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39화 (39/260)

EP.39 039─Dawn of the Dead?

‘분명, 허리가 아프다고 끙끙 거렸을 텐데.’

눈을 뜨니, 유페미아는 여전히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다.

아마 이것은, 익숙해지려야 익숙해질 수가 없는 루에르그의 추위에 시달리는 과정에서 생긴 잠버릇이겠지.

스륵.

슬며시 유페미아의 아랫배로 손을 얹혀,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그러자 그녀는 자연스레, 올바르게 몸을 핀 뒤 두 손을 자신의 가슴부근으로 모았다.

내가 그녀를 길들였던 트리거가 선명히 각인 되어 있는 터라, 굳이 귀찮게 힘을 쓰지 않아도 이런 식으로 몸을 바르게 피도록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으응……”

그때, 구름에 가려졌던 달빛이 창가로 스며들어온다.

“……”

속이비추어지는 하얀색 네글리제 너머, 고운 피부위로 무수히 새겨진 붉은 키스마크.

그 광경을 눈에 담는 순간, 범람하듯 치솟는 충족감에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가는 걸 차마 막을 수가 없었다.

애용품으로 비교하자면, 손때가 가득 묻은 그런 것이겠지.

삐걱.

유페미아의 머릿결을 한 번 쓸어내려준 뒤, 방안을 은은히 밝혀주던 등불을 들고서 발코니로 나왔다.

그리고는 불을 붙인 연초를 꼬나물고, 미약한 동이 떠오르고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잠기운을 날려 보냈다.

“후……”

「 특수능력 」

▶???

▶수치화

이따금 시간이 날 때, 표기되지 않은 특수능력이 무엇인지 머리를 굴려 추측 해보았으나 여전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현재로서는……’

높은 확률로, 명계와 연관이 있을 거라는 결론이 전부.

“……”

고개를 숙여, 왼손의 반지──제단을 쓰다듬어 마력을 주입해 이승과 명계를 연결한다.

그러자 내 앞으로 나타나는, 기이한 문양이 아로새겨진 검은 문.

현재로서 허락된 이 문의 너머는, 명계의 1층과 2층.

명계의 1층은, 규칙준수나 흉내쟁이처럼 직관적인 이름을 가진──아니 그것은 이름이라 하기에도 그랬다.

별칭이라 하는 게 옳으리라.

왜냐하면 명계의 1층에 서식하는 괴이들은 이름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명계의 1층과 거래를 할 때는, 자신이 원하는 괴이와 주선 되도록 유도가 가능한 것이다.

이름을 부여 받아, 명계의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아득아득 살아가는 승냥이 같은 존재들이니.

끼익.

아득한 어둠이 도사리는 명계의 풍경이 잠시 비추어지고, 제일 위쪽에 자리 잡은 명패(名牌)가 시시각각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연결된 자신의 마력에 응답해줄, 명계의 2층에 서식하는 괴이를 무작위로 탐색하고 있다는 증거.

때문에 나는 거기까지만 보고, 마력의 연결을 끊은 뒤 강제로 문을 닫아 버렸다.

페르젠은 명계의 2층에 서식하는 괴이와 한 번도 거래를 한 적이 없었으므로, 혹여나 표기 되지 않은 특수 능력이……

‘일종의 지목권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군.’

한 번 거래가 주선되는 순간, 해당 괴이의 능력을 반감된 상태로 빌리거나 직접 강림시키는 양자택일의 선택을 무조건 해야 했기에 간을 보는 행위는 금물이다.

‘어찌 이리 꼭꼭 숨겨 놓는 건지……’

긍정적인 쪽이라면 주인공의 잠재력이 그 만큼 크다는 반증일 테기에, 차라리 부정적인 쪽이라면 좋겠다고 은연중에 바라고는 있으나 그럴 가능성은 현저히 적으리라.

페르젠은 메인 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니, 틀림없이 주인공에게 보다 위기를 선사해줄 수 있는 장치 일터.

‘……’

설마 시엘 미드포드에게 “죽었나?” 라는 대사 따위를 들어야 발동이 되는 건 아니겠지.

현실이기는 해도, 소설 속의 세계니.

클리셰 같은 게 방아쇠가 될 수도……

아니다.

너무 나갔다 싶어, 연초를 마저 피운 뒤 밝아오는 아침을 슬쩍 보고서는 안으로 들어왔다.

어제 학생들에게 배부될 시신이 언제 오냐고 물었더니, 오늘 점심쯤에 도착한다고 했기에 검수를 하러 출근을 해야 했다.

* * * * *

“……”

자신의 방, 거울을 보고 마주 앉아.

시녀들에게 머리를 손질 받는 엘리자베스는, 이번 년도 아카데미의 상반기 계획이 적힌 서류들을 천천히 넘겨보았다.

‘너무 조용해.’

걸리는 게 없다.

물론, 지혜를 관장하는 신에게 내려 받은──길흉을 점치는 능력은 제멋대로 발동을 하는 거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카데미의 상반기 계획 모두가 말끔히 넘어 갈 것 같지는 않았다.

필시 황권이 이 이상 강력해지는 걸 견제하려는 귀족들도 있을 테고, 특히 엘마르크 제국이 손을 써오려 할 텐데.

“으음……”

작금의 아카데미만큼, 황실의 권위를 추락시키기 좋은 수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각 귀족가의 자제들을 볼모로 잡는다는 건, 사건이 터졌을 때 그만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니.

하지만 찌를 부위가 한 곳이라는 건, 반대로 지키는 것 또한 용이하다는 반증이다.

“황녀 전하, 다 되었습니다. 오늘도 너무 아름다우시네요.”

“매번 듣는 입 발린 말이라 아무런 감흥도 없느니라.”

이내 자신의 보석함을 가지고 오는 다른 시녀가, 그것을 열어 앞으로 내민다.

“되었다. 이 보석함에 담긴 장신구는 전부 처분하거나 너희들이 원하는 게 있다면 가지고 가거라.”

“네?”

오랜 시간, 엘리자베스를 보살펴 왔던 시녀들이지만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연신 두 눈을 끔뻑였다.

“오늘은 아무것도 차지 않고 가마. 그리고…… 앞으로 이 장인이 만든 장신구가 헌상되어져 오면 받지 말도록.”

“그러면 돌아오실 때 까지, 전부 처분해두겠습니다.”

“……”

그 말에, 엘리자베스는 내심 눈썹을 꿈틀했다.

저 보석함 안에는, 상당히 많은 양의 장신구가 있는데.

정말로 거기서, 가지고 싶은 게 하나도 없다는 말인가?

하녀가 아닌, 황실의 시녀는 대부분 귀족가의 여식들이다.

때문에 해당 장신구에 사용된 보석의 가치를 모르진 않을 터.

“그리, 하여라……”

하지만 내뱉은 말이 있으니, 엘리자베스는 겉으로 아무런 티를 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오늘 따라, 저번 주에 들었던 페르젠의 거침없는 마음의 소리가 뇌리에 선명히 떠오른다.

* * * * *

“고생 했다.”

“아닙니다!”

“차트는?”

“여기 있습니다.”

A 교육관의 지하, 그곳으로 이송된 14구의 시신이 담긴 관들을 바라보며 나는 차트를 넘겨받았다.

해당 14구의 시신은, 모두 용병으로 활동했던 남성과 여성들의 시신이다.

중간고사는 이 시신들을 자율 통제해, 수도에서 멀지 않은 켈리움 숲에 서식하는 괴물들을 토벌하는 것.

그리고 들고 있는 차트에는, 학생들에게 알려줄 간략적인 정보를 제외한 상세한 것들이 담겨 있었다.

“시독의 판별 여부는 마치고 들여왔다고 했지.”

“네!”

시독은 마치, 납중독과 같다.

바로 티가 나지 않고, 서서히 해당 시신을 건드리는 흑마법사의 몸을 좀 먹어 가며 끝끝내 사망에 이르게 만드는.

실제로 과거에는 이런 식으로 사망한, 정확히는 암살당한 흑마법사들의 전례가 적지 않았다.

물론, 황실 주도 하에 판별을 마쳤다고 하니 정말 시독을 품고 있을 가능성은 현저히 적겠지만……

“혹시 모르니, 엘라냐를 사서 두도록.”

“엘라냐, 말입니까?”

“그래.”

독성을 품은 동물이나 곤충, 그게 아니라면 독소가 흐르는 어느 곳으로 꽃씨를 날려 보내 번식을 시도하는 괴이한 독초.

관을 열어 두고 밀폐된 곳에 두면, 시독이 있다고 가정 했을 때 그 독소가 조금씩 흘러 나와 엘라냐를 자극 하리라.

어차피 시신을 학생들에게 분배하는 건 다음주, 3주차 강의가 끝나고 부터니 이만하면 확실한 안전 고리가 되겠지.

“그럼……”

관을 하나씩 열고, 차트에 적힌 상세한 정보를 토대로 마지막 검수를 시행한다.

먼저 해야 할 건 태어난 곳과 그간 살아온 곳, 나이와 이름, 직업과 가족 관계로 본인임을 확인하는 것이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사람의 기억은 절대적이지 않아, 사전 세뇌로 얼마든지 덮어버리는 게 가능했으니까.

예시로 어머니가 세 명이라고 믿게 만들어 기억을 왜곡 시켜버리면, 본래는 어머니가 한 명이더라도 구현율이 오르는 피드백은 어머니가 세 명이라는 부분이었다.

시체의 신분 세탁은 그 만큼 간단해서, 핵심은 본인만이 알고 있는 특정 사실들로 피드백을 받아내는 것이다.

실제로 흑마법사가 천대 받지 않는 세상이라, 시신의 거래도 그 만큼 활성화 되어 있는 세계이기에 용병의 경우 의뢰를 수행하다 사망했을 때 자신의 시신을 판매하여 대금을 가족이나 지인에게 넘겨준다는 항목에 서명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러할 때, 반드시 기입해야 하는 게……

사역하는 흑마법사가 절대 유추해내기 힘든 사실들이다.

이것들은 직접적으로 구현율에 영향을 미치니, 당연히 흑마법사 입장에서는 그 내용이 많은 시신을 우선적으로 구매하는 편이었다.

‘이 놈은……’

첫 번째 관, 거기에 누워 있는 젊은 남성에게 마력을 방사하여 통제 하에 들인 뒤 시선은 차트에만 둔다.

「 오줌은 무슨 맛일까 하고 받아서 먹은 적이 있음. 」

“……”

차트를 읽다, 눈살을 찌푸렸다.

보통 평민들은 글을 모르기에, 용병 협회의 접수원이 들으며 받아 적는 경우가 태반이다.

때문에 일종의 고해성사 같은 자리라, 초반에는 어릴 때 부모님의 돈을 훔쳤다 같은……

그런 시답잖은 것부터 시작해, 나중 가서야 가지각색의 사실들을 술술 쏟아내기 마련인데.

‘얼굴에 철판 한 번은 제대로 깔았군.’

용병 협회의 접수원과 마주보며 앉아, 처음부터 내뱉은 말이 이 정도 치부라니.

「 용병 일을 시작하고 한 달 차, 같이 의뢰를 수행하던 용병에게 강간당함. 이후 그 용병이 사망하여 시신이 고향의 땅에 묻혔다는 사실을 듣고 직접 내려가, 무덤을 파서 시신을 끌어올린 뒤 칼로 무자비하게 훼손함. 」

“……”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새내기, 그러니까 D급 용병의 시신은 판매가 되지 않기에 숙련자라 할 수 있는 C급 용병부터 시신 판매 서류에 서명을 하는 게 가능한데……

그 기간 동안 적잖은 우여곡절을 수차례 겪은 듯했다.

‘충분하다……’

피드백이 받아들여졌기에, 나는 통제를 거두어들였다.

이 정도로 인과관계가 꼬인 사실은 세뇌를 하여 진실로 믿게 하기도 힘들 테니, 얌전히 다음 시신으로 나아간다.

“하……”

그리 6번째 시신까지 검수를 마쳤을 때, 나는 찌푸려진 미간을 검지로 문질렀다.

‘그냥…… 직접 하는 게 낫겠군.’

페르젠의 재능, 시신에 한정하여 생전의 핵심 기억을 1회 엿볼 수 있는 사이코 메트리(Psychometry).

이것을 이용해 검수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차피 황실의 흑마도사가 자신과 동일한 과정을 되풀이 했을 테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또 한 번 하고 있는 건데……

이 방식은 적어도, 나에게는 너무 괴로웠다.

지나친 네 번째 시신의 경우, 위에 쌍둥이 누나가 있는데 그 중 한명과 잠자리를 가져 임신을 시켰다고 한다.

아마 그 누나를 위해 용병 일을 하다 죽은 거겠지.

지금쯤이면 아이도 태어났으리라.

문제는……

남은 한 명의 쌍둥이 누나, 그 여인을 임신 시키지 않은 점이 극심하게 불편했다.

이처럼 읽는 것만으로도 심기를 뒤틀리게 하는 사실들이 많았기에, 대기 중인 알폰스에게는 티가 나지 않도록 7번째 시신의 머리 위로 손을 얹혔다.

‘……?’

그러나 발동이 되지 않는다.

아니, 발동이 되지 않는 게 아니라 정확히는……

한 인간의 성격, 자아, 정체성을 확립시키는데 제일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핵심 경험이 읽히지가 않았다.

‘뭐지?’

사이코 메트리를 사용하기 전, 기본적인 인적 사항에 관해서는 성공적인 피드백을 받았었는데?

혹시나 하여 다시 해보지만, 역시나 먹히지 않았다.

시신마다 되고 안 되고의 차이점 같은 게 있었나?

페르젠의 기억에는 적어도, 그런 경우가 없었기에 바로 옆의 8번째 시신을 건드려보았다.

‘……’

그러나 이 시신은 읽혀 들었다.

여기서부터 무언가 위화감을 느껴, 14구의 시신들을 전부 건드려본 결과…… 무려 5구의 시신에게 사이코 메트리가 발동 되지 않는 걸 확인했다.

“알폰스.”

“네!”

“다른 말은 전해 듣지 못했나?”

“아…… 네! 전해 듣지 못했습니다.”

하기야 나 말고, 누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을까.

마력을 방사해 시신을 옭아맨 뒤, 의지를 부여하면 사역이 되고.

차트에 적힌 대로, 해당 사실을 인지할 때 마다 구현율이 오르는 실시간적 피드백을 받는데.

‘하지만……’

시신에 한정하여 발동하는 사이코 메트리가 먹히지 않는다.

‘이것은……’

무얼 뜻하는가.

……죽은 시체이지만, 사실은 죽은 게 아니다.

자연스레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모순 덩어리인, 어처구니없는 말이지만.

‘사실…… 이따금 가졌던 의문이 있었지.’

물에 빠져 익사, 정확히는 심정지를 한 상태.

높은 확률로 다시 살려낼 수 있는, 골든타임 5분이 지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을 사역할 수 있는가?

답은 모른다.

실험을 할 수도, 사례도 없었으니.

하지만 여기에 답이 있다.

사이코 메트리로 읽을 수 없는 5구의 시신, 그 시신들은 분명히 자신의 통제 아래에서 움직인다.

그래, 그러니까.

아마도 믿기가 힘들겠지만.

이 5구의 시신은……

모종의 수단으로, 가사상태에 빠져 있는 게 아닐까.

“하……”

이곳의 문명수준으로 보자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교수님?”

하지만 불가능을 없앤 다음에 남는 것이야 말로, 아무리 믿을 수 없다 하더라도 명백한 진실이라고.

셜록 홈즈가 말하지 않았던가.

“알폰스.”

“네?”

“나가보도록.”

“교수님은……”

“조금만 더 검수를 하다 나가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엘라냐는 구매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아, 네……!”

나와 함께 있는 게 무척이나 불편했던 건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알폰스가 교육관의 지하를 나선다.

쾅!

이어 세차게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나는 혼자가 되었다.

아니, 혼자는 아니리라.

죽어있지만 살아있는, 5마리의 쥐새끼들이 있었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업로드 시간은 자유로 두고 있습니다 일단……

정시에 올라오지 않아도 걱정하지 말아주세요.

* * * * *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여러 자료 뒤적 거려도 보고요.

그 끝에 판타지라는 방패 뒤에 숨는다면, 접목시켜 볼만 하지 않을까?

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사실 흑마도와 관련해서 꼭 다뤄보고 싶은 주제이기도 했고요.

열심히 써볼테니 너무 과학적 고증으로 때리지 말아주세요…………

* * * * *

독자님들 의견을 수용할건 수용하여 의견을 전달했으니, 표지 러프 공지는 내려갑니다.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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