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42화 (42/260)

EP.42 042─Dawn of the Dead?

“그래서……”

끼릭.

“내 말이, 그 교수는 학생들이 자기 강의만 듣는 줄 안다니까.”

끼릭.

“나는 꿈에서 그 교수님을 파묻으려고 삽질하고 있었어.”

끼릭.

옆에 계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경사로를 통해 올라가는 학생들의 뒤에서 리지는 시신을 통제해 천천히 휠체어를 밀었다.

“……”

비켜달라고 말을 하고 싶었으나……

어차피 강의 까지는 시간도 남아 있었고, 휠체어를 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배려 받는 상황 자체가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앞에 걸어가는 네 명.”

“그리고…… 네?”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하지만 그 잔잔함은, 마치 거대한 해일이 들이 닥치기 전 고요해진 해변 같았기에 리지의 앞에서 걸어가던 네 명의 학생들은 모종의 오싹함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뒤를 돌아 볼 줄 알기는 했나 보군. 고개가 굳은 것 같아 보여 손수 의원 앞으로 데려가줘야 하나 고민을 했었는데.”

“아, 그……”

태어날 때부터 높은 산 정상에 있던 그들이기에, 외려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이 치솟은 산의 위엄과 압박을 더욱 선명히 느꼈다.

그래서 자질구레한 말은 내뱉지 않고, 곧바로 길을 터주었다.

“수고하지.”

“네, 네……”

느릿하게, 페르젠이 걸음을 내딛어 지나간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리지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거칠게 깨물고서는 휠체어를 이끌었다.

이윽고 앞을 가로 막았던 네 명의 학생들이 2층의 강의실 쪽으로 빠져 나가자, 3층으로 올라가는 경사로 모퉁이에서 리지는 휠체어를 멈춰 세우고 입을 열었다.

“그런 짓…… 하지 마세요.”

저벅.

“……”

페르젠이 등을 돌린다.

“너라서 나선 게 아니다. 괴롭힘 받는 학생을 도와주는 건 응당 교수로써 해야 할 일이었을 뿐이야.”

“괴롭힘…… 같은 게, 아니었어.”

“……”

“어차피 시간적 여유도 있었고, 다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당연한 배려를 받고 싶지 않았을……”

“리지.”

“……”

“세간에서는, 그런 걸 자기합리화라고 부른다. 더군다나 너는 아주 미련한쪽으로 자기합리화를 하는 구나.”

꽈악!

오므려지는 리지의 두 손을 따라, 꾸깃하게 말려들어가는 치마가 선명한 주름을 머금었다.

“이리 볼품없고 미련하게 살아가도록 만든 게 누구인데……”

“……”

“보고 있으면 좋아요? 즐거워요? 당신의 손에 망가진 내가 이리 아등바등 살아가는 모습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쭙잖은 친절을 베풀며 도덕적 우위에 서있다는 우월감을 느끼는 용도로 나를 사용하지 마…… 나는 당신 편의대로 이리저리 다뤄지는, 도구 같은 게 아니야.”

길고 긴 말을, 묵묵히 들어주었던 페르젠은 넥타이를 가다듬은 후 특유의 중저음으로 대답했다.

“네 눈에 내가 위선적으로 보였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네 발을 부러트렸던 과거의 나는 여전히 남아 있어.”

“……”

“시간 속에 퇴색 되지 않을 테고, 아마 앞으로도 그러하겠지.”

말을 마치고, 페르젠이 몸을 돌린다.

“이번에는 넘어 가겠지만, 다음부터는 당신이 아니라 교수님이라 부르도록. 두 번째부터는 가차 없이 징계를 내릴 것이다.”

그 남자, 페르젠이 서서히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에 리지는 제자리에서, 뒤죽박죽 흘러나왔던 감정들을 억지로 주워 담고 나서야 강의실로 움직일 수 있었다.

* * * * *

“교육관과 본관, 기숙사의 게시판에도 적혀 있겠지만…… 과제의 마감은 4월 12일로 3주 정도가 남았다. 명심하도록.”

출석 체크를 완료하고, 3주차 강의를 진행하기 위해 나는 소매를 말끔하게 걷어 올린 뒤 칠판 앞으로 다가섰다.

“3주차 강의는, 오러 나이트에 대해서 알려주겠다고 했었지.”

오러 나이트.

극의에 도달하는 순간, 바깥으로 흐르는 마력은 형상을 머금고 항마의 성질을 지녀 접촉하는 순간 마법을 파훼한다.

물론, 그것 말고도……

“오러 나이트, 이들의 마력은 마법사와 확실히 대비 되는 차이점이 하나 존재한다. 아는 사람이 있는가?”

“그들의 마력은 의지대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칠판을 두드렸다.

“그래. 마법사와 다르게, 오러 나이트의 마력은 의지대로 움직일 수가 없지. 이 점 때문에…… 수련 과정이 무식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힘들어 의외로 일반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

“그런 만큼, 오러 나이트의 수련 과정과 성장 과정에 대해서 아는 사람도 적을 터. 3주차 강의는 이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알려주마. 추후 오러 나이트의 시신을 사역하게 될 때 도움이 되겠지.”

수치화를 키고, 분필을 이용해 칠판에 사람의 형상을 그려낸다.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는 얼음 덩어리와도 같은, 이 고정되어 있는 마력을 움직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력은 서로 이끌리기도 하니, 마법사가 외부에서 도움을 주면 안 되는 건가요?”

“틀렸다. 만약 그랬다면 집안이 부유한 사람은, 오러 나이트의 길을 걷는 걸 포기하고 일반인으로 살아가진 않을 테니까.”

“……”

좌중을 둘러보니 고민을 하고 있는 듯 하나, 마땅히 떠오르는 생각들이 없는 모양이다.

“되었다. 집중하도록. 바로 설명하도록 하지.”

단상을 가볍게 두드려 시선을 모은 뒤, 나는 말을 이었다.

“사람은 식사를 통해 몸에 영양분을 공급한 뒤, 그것을 에너지삼아 활동한다. 하지만 식사를 하지 않아 거름 삼을 영양분이 없다면 우리 몸은 어떤 식으로 나오는가?”

……아.

“이제 좀 감이 잡히나?”

에너지로 사용할, 거름 삼을 영양분이 없다면 우리 몸은 차선책으로 몸의 지방을 태운다.

그리고 더 이상 태워낼 지방도 없다면, 오러 나이트의 경우.

그 끝에 가서야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얼음 덩어리와도 같은 마력을 녹여내 전신으로 퍼트린다.

이것이 오러 나이트가, 마력을 수련하는 과정.

“물론, 이 방식은 위험하다. 도중에 정말로 아사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지. 하지만 마력이 충만하다 했을 때 이 과정을 무수히 되풀이 할 수만 있다면 이론상 극의에 도달하는 속도가 제일 빠르다.”

오러 나이트의 마력은 얼음 덩어리처럼 굳어 있어 움직이지 않기도 하지만, 밀폐된 방에 갇혀 있는 것과 같아 녹여낸다 하더라도 반드시 길을 뚫어줘야만 했다.

그 길이 바로, 육체를 한계로 내 몰아 상처 입은 세포를 마력을 통해 서서히 회복시키는 것.

그리 마력으로 회복된 세포가 있는 부위로는, 자연스레 녹여진 마력들이 흐른다.

한 마디로, 극의에 도달한 오러 나이트란 전신의 모든 세포를 마력을 통한 회복으로 재구성한 존재.

거기까지 가면 얼음 덩어리 같았던 마력은 모두 녹아, 의지대로 움직일 수는 없지만 자연스레 온 몸을 순환하게 된다.

그 때 근육을 강력히 수축하면, 물에 젖은 수건을 짜듯 외부로 흘러나온 마력이 피부를 타고 흐르게 되는데……

그것이 특정 형상을 가지게 되는 순간을 바로 오러라 칭한다.

“저…… 그러면 아사하기 직전까지 굶어본 경험이 있어야, 해당 수련과 관련된 기억에 대해 완전한 피드백을 받아낼 수 있나요?”

“그래.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름길이다. 대부분의 오러 나이트들은 처음부터 이 정도로 무모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

마저 강의를 이어 나가려다, 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시엘 미드포드가 정말로, 루에르그의 설산을 지나쳐 왕도로 진입했다면 이 과정을 몇 차례 거쳤겠지.

루에르그의 설산 어딘가에, 그러질 못하고 아사해버린 그의 시체가 있기를 내심 바라고는 있으나……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임을 알았기에, 고개를 저어 털어냈다.

“일반적으로 오러 나이트의 수련 과정은, 무거운 걸 들거나 해서 의도적으로 근육을 파괴시킨 뒤 마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방치한다. 이때 파괴시킨 근육의 손상도가 보유한 마력으로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라면 영구적인 장애를 가지게 되지.”

“……”

“운 좋게 두 팔과 두 다리, 복부까지 완료를 하더라도 극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과정을 시도해야 하기에……”

그래, 그래서.

오러 나이트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적고, 오러 나이트의 길을 걷는 자들이 드문 것이다.

“그러니 가문에 보유한 오러 나이트의 시신이 있다면, 또는 가족 중에 오러 나이트의 길을 걷는 자가 있다면…… 그들의 고충이 어떠했을지 진중하게 헤아려보도록.”

숨소리만 들려오는 정적 속에서, 나는 잠시 목을 축였다.

그리고는 조금이라도 오러 나이트의 시신에 대한 이해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설명해주다……

자연스레 강의를 끝마쳤다.

“수고했다. 다음 주에 보도록 하지. 아…… 원래는 오늘 너희들에게 각자 시신이 배부될 예정이었지만, 일정이 틀어져 3 ~ 4 일은 더 걸릴 예정이다. 자세한 사항은 게시판에 공지할 테니 그리 알고만 있도록.”

배부가 늦으면 숙련도를 높이는데 할애할 시간이 줄어드나, 어차피 이 조건은 모두가 동일했기에 딱히 불만 가지는 사람은 없고 그러려니 하는 반응들이었다.

외려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일체형 책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인상을 찌푸리며 궁시렁 거리는 학생들이 태반……

그에 강의실을 나온 나는, 학과 사무실에 들려 알폰스에게 추가적인 공지를 게시판에 붙이라고 지시한 뒤 본관의 교수실로 돌아왔다.

‘오늘은……’

다시금 내가 당직을 서게 되는 날.

그간 지하의 풍경을 연결한 손거울을 꾸준히 관찰했지만, 별다른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점점 내 추측이 맞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었기에.

활동을 한다면 틀림없이……

‘오늘 밤이겠지.’

처음에는 그 때문에, 나와 당직을 서게 될 교수부터 의심을 했으나 그 대상이 유리엘인걸 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소거법으로, 자연스레 남는 것이.

평민들의 기숙사에 당직을 서는 교수.

아카데미를 지키는 황실 기사단, 또는 마도 병단.

그 중에 범인이 있으리라.

늦은 밤, 아무런 의심을 받지 않고 자연스레 아카데미 내부를 활보할 수 있는 자는 이들 뿐일 테니까.

‘줄다리기도 이 만큼 했으면……’

슬슬 결착이 날 시점이다.

* * * * *

“당직 서기 싫다……”

점심시간, 리지와 함께 근처의 식당에 마주 보고 앉은 유리엘은 연신 푸념을 뱉어냈다.

하지만 유리엘의 푸념을 듣는 리지는, 건성으로 대답을 해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페르젠, 그 남자가 오늘 강의 해준 내용이 사실이라면……

자신의 첫째 오빠, 로에르는 남몰래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해왔던 걸까.

아니, 들어만 보면 그것은 노력이 아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목숨을 건 도박에 가까웠다.

‘생각해보면……’

원래 일기 따위는 쓰지 않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일기를 쓰기 시작했던 시점이 분명……

브뤼테인으로 올라가, 무릎을 꿇고 사과를 했던 때였지.

그러니 자신의 오빠, 로에르는 혹여나 수련하는 도중 죽게 되더라도 그 과정을 온전히 남겨 이해력을 높인 상태로 자신이 사역할 수 있게끔 하는……

이기적인 배려를 준비하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맛이 별로니?”

“아니에요. 잘 먹겠습니다.”

오빠를 만나게 된다면,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따뜻하게 안아줘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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