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1 031─만월(滿月)이 지는 밤
수도──에르네스의 외곽, 낮보다 밤이 되었을 때 유동 인구가 집중적으로 늘어나는 곳.
늘어선 창관이 야릇한 불빛을 비추며, 색스러운 옷을 차려입은 여인들이 지나가는 남성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여기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슬아슬하게 법에 위배 되지 않는 선에서 음지를 오가는 자들이 터를 잡은, 알프레드 가문이 수도에서 가장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핵심 구역이 나타난다.
“하, 흐읏……”
그리고 외곽의 초입, 그곳으로 들어선 라우라는 마치 약에 절여진 여인처럼 절뚝절뚝 걸음을 내딛었다.
페르젠의 발을 밟고 넘어졌을 때 쓸린 다리의 상처에서 피가 흐르지만, 극도의 각성 상태이기에 통증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깊숙이 눌러썼던 로브는 진작 벗겨 내려진 상태라, 특유의 미모가 지나가는 남성들의 눈에 온전히 담기고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가질 수가 없는 눈처럼 새하얀 백발.
그 아래 어깨선을 따라 드러나는 쇄골은 어찌나 희고 고운지, 티끌 하나 없는 저 피부 위로 자신들의 흔적을 새기고 싶다는 끈적한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
그에 걸음을 멈추어 서고, 라우라를 바라보던 남성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홀린 듯이 그 뒤를 조심히 따라 걸었다.
이것이 상처 입은 양의 탈을 쓰고, 달콤한 피 냄새를 주위로 흩뿌려 굶주린 늑대들을 끌어 들이는 개미지옥이라는 것도 모른 채……
* * * * *
인적이 드물어지는 음습한 골목길 안.
걸음을 멈추어 선 라우라를 둘러싸고, 그녀를 내려다보는 남성들은 목이 탄다는 듯 바싹 메마른 입가를 혀로 핥았다.
불규칙한 호흡을 내뱉으며, 완전히 풀려버린 동공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비정상.
“이거…… 제대로 약 빨고 미쳐버린 년 같은데.”
대가도, 책임도 필요 없는 쾌락을 풀어낼 수 있다는 확신에 남성들은 주위를 스윽 둘러보고서는 라우라의 앞으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돋보이는 미모.
특히나 쥐면 부러질 것만 같은 연약한 체형은, 지켜주고 싶다는 보호 본능을 은은히 자극하면서도 반대로 그것을 깔아뭉개고 싶다는 가학심을 들끓게 한다.
“아, 하…… 아하하……”
그리고 그러한 남성들의 욕정 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색스러운 웃음을 흘리는 라우라는 로브의 앞섬을 부드럽게 풀었다.
꿀꺽!
고작 로브에 가려져 있던, 안쪽의 하늘하늘한 옷이 드러나기만 했을 뿐인데도 지켜보는 남성들의 목울대가 반사적으로 넘어간다.
기어코 참지 못한 몇몇 이들이 라우라의 어깨를 붙잡아 거칠게 벽으로 밀치고, 그녀의 몸을 탐하려 들었으나……
쿠웅!
갑작스레 아공간이 열리며 바닥으로 떨어지는 커다란 관에, 과열 되었던 분위기가 급속도로 가라앉는다.
하지만 라우라는 여전히, 목에 걸고 있는 자신의 제단──로사리오를 움켜쥔 채 미소 짓고 있었다.
“……”
약에 절여진 여인, 그 앞에 마법사라는 단어가 추가적으로 붙으면 체감하는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셈.
태어날 때부터 마력이라는 축복을 품고 태어나는 이들도, 등급에 따라 절대적인 격차가 나는데……
마력을 품고 있는 자와, 그러지 않은 자의 차이는 어떠하겠는가.
더군다나 밤의 거리는, 사건 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이다.
그런 만큼, 홀린 듯이 라우라를 따라왔던 남성들은 모종의 직감이 경종을 울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헐레벌떡 거리를 벌린 뒤 등을 돌려보지만……
“시, 시발──!”
드륵!
관이 열리는 자그마한 소음과 함께, 골목의 앞뒤를 원천 차단하듯 땅이 불숙 솟아오른다.
촤악!
“흐아아악!”
이내 쌀쌀한 밤바람을 어루만지듯,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물들이 그들의 위로 끼얹어지고.
쩌저적!
물기 가득한 그들의 피부 곁으로, 얼음 결정들이 생겨나더니 자석처럼 끈끈히 달라붙는다.
얼음에 혀를 가져다 댔을 때, 혀가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얼음의 차가운 냉기와 대비되는 따스한 체온 때문.
그러니 지금처럼, 따뜻한 물로 젖어든 피부에 달라붙은 얼음 결정을 억지로 떼어내려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마 살점채로, 그들의 피부가 뜯겨 나가겠지.
“흐, 으……”
상상만으로도 오싹한 쾌감이 밀려드는 것에, 라우라는 일말의 저항조차 할 수 없게끔 그들의 다리를 얼려 버리고 곁으로 다가갔다.
꾸욱!
그리고 손잡이 형태로 고리를 만들어둔 부분을 붙잡고 최대한 힘을 줘서 잡아 당겨보지만……
“끄, 끄아아악!”
선천적으로 약해 빠진 몸뚱이의 완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때문에 사역하는 시신을 통제해 앞으로 움직여, 대신 고리 부분을 붙잡게 만든 다음 피부 째로 얼음을 뜯어내려는 그 순간……
────!
골목의 앞을 가로 막듯 솟아올라 있던 땅이 불쑥 꺼지더니, 남성들을 옥죄고 있던 얼음 결정들이 본래의 마력으로 화해 넘실거리듯 흩어진다.
곧이어……
뚜벅.
뚜벅.
골목길 내부로 울려 퍼지는 발걸음소리와 함께, 퇴폐적이고 음습한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런 정장 차림의 한 사내가 땀으로 가득한 이마부근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천천히 들어섰다.
“라우라…… 드 샤를 로젠베르크.”
그래, 그 사내는.
“네게……”
자신의 왼발을 밟고 달아났던 여인을 쫓아.
“물어볼 게 참 많을 것 같구나.”
밤이 내려 깔린, 에르네스의 거리를 내달려 왔던 페르젠이었다.
* * * * *
“……”
폐가 터질 것만 같은 거친 호흡을 최대한 안정시키며, 나는 답답한 넥타이를 느슨히 풀어냈다.
하지만 그 느슨한 풀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넥타이 자체를 벗은 다음 안쪽 주머니에 집어넣고 눈앞의 라우라를 바라보았다.
이 상황 자체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기에, 일단 이해하기를 깔끔히 포기했다.
“꺼져라.”
밤의 거리에는, 선을 넘으려 드는 자들을 그대로 방관하라는 일종의 불문율이 있다.
선을 넘는 순간, 곧바로 치워 버리기 위해서.
특히 이곳은 수도이니, 라우라가 저 남성들을 죽여 버리게 되면 일이 적잖게 꼬이게 될 것이다.
관할 자체가 황실로 넘어가버리니까.
더군다나 여기는 알프레드 가문의 영향력이 짙은 곳이라, 나또한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았다.
“가, 감사…… 합니다!”
그것이 저들에게는 친절로 느껴졌을까.
헐레벌떡 몸을 일으켜 골목을 우수수 빠져나간다.
하지만 무슨 원한이 있는 건지, 라우라는 그들을 내보낼 생각이 없다는 듯 넘실거리는 불꽃을 만들어 앞을 가로막아버렸다.
“……”
라우라의 등급은 케테르.
그녀가 사역하는 시신이 설령 유클리드 등급의 원소 마법사라고 한들, 뽑아낼 수 있는 성능의 한계는 사역자를 초월할 수 없는 것.
때문에 불꽃으로 형질 변환한, 마법이라는 형태의 현상을 무력화 시키고서는 천천히 거리를 좁혀 들었다.
내가 마법을 인식하는 개념은 수식화가 아니기에, 마법을 무력화 시키는 속도는 여타 다른 마법사들 보다 배는 빠르다.
라우라가 사역하고 있는 시신이 케테르 등급에 준하는 수준으로 마법을 펼칠 때, 그것의 구성식이 고작 한 줄기의 선으로 보이니까.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는, 저 선의 길이만큼의 정확한 마력을 부여해 똑같이 잇기만 하면 끝이다.
대신에 흑마법사인 만큼 그런 식으로 간섭을 했을 때 해낼 수 있는 건, 형질이 변환되기 전의 상태──순수한 마력 덩어리로 되돌리는 게 전부.
반면, 원소 마법사의 시신을 사역하고 있는 라우라는 순수한 마력 덩어리로 돌아가 흩어지기 직전인 그 상태를 자신만의 개념으로 역산하여 다시금 원하는 원소로 형질 변환시키는 게 가능하다.
실제로……
쩌저적!
푸른 연기로 화해 넘실거리던 마력들이, 무수한 얼음 조각으로 변모해 나를 꿰뚫으려 하고 있었으니.
‘10분 정도…… 인가.’
무력화 시키는 속도가 아무리 빠르다고 한들, 거리를 너무 좁혀 버리면 구성식을 인식하기도 전에 해당 마법이 내 몸에 먼저 도달해 타격을 주게 된다.
때문에 더 이상 걸음을 내딛지 않고, 적정 거리에서.
끊임없이 라우라의 마법을 무력화시키며, 그녀의 마력이 고갈되기를 얌전히 기다렸다.
나의 등급은 유클리드, 그에 빗댈 수 있는 개념은 면(面).
조금 더 자세하게 풀이하자면, 네 개의 면이다.
여기서 두 개의 면에 준하는 마력의 상승이 있다면, 입체.
아폴리온 등급으로 넘어갈 수 있으리라.
그러니 이러한 나의 마력적 총량과, 고작 케테르 등급에 불과한 라우라의 마력적 총량은……
호수와 바다만큼의 차이가 있어, 굳이 아공간을 열어 이사벨의 시신을 사역해 라우라를 제압하려 들지 않아도 충분했다.
“흑……!”
곧 이어 얼마 가지 않아, 마력 탈진 증세를 보이는 라우라가 몸을 비틀거리며 벽에 기대선다.
사역하는 시신은 진작 통제가 풀려 바닥에 쓰러진 상태.
마력이 바닥난 라우라의 단순한 신체적 능력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는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안심하고서 곁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약이라도, 하고 있는 건가……’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는 풀려버린 동공.
이 정도 마약을 구할 수 있는 장소는, 확실히 음지의 세계뿐이니 라우라가 이곳으로 들어선 게 이해는 가지만……
로젠베르크의 영애가 뭐가 아쉬워서, 이 정도로 약에 절여질 만큼의 뒷사정이 있단 말인가.
“흐, 흐으윽!”
마력 탈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떨리는 두 손을 뻗어 나를 질식사 시키겠다는 듯 목을 움켜쥐어 오는 라우라.
명백히 제정신이 아닌 걸로 보였기에.
퍼억──!
적당히 힘을 주어, 라우라의 명치를 가격했다.
“켁! 흐……! 콜록……!”
그러나 말끔히 파고든 주먹에 기절하지 않은 라우라는, 입가에서 추잡스레 침을 흘리며 보다 선명히 충혈된 눈빛으로 내 팔뚝을 순식간에 물어뜯어왔다.
“큭……!”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반사적으로 팔뚝에 힘을 주고서 반대쪽 손으로 라우라의 머리채를 붙잡아 거칠게 뒤로 젖혀 보지만……
주륵!
선명히 새겨진 이빨 자국 사이로, 선홍색 피가 흘러내린다.
“……”
이것이 과연, 약물의 금단 증세라고 할 수 있는가?
아릿한 통증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나는 짐승처럼 비명을 내지르는 라우라의 입가에 반대쪽 팔뚝을 들이 밀었다.
“아…… 흐읍!”
그러자 라우라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그마한 입을 벌려 내 팔뚝을 게걸스레 물어뜯는다.
물론, 이 행위를 허락해주는 건 처음 물렸던 팔뚝과 동일한 상처가 새겨지는 순간 까지였다.
“라우라.”
“흐, 으…… 아악!”
한 번 더 머리채를 붙잡아 뒤로 젖히고,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역시 제대로 된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가녀린 소녀는, 그저 인간의 탈을 쓰고 그 흉내를 낼 뿐인 무언가에 불과한 것이다.
“……”
내일은 강연이 있는 날인데.
아무래도 저택으로 돌아가기에는 그른 것 같아,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에 열심히 발버둥을 치고 있던 라우라는, 무척이나 자연스레 내 발등을 자근자근 즈려 밟았다.
이 제정신 아닌 상황 도중에, 유일하게 심신을 안정시켜주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좀 내용이 부실해서 미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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