르젠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왜 그러지.”

그녀의 시선을 느낀 페르젠이, 고개를 돌린다.

“아, 아니……”

분명, 철근에 깔려 다쳤던 건 오른팔이었는데.

어째서 페르젠은 양팔에 부목을 대고, 깁스를 하고 있는 걸까.

“그, 그게……”

“할 말이 있으면 뜸들이지 말고 해라.”

“무, 물이라도 떠다 줄까……”

차마 왼팔은 멀쩡하지 않았냐고, 그리 의심하는 듯한 말을 꺼내기에는 염치가 없어 유리엘은 주제를 돌렸다.

“……”

“아, 아, 아니면…… 화장실 가고 싶으면 말해.”

“유리엘.”

“호, 혼자! 모, 못할 거 아니야!”

“내가 흑마법사라는 사실을 잊었나.”

“아……”

페르젠이 피식 웃는다.

“그래도 내 시중을 자처하겠다면……”

“나! 화, 화장실──! 갈 거야!”

“……”

벌떡 일어난 유리엘이 새빨개진 얼굴을 감추며 병실을 나선다.

그에 페르젠은 살포시 인상을 찌푸렸다.

진통제를 맞기는 했으나, 왼팔의 통증이 적지 않다.

그도 그럴게, 부러지는 게 아닌 금이 가게끔 조절을 하면서 자해하는 것이 얼마나 미련하고 어려운 짓일까.

“나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군……”

오른팔에 금이 갔다고, 왼팔에도 금이 가게 하는 거나.

또, 이 상황에 편안함을 느끼는 거나……

무엇하나, 정상적인 게 없었다.

‘분명……’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면, 대성을 했겠지.

유명한 예술가일수록, 미치지 않은 사람은 없었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님 어서와! 기다리고 있었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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