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 013─교수가 되기 전에
잘 정돈 되어진 도로를 달리던 마차가 천천히 멈추어 선다.
아직 하루 정도는 더 가야 할 테니, 잠시 말들에게 휴식을 주기 위함이 아닐까 싶었다.
“계속 그러고 있을 건가.”
문을 열고 내리는 페르젠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본다.
저 너머로 아름다운 티스베 강의 강줄기가 싱그러운 초목들과 어우러져 산뜻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지만, 유페미아는 고개를 저으며 손떼가 가득 묻은 종이를 쥐어들고 시선을 고정했다.
이제 남은 건 악밖에 없었기에, 적어도 1번 문제라도 풀어 내고 싶은 게 간절한 소망이었다.
“나는 신경쓰지 말고…… 다녀와.”
“그러마.”
억지로 유페미아를 데리고 내려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품었던 페르젠이었지만, 혼자 있는 게 더 편안한 분위기를 선사해주는 것 같아 얌전히 마차의 문을 닫았다.
“끙……”
그리 페르젠이 저 멀리 나아가자, 유페미아는 편하게 몸을 옆으로 눕히고서 머리를 굴렸다.
‘접근 자체는 틀린게 아닐 거야.’
수리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없다는 페르젠의 말에, 유페미아는 해당 수식이 동일한 무언가가 다르게 불리고 있음을 비유하고 있다는 걸 어렴풋하게 알아차렸다.
예시로 들자면 여인과 여성이 있으리라.
‘6+8은 상징적인 의미이겠지만, 결과는 무엇을 비유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단서 일텐데……’
14와 2.
이것이 동일한 의미를 가지도록 묶어주는 무언가가 정답.
‘모르겠어.’
어쩌면 간단한 것이겠지만, 자신은 모를 수도 있는 게 아닐까.
루에르그에 있던 자신과 다르게, 페르젠은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웠을 터.
단순히 자신의 무지함을 능욕하려는, 그런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만 할까……’
어차피 1번 문제를 푼다고 해도, 고작 하루 남은 시간 동안 2번과 3번 문제를 풀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
그리고 깨달음은 불현 듯 찾아왔다.
“푸, 풀었다……”
6+8=14.
6+8=2.
해당 경우가 성립되는 조건, 그것은 시간이다.
일반적으로는 오후 2시라 하지만,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어 둔 만큼 정확한 표기는 14시.
6+8이 상징하는 의미는,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리라.
벌컥.
“……!”
깜짝!
줄 곧 풀리지 않았던 문제를 해결해낸 여운에 잠겨 있을 때, 산책을 하며 읽을 서류를 두고 갔던 페르젠이 마차 안으로 들어서자 유페미아는 자연스레 몸을 일으켰다.
품위 없게 마차에 누워 있다고, 자신을 혼내거나 할 줄 알았으나 그러지 않고 관심없다는 듯 바로 등을 돌린다.
“저, 저기……”
그에 유페미아는 가느다란 손을 뻗어, 페르젠의 옷자락을 붙잡아 잠시 걸음을 멈춰 세웠다.
“할 말 이라도 있나.”
“푸, 풀었어…… 정답은, 시계의 시간이야.”
또박또박.
왜 그런 지에 대해 설명을 하니, 페르젠은 자신의 말을 한 번도 끊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었다.
이어 특유의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정답이다.”
라는 대답을 해주었을 땐, 유페미아는 자신도 모르게 비음을 흘리며 의미모를 뿌듯함에 기분이 고취되었다.
“유페미아.”
“왜?”
“선물이다.”
고작 에메랄드──페르젠의 입장에서는 그러 할.
비교적 값싼 초록빛 보석을 빛내 주기 위해, 보다 값어치 있는 보석들이 희생되어 만들어진 아름다운 목걸이.
“갑자기, 왜……?”
“세 문제를 모두 풀었을 때 네 청을 하나 들어주겠다는 조건은 수도에 도착하면 사라지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문제 하나를 풀 때 마다 네게 상을 주려고 했었다.”
직접 걸어주겠다는 듯, 자신의 어깨를 붙잡은 페르젠이 등을 돌린 뒤 머리카락을 들추어 올린다.
“고개를 조금 숙여라.”
“그…… 필요 없어.”
보석 같은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하물며 페르젠이 자신을 길들이려 드는 모습을 자주 봐왔다.
오래 사용한 물건에는 손떼가 묻듯, 유페미아는 될 수 있으면 자신의 몸에 페르젠의 흔적을 새기고 싶지 않았다.
“유페미아.”
“시, 싫다니까……”
“강요하지는 않는다.”
“…………”
의외로 페르젠은 고집을 부리지 않고, 얌전히 물러났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강요하지는 하지 않겠다만, 사람이 적어도 줏대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군. 내게서 무언가를 받는 게 싫다면, 입고 있는 옷도 여기서 반납해라.”
“뭐……?”
“고집에도 지조가 있어야 사람들이 납득하는 법이다.”
기를 죽이기 위해서 한 번 해보는 말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유페미아는 페르젠의 눈동자에 담긴 감정에 한치의 거짓도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머뭇머뭇거렸다가는, 정말로 이 남자가 자신의 옷을 다 벗기고 알 몸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을까 싶어……
“줘, 줘……”
목걸이를 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늦었다.”
“……”
“고작 그런 하찮은 이중성을 가진 고집으로 내 배려를 거부하러 들었나. 차라리 정말로 옷을 다 벗은 뒤 건네주었다면 조금은 너를 다시 봤을 텐데.”
“어, 어쩌라는 거야. 그래서……”
“잘못을 했다면 벌을 받는 건 당연한 인과(因果) 아닌가.”
특유의 위압감에, 유페미아는 정말 자신이 벌을 받을 만큼 잘못을 했는가라는 의문을 품지 못했다.
마치 평민들이 귀족들 앞에서 당연히 조아리는 것처럼.
유페미아는 자연스레 페르젠의 독선적인 분위기에 집어 삼켜졌다.
확실히 이런면에서 두 사람은 차이가 났다.
한 쪽은 너무 고압적이었고, 한 쪽은 너무 물렀다.
같은 귀족간의 대화가 맞는지 의심이 갈 만큼.
“때, 때리고 싶으면 때려.”
“나는……”
유페미아의 말에 페르젠은 눈살을 찌푸렸다.
“너를 폭력으로 대한 적이 없을 텐데.”
물리적 폭력만이 폭력이 아니라고 말을 하고 싶었으나, 유페미아는 줄다리기를 해봤자 손해를 보는 건 자신임을 알았기에 페르젠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 두 손을 허리 뒤쪽으로 모았다.
이에 자연스레 무방비 상태가 된 아랫배가 페르젠 앞에 살짝 내밀어졌고, 해당 행동이 선사해주는 치욕스러움에 유페미아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성의가 부족하다. 고개를 숙여서 일을 무마시켜야 할 때가 있고, 그게 안된다면 무릎을 꿇어서 일을 무마시켜야 할 때가 있을 터.”
“여, 여기서 더 어쩌라는 거야……!”
정말 개처럼 바닥에 엎드리기라도 하라는 건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마주한 채 성을 내자, 페르젠은 유페미아의 허리를 감싸안아 자신의 무릎에 옆으로 앉혔다.
그리고는 등을 받쳐 편하게 상체를 기울이게 한 뒤, 치맛단을 들추어 올려 유페미아가 스스로 쥐기를 강요했다.
“시, 싫……”
그 때와는 다르다.
옷을 입은 상태에서 억지로 페르젠이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던 것과, 자신 스스로 치맛단을 들어 올려 배를 내보인 채 페르젠이 배를 어루만지게 하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유페미아.”
“……”
“올려라.”
바람에 퍼져나가는 물결처럼 잔잔한 속삭임이었으나, 유페미아 한테는 굶주린 늑대가 귓가에 으르렁 거리는 것만 같았다.
그에 꼬옥! 쥐어든 치맛단을 천천히 들어 올려, 새하얀 팬티와 잡티 하나 없는 매끄러운 배를 드러낸다.
그리고 페르젠의 손이 자신의 아랫배에 닿는 순간, 유페미아는 파르르 떨리는 손을 움직여 치맛단을 살포시 내렸다.
이것은 페르젠이 억지로 손을 넣어 자신을 희롱하는 듯한 광경을 연출해, 수치심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려……
“끄흑──!”
힘을 주지 않은 아랫배에, 주먹을 말아쥔 페르젠의 손이 천천히 틀어 박히자 유페미아는 꼴사나운 숨소리를 내뱉으며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벌을 받을 때도 잔머리를 굴리는가.”
귓가에 나근나근하게 울려퍼지는 차가운 목소리.
“힉……! 흑……! 끄흥!”
말아 쥐었을 때, 툭 튀어나오는 주먹의 둥그스런 마디뼈가 복부를 압박하며 자궁의 위치를 위로 들어 올리겠다는 듯이 고압적으로 움직인다.
“아, 아파……”
속이 뒤틀리는 듯한 통증에 유페미아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페르젠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페미아는 알고 있었다.
이 거칠고 나쁜 손이, 어떻게 순하고 상냥한 손이 되게 하는지.
스륵.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치맛단을 억세게 붙잡아, 자신의 허리 부근 까지 들어 올린 뒤 단단히 고정한다.
주인의 심기를 거스른 강아지가 혼나지 않기 위해 배를 뒤집고 아양을 떠는 것 같아 극도로 치욕스러웠으나……
“아……”
페르젠의 커다란 손이 자신의 아랫배를 부드럽게 덮자, 전신의 긴장이 풀리는 듯한 편안한 안도감이 들었다.
“잘했다.”
“시, 시끄러워……”
이런 걸로 칭찬 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유페미아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페르젠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물론, 페르젠의 손은 그런 외면에도 불구하고 유페미아의 배를 상냥하게 토닥이며 간질간질한 봄바람처럼 쓸어내려주었다.
“유페미아.”
“……”
“부러질 각오로 저항하지 않을 거라면, 얌전히 내 말을 듣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부러질 각오로 저항하면……”
말을 들어 줄 거냐고.
그리 되물으려 했으나, 유페미아는 포기했다.
이 남자는 만약 자신이 부러질 각오로 굽히지 않는다하면, 부러트려서라도 굽히게 만들 사람이었기에.
“……”
그리고 유페미아는, 아주 잠시 나마 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이라는 남자를 이해해버린 자신이 별로 달갑지가 않았다.
“당신은 아마 물에 빠져 죽으면, 그 죽음 조차 수치스럽다고 시체가 둥둥 떠오르지도 않을 거야.”
페르젠의 뻣뻣하기 그지 없는 격식을 빗대어, 비꼬듯 말하는 유페미아였으나……
“그러면 너도 나와 같이 가라 앉아야 할 것이다.”
라고, 대답을 하는 페르젠의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어째서인지 농담 따위로 들리지가 않았기에.
* * * * *
유페미아가 완벽한 황금비율을 가진 것과는 별개로, 그녀의 가문이 가졌던 위치와 혈통의 불순함 때문에 자신에게 대들거나 기어오르는 모습을 보이면 자연스레 짜증이 솟구친다.
이것은 본디 귀족으로서 페르젠이 가지고 있던 자아, 그 중에서도 강력한 선민의식의 영향이 조건반사적으로 만들어내는 감정이었다.
물론, 이서진이라는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했던 자아도 섞여 들었기에 그런 감정이 불쑥 치솟을 때는 적잖은 위화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것을 나름대로 통제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이 지금의 이것이다.
“어,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폭력적이지 않은 길들이기.
그래, 조련이라고 해도 좋았다.
처음 정했던 방향에서 엇나간 감이 없잖아 있는 것 같았으나, 도달하려는 목표 지점이 같으면 상관이 없겠지.
“배, 배꼽…… 누르지 마……”
강아지처럼 끼잉끼잉 거리면서도, 치맛단을 붙잡아 끌어 올린 손은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옷자락이 감추어 두었던 향긋한 살내음도, 보다 짙게 마차 안을 메우고 있는 터라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나름대로 함께 있는 시간이 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후각은 유페미아의 체향에 익숙해져 무취(無臭)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 그녀가 건네주는 자극은 언제나 내게 신선할 뿐이었다.
──곧 출발하겠습니다.
시간이 벌써 그리 되었나.
밖에서 들려오는 마부의 목소리에, 나는 손을 치워 냈다.
그러자 곧 바로 내품에서 내려온 유페미아가 반대쪽 좌석에 착석해 자신의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한다.
“내가 해주마. 이런 것조차 서툴구나. 너는……”
재능──용모단정의 영향을 받은 내 손길에 의해, 유페미아의 옷이 주름 하나 없는 것처럼 말끔히 정돈된다.
그리고 고분고분하게 내 손길을 받아 들이는 그 모습을 보고서, 나는 다시 한 번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는다.
그저 불퉁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몇번 만지작거리더니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을 뿐이다.
치장을 위한 악세서리가 아닌, 목줄로 느껴지기라도 하는 걸까.
하지만 이 이상은 나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기에, 자리에 착석해 나아가는 마차에 몸을 맡겼다.
그리하여 정확히 하루 뒤, 우리는 제국의 수도에 도착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