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3 033─만월(滿月)이 지는 밤
만월이 젖어든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찾아오고 있다는 걸 알리듯 서서히 어둠을 몰아내는 찬란한 여명.
“흐. 으……”
그에 이지를 상실한, 극도의 각성 상태에 빠져 있던 라우라는 가라앉았던 의식이 점차 수면 위로 붕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샤를.”
샤를?
그게 누구일까.
모르겠다.
어렴풋이 눈치 챌 수 있는 건, 방금 들려온 목소리가 상당히 익숙하다는 것.
아직은 온전한 사고(思考)를 할 만큼의 여유가 있지 않았기에, 라우라는 좀처럼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의 통제권부터 얻어내려 애를 썼다.
그것은 가위에 눌려 꼼짝도 하지 않는 몸을 움직이기 위해, 손가락부터 필사적으로 까딱하려드는 처절한 발버둥이었고……
“아……”
기어코 자신의 몸이 이성의 통제를 듣기 시작하자, 라우라는 희미한 기쁨을 느끼며 현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려 들었다.
“……”
대충이나마 기억하고 있는 건, 자신을 뒤따르는 남성들의 시선을 느끼며 수도의 외곽──그곳의 골목길로 들어섰다는 것까지인데.
어째서 자신의 앞에……
“교, 슈…… 님?”
페르젠이 있는 걸까.
주륵.
“흐븝!”
입가에서 천박하게 침이 흐른다.
막아 보려 시도는 했지만, 재갈처럼 물려져 있는 천자락 때문에 입고 있는 옷 위로 타액이 길쭉이 늘어졌다.
“……”
하지만 그것에 당황할 새도 없이, 라우라는 페르젠의 양팔에 새겨져 있는 수많은 상처들과……
그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자신의 두 손을 보며, 안색을 창백하게 물들였다.
‘아……’
알비노였던지라, 여기서 혈색이 더 나빠지니 시퍼런 핏줄들이 피부위로 선명히 도드라진다.
“라우라.”
“네, 헤……”
“정신이 들었나.”
“……”
끄덕.
차마 입을 열어 대답할 염치는 없었기에, 라우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목울대를 움켜쥐고 있는 자신의 손을 내렸다.
‘큰일, 났네……’
중간 기억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라우라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플 뿐이었다.
아니, 골치가 아프다 못해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윤회를 거쳐 제노바 백작가의 피를 잇지 않고 있는 몸인데도 불구하고 만월의 괴벽이 발작했다는 점.
그리고 만월의 괴벽이 발작하는 도중에, 페르젠을 마주해 지금 이 상황이 마련되어진 결과.
그 모든 것이, 라우라의 숨통을 옥죄여왔다.
꾸욱!
더군다나 만월의 괴벽이 발작하여, 해당 충동에 시달리며 그것을 이행하는 동안은 극도의 쾌락을 느끼기에……
페르젠의 무릎 위에 앉아 있는 지금, 그의 체향에 뒤섞인 자신의 짙은 여인의 향기가 너무나도 수치스럽다.
아니, 말이 좋아 여인의 향기지 그것은 암컷의 냄새.
아마 타인이 이 방안에 들어서서 냄새를 맡는다면, 남녀가 진득이 정사를 펼치고 간 건 아닐까라고 생각하리라.
“고개를 들지.”
도리도리.
라우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페르젠은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라우라의 입가에 재갈처럼 물려져 있는 천자락을 풀어내주고서는, 턱을 붙잡아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라우라.”
“네, 네……”
“나는 로젠베르크가, 멸문당한 제노바 백작가의 피를 잇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어, 아……”
전혀 예상하지 못한 페르젠의 한 마디에, 라우라는 다홍색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며 입가를 파르르 떨었다.
보통은 이상한 정신병이 있다거나,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이면적 취미를 가진 사이코패스라고……
생각을 하지 않나?
“반응을 보아하니 진실인가 보구나. 다만, 만월의 괴벽에 대한 사실만 모르는 듯 하고.”
뻐끔뻐끔.
금붕어처럼 입술을 더듬으며, 라우라는 세차게 박동하는 자신의 심장 부근을 거세게 움켜쥐었다.
추측이 제노바 백작가로 연결되었다는 건 둘째 치고, 만월의 괴벽에 대한 건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는 사실 일 텐데……
‘무슨 수로……’
그가 전생의 자신, 이사벨의 시신을 가지고 있다 해도.
만월의 괴벽에 대한 사실을 알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해당 부분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려면, 애초에 만월의 괴벽에 대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니까.
‘백지 상태에서……’
추측 따위로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이다.
“무, 무슨…… 마, 말씀을 하, 하시는지……“
“만월의 괴벽이라는 건, 제노바 백작가의 혈통에 새겨진 저주다. 아마 네 아비가 감금하여 너를 낳게 한 어미에게서는, 이 사실을 듣지 못했겠지.”
“……”
“입증 방법도, 이사벨의 시신을 다른 흑마법사들에게 사역 시킨 뒤 피드백을 받게 하면 끝난다. 그리고 언젠가의 만월에서 네가 다시 한 번 괴벽을 앓게 된다면, 로젠베르크가 제노바 백작가의 혈통을 잇고 있다는……”
페르젠의 말을 더 듣지 못하고, 라우라는 손을 뻗어 그의 입을 틀어 막았다.
안 그래도 오랜 세월 간 자신을 좌절케 하고, 절망으로 몰아넣었던 만월의 괴벽이 발작 했다는 사실에 돌아버릴 것만 같은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해당 진실을 공표해 자신의 부모님과 가문 전체를 쓸어버릴 수도 있다는 뉘앙스로 압박을 해오니……
라우라는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세상이 빙빙 도는 것만 같은, 현기증.
아니, 실제로 그러했다.
선천적으로 체력이 부족한 몸이, 피로함과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극도의 각성 상태에 빠져 한계를 넘어선 활동을 한 것이기에 부작용이 찾아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바.
“흐, 응……”
속이 매스껍다.
토할 것만 같았다.
옅은 오한과 떨림 속에서, 이마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
라우라는 안겨있는 품안이 페르젠이라는 것도 잠시 망각한 채, 그의 옷깃을 붙잡아 꼬옥 쥐고서는……
“흑, 아으……”
병약한 강아지처럼 연신 낑낑 거렸다.
“라우라.”
그러자 페르젠은 손을 뻗어 라우라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주며 그녀의 귓가에 조곤조곤 속삭였다.
“노파심에 말을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공표할 생각이 조금도 없으니 안심하거라.”
“거, 짓말……”
세상 모든 이들이, 황실에 보내는 브뤼테인의 충성심을 의심하려 들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역사에 새겨진 산물이었기에.
제노바 백작가의 피가 흐르고 있지 않고, 그의 추측은 틀린 부분도 있으나 정황상 부정할 수가 없는 상태.
제노바 백작가는 황족을 시해했던 가문이니, 브뤼테인의 적자인 그가 이 상황을 가만히 넘어 갈 리가 없었다.
“진심이다. 주기적으로 찾아올 네 만월의 괴벽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끔 내가 보듬어주마.”
“흐……”
“구차하게 앞뒤가 다른 말을 내뱉고, 뒤통수를 치려 들지 않는다. 격 떨어지는 짓이니.”
“무, 무얼…… 워, 원하시는……”
라우라도 바보는 아니다.
해당 사실을 공표하지 않는다는 건, 필시 로젠베르크에 원하는 게 있다는 뜻일 터.
“이 이상은 로젠베르크의 가주와 의논해야 할 일이다. 네가 협상 테이블에 앉을 필요는 없어.”
“싫, 어요……”
가족들은 아무런 죄가 없다.
그러니 그들이 부담을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라우라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선에서 홀로 감당을 하고 싶어도……
그럴 능력이 없다는 걸.
“투정으로 넘길 사안이 아니라는 걸 모르겠느냐.”
“알, 아요. 아, 아는데……”
모르겠다.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도저히 그를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라우라는 그저 떼를 쓰며 페르젠의 품안에서 바동거렸다.
“제, 제가…… 뭐, 뭐든지…… 하, 할게요.”
“……”
“저, 정말…… 뭐, 뭐든지 괘, 괘, 괜찮으니까……!”
입고 있는 옷의 어깨끈을 스스로 끌어 내리며, 새하얗다 못해 창백하게 질린 맨살을 드러내는 라우라.
하지만 페르젠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라우라의 어깨끈을 도로 붙잡아 단정하게 올려주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을 하는 건 모순이지 않나. 네 빈약한 몸뚱이에 욕정 할 만큼 성욕에 굶주리지는 않았으니 선을 넘지 말거라. 오히려 불쾌해.”
“……”
라우라를 안아 들고서, 몸을 일으킨 페르젠이 침대로 다가가 그녀를 조심스레 내려준다.
그리고는 아공간에서 빗을 꺼내, 보기 흉하게 흐트러진 라우라의 새하얀 백발을 정돈해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네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건 아니니, 이리 하는 건 어떨까 싶구나.”
“무, 슨……”
“로젠베르크가 필요할 때, 그 사안을 네게 먼저 말해 줄 테니 너의 아버지가 알아서 나를 돕게끔 설득 시켜보도록. 현 로젠베르크의 가주는 어찌되었든 너를 상당히 아끼고 있는 딸 바보인 듯 하니…… 간곡히 부탁을 하면 들어줄지도 모르겠지.”
“시, 실패하면……”
“그걸 일일이 되물을 만큼, 세상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아이가 아니지 않느냐.”
“……”
끝났다는 듯, 빗을 내려두는 페르젠이 대충 걸어둔 자신의 정장 자켓을 쥐어든다.
그리고 그 순간, 또 한 번 시야에 들어오는 상처 가득한 페르젠의 팔에 라우라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 죄송…… 해, 해요……”
“순서가 많이 바뀌었구나. 욕심을 부리기 전에, 사과부터 했어야 했을 텐데.”
움푹 파여 들어간 이빨 자국을 따라, 선명히 새겨진 피멍을 매만지는 페르젠이 피식 웃는다.
“자, 잠시…… 이, 있어 보, 보세요……”
그에 라우라는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로사리오의 아공간을 통해 연고를 꺼내려 했다.
조금만 부딪쳐도 멍이 들고, 상처가 나면 쉽게 낫지 않는 터라 그녀의 아공간에는 값비싼 약초로 만들어낸 약품들이……
“……?”
없다.
없었다.
자신의 제단──로사리오가 도대체 어디에 있나 싶어 몸을 더듬거리는데, 눈앞의 페르젠이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주머니에서 은색 로사리오를 꺼내 돌려준다.
“잠시 내가 들고 있었다.”
“가, 감사…… 하, 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자신의 제단을 돌려받은 라우라는, 아공간에서 연고를 꺼낸 뒤 페르젠을 침상 위로 주저 앉혔다.
“소, 손…… 내, 내밀어 주…… 세요.”
그리고는 만월의 괴벽에 잠식당한 자신이 새겼을 게 분명한 상처 위로, 무척이나 부드럽게 연고를 발라주었다.
도대체 얼마나 물어뜯은 건지……
상처 위로 연고를 다 바르고 나니, 동이 나버린다.
꾸욱!
이후, 붕대를 꺼내 정성스레 감아 주고는……
“끄, 끝났어요……”
라우라는 조심히 페르젠의 눈치를 살폈다.
“……라우라.”
그리고 상처를 뒤덮은 붕대를 스윽 바라보는 페르젠은, 거슬리는 게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자신의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었다.
“여기도 상처가 있다만.”
“아, 그…… 여, 연고가 더는 어, 없는데……”
피딱지가 가득 앉아, 어쩌면 팔뚝의 상처 보다 더 심각해 보이는 손가락──중지의 상태에 라우라는 몸을 움츠렸다.
“그런가…… 그러면 됐다.”
하지만 페르젠은 상관없다는 듯, 걷어 올렸던 셔츠의 소매를 반듯하게 내리며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
그에 라우라는 그러한 페르젠의 옷자락을 다급히 붙들고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개, 개인 적으로…… 제, 제가 해, 해드릴 수 이, 있는……”
“필요 없다.”
“……”
단호하게 답변을 해주는 페르젠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우라는 페르젠의 옷자락을 붙들고 있는 손을 놓지 않았다.
만월의 괴벽에 대한 사실을 공표하지 않는다는 건 자신에게도 조건을 내걸었으니 예외로 치더라도……
브뤼테인의 적자인 그의 몸에 상처를 낸 점에 관해서는, 어떠한 요구도 해오지 않았기에 자진해서 어떤 식으로든 만회를 하고 싶은 라우라였다.
……괜히 심적 부채감을 안고 싶지 않았으니까.
“라우라…… 피딱지가 많이 앉아서 심각해 보이는 거지, 상처 자체는 침만 발라도 알아서 나을 수준이야.”
“그, 래도……”
자신의 말에 몸을 움찔하나, 여전히 고집을 꺾을 생각은 없어 보이는 모습에 페르젠은 한숨을 내쉬었다.
“……좋다. 네가 그리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어떠한 형태로든 그 감정을 해소시켜주면 되는 거겠지.”
몸을 돌린 페르젠이 라우라를 마주하며, 상처 가득한 자신의 중지를 앞으로 내밀어 붉디붉은 그녀의 입술을 툭 건드린다.
“……?”
끔뻑끔뻑.
페르젠의 행동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특유의 다홍색 눈동자를 치켜들어 올려다보는 라우라.
“내가 앞서 말하지 않았나. 상처 자체는 침만 발라도 알아서 나을 수준이라고.”
“……”
“네게 개인적으로 원하는 건 없으니, 벌이라는 형태를 취하는 게 가장 적합하겠지.”
덧붙이는 페르젠의 상세한 말에, 라우라도 그가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물론, 당황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으나 그의 몸에 상처를 낸 대가를 이것으로 무마할 수 있다면 괜찮은 거래가 아닐까.
그에 라우라는 두 눈을 질끈 감고, 페르젠의 커다란 손을 붙잡은 다음 그의 중지를 살짝 피고서는……
……할짝.
혀를 내밀어, 서투르게 핥았다.
“……”
벌──그래, 벌이라면 확실히 벌인 듯 했다.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견디지 못한 라우라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으니까.
……쪽.
이내 페르젠의 상처 가득한 중지를, 입 안쪽으로 머금은 라우라는 자신의 따스한 설육으로 상냥히 감싸 안고서는 정성스레 봉사라도 하듯이 빨아주었다.
‘상처가……’
타액에 녹아 스며드는 비릿한 혈향과 함께, 혀의 감촉에 사로잡히는 손가락의 상처가 생각보다 깊어 라우라는 실눈을 떠서 페르젠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아무런 감정을 동반하고 있지 않은 무심함 그 자체를 선보이고 있었다.
파헤쳐지고, 헤집어진 굴곡이 이리 적나라하게 느껴지는데……
이게 어찌 침만 바른다고 나을 수준이란 말인가.
애초에 문틈에 손가락을 찡기기만 해도 죽을 듯이 아프다.
하물며 사람의 이빨로 해를 끼친 상처라면……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움찔!
실눈을 뜨고 얼굴을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켰다는 것에, 라우라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다시금 두 눈을 질끈 감고……
……쭙.
나름대로 합리화를 시킨, 소독이라는 작금의 행위에 최대한 집중을 했다.
“프, 하……”
그리고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 싶어, 그의 손가락을 뱉어낸 라우라는 자신의 타액으로 반들거리는 페르젠의 중지를 손수건으로 꼼꼼히 닦아주었다.
“……”
하지만 페르젠은 그 행동이 무색하리 만큼, 반대쪽 손가락의 중지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
우물쭈물하며, 내밀어진 반대쪽 중지와 페르젠의 얼굴을 번갈아 보는 라우라지만……
……쪽.
거부한다는 선택지를 고를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자그마한 입술을 벌려 또 한 번 동일한 소독 과정을 되풀이했다.
그리고는 나름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 시점에서 손가락을 뱉어낸 뒤, 손수건을 들어 타액을 닦아 주려 했으나……
“라우라.”
“네……?”
“아직 3분이 남았다.”
페르젠이 아주 진중한 표정으로, 다시금 입안에 머금으라는 듯이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어 입술을 지분거린다.
그에 라우라는 무척이나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페르젠 입장에서는 라우라가 왼쪽 손의 중지를 7분간 입에 머금고 있었으니 오른쪽 손의 중지 또한 동일하게 7분간 입안에 머금고 있기를 바랐던 것이나……
라우라 입장에서는 그걸 알 수가 없었기에, 그저 페르젠이 자신을 더 골려 주려고 하는 마음을 품은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추측을 하는 게 최선이었다.
……쪼옵.
……쪽.
때문에 쓸데없이 다른 말은 할 수 없도록, 라우라는 최대한 정성을 보이며 어쩌면 경박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그의 손가락을 아주 극진히 빨고…… 또 핥아주었다.
“되었다.”
이내 줄곧 시계를 지켜보고 있던 페르젠이 자진해서 손가락을 빼내자, 라우라는 손부채질로 몸의 열기를 식히며 손수건을 이용해 그의 손가락에 반들반들 묻은 자신의 타액을 닦아주었다.
“오늘은 아마 강의를 못 들을 수도 있겠지. 병으로 인해 몸이 아프다면 결석으로 처리하지 않을 테니 편히 쉬어라. 어차피 2주차 강의에 대한 내용은…… 내일 오후 2시쯤 마도 학회에 들린 다면 보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장의 자켓을 걸쳐 입은 페르젠이, 그리 라우라를 두고서 여관의 방을 나섰다.
그리고 홀로 남은 라우라는, 주섬주섬 여관의 방에 딸린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는 아카데미 내의 기숙사──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몸이 피곤하고, 무겁고, 당장이라도 자고 싶었지만……
로젠베르크에 있을, 자신의 아버지에게 보내려 했던 서신.
그 서신의 내용을 갈아엎어야만 할 것 같았다.
원래는 그 당시 페르젠의 자작곡을 옮겨 적은 악보와, 간단한 안부를 전하는 내용만이 적혀 있었지만……
나중에 자신의 아버지에게, 페르젠을 도와달라고 설득하는 것이 너무 갑작스럽게 받아 들여지지 않도록 하려면 미리 충분한 복선을 깔아 놔야 하지 않겠는가.
때문에 라우라는 페르젠과 관련된 이야기로, 새로운 백지의 빈칸을 빼곡히 채워 나갔다.
“……”
이후, 마지막으로 검수를 할 겸 자신이 새로이 적은 편지를 읽어 보는 라우라는 누가 봐도 한참 사랑을 할 나이 때의 소녀가 애틋한 마음을 가득 담아 수줍게 사랑을 티내는 듯한 내용으로 보였던지라……
얌전히 편지를 곱게 접은 뒤 봉투에 넣었다.
이걸 받은 자신의 아버지는 무슨 표정을 지을까.
이미 결혼을 한 그의 아내로써, 측실이라도 좋으니 맺어지고 싶다는 의도로 받아들일까.
그래, 차라리 그런 의도로 받아주면 더욱 좋았다.
이 감정을 곱게 접을 테니, 그를 도와주면 안 되겠냐고.
그런 식으로 비교적 간단히 설득을 할 수도 있을 테니.
‘그래도……’
근력이 보잘 것 없는 몸, 케테르 등급에 불과한 흑마법사인지라 만월의 괴벽에 잠식을 당해도 이번처럼 보다 높은 등급의 조력자가 있으면 아무런 피해도 없이 넘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점이겠지.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으리라.
결국에는 윤회를 거쳐서도, 자신은 이 굴레를 벗어 던지기 위한 정답을 알 수 없는 난제를 풀어가야 하는 숙명인 것이다.
그것이 안겨다주는 좌절감과 절망감에, 짙은 한숨을 내쉬는 라우라지만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만월의 괴벽이, 전생과는 다른 형태로 발현 되었으니.
어쩌면 어떤 한 분야에서 반드시 특출난 재능을 선보인다는 부분도, 다른 형태로 머무르고 있지 않을까.
17년의 세월 동안 감도 잡지 못한, 개화하지 않은 숨겨진 재능.
그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싶어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을 하던 라우라지만, 어느 샌가 아주 자연스레 잠에 빠져 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편도염이 완치 되기 전 까지는 [업로드 시간]만을 자유로 할 예정입니다.
진료 확인서도 공지에 추가 했으니 거짓말이 아님을 믿어 주세요.
양해 부탁 드립니다.
::: 공지사항은 내일 34화가 올라오면 삭제할 예정입니다.
해당 파트가 저번 화로 끝낼 예정이었는데, 쓰다 보니 분량이 상상이상으로 늘어 나네요.
공백 제외 6600자 .
공백 포함 8450자 .
……어찌 되었든 분량은 낭낭해서 어제 휴재한 게 보답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추천 부탁 드립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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