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18화 (18/260)

EP.18 018─페르젠 교수

입학식이 시작하기 전인데도, 아카데미 본관 뒤쪽의 주차장은 마차가 꽈악 들어차 있었다.

임직원들만 주차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면, 다른 곳에 주차를 하고 여기까지 걸어와야 했을지도 모를 수준이다.

입학식인 만큼, 따로 시간을 낸 자제들의 부모나 여타 가족들이 함께 왔기에 괜히 마주쳤다간 나에게 미리 인사를 시키려거나 할 테니 나는 빠른 걸음으로 교육관 내부에 위치한 강당으로 나아갔다.

입학식조차 귀족들과 평민들은 나누어서 진행을 한다.

이것이 차별 받는 느낌은 들겠지만, 평민들 입장에서 마음은 훨씬 편할 것이다.

“아! 오셨군요. 페르젠 교수님.”

누군지 모르겠다.

제레미아가 건네준 서류에 기록되어 있는 자겠지만, 내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면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사람이리라.

“예. 앉도록 하지요.”

아카데미 내에서 서로의 호칭은 교수로 통일 된다.

때문에 나 또한 단상에 앉아 있는 귀족들에게 일일이 교수라는 호칭을 붙여 인사를 하고는 내 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저 밑으로는 입학식에 참석한 귀족 자제들이 다소곳이 앉아있다.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귀족 자제들의 조건은 세밀히 파고들면 조항이 많았지만, 기본적으로는 다음의 세 가지다.

작위를 계승하지 않은, 결혼을 하지 않은, 현재 종사하고 있는 일이 없는 15세 이상 20세 이하 전부.

때문에 1학년이 될 그들의 나이 분포도는 제각각이었다.

“아아…… 곧 제 1 황녀님의 축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모두 정숙하여 주십시오.”

마력을 통해 대기에 간섭해, 주변 공기의 진동을 늘린 터라 단순히 내뱉는 말임에도 강당 전체를 아우를 만큼 커다란 소리가 되어 퍼져 나간다.

또각. 또각.

곧 이어 저 건너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제 1 황녀, 엘리자베스.

‘보지말자.’

그 때의 머리핀을 통해 추측하자면, 그녀의 심미관은 상당히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반갑습니다. 많은 가문의 자제 분들이……”

어릴 적, 운동장에서 아침 조례를 하던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처럼 지루한 시간이 이어진다.

그래도 아카데미와 관련된 소개 내용에서는 그 지루함이 잠깐 달아나기는 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강의를 전담할, 교수진을 짧게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뒤로 몇 걸음 물러나, 앉아 있는 우리를 돌아보는 엘리자베스.

그에 좌측부터 한 명씩 일어나 앞으로 나아간다.

길게 말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기에, 나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흑마도학 강의를 담당하게 될, 페르젠 폰 슈바이크 루에르그라고 한다. 부를 때는 다른 자질구레한 미사여구를 붙이지 말고 간편히 페르젠 교수님이라고 하도록.”

다른 이들 보다는 훨씬 짧게, 말을 마치고 나는 등을 돌렸다.

애초에 저기 앉아 있는 학생들 중, 흑마도학 강의를 듣는 아이들은 고작 14명이 전부다.

마력을 품고 태어나는 이들의 수가 희귀하지 않다면, 진작 전쟁은 그들만으로 굴러 갔을 테니.

그리 약, 40여분에 걸친 입학식이 끝나고.

9시가 되기 20분 전, 나는 내 교수실로 들어와 출석 명단을 챙긴 뒤 A 교육관의 강의실로 걸음을 옮겼다.

“……”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직 15분 전인데도 학생들이 떠들지도 않고 전부 조용히 앉아 있다.

‘아니, 전부는 아닌가.’

딱 한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한자리가 누구인지 안다.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어릴 적과 다르게 겉모습은 성장하여 바뀌었더라도, 붉디붉은 적발은 그대로 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 앉아 있는 학생들 중에서 머리카락이 적발인 아이는 보이지 않는다.

꾸벅.

좌우를 훑다, 라우라와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는 살짝 목례를 취하며 내게 인사를 해왔다.

여전히 다시 봐도, 연약하기 그지 없는 소녀다.

알 수 없는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특히나 마음에 드는 건, 그때 했던 말대로 오늘은 사이드 테일이 아닌 단순한 긴 생머리라는 점.

‘그보다 다들 아직까지는 일체형 책걸상에 대해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는 못하는 모양이군.’

하기야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 일체형 책걸상 특유의 그 불편함을 알 도리는 없으리라.

‘시간이 됐나.’

시계가 정확히 9시를 가리키자, 나는 출석 명단에 시선을 고정하고 차례차례 학생들의 이름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

대답은 없었다.

“3회의 지각은 1회 결석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내 강의의 학점은 전체를 100%라 했을 때 출석이 5%를 차지하니 명심하도록.”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의 이름 옆에, 지각 1회를 체크한다.

그리고 명단을 내려두니, 그 순간 뒤늦게 강의실의 뒷문이 천천히 열리며 시선을 사로잡는 붉은 적발의 소녀……

“죄송…… 합니다.”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끼릭.

끼릭.

천천히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

그래,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그녀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

접질렸던 반대쪽 발목을 똑같이 만들어 주기 위해 짓밟았던 페르젠의 폭력이, 설마 저 정도로 처절한 결과를 초래했던가.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어째서 이 부분은 제레미아의 보고서에 있지 않았던 거지?

혹시 내가 알거라 생각하고 생략을 한 건가.

모르겠다.

내가 알았다면 적어도, 그녀만을 위해 평범한 책걸상을 하나 배치해뒀을 것이다.

끼릭.

끼릭.

남은 빈자리로 천천히 다가간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가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나를 살짝 돌아보며 입술을 깨문다.

그리고는 천천히 목발을 짚고, 휠체어에서 일어나 힘겹게 일체형 책상에 앉으려다……

쿠당탕!

그대로 고꾸라지듯 넘어졌다.

“로펜.”

“예!”

“도와주거라……”

“알겠습니……!”

“필요 없어요!”

악에 바친 앙칼진 목소리.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가, 혼자서 두 손을 뻗어 일체형 책걸상의 의자 부분을 짚고 몸을 일으키더니 간신히 스스로 앉는다.

‘하…… 시발.’

자아가 온전히 뒤섞이고 나서, 나는 직설적인 욕을 하는 게 무척이나 어색하게 되었지만 이 번 만큼은 절로 욕지거리가 새어나왔다.

강박의 발작을 피하기 위해 조성한 환경.

그리고 그 환경에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악행의 피해자.

이것은 악당의 숙명(宿命)인가.

머리가 지끈거렸다.

* * * * *

라우라 드 샤를 로젠베르크.

전생을 기억하고 있는 소녀는, 겉으로는 페르젠의 말을 귀담아 듣는 듯 하지만 속으로는 잡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강의의 가치가 보잘 것 없으리라 생각했기에.

“흑마도의 사체 사역술은 마력적 기량을 제외하면, 이해도와 익숙함──숙련도나 혈통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실제로 그는 따분한 정론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비를 들여 명망 있는 흑마도사를 초빙해 개인 과외를 받을 여유가 없던 학생들은 집중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숫자는 대충 5명 정도.

“여기서 나는 너희들에게 이해도와 관련된 강의를 주로 할 것이며, 그에 따른 여러 외부 체험이 동반 될 예정이다.”

‘체험?’

“몇몇…… 아니, 다수가 아마 속으로 의아함을 표현하고 있겠지. 하지만 이것은 확실히 너희들에게 도움이 되는 요소다.”

액세서리가 덕지덕지 치장 되지 않은, 말끔한 정장을 입고 있는 페르젠은 소매를 한 칸 접어 올리고서는 분필을 잡았다.

그리고 칠판에 영지전과 전쟁이라는 두 개의 단어를 쓴다.

“시간이 오래 흘러, 흑마법사의 기량은 본인의 자질도 자질이지만 얼마나 뛰어난 사체를 보유하고 있는가로 나뉘게 되었다. 이것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옳은 말도 아니다.”

“……”

“오래 전 전쟁이 활발하던 때, 보병들은 검이나 창 따위가 아닌 철퇴와 비슷한 둔기 따위를 들었다. 왜 그런지 아는가?”

“시신의 손상도를 높여, 흑마법사가 시신을 사역했을 때의 구현율을 낮추기 위함입니다.”

라우라도 알고 있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말더듬이었기에.

“정답이다. 주어진 마력의 한도 내에서 적군의 시신이든 아군의 시신이든 끊임없이 되살아나 자신들을 죽이려 들기에 흑마법사는 전장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하지만 그리 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신을 사역할 수 있고, 또한 그들을 자율 통제할 수 있는가가 핵심.”

자율 통제.

흑마법사가 의식을 분할하여 통제 하지 않아도, 사역하는 시신이 외부의 자극과 주어진 시각적 정보를 통해 알아서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당연히 이 자율 통제에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건 이해도다.

생전의 습관, 버릇, 움직임 따위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기에.

“그 시절 적군의 원소 마법사는 어떻게든 아군의 시체를 형체도 없이 불태우려 들었고, 적군의 오러 나이트는 어떻게든 아군의 흑마법사를 최우선적으로 죽이려 들었지.”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천천히 멈추어 선다.

그리고 조금은 한심하다는 듯한 의미를 담은, 페르젠의 붉은 눈동자가 좌중을 스윽 훑고 지나갔다.

“허면, 전쟁은 아니라 해도…… 지금의 너희들이 영지전에서 얼마나 많은 시신을 사역하고 자율 통제 할 수 있을까.”

“……”

“자율 통제는커녕, 마력을 사용해 억지로 3 ~ 4명 정도를 사역한다면 다행이라 봐야겠지. 그 또한 자율 통제를 하지 못해 의식을 분할 시켜야 하니 눈먼 화살에 죽을 가능성이 크다.”

페르젠의 말은 오늘 날, 원소 마법사나 오러 나이트의 시신 한구를 전력으로 연구해 구현율을 높여 사역하려드는 흑마법사들에 대한 강력한 일침이었다.

“생전의 능력을 구현할 수 있는 최대치는 90%. 때문에 원소 마법사나 오러 나이트의 시신을 사역해 출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있다 해도 동일한 등급의 원소 마법사나 오러 나이트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 날 대부분의 흑마법사는 전력으로서의 가치가 많이 떨어지게 되겠지.”

“페르젠 교수님의 말에는…… 조금 어폐가 있는 것 같습니다.”

라우라를 포함한, 15명의 학생의 시선이 일제히 뒤쪽에 자리 잡은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에게 쏠렸다.

“어폐라 했나.”

페르젠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반론을 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말을 이어 나갈 타이밍에 끼어드는 버릇없는 예의 때문이었다.

“네. 전쟁이 활발하던 과거에는, 그 전쟁의 특수성 때문에 흑마법사들이 자연스레 아군의 병사들에 대한 생전 이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터라 저희들도……”

“내가 모르겠나.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

“대답해라.”

“네……”

“허면 전쟁의 경험 및 이해도가 없는 너는 해당 이해도와 경험을 얻기 위해 무수히 많은 영지전을 일으켜 영지민들을 반복적으로 전장에 내몰기라도 할 생각인가?”

“그런 뜻이……!”

“네 말에는 하나의 모순이 있다. 전쟁의 특수성이라는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지만, 지금은 그런 식으로 미리 이해도와 경험을 쌓아도 전장에 나갔을 때 큰 효율을 발휘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오랜 시간 전쟁이 지속 되어 왔기에 한 사람의 생애에 있어서 전쟁이라는 경험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이나 컸기 때문이지.”

그래, 그래서.

그 당시에는 흑마법사들이 병사들의 시신을 사역했을 때, 구현율이 높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장 네가 그런 경험과 이해도를 미리 터득해도, 전쟁이라는 참사가 오랜 시간 지속되지 않는 한 효율은 미비하다.”

말을 마치며, 페르젠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한심한 발상이다. 도중에 예의 없이 끼어들기에 좋은 질문을 할 줄 알았더니…… 곧 유클리드 등급으로 승격할 가능성이 보인다고 해서 자아도취라도 된 것이냐?”

“그런 건 결코……!”

“아니라면 더욱 한심하구나. 그 반론이 진심으로 고뇌 한 뒤에 내린 판단이라니……”

“……”

“또한, 질문을 하고 싶을 때는 내 말이 모두 끝나고 조용히 손을 들어라. 어디서 배워먹은 예의인지. 당연히 이런 건 숙지하고 있을 줄 알고, 예절 교육은 A 교육관에서 가르치지 않는데……”

혀를 차는 페르젠의 목소리에, 리지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푹 숙인 채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페르젠은, 이 정도면 충분히 자신의 가슴 한 구석에서 치솟는 감정을 잘 억눌렀다고 생각했다.

고삐를 붙들었기에 망정이지, 아마 고삐를 붙들지 않았다면 리지를 ‘자리에서 일어나게’ 한 다음 훈계 섞인 설교를 했으리라.

그리고 라우라는, 페르젠의 매섭고 차디찬 면모에 그 날 자신에게 대해주었던 모습은 무척이나 상냥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허리가 조금 아파와, 책상에 두 팔을 얹히고 몸을 기울이려던 라우라는 의자를 당기려 했으나 당겨지지 않는 의자에 잠시 아차 했다.

이것은 일체형 책걸상이라, 의자를 당길 수가 없었다.

책상에 두 팔을 얹히고 몸을 기울이려면, 결국 엉덩이를 의자 끝자락에 걸칠 수밖에 없는 상태.

‘무슨 이런 쓰레기 같은 책걸상을 배치해둔 거야.’

황실에 누가 로비라도 넣었나?

다른 강의실은 아직 본적이 없었기에, 라우라는 자연스레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다른 강의실도 책걸상이 이러하다면……

이 연약하고 약해빠진 현생의 몸이 버틸 수는 있을까.

문득 그런 걱정이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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