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 019─페르젠 교수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강의실의 창문을 두드린다.
상당히 날이 서있던 내 말 때문인지 강의실의 분위기는 완전 침체해졌고, 굳이 리지뿐만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나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숙이려든다.
그나마 당당히 나를 마주보고 있는 건, 라우라 한명 뿐.
“……강의를 이어 나가겠다.”
말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목이 조금 아파온다.
다음부터는 따뜻한 홍차라도 준비해서 가지고 와야겠다.
“조금 전에 했던 말의 일부를 되풀이하자면, 지금의 너희들이 전장의 경험과 이해도를 터득한다 하더라도 당장 전쟁이 터져 참전하게 된다면 구현율에 간섭하는 효율은 미비하다.”
때문에……
“외부와 협력해서 너희들이 받게 될 체험은, 주로 징집 되었을 때 일반적인 병사들이 가지고 있을 법한 경험들이 되겠지.”
그리 말을 하며, 나는 칠판에 1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비롯한 과제의 비율을 적어나갔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각각 40%의 비율을 차지하며, 출석점수 5%를 제외했을 때 남는 15%는 전부 과제가 될 것이다. 황녀 전하에게 개인적으로 말씀드린 게 있으니, 3주차부터 너희들은 각각 시신 한구를 배정 받게 될 텐데……”
“시신, 인가요?”
“그래. 해당 시신을 배분 받고, 너희들은 1학기 중간고사까지 해당 시신의 이해도와 숙련도를 높여 평가 받는 게 첫 번째 장기 과제가 될 것이다.”
“……”
“물론, 간섭하는 마력의 양은 통일한다.”
흑마법사의 입지가 제법 굳건한 세계관이기 때문에, 이 세계는 시신의 거래가 합법적으로 당연시 되고 있다.
그 중에서 일반적인 백성, 평민들의 시신을 공수해오는 것쯤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아마 전체적인 강의 개요는, 너희들에게 ‘공통적인 이해도’를 습득하게 하는 쪽이 되겠지.”
“……”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뛰어난 흑마법사란 본디 잡지식이 많아야 하는 편이니까. 공통적인 이해도라고는 했지만, 여기에는 지금의 너희들이 마음만 먹으면 간단히 입수할 수 있는 것도 존재하고 있다.”
더는 분필을 잡을 일이 없을 것 같아, 나는 분필을 내려두고 한 칸 접어 올렸던 소매를 다시 내려 반듯하게 정리했다.
“예시로 들어 보자면…… 그래. 남녀 간의 기본적인 상식.”
“네?”
“이것을 파렴치하게 듣지 말아줬으면 좋겠구나.”
단상에 편하게 서서 목을 가다듬었다.
“기본적으로 너희들은 성지식에 관해 교육을 받으며 자라 왔을 테고, 이것 또한 남녀 간의 기본적인 상식에 속한다. 그래서 여성이 남성의 시신을 사역할 때, 남성이 여성의 시신을 사역할 때 성지식에 관해 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 보다는 나은 구현율을 보이지.”
파렴치하게 듣지 말라고 했는데도, 대다수의 학생들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그럼에도 상관없다는 듯이, 나는 입을 열었다.
“물론, 흑마법사 입장에서 남녀 간의 기본 상식이란 여기서 더 나아가 남성이나 여성들이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반드시 겪어 볼법한 경험들이 속하게 된다.”
뛰어난 원소 마법사나 오러 나이트의 시신이라 해도, 결국 남녀(男女)라는 두 가지의 성별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것은 흑마법사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지식──상식에 가까웠다.
“여성으로 예시를 들자면, 한 번쯤은 처음으로 구두를 신었을 때 그 감각이 어색해 걷다가 발목을 접질린 적이 있을 것이다. 더불어 목욕을 하고나서 기다란 머리를 말리는데 고초를 느낄 테지.”
14명중, 다섯 명의 영애들이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생리의 통증은 개인 마다 확연한 편차가 존재할 것이며, 가슴이 커다란 여성의 경우라면 어깨가 걸려 피로함과 불편함을 호소하고는 할 터.”
“……!”
내 말에 귀족 영애들이 얼굴을 붉히더니 “어머……” 따위의 말을 내뱉으며 손부채질을 한다.
“남성으로 넘어 가자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음경이 자연스레 발기하는 현상을 겪을 테고, 개인 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몽정(夢精)이라는 현상을 체험하게 된다.”
“그, 흐흠……”
“한심하구나. 파렴치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했거늘. 너희들은 흑마도를 탐구하는 흑마법사이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두 가지 성별인 남녀의 지식에 관해서도 이리 무지하다.”
“……”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 건, 그러한 너희들 자신일터.”
희미한 경멸이 뒤섞인 시선을 건넨 뒤 시계를 힐끔 쳐다보니 9시 45분을 가리키고 있다.
벌써 시간이 이리 흘렀나 싶어, 나는 칠판에 적었던 글자들을 말끔히 지운 뒤 출석 명단을 챙기고 말을 이었다.
“영지에 편지를 보내 하인들을 시켜 영지민들을 대상으로 하여금 설문 조사를 해도 되고, 용병 협회에 의뢰를 맡겨도 되며, 스스로 발 벗고 나서도 되는 등…… 수단은 다양하다.”
나는 이것을 이 아이들에게 첫 번째 과제로 내줄 생각이었다.
“기한은 다음달, 4월 12일 월요일까지. 남녀가 살면서 한번쯤은 겪어 볼법한 경험들을 조사해오도록 해라. 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그리 하면 당연히 감점처리 된다. 더불어……”
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상위 계층의 상징이자 독점의 산물.
때문에 이 세계는 제대로된 교과서 같은 교재가 존재하지 않았다.
명망 높은 과외 선생을 초빙해 그에게 가르침 받는 개인 교습이 전부일 뿐이니, 얼마나 지식의 공유에 있어서 깐깐한 세계인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너희들이 그리 모아서 제출한 과제는, 중복 되지 않는 정보들을 제외하고서 나의 지식과 한데 모아 책을 엮어 교과서를 만들 것이다. 당연히 제일 뒤쪽에는 너희들의 이름…… 정확히는 가문이 표기 될 테니 열심히 하기를 바라지.”
“교과서…… 요?”
조금은 생소하면서도 낯선 단어에 아이들이 떨떠름해 한다.
“내년 아카데미에 입학할 신입생들에게 좋은 밑거름이 되어 줄 것이다. 물론, 해당 교재는 돈을 받고 판매를 할 것이기 때문에 너희들 가문 앞으로 그 금액의 일부가 인세로 지급 될 예정이다.”
이리 말을 덧붙이니, 조금은 아이들의 눈가에 이채가 서린다.
이것은 가문에 헌신하는 명예로운 일이며, 가주의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자가 있다면 나름대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삼을 수 있을 테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물론, 너희들 모두의 가문이 표기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과제의 결과물에 따라 내가 자의적으로 내리는 판단이니 만약 불만이 있다면, 그래…… 기말고사가 전부 끝나고 성적 문의 기간 때 내 교수실로 직접 찾아오도록.”
9시 55분.
10시까지 5분밖에 남지 않았다.
“더불어 현재의 흑마법사들의 행태에 비난을 하기는 했으나, 그것이 꼭 나쁘다고 단정 짓지는 않았다. 그러니 2주차는 마도에 관해서 강의를 할 것이고, 3주차는 오러 나이트에 관해 강의를 하마.”
9시 56분.
4분 정도 일찍 끝난 강의에, 나는 조용히 강의실을 나섰다.
* * * * *
라우라 드 샤를 로젠베르크.
그녀는 아려오는 허리에 조심히 손을 뻗어 문질렀다.
‘생각보다 들을 만은 하네……’
로젠베르크는 나름대로 부유한 영지다.
때문에 아버지에게 어릴 적부터 사랑을 받던 라우라는, 당연히 명망 높은 흑마법사를 초청해 그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나 페르젠이 중반부터 알려준 사실에 관해서는 한 번도 듣지를 못했다.
‘남녀라는 성별의 기본 지식인가……’
이것 때문에 그가, 전생의 자신.
이사벨 론 피에르 제노바의 시신에 대해 월등히 높은 구현율을 선보일 수 있었던 걸까?
‘아니야.’
그도 말했듯이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본이다.
그리고 자신은 전생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다.
이것은 메꿀 수 없는 차이인 것이다.
여전히 그 날의 패배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라우라는 조심히 몸을 일으켰다.
‘2주차는 마도에 관해서 강의를 한다고 했었지?’
약간 의아하다.
원소 마도학에 관해서는, 배정된 다른 교수들 보다 지식이 깊지 않을 것인데.
설령 그들과 비슷한 수준이라 해도, 자신들은 어차피 원소 마도학의 강의를 듣는다.
‘그러고 보니 원소 마도학이 아니라, 마도…… 라고 했지.’
별 다른 차이가 있나?
모르겠다.
어차피 전생의 자신은 아폴리온 등급의 원소 마법사.
적어도 2주차에 관해서는, 그에게 배울 것은 없으리라.
“소문만 무성하던 사람이었는데, 직접 보니 생각보다 그리 나쁘지는 않아 보이네. 브뤼테인의 권위를 휘둘러 우리들을 찍어 누르려 드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말이지. 수업 내용은…… 괜찮았던 것 같기도 하고.”
“브뤼테인이 그럴 곳은 아니니까. 나는 눈을 마주하는 게 힘들기는 했는데…… 그보다 이 강의실 책걸상 더럽게 불편하지 않아? 덩치가 있어서 의자를 뒤로 밀고 싶은데 그러지를 못해. 무슨 이딴 쓰레기 같은 걸 배치해두는지.”
“내 말이. 일체형인 건 둘째 치고, 이것을 바닥에 고정해두는 건 무슨 심보야? 우리가 거지도 아니고 훔쳐서 달아날 거라고 생각한 건가. 다음 강의 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본관에 그…… 학과 사무실이라고 했나? 거기에 건의 하러 가자.”
사전에 미리 친분이 있던 귀족가의 자제들이 대화를 나눈다.
그들도 자신과 동일한 불편함을 느꼈던 걸까.
사실 불편하다는 것도, 나름 격식을 차린 비하다.
적어도 라우라에게 있어서 일체형 책걸상은, 단순히 불편한 걸 넘어서서 좆같다라는 범주에 속했기에.
그래서 저들이 학과 사무실에 건의를 하러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속으로 내심 기쁨이 치솟았다.
아무렴 말더듬이인 자신보다는, 그들이 훨씬 논리적으로 의견을 전달하지 않겠는가.
‘얼른 나가자.’
로젠베르크는 예술과 문화의 성지이기에, 주변 영애들이 필시 자신과 친분을 쌓으려 들 것이다.
그리고 말더듬이인 라우라는 타인과 대화를 나누는 상황 자체를 기피하는 터라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빠르게 강의실을 나섰다.
‘다음은 고대어 수업……’
고고학자나, 오래 전 과거의 책을 번역해서 옮기는 서기가 아니고서야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지식인데 이것이 왜 필수 이행 과목으로 선정 되었는지 라우라는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끼릭.
끼릭.
그리 복도를 걸어 나가다, 뒤에서 들리는 바퀴소리에 라우라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감사합니다……”
“아, 아니…… 에, 에요. 겨, 겨우 이런 거, 걸로……”
사체를 사역해 휠체어를 끌어 나가는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길을 비켜서주자 그녀는 감사함을 표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버릇없게 반론하던 태도와는 다르게 예의 바른 모습.
저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금 전 강의실에서는 왜 그리 감정적으로 나섰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카데미는 배움터 이전에 사교계의 연장인 곳.
브뤼테인에게 밉보여서 그다지 좋을 게 없을 텐데.
한정된 공간에서의 소문은 언제나 빠르게 퍼진다.
물론, 클로디아 가문과 알프레드 가문 사이에 혼약이 오고가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 있어서 오늘 일로 무시를 하지는 않겠지만……
중립을 유지하기 위해 그녀와 엮이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알프레드에게도, 브뤼테인에게도 밉보이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고작 버릇없이 반론했다는 일로 그렇게 될까 싶으나, 입소문은 언제나 퍼져 나가는 과정에서 살이 붙어 과장 된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계단 옆에 붙어 있는, 말끔한 경사로로 내려가는 리지를 지켜보며 라우라도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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