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 025─당직
기숙사의 중앙 홀.
이곳에는 기숙사의 내부를 본 따 만든 모형이 놓여 있었다.
각각 학생들의 이름이 적힌 n호의 방문이 열려 있다면 그 안에 머무르고 있지 않다는 뜻이지만, 문 앞에 달린 깃발이 위로 올라가 있다면 기숙사 내부 어딘가에 있다는 걸 가리킨다.
그리고 모든 n호의 깃발이 위로 올라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차분히 로비에 앉았다.
학생들이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각은 오후 10시까지.
그 시각을 넘어서면 당직 교수가 별도의 허가를 내주지 않는 한 명계의 1층에 서식하는 괴이(怪異)──규칙 준수의 환영이 나타나 돌아가라고 끊임없이 소리친다.
당직 교수가 해야 할 일은, 특별한 일이 있는 학생이 외출을 원할 때 자신의 이름으로 외출권을 끊어 주는 것.
오후 10시가 되기 전, 학생들을 각자의 방으로 돌려보내는 것.
이 두 가지 말고는 해야 할 일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후에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당직실에서 잠을 자며 집지키는 개처럼 시간을 보낼 뿐이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봐도 효율성은 최악이다……’
그나마 명계의 괴이, 규칙 준수가 외부의 침입 같은 걸 알려주니 다행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밤도 지새웠어야 했으리라.
또각.
또각.
“……”
일레이나 교수, 정확히는 엘리자베스 황녀가 목걸이를 벗은 채 내 옆에 앉는다.
다리를 요염하게 꼬고서, 나를 쳐다보는 눈초리가 상당히 매섭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자신의 정체를 간파한 시점이라는 걸 모르고 있을 터이니……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압정으로 고정한 종이로 시선을 내린 뒤, 2주차 강의에 대한 요점을 정리해 나갔다.
흑마도학에서, 2주차 강의에 대한 주제로 굳이 마도라는 총체적인 단어를 사전에 언급한 건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이 세계는 흑마도학과 원소 마도학을 떠나, 마법사라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능력이 마법의 구성식의 인식과 그것을 무력화 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법의 구성식의 인식.
이것은 마법사 본인이 어떤 특정한 개념을 정확히 이해 하고 있을 때만 가능하다.
해당 개념은 난이도──간단하게 말해서 위계(位階)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동시에 마법사가 소모하는 마력의 용적량을 빗댈 수 있어야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했다.
당연히 그러한 요소 덕분에, 이 세계의 마법사들이 마법의 구성식을 인식하기 위한 개념으로 선택하는 것이 바로 수학(數學).
그도 그럴게, 위계를 가지고 있는 개념은 많겠지만 결국 마력의 용적량을 빗댈 수 있어야 한다는 부분에서 탈락 되는 것이 너무나 많아 상대적으로 접근이 용이한 수학이 선택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관해서는 작품 설정에서도 별다른 말이 있지 않았다.
아마 작가 또한, 굳이 수학을 깊게 파고들고 싶지 않았기에 주인공에게 오러 나이트의 재능을 쥐어 준 게 아닐까.
아무튼, 이서진의 관점에서는 굳이 수학이 아니더라도 마법의 구성식을 인식하는데 있어서 접목한 가능한 개념이 하나 더 존재했다.
이것은 공상 과학 영화를 좋아하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차원 개념의 도형화.
점을 이어 선이 되고.
선이 그어져 면이 되고.
면이 모여 입체가 되고.
입체가 뭉쳐 초입방체가 되는.
0차원부터 시작해, n차원까지 나아가는 개념을 이것으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4차원에 비유 되는, 초계(超界)──테르미엘 등급을 지나서면 오히려 마법의 구성식을 이해하는 개념으로 늘 해오던 수식화(數式化)를 선택하는 게 나을 것이다.
아무리 공간 지각 능력이 높은 사람이더라도, 초입방체를 단면으로 가지는 5차원의 도형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려낼 수는 없을 테니.
당장 나만 해도, 정팔포체를 단면으로 가지는 도형을 뇌리에 그려보라고 하면 그릴 수가 없었다.
때문에 이 세계의 마법사들이, 수학에 매진해 마법의 구성식을 수식화로 인식하려 드는 틀린 게 아니었다.
하지만 유클리드 등급까지 도달하는 마법사도 드문 세상이니……
마법의 구성식을 수식화로 인식하는 것 보다는, 이쪽이 훨씬 효율적이겠지.
이것은 굳이 강의뿐만이 아니라, 따로 논문을 작성해 공표할 예정이기도 했다.
마법사──자신들이 가진 지식을 극도로 타인과 공유하기 싫어하는 족속들.
일례로 원소 마도학의 교수, 유리엘.
그녀도 누군가에게 배웠거나, 거래를 통해 얻어낸 지식은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려면 사전에 동의를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들도, 유일하게 구성식을 이해하는 개념에서 만큼은 서로가 무척이나 협업적이고 개방적이었다.
요주의해야 할 특정 인물들에 관해서는 내 이미지가 쓰레기이기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에 한해서는 사석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브뤼테인의 차남일 뿐.
명성을 얻어둬서 독이 될 건 없으리라.
끼릭.
“……”
그리 요점 정리를 거의 다 해가던 찰나, 로비를 지나쳐가는 휠체어의 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그녀다.
쿵!
“끄응……!”
“무슨 일……”
“내가 하지.”
몸을 일으키려는 엘리자베스 황녀 전하를 도로 앉히고,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기숙사의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양갈래로 묶어 내린, 특유의 붉은 적발이 흐트러지더니 고개를 뒤로 돌린 리지가 나를 올려다본다.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수칙을 읽지 않았는가. 7시 이후부터는 당직 교수가 따로 외출권을 끊어주지 않는 한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어 있다.”
“……”
침묵이 맴돈다.
“대답하지 않는가?”
“몸이 아파서…… 잠시, 의원에게 진찰을 받고 오려고 했습니다.“
“그렇군. 감기인가? 목이 많이 쉬었다.”
“……”
“하지만 방으로 돌아가라.”
“글쎄 몸이……!”
“의원은 직접 불러서 데려다주마.”
내 말에 리지가 몸을 흠칫 떨었다.
“뭐라고, 하셨……?”
“의원을 직접 불러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지금은 일교차가 심하니, 그 차림으로 나가 찬바람을 쐬었다가는 도리어 상태만 악화시키는 결과를 불러 올 것이다.”
“……”
“얌전히 돌아가서 침상에 누워 있도록.”
이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 할 것이다.
그리 판단을 내리고서, 나는 기숙사를 나섰다.
* * * * *
끼릭.
“도대체, 뭐야……”
방으로 돌아온 리지는, 시신을 사역해 자신의 몸을 안아들게 한 뒤 침대 위로 내리게 하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어투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어울리지 않게, 쓸데없이 친절을 베풀어주던 모습.
고맙다기보다는, 참을 수 없는 구역질이 치밀어 오른다.
아픈 사람을 배려할 줄 알았기에, 접질렸던 반대쪽 발을 이따위로 아작을 내놨을까.
걸을 수 없다는 건, 단순히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느끼는 걸 넘어서서 앉아 있고 누워 있는 걸 강요시킨다.
때문에 리지의 몸은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허약해졌고, 10살 전에는 건강했던 리지가 그 이후부터는 수차례 잔병치레를 앓아 왔다.
페르젠 폰 슈바이크 루에르그
그 남자는 결국, 리지에게 있어서 만악의 근원인 것이다.
똑똑.
옅게 들리는 노크소리, 곧이어 문이 벌컥 하고 열리더니 깔끔한 흰색 가운 차림의 의원이 방으로 들어선다.
“어서, 오세요……”
물론, 그 뒤에는 페르젠도 있었다.
“상태를 살피기 위해,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네……”
고개를 끄덕이며, 리지는 의원의 손에 몸을 맡겼다.
“목 안이 많이 헐어 있고, 편도 쪽에 염증이 있군요.”
어쩐지 물을 삼킬 때 마다 목이 따끔 거린다 싶더니……
“소매를 잠시 걷겠습니다.”
“……”
그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리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미리 읽고 온 리지의 병적 사항에 대해서, 해당 약물에 관한 부작용을 드러낸 적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의사는 리지의 정맥을 천천히 짚은 뒤 주사로 가능한 부드럽게 항생제를 투여했다.
“끄……”
아이러니하게도, 주사를 한 번도 맞아 보지 않은 사람보다 주사를 많이 맞아온 사람이 더욱 통증을 느낀다.
몸이 그 감각을 기억하고 있기에, 지레 겁을 먹고 근육을 수축 시킨 뒤 아프다는 경험을 되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지는 애써 티내지 않으려 했다.
페르젠 앞에서, 아프다고 신음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기에.
“끝났습니다.”
이내 투여가 끝낸 주사기를 서서히 빼낸 뒤, 알코올이 젖은 솜을 해당 부위에 얹히고 자그마한 붕대로 압박하듯 돌돌 감는 의원.
“3일 뒤에도 상태가 호전 되지 않는다면, 다시 찾아오거나 불러주십시오. 그럼 이만……”
혈관을 타고 맴도는 약물이, 목 부근에 도달해 서서히 통증을 가라앉히자 리지의 안색이 제법 좋아진다.
하지만 묘하게 몽롱한 느낌이, 얼른 잠을 자서 충분한 안정을 취하라고 재촉하는 듯 했다.
그리고 문가에 가만히 서있던 페르젠은, 리지와 한 번 눈을 마주치고서는 등을 돌렸다.
한 방안에 단둘이 있다면, 그녀의 트라우마를 발작시킬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두려우신…… 건가요.”
“……”
그러나 의외로, 그런 페르젠을 먼저 멈춰 세운 건 리지였다.
“무슨 뜻이지?”
“알프레드 가문이, 곧 저희와 맺어지니까……”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그 정도에 겁먹지 않아.”
몸을 돌린 페르젠이, 특유의 붉은 눈으로 자신을 응시한다.
“더불어 너에게 내가 저질렀던 일을, 네 앞에서 부정할 생각도 존재하지 않는다.”
저질렀던 일──굳이 악행이 아니라, 사건으로 치부하는 건 페르젠 나름대로의 발악이었다.
“클로디아 가문이 내게 가지는 적의는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이것 하나 만큼은 명심해둬라.”
“……”
“내 목을 물어뜯으려 시도하다 실패했을 때는, 그에 따른 처우도 담담히 받아 들어야 할 것이다.”
페르젠에게 있어서 가장 위협적인 마력 특성.
그것은 오러 나이트보다, 동일한 흑마법사다.
오러 나이트와 원소 마법사는, 적어도 흑마법사가 통제하는 시신을 탈취하지는 못하니까.
하지만 동일한 흑마법사라면, 자질과 기량이 더욱 높다라면.
그래, 그러한 가정 하에.
페르젠에게 있어서 제일 위협적인 인물은, 리지였다.
“편히 쉬도록.”
“……”
말을 마친 채, 페르젠이 방을 나선다.
이후, 침대에 누워있는 리지는 실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잘 났어……”
품고 있는 악(惡) 조차 흐트러짐이 없는 그의 품격.
그 잘난 모습을 뇌까리며, 리지는 이불을 덮었다.
페르젠이 내뱉었던 말대로, 리지는 클로디아의 송곳니가 그를 물어뜯지 못한다면 이후의 후폭풍도 얌전히 감당할 생각이었다.
누군가를 해하려는 자는……
자신 또한 그리 될 각오가 있어야 하므로.
“흥……”
하지만 만약, 정말로 그리 된다면……
하룻밤만이라도 좋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를 유혹한 다음 침상에 올라, 후손을 남길 수 없게 그곳을 물어뜯은 뒤 깔끔하게 자결하리라.
이후 그가 자신의 시신을 훼손하든, 사역해서 더욱 치욕을 주던 알바가 아니다.
그 때쯤이면 자신은 명계에 도착해 있을 테니.
“……”
잠이 쏟아진다.
리지는 편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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