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21화 (21/260)

EP.21 021─페르젠 교수

뒤통수가 지끈지끈거린다.

이 상황을 일단 어찌 넘겨야 할까하고 고뇌를 하고 있는데, 저 건너편에서 빠른 속도로 걸어오는 구두소리가 들려 나는 정장 자켓을 벗은 뒤 리지의 하체에 덮어주었다.

“하, 흐, 끅──!”

별 지랄을 하지도 않았는데, 기겁하며 몸을 움츠린다.

강의 시간 때 당당히 반론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마치 오랜 시간 학대 당해온 듯한 아이가 여기에 자리 잡고 있다.

일단 괜한 소문이 퍼지면 안 되니, 리지가 다루던 시체를 통제해 휠체어를 붙들게 한 다음 경사로 아래로 내려가 모퉁이에 섰다.

“앗……”

그러자 나와 마주치는 한 소녀가 걸음을 멈춰 세운다.

아니, 소녀가 아니었다.

“……”

유리엘 웨인 데이나 알프레드.

어째서 하필이면 그녀가 여기에 있는가.

아니, 있는 건 이상할 게 아니겠지.

다만, 시점이 문제였다.

“할 말이라도 있어요? 길은 왜 막고 서있는 거래……”

“……”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다, 끝끝내 말이 없자 이상하다는 듯이 흘겨보고는 지나쳐간다.

그녀의 손목을 잡아서 멈춰 세울까도 싶었지만,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리지의 털끝 조차 건드리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의미가 있을까 싶었으나, 그래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나을거라는 생각에 나름대로 친절을 베풀려 했을 뿐이다.

비록, 결과는 최악이었지만……

“리지? 네 오빠하고 너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도 안와서 찾으러 왔더니 여기서……”

알프레드 가문의 장녀와 클로디아 가문의 장남이 결혼을 한다는 건 기정사실이라 봐도 되는 걸까.

차녀인 그녀가, 클로디아 가문의 장남과 함께 리지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근거는 충분한 듯 했다.

“리지……?”

이내 이상함을 눈치챈 유리엘이 점점 말끝을 흐린다.

“유리엘 교수.”

“당신……!”

“미리 말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에 괜히 그녀가 오해를 하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이 아이가……! 도대체 얼마나 몰아세웠길래! 당신이 과거에 이 아이한테 했던 짓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

“당신 강의 시간에 조금 건방지게 반론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는데, 설마 겨우 그거 때문에……!”

“착각하지마라. 나는 그리 속이 좁은 사람이 아니다.”

유리엘의 눈에는, 내가 하교하려는 리지를 억지로 붙잡아 세운 뒤 거칠게 혼이라도 낸 걸로 보이는 걸까.

하기야 결과만 두고 보면, 딱히 틀린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유리엘이라면, 내가 관련된 이 일에서 과정을 캐보려는 이해심을 발휘하려 들지 않겠지.

“춤을 추는 도중에 실수를 해서 발을 접질린 아이를 쫓아가 반대쪽 발을 짓밟아 버리는 사람이, 속이 좁지 않다고요?”

“……”

반박 할 수 없는, 과거의 악행.

이것은 일종의 꼬리표겠지.

절대로 뗄 수가 없는.

물론, 그 악행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

하지만 타인은 그 사정을, 납득가능한 원인으로 조금도 받아 들이지 못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의 강박은 있지만, 페르젠의 강박은 장애라는 것이 붙을 만큼의 중증.

차라리 처음부터, 페르젠이 정신병이 있는 환자라고 소문이 나있었다면 모를까 브뤼테인은 그 사실을 악착같이 숨기려 들었다.

페르젠 또한, 그것을 자신의 치부로 느꼈고.

그러니 이제와서 고백 한다한들, 이것은 외려 내 심장을 찌르려 드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리라.

무마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흐른 시점이다.

“나중에 그 아이에게 물어봐라. 내가 무슨 행동을 취했는지.”

내게 쌓인 감정이 있을 테니, 왜곡해서 말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차피 마땅한 방안도 없었다.

“알프레드라는 뒷배가 있다면, 적어도 브뤼테인에게 겁을 먹고 없는 말을 지어 내려 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

이렇게 까지 나오니, 그녀도 긴가민가 한가 싶어 눈살을 찌푸리더니 나와 리지를 번갈아 쳐다 본다.

“리지!”

이쯤하면 나름대로 깔끔히 종식을 냈나 싶어 걸음을 돌리려 했으나, 2층 난간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다급한 발걸음으로 내려온다.

독특한 형식의 검은색 제복, 그곳에 새겨진 황실의 문양.

오른쪽 가슴에 달려 있는 적색의 브로치.

저것들 전부가 황실 기사단의 일원임을 나타내는 증표.

그래, 그가 바로 리지의 오빠이자 황실 기사단 소속의 기사.

클로디아 가문의 장남──로에르 폴 비스타인 클로디아.

반대쪽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가, 이쪽으로 내려 온 걸까.

“저, 저……!”

당황하는 유리엘이 싸늘히 식어가는 로에르의 표정을 바라보더니 안절부절 못하다가, 내게 다가오려는 그의 팔목을 붙잡아 보지만 어림도 없다.

그는 오러 나이트의 길을 걷는자.

마도를 걷는 자의 육체적 힘으로, 저지하는 건 불가능했다.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

“……루에르그다. 그리고 그대에게 풀 네임을 불릴 만큼의 친분은 없을 텐데, 백작이라 부르도록 하지. 로에르 경.”

특유의 푸른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했을 때, 일순간 싸늘한 바람이 온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것이 살기인가.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이는 게 가능했다면, 그는 틀림없이 나를 수백 수천번 죽였으리라.

‘절제하고 있는가.’

힘줄이 거칠게 돋아날 만큼, 쥐어진 주먹이 부들부들 떨린다.

뼈가 부러지고, 신체 어딘가가 조금 아작 나더라도.

그가 나에게 폭력을 휘둘러 명분을 마련해준다면……

“조금만 더 기다려라.”

“……”

“네 놈을 물어 뜯을 만큼, 아직은 송곳니가 날카롭지 않으니.”

당당히 복수를 예고한 뒤, 걸음을 돌리는 로에르.

그래, 송곳니를 잠시 드러내도 될 만큼 성장했다 이건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 로에르의 송곳니는 두렵지 않다.

하지만 저기에, 시엘 미드포드라는 소설 속 주인공의 변수가 뒤섞인다면 어떻게 변모하게 될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가 잠시 보여준 송곳니에 은근한 두려움을 느꼈다.

아니, 은근하지는 않았다.

오른손과 왼손에, 식은땀이 베여들었으니까.

다만, 그 두려움을 겉으로 티내지 않을 수 있는 건 단순하게 페르젠의 자아가 뒤섞여 있는 덕분이다.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오물이 묻은 옷은 돌려줄 필요가 없다. 나중에 버리도록 해라. 그리고…… 뒤처리는 유리엘 교수, 그대에게 맡기지.”

말을 마치며, 걸음을 돌린다.

일순간 후들거리는 다리 덕분에 걸음이 휘청일뻔했으나, 다행이 무너지지 않았다.

“……”

교육관을 나오니,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나를 반긴다.

그에 우산을 펼치고, 빗속을 천천히 걸었다.

페르젠 폰 슈바이크 루에르그.

오직 자기 자신만이, 스스로를 이해 해줄 수 있는 악당.

피를 나눈 가족인 제레미아 조차, 아마 페르젠이라는 인물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그저, 가주의 자리에 어울리는 인물답게 아량이 넓을 뿐.

이 세계에서 페르젠이라는 인물을 이해해줄 수 있는 자가 있기는 할까…… 아마 있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24년의 세월간, 주변에 그런자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해 받기를 그만두었고.

이해 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때문에 페르젠은 언제나 고독하다.

그리고 그러한 고독은, 아마 악당의 자연스러운 굴레이겠지.

‘이사벨 론 피에르 제노바가 만약 살아 있었다면, 나와 그녀는 좋은 관계가 되었을지도 모르겠군.’

사체에 한하여 1회 발동할 수 있는 사이코메트리(Psychometry)로 읽어낸 마녀로 불리었던 여인의 핵심 기억.

그 기억 속에 각인 되었던, 제노바 백작가의 괴벽이 중증 강박 장애에 시달리는 자신과 겹쳐 보여 왠지 모를 동질감이 들었다.

* * * * *

“몸조리 잘 하려무나……”

“너, 너무 거, 걱정 하…… 하지 마시고…… 그, 그만 돌아…… 가세요. 추, 축제 도중에 자, 자리를 비, 비우셨는…… 걸요.”

“그래. 알겠다. 그러면 가보도록 하마. 아가, 언제나 사랑한다.”

“저, 저도요……”

수줍어 하면서도, 라우라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보내주는 따뜻한 가족애에 두 팔을 벌려 그의 품에 안겼다.

그리 작별 인사를 마치고, 든든히 배를 채운 라우라는 아카데미 부지 내에 있는 기숙사로 걸음을 옮겼다.

‘보자……’

아카데미 내부의 기숙사는, 흑마법사가 명계의 괴이와 거래를 하여 그 능력을 빌린 뒤 모종의 법칙을 심은 곳이다.

때문에 기숙사 내부로는 교수들과 몇몇 직원을 비롯해 학생이 아니라면 조건에 부합하지 않아 출입이 불가능했다.

당연히 그 반대로, 기숙사에 한 번 들어서면 다음 날 아침 8시가 되기 전 까지는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특정 조건을 만족한다는 가정하에 예외가 있기는 했지만……

‘지금 당장 이 수칙을 전부 외우는 건 힘들 것 같네.’

걸어가는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려던 라우라는, 깔끔히 포기하고서 기숙사의 수칙이 담긴 종이를 품안에 반듯이 접어 넣었다.

“……?”

A 기숙사와 A 교육관 사이에 놓인 길.

정확히는 아름답게 가꾸워진 화단 앞에, 한 남자가 서있다.

그리고 라우라는 그 남자의 뒷태가 제법 익숙하다 싶어, 천천히 다가가 거리를 살짝 벌린 뒤 옆모습을 슬그머니 바라보았다.

“페르젠…… 교수, 님?”

기어 들어갈 듯한 목소리였던터라, 빗소리에 금방 묻혔음에도 불구하고 페르젠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움찔!

그의 적안과 시선이 마주치자, 라우라는 본능적으로 몸이 움츠려 드는 걸 느꼈다.

“라우라인가……”

“여, 여기서 뭐…… 하, 하세요?”

꽃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길 만큼 감성적인 면모는 없어 보이는데.

“잠시 넋두리를 흘리고 있었을 뿐이다.”

“그…… 렇군요.”

어색하다.

차라리 아는 척을 하지 말걸.

말을 더듬기도 했고, 어지간하면 타인을 기피했던터라.

라우라에게는 대화를 자연스레 이끌어나갈 말재간 따위는 없었다.

“라우라 드 샤를 로젠베르크.”

“네……?”

“너는 만약에,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귀가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참지 못할 충동에 시달리는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 하면……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나?”

고작 17살.

아직 어린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싶은 페르젠이었지만.

라우라의 다홍색 눈동자가 진중함으로 물들자, 얌전히 빗속에서 우산을 움켜쥔 채 대답을 기다려주었다.

“이해…… 해요.”

“이해한다고? 착한 사람 연기라도 하고 싶은 것이냐.”

“그런 게…… 아, 아니라…… 대, 대부분의 사람…… 들은 보, 복수를…… 하려는 자에게…… 보, 복수를 하면 너, 너도 똑같은 사람이 되, 된다라고 하, 하며…… 마, 말리잖아요.”

“그래. 형편 좋은 역겨운 말이지.”

“사람은…… 어차피 자, 자신이 겪어…… 보지 모, 못한 경험에 대, 대해서는 이해 하, 하지 못해요. 그, 그렇지 않은…… 것에 이해 하, 한다고 하는 건…… 마, 말 그대로 이, 일종의 아첨이자 비, 비위맞추기에 지, 지나지 아, 않죠……”

라우라의 말에, 페르젠은 피식 웃었다.

“논리의 흐름이 이상하구나. 이해라는 양면성의 지적이 어째서 네가 내 질문에 이해한다는 근거가 되는 건지…… 설마 네가 그런 충동에 시달려 사람을 죽여본적이 있다고 이실직고 하는 것이냐.”

“아…… 그, 그게!”

“당황할 거 없다. 제법 조숙하고 어른스러운 척 같았으니.”

“……”

“다만, 말 재간은 확실히 없구나.”

자신의 강박을 그대로 이야기할 수는 없었기에, 이사벨이 앓았던 괴벽을 간략히 일축해서 예시로 들었던 페르젠이다.

그리고 그 예시에 대해 대답하는 라우라의 논리는, 괜히 자신 앞에서 있어 보이려고 조숙하고 어른스러운 척 행동하는 아이의 연기 같아 작은 웃음이 새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 너머로, 걸음을 돌린 페르젠이 점점 희미해져간다.

“애, 애송이가……”

이내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라우라는 아름다운 눈살을 찌푸리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전생의 삶과 현생의 삶을 합치면, 마흔살이 조금 넘기에 라우라 입장에서는 오히려 페르젠이 아이로 보일 뿐이다.

때문에 정면에서 당당히 애 취급 받는건, 상상이상으로 기분이 불쾌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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