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 023─당직
여유 있게 숙면을 취하고 일어나니 시각은 오전 10시.
조금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품 안에서 하도 꼼지락 거리는 유페미아 덕에 그럴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으라고 말은 해보았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거리는데 하물면 사람은 어떻겠어? 불만이면 나를 풀어주고 자면 되잖아.
……라고 반문 하며, 보란 듯이 몸부림을 쳐왔다.
그간 함께 지내오며 반항해도 괜찮은 선을 나름대로 인지한 것 같으나, 가끔은 그 틀을 깨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시녀들을 물리고 함께 욕실로 들어섰다.
몸을 섞으며 구석구석을 진즉 보여줬어도, 여자라는 생물은 어째서인지 욕실에서 보이는 알몸은 무척이나 부끄러워한다.
당연히 그건 유페미아도 다를 게 없었다.
실제로……
쩨쩨 하다느니.
속이 좁다느니.
음흉하고 변태 같다느니.
끝없이 투덜거려 왔으니까.
물론, 향유를 풀어낸 커다란 욕조 안에서 그녀를 끌어 안으니 조잘거리던 주둥이는 바로 닫혀버렸다.
“왜, 왜 세우고 있는 건데……”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아, 유페미아는 안절부절 못하며 무척이나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 나 같은 것에 시도 때도 없이 욕정하지 않는다며……”
욕실 안에 시녀들은 없지만 문밖에서 대기를 하고 있다.
그러니 혹여나 내가 자신을 안게 된다면 그 적나라한 소리가 밖으로 세어 나갈게 뻔해 이러는 거리라.
“글쎄. 욕실은 뒤처리도 간단하니……”
목적어는 빼고서 말끝을 흐린다.
그러자 유페미아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내 품 안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몸매 과시라도 할 생각인가.
골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결 덕에 움켜쥐기 적당한 새하얀 엉덩이가 무척이나 탐스럽게 보인다.
“앗!”
그보다 나는 이대로 유페미아가 반대쪽 구석으로 도망치는 걸 용납 할 생각이 없었기에, 앞으로 나아가려는 그녀의 가녀린 발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에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유페미아가 간신히 균형을 잡고 상체를 반쯤 기울인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멈추어 선다.
“……”
21살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도톰하다 못해 포동포동하게 살이 오른 음부가 향유와 뒤섞인 물을 머금고 반들거린다.
그 위로는 수줍게 다물린 국화꽃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면전에 엉덩이를 들이미는 건, 부부사이여도 도가 지나친 게 아닌가 싶은데. 조신하지 못하구나. 유페미아.”
움찔!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유페미아가 뒤늦게 상황을 자각하고 얼굴을 붉히며 몸을 돌린다.
놀란 몸을 따라 꽈악 순간적으로 오므려지던 위아래의 구멍이 제법 볼만한 광경이었던지라, 나는 옅은 웃음을 입가에 머금었다.
물론, 그 웃음이 유페미아에게 어찌 비추어질지도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일부러 한 동안 올라간 입 꼬리를 내리지 않았다.
“쓸데없이 내가 일어서게 만들 말고, 얌전히 이리 와서 앉아라.”
“……”
“유페미아.”
“간다고…… 가!”
첨벙첨벙!
대놓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곁으로 돌아오는 유페미아.
사방팔방으로 튀기는 물이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듯, 내 얼굴을 사정없이 적셔 내린다.
“……”
그리 내 앞으로 도착한 유페미아는, 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내 얼굴을 보고서 조금 과했나 싶어 앉지 않고 머뭇거리는데……
코앞에서 이리 서있으면, 눈높이가 어디에 맞추어 지는지 정말 모르고 있는 걸까.
스윽.
그에 물기가 자욱한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무덤덤히 입을 열었다.
“색도 모양도 흠잡을 데가 없으니 그만 앉지. 언제까지 내 눈에 보란 듯이 그곳을 보여주고 있을 건가.”
“……!”
촤악!
“……”
다급하게 내려앉는 유페미아 덕에 나는 한 번 더 얼굴에 튀기는 물기를 쓸어 내려야 했다.
“유페미아.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지 마라.”
“그러게 따로 씻었으면 이럴 일도 없잖아……”
한층 풀이 죽은 목소리에, 나는 유페미아를 품안으로 부드럽게 끌어 안았다.
천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 때문이기도 했고, 따뜻한 물이 가득 받아진 욕조 안에 있어서 그런지 맞닿는 피부가 무척이나 적나라하게 달라붙는다.
“꺼, 껄떡 거리지마. 게, 계속 배꼽을 찌르잖아……”
“그냥 조용히 하고, 가만히 있어라. 시끄럽다.”
약간의 불쾌함을 표하며 끌어안은 손에 힘을 주니, 숨이 막힌다는 듯 등을 토닥토닥 쳐오지만 나중에 가서는 그것도 의미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얌전히 온몸의 힘을 풀고 내게 편히 기대온다.
“……”
“……”
서로가 호흡하는 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음조차 울려 퍼지지 않는 호화스런 욕실 내부.
아니, 다른 소리가 있기는 했다.
가까이 맞닿은 유페미아의 가슴으로부터, 내게 전해지는 미약한 심장 고동 소리.
쿵. 쿵……
그리고 그 심장의 고동은, 점차 안정 되어가는 심신을 따라 내 심장과 동일한 박동을 띄기 시작했다.
정말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따스한 욕조 안에서 눈을 감고 자신의 심장과 동일한 박동을 내보이는 여인의 몸을 끌어안고 있으니 심적으로 무척이나 힐링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흣……”
더불어 내 어깨에 고개를 묻은 유페미아의 귓불을 살짝 깨물어 자극을 주면, 안정 되었던 심장이 다시금 재빨리 뛰기 시작해……
가장 중요한 부위인 그녀의 심장을, 내가 지배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해주었다.
유페미아 엘 로렌느 루에르그.
그래, 그녀는 나의 것이다.
누구에게도 넘겨줄 수 없는.
‘……’
너무 도취되었나.
해일처럼 뇌리를 집어 삼켰던 페르젠의 자아, 그 영향력을 몰아내고 나는 정신을 차린 뒤 그녀를 놓아 주었다.
목욕은 해야 했으니.
* * * * *
“오늘, 돌아오지 않는다고……?”
“그래.”
늦은 아침 식사, 사실상 점심을 함께 먹으며 나는 유페미아에게 오늘 내 일정을 알려주었다.
“……”
과연 그녀는, 내가 없는 하루에.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자유로움을 느낄까.
그게 아니라면 이 거대한 저택에서 오직 홀로 밤을 보내며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함을 느낄까.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좋든 싫든, 매일 밤 그녀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시켜주듯 온기를 나누어 주었던 건 나였다.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겠지만……’
그래도 가급적이면 후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식사를 마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아카데미로 출근했다.
“무려 15명입니다……!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하나 같이 제게 찾아 와서 강의실의 책걸상을 당장 다른 것으로 바꿔 달라고 건의를 했다고요!”
“……”
출근하는 즉시, 학과 사무실로 찾아가 어제 외면했던 행정 조교를 마주하니 그는 울먹이며 곧장 내게 하소연을 해왔다.
그는 황실의 말단 행정 직원이기에 아마 여기 배치되었을 터.
그런 그에게 귀족 자제들이 자신들의 가문을 등에 업고, 불편함을 당장 고쳐 달라고 압박을 번갈아 가며 넣었으니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겠지.
그는 유순하게 건의를 해왔다고만 말했지만, 그 건의는 아마 은근히 언어로 찍어 누르는 폭력에 가까웠을 터.
“자네 이름이 뭐지?”
“알폰스입니다……”
“그래. 알폰스. 앞으로 책걸상 교체에 관하여 문의 하는 애들이 있다면 내 교수실로 직접 찾아오라고 해라.”
“아, 아……”
내 이름을 팔아서 방패로 써도 된다는 것.
그것은 알폰스에게, 눈물이 나오게 만들 만큼 감격적이었나 보다.
“그리고…… 교수실로 찾아 가라고 하기 전에, 그 책걸상은 내 아내가 직접 디자인 한 거라고 말을 해주겠나?”
“네?”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다.”
“아, 알겠습니다……”
의아함을 품은 눈빛이지만, 그도 더 이상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더는 책걸상 문의로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고통 받지 않아도 된다는 자체가 행복할 따름 일 테니.
그리 나는 등을 돌려, 4층의 교수실로 걸음을 내딛었다.
굳이, 알폰스에게 그러한 요구를 지시한 건 별게 없었다.
유페미아가 무료함에 지쳐가는 게 확실히 보여서, 차후 수업을 보조하는 조교로 채용해 옆에 두는 건 어떨까 싶었으니까.
일체형 책걸상과 관련해 불만을 가진 학생들의 악의를 유페미아에게 돌린 뒤, 최대한 학생들과 마주할 업무를 유페미아에게 전담시키면 그녀에게 핀잔을 주는 애들이 있을 것이다.
교수도 아니고 강의 준비를 도우며 출석 체크, 휴강 공지, 시험 감독과 같은 보조적인 업무만 맡는 조교니 물어뜯기에는 가장 만만하리라.
물론, 브뤼테인의 차남인 나의 아내니 처음에는 눈치를 보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빌미를 제공해주면 끝이다.
똑똑한 아이들은 아내가 직접 디자인한 책걸상을 차용할 만큼 애처가인 사람이, 반대로 아내가 핍박 받는 상황을 흐지부지하게 넘길 리가 없다고 믿겠지만……
‘믿게 해주면 그만이지.’
그리고 그걸 모르는 유페미아는 자존감이 깎일 대로 깎여 나간 뒤 나에게 한탄을 해올 테고, 그 한탄을 적당히 들어주며 어르고 달래면 일석이조 아닌가.
사악하기는 하지만, 악당에게 사악함이란 곧 현명함이었다.
뚜벅.
그렇게 얼른 알폰스가 제 역할을 충실히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으며 교수실 앞으로 도착하니, 시신을 사역해 휠체어를 이끌고 있는 리지를 볼 수 있었다.
“……”
“……”
그녀도 내 발걸음 소리에 인기척을 눈치 채고 고개를 돌린 터라 시선이 마주치는 건 금방이었다.
“내게 볼일이라도 있나.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본관의 4층이기는 하지만,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아마 그 때 그녀가 나를 보고 발작하듯 떨었던 건, 주위에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단 둘이 마주했기 때문 일터……
어디까지나 추측이었지만, 지금의 만남으로 확실해졌다.
“변상…… 하러왔어요.”
“변상?”
“정장의 자켓…… 돌려받으신다고 하지는 않으셨으니.”
“필요 없으니 돌아가거라.”
“싫어요.”
“……”
정장의 셔츠, 바지, 자켓은 일종의 한 세트다.
때문에 그 때 집으로 돌아와서, 셔츠와 바지도 처분했다.
그래서 자켓을 변상 받아도 사실 의미가 없는 것이다.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나는 그 때 집으로 돌아가서 셔츠와 바지도 버렸다. 그러니 정녕 내가 변상해주고 싶다면 셔츠와 바지도……”
“해드릴게요. 그러니 치수를 말해주세요.”
“너는 내 정장이 아젤리아의 것임을 알고 말하나?”
아젤리아──일류라 불리는 재단사들이, 최고급 원단만을 취급하며 오직 주문 제작만을 받는 곳.
그 주문 또한, 회원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아젤리아의 명망은, 공식석상에서 입는 황실의 의복을 전담한다는 것만으로도 나무랄 데가 없기에 그 값어치가 어떠하겠는가.
“……”
설령 돈이 있다 하더라도, 아직 알프레드와 맺어지지 않은 클로디아 가문은 아젤리아의 입구 안으로 들어설 수 없다.
물론, 유리엘에게 대신 부탁을 하면 들어주기야 하겠지만 작금의 모습을 보아하니 그리 손을 벌리기는 싫은 듯 한데.
“그래도……!”
“그래. 좋다. 고집을 부리고 싶다면 마음대로 하거라.”
교수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종이 하나를 집은 뒤 정확한 치수를 적고 리지에게 건네주었다.
“기한은 무기한으로 하마. 도중에 마음이 바뀌면 변상을 하지 않아도 좋다. 어차피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이 사실에 관해서도 나는 까마득히 잊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교, 수님이…… 잊어 버리셔도. 저는 반드시 변상할거에요.”
꾸깃.
건네준 종이를 품안으로 넣으며, 리지가 휠체어를 돌린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움직여 말했다.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
“다리는, 괜찮은가.”
힐끔.
리지가 고개를 살짝 돌린다.
이내 마주한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에 뒤섞인 감정은……
지독한 혐오와 경멸.
“방금 말은,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타악!
문이 닫힌다.
그래, 이제 와서 어쭙잖은 사과가 그녀에게 먹힐 리가 없겠지.
나또한 의미가 없을 걸 알면서도, 내뱉어 본 말이었다.
“……”
브뤼테인 후작가──언제나 중도를 걷는 곳.
오랜 시간 이어져 내려온 이 전통은, 브뤼테인의 고결함을 빛내주는 압도적인 값어치라 훼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더럽히려 든다면 가주인 제레미아도 필히 반발 할 터.
‘하지만……’
지금 나의 성은 루에르그다.
귀족에게 있어서 명분이란 갑옷보다 중요한 무장(武裝).
이런저런 생각이…… 무척이나 많아지는 한적한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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