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3 043─Dawn of the Dead?
“……”
오후 7시, A 기숙사의 중앙 홀에 앉아 있는 유리엘은 애써 불편한 심기를 감추며 턱을 괴었다.
“유리엘.”
“왜요.”
“똑바로 앉지.”
두 손으로 꽃받침을 하듯 턱을 괸 거라면 모를까, 한쪽 손만을 이용해 턱을 괴고 있으니 바로 옆에서 그걸 지켜보고 있는 페르젠은 자연히 심기가 뒤틀렸다.
“내가 당신 학생도 아니고, 앉은 자세까지 지적을 받아야 해?”
“……”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 페르젠 또한 무어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저 입을 닫고 가만히 유리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지지 않겠다는 듯, 눈싸움을 해보자는 기세로 자신을 노려보는 유리엘의 모습에 페르젠은 눈가를 꿈틀하며 발을 뻗어 그녀의 의자를 툭 건드렸다.
“악……!”
턱을 괴고 있던 팔이 삐끗하며, 몸 전체의 균형이 기울어지자 유리엘이 황급히 두 다리를 움직여 바로 잡는다.
그 과정에서 흔들리는 가슴이, 안 그래도 초점을 흐릿하게 하고 있는 페르젠의 눈동자를 괴롭히며 미간에 주름을 추가시켰다.
“당신……!”
기울어진 챙모자를 고쳐 쓰고 인상을 찌푸리는 유리엘이지만, 갑작스레 페르젠이 몸을 일으키자 괜히 겁을 먹고 의자를 뒤로 질질 끌어 물러난다.
“어, 어디가요!”
“연초.”
하지만 페르젠은 자신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손거울을 주머니에 넣더니 기숙사 밖으로 나가버렸다.
“뭐야, 진짜……”
* * * * *
“……”
야광석을 머금은 가로등이 은은하게 밝혀주는 길을 따라 A 교육관으로 향한다.
지하의 풍경을 비추어주었던 손거울, 그곳에 모습을 드러낸 내부의 협력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지.’
오히려 차분하게, 마치 자신을 기다리는 듯한 여유를 보여주었다.
‘시신은……’
꺼내지 말자.
내가 얻고 싶은 정보는, 가사상태에 빠지는 수단.
그러니 괜히, 적을 자극해서 좋을 건 없으리라.
어차피 내부의 협력자는 황실 마도 병단 소속이었다.
오러 나이트의 길을 걷는 자가 아니라면, 미리 시신을 사역할 준비를 하지 않아도 위험에 빠질 일은 없을 것이다
* * * * *
“오셨습니까.”
“……”
저벅.
저벅.
페르젠 폰 슈바이크 루에르그, 브뤼테인의 피가 흐르는 적자.
그가 흐트러짐 없는 걸음걸이로, 교육관 아래의 지하실로 들어서더니 걸음을 멈추어 선다.
“어리석은 행동 하지마라. 나는 네 대답 여하에 따라 황실로 넘기지 않을 생각이니까.”
“하하!”
페르젠의 말에, 바벨은 큰 소리로 웃었다.
“충실한 황제의 개, 브뤼테인의 피가 흐르는 당신이 그런 말을 한다면 감히 누가 믿으려 들까요.”
“나는 진심으로……”
“120년 전, 고작 7살의 황제가 황위에 올라섰죠. 그리고 그 때 황권을 대리 받은 섭정(攝政)이 당대 브뤼테인의 가주였으며…… 그는 아무런 욕심을 내지 않고 황제가 성년이 되던 해에 온전히 손을 떼고 물러났습니다.”
“……”
“브뤼테인의 대의(大義)는, 오직 황제를 향한 충절(忠節)과 지조(志操). 오랜 시간 당신네들이 새겨온 역사가 이러한데, 고목을 보고 갈대라 한다면 속아 넘어 가겠습니까?”
치이익──!
페르젠이 쥐새끼라 명했던, 5구의 시신 위로 보라색 액체가 떨어지더니 살점과 뼈를 녹여내며 보글보글 끓기 시작한다.
“지금 나의 성은, 루에르그다.”
“그래서요?”
“가사상태에 들어서게 하는 방법을 대가로, 설령 너희들이 황실에 검을 겨누려 한다 해도 협력해줄 수 있어.”
꿈틀.
자리 잡은, 깊숙이 새겨진.
페르젠의 자아가 요동치며 격렬한 반발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제는 페르젠도 이서진도 아닌, 제 3의 그는 해당 감정을 붙들어 바닥에 패대기치고서 자근자근 밟아 억눌렀다.
“부럽군요.”
“무엇이?”
“브뤼테인의 성을 버렸으니, 설령 황실을 배반한다는 오욕을 쓰게 되더라도 불온한 싹을 제거하려 드는 절개가.”
어째서 자신들 왕국에는 저런 인재가 없는가……
바벨은 쓰게 웃었다.
“그러게 나는……!”
“또한, 똑똑하십니다. 그 점을 어찌 눈치를 채셨는지……”
벽을 보고 대화를 나누는 기분에 순간 짜증이 치솟으려고 하는 페르젠이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었다.
그러자 보라색 액체가 담겨든 병을 꺼내, 자신의 머리 위로 가져다가는 바벨의 행동에 페르젠은 걸음을 멈추어 섰다.
뒤에는 명계의 문도 소환되어 있었기에, 섣부르게 굴어서는 본말전도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걸 아십니까?”
“……”
“위장된 시신은, 여기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끼──익!
문이 열린다.
연결된 곳은 명계의 2층──라우라바(Raurava).
“거래 방식은 즉납, 기한은 미정, 거래 품목은…… 강림.”
천변만화(千變萬化)하던 명계의 문, 그 위에 자리 잡은 명패가 형태를 고정 시킨다.
‘하……’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며, 페르젠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명계의 1층에 살아가는 승냥이 같은 괴이들과 다르게, 이름을 받아 2층으로 올라선 명계의 괴이들은 어지간한 재물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에야 거래에 잘 응하지 않는다.
그것이 특히나, 직접적인 강림을 원하는 거라면 더더욱.
하지만 눈앞의 거래는 곧바로 성사 되었다.
이것은 흑마법사 본인의 생명을 제물로 삼았다는 것.
“멍청한 놈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더니……”
흑마법사의 제단은 형태에 구애 받지 않는다.
그러면 물건이 아닌, 몸에 문신을 새기고 그것을 제단으로 삼을 수도 있는데 어째서 그러지 않는가?
그것은 눈앞의 이 광경처럼, 흑마법사가 마지막 발악으로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바쳐 명계의 괴이를 소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에게 사로 잡혔을 때, 제단이 몸에 새겨진 문신 같은 거라면 반드시 도려내려 하겠지.
물론, 생명을 대가로 바치기 위해서는……
본인의 사회적 지위, 혈통, 명예, 업적 같은 것들이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전쟁이 활발하던 시절, 흑마법사들은 죄다 자살부대로 편성 되었으리라.
“미련하고, 어리석고, 멍청하고, 우매한 것.”
“……”
“억울해서 또박또박 말 해 줄 테니, 저승길 선물로 잘 들어라.”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페르젠이 짜증을 가득 담아 입을 열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간절히 살고 싶단 말이다. 그러니 협의점을 찾을 수만 있었다면 우리는 동지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
페르젠의 말에, 바벨이 눈을 크게 떴지만 쓰게 웃으며 답한다.
“거래는 이미 완료 되었으니, 그리 연기하셔도 취소할 수단 같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같은 흑마법사이니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런 미친──! 시발 새끼가!”
체통 따위는 던져 버리고, 저 앞뒤가 틀어 막힌 벽창호와 같은 내부의 적에게 페르젠은 욕설을 퍼부었다
「 응애───! 」
이내 열린 명계의 문 너머, 라우라바(Raurava)에서.
거대한 아기의 머리통이 불쑥 튀어 나오더니……
콰득!
단숨에 바벨의 몸을 입 안으로 집어 삼킨다.
으드득!
즈즈적!
살점이 짓눌리고, 뼈가 으스러지는 불쾌한 소음.
주륵!
아이의 입가로, 질척한 붉은 피가 흘러내린다.
그 피에 뒤섞인, 짓씹기다만 인간의 살점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게 만들었다.
“……”
저것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제시하는 게 아닌, 즉각적으로 바쳐버린 흑마법사의 최후.
「 까흑──! 」
곧 이어 트림을 토해낸 아이가 명계의 문에서 기어 나온다.
길이는 대략 15m.
크기는 대략 8m.
인간 아이의 머리를 가지고 있으나 몸통은 지네의 그것으로 이루어진 기괴하고 흉측한 명계의 괴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페르젠은 아공간을 열어 이사벨의 시신이 담긴 관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콰앙!
알 수 없는 힘으로, 지하실의 벽을 부수어 버리고 위쪽에 자리 잡은 널찍한 강당으로 기어 올라간 아이가 뚫려버린 거대한 구멍으로 고개를 숙여 페르젠을 바라본다.
「 응애…… 」
하지만 틀림없이 공격을 해올 거라 믿었던 예상과 다르게, 아이는 겁이라도 먹은 듯 온 몸을 부르르 떨더니 교육관 밖으로 순식간에 탈출해버렸다.
그 위화감에 일순간 걸음을 멈칫하는 페르젠이었지만, 곧바로 고개를 저은 뒤 밖으로 따라 나섰다.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내지 않은 건 의아했으나, 일단은 인명 피해가 없어야 엮일 명분이 생기지 않는다.
가사상태에 빠진 시체가 더 있다고는 했지만……
그것은 평민들에게 지급된 것이겠지.
인명 피해란, 귀족 자제들에게만 생기지 않으면 끝이다.
빠드득!
“……”
밖으로 나오니, 본관 위의 시계탑을 끌어 당겨 으적으적 먹고 있는 명계의 괴이가 보인다.
그것 말고도, 건물 내부에 자리 잡은 철근들이 구조물을 꿰뚫고 뜯겨져 나오고 있었다.
‘중력…… 인가?’
그 광경을 보고서, 저 명계의 괴이가 지니고 있는 본신의 능력이 중력인가 싶었던 페르젠이었으나……
쿠웅!
뽑혀져 나오는 철근에 박살난 나무가 괴이 쪽으로 날아가다 튕겨져 나가는 것을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중력은 인력만 작용하는 힘, 척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 괴이의 능력이 자력을 다루는 쪽이라면……’
느슨해진 넥타이를 똑바로 가다듬고, 비싼 값을 들여 구매했던 이사벨의 시신을 사역해 마력을 전류로 형질 변환한다.
마력을 전류로 변환시킬 수 있는 원소 마법사는 구성식을 인식하기도 전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전류를 다룰 수 있다는 건 자력에도 간섭할 수 있다는 걸 뜻했다.
괜히 전자기력으로 묶어 부르는 게 아니었으니까.
파지직!
옅지만 고르게, 거미줄처럼 전류를 퍼트려 주변의 물체를 양전하와 음전하를 뛰도록 대전시킨다.
“……”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어렴풋하게 휘어들어가는 전류의 빛줄기가 페르젠의 눈에 포착 되었다.
‘저 괴이의 몸 자체가, 일종의 자석 같은 건가……?’
빠득!
빠득!
양전하와 음전하로 대전시킨 물체들이 서로 이끌리며 외부로 자기장을 형성해, 괴이의 자력에 대항하던 것도 잠시……
짜악!
괴이가 박수를 치는 순간, 통째로 뜯겨져 날아간다.
쿠우웅!
‘수복하는데 상당히 돈을 쓰겠군……’
뽑혀져 나가는 철근에 의해 건물들이 앙상하게 무너지나, 기숙사를 제외하면 본관과 교육관에는 현재 사람이 없을 테니 다행이었다.
‘저기도 난잡한가.’
이 소란 사이로, 드문드문 B 기숙사 쪽에서 울려 퍼지는 처절한 비명이 들려오고 있다.
말귀가 통하지 않았던 내부의 적은, 미래 황실의 기둥이 되어줄 새싹들을 자르는 것도 하나의 목표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합류를 하는 게 나아 보인다.
유클리드 등급을 숫자로 치환했을 때 2라고 한다면, 명계의 2층에 서식하는 괴이는 2.5라 볼 수 있었다.
저 괴이의 몸 자체가 일종의 강자성체라면, 제일 화력이 강력한 전류를 다룰 수 있다 한들……
통하지 않겠지.
일단은 괴이의 몸에 흐르는 저 자력을 없애는 게 최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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