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 011─교수가 되기 전에
미약한 여명이 어슴푸레하게 밝아오는 새벽.
갑갑한 느낌에 먼저 눈을 뜬 유페미아는,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페르젠의 손을 불편하다는 듯이 밀어냈다.
이어 간신히 몸을 일으키자, 흘러내리는 이불 너머로 어젯밤 나누었던 정사의 흔적──야릿한 냄새가 은밀히 풍겨온다.
“……”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정신이 맑아질 때 마다 선명히 떠오르는 음란하고 천박했던 자신의 모습.
특히나 두 다리로 페르젠의 허리를 감싸 안고 깊숙이 삽입을 유도 했던 기억이 떠올랐을 때는, 형용하지 못할 자괴감에 숨이 막혀왔다.
아직도 귓가에 아른 거리는 ‘잘했다.’ 라는 한 마디.
성욕이라는 욕망을 핑계 삼기에는, 페르젠은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분했다.
후사를 핑계 삼아 자신의 몸을 원했던 건 그였는데.
“……”
경박하게 흐트러져 쾌락을 갈구하던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자신 같은 여인은 그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 눈을 마주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비웃듯 입 꼬리를 말아 올린 채, 경멸 서린 눈빛을 하고 있었다면……
그래, 그러고 있었다 해도 그 때의 자신은 페르젠의 허리를 감싸 안은 다리를 풀지 않았을 것 같았다.
‘비참해……’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유페미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선택한 결과로 이루어진 일이기에, 삶이 비관적으로 보일지라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무력한 삶이란 이리도 무섭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길들여지지 않는 거겠지.
삐걱!
침대 밖으로 발을 내리고, 조심히 몸을 일으킨다.
“앗……!”
하지만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풀려, 유페미아는 바닥에 철퍼덕 주저 앉았다.
“왜, 왜 이러는 거야……”
사냥꾼의 덫에 걸린 사슴처럼, 두 다리를 파르르 떨며 간신히 몸을 일으킨 유페미아는 그 순간 자신의 고간으로 무언가 주르륵 흘러내리자 기겁하며 다리를 오므렸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그것이 어젯밤 페르젠이 자신의 안에 쏟아 부었던 정액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당황해서 자신도 모르게 근처에 놓인 속옷을 집어 닦아 내는 유페미아였지만, 따뜻한 체온 덕에 굳지 않고 머물러 있던 씨가 멈출지 모르고 끊임없이 밖으로 새어 나온다.
“……”
그리고 그 광경을 계속해서 지켜보던 유페미아는, 쓰게 웃으며 비릿한 정액으로 범벅이 된 자신의 팬티를 침대 위로 던져버렸다.
“개새끼…… 도대체, 얼마나 사정한거야……”
사막 한 가운데 피어난 꽃이 이런 느낌일까.
피폐하게 말라 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부스럭.
그리고 그 때, 단잠에 빠져 있던 페르젠이 몸을 뒤척이더니 천천히 눈을 뜨고서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유페미아를 바라본다.
“아직 해도 제대로 뜨지 않았는데……”
“미천하면 일찍 일어나도 안 돼?”
“유치한 심술이구나.”
“……”
특유의 독선적인 고고함은, 잠기운과 피로조차 금방 컨트롤 할 수 있는 건지 머리를 한 번 쓸어내리자마자 평소의 무덤덤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돌아온다.
“시녀들을 들일 테니, 어깨 끈을 올려라. 언제까지 가슴을 드러내고 있으려고 그러지.”
“마, 말 안 해도 알아……”
페르젠의 말에 뒤늦게 자신의 상태를 눈치 챈 유페미아는 주섬주섬 원피스의 어깨끈을 올려 입었다.
“이건…… 입으라고 할 수도 없겠군.”
그러다 침대 위에 돌돌 말린 채로 놓인, 끈적끈적한 무언가에 의해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유페미아의 검은색 팬티를 바라보며 페르젠은 혀를 찼다.
“당신 씨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러운가 봐?”
그리고 그 모습에 유페미아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페르젠을 향해 옅은 실소를 머금고 말했다.
“잠자리가 별로였나. 나는 충분히 만족을 시켜줬다고 생각하는데. 오늘 따라 왜 이리 불퉁스러운 건지……”
“…………”
비꼬는 걸까.
페르젠의 말에 유페미아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그에 페르젠도 더 이상 반응을 하지 않으며, 자그마한 서랍 위에 놓인 종을 들어 흔들었다.
그러자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시녀들이 가벼운 노크를 하고서 안으로 들어선다.
“침대 시트를 갈아라. 그리고…… 많이 피곤 할 테니 데려가서 깔끔히 목욕을 시켜주도록. 향유는 될 수 있으면 향이 강한 걸 쓰지 않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모, 목욕은…… 나 혼자 해도 돼.”
몸 곳곳에 새겨진 흔적과, 자신의 음부에서 새어나올 정액을 시녀들이 적나라하게 볼 걸 생각하면 너무나도 수치스러워 유페미아는 고개를 저었다.
“고용인들을 피로하게 만드는 주인도 문제지만, 고용인들을 무료하게 만드는 주인도 문제다. 네가 그런다고 해서 이들은 감사함을 느끼지 않는다. 도리어 불편함을 가질 뿐이지. 배려가 민폐가 되는 것이다.”
“다, 당신이 내게 이러는 배려도…… 내게 있어서는 민폐야. 충분히 잘난 걸 알고 있으니, 더는 나를 누추하고 비참하게 만들지 마.”
유페미아의 말에 페르젠은 흥미 없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세상에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건 없다. 가장 근접한 게 있다면 법이겠지. 그러니 내 앞에서 네가 초라함을 느낀다면 그건 네가 문제라는 뜻이다.”
“……”
“그러니 토를 달고 싶다면, 보다 우아하고 고귀해진 다음 내게 말해라. 품격 떨어지는 놈이라고.”
“나쁜, 새끼……”
“어젯밤은 고생했다. 네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아침을 준비하라고 일러두마.”
그리 시녀들에게 뒤를 맡기고, 페르젠은 방을 나섰다.
* * * * *
목욕을 한 다음 옷을 갈아입고, 나는 크리스를 불러 어제 화가 한 명을 구해오라고 했던 일에 관해 물어보았다.
“지금 응접실에서 대기 하고 있습니다.”
“지금?”
“로젠베르크로 급하게 떠나야 할 일이 있다며……”
“아…… 그러고 보니 곧 있으면, 로젠베르크에서 축제가 열리겠군. 예술가들이라면 빠지고 싶어 하지 않겠지.”
고개를 끄덕이고서 크리스를 물린 뒤, 나는 1층의 응접실로 내려가 쭈뼛쭈뼛 앉아 있는 화가 한 명을 마주했다.
“브, 브뤼테인을 뵙습니다!”
“됐다. 앉아라.”
“예!”
오줌 마려운 개새끼처럼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나는 무시하고서 시엘 미드포드의 특징이 담긴 밑그림을 즉석에서 그려내 화가에게 건네주었다.
“세밀하게 말 해줄 테니, 그 밑그림을 참고해서 한 남자의 초상화를 완성시켜라. 크리스가 데려 왔으니 실력을 의심하지는 않겠다만 예상했던 것 보다 잘 그려낸다면 보수를 더 얹혀주도록 하마.”
“시, 실력이 가히……”
“같잖은 아첨은 치워라. 독이 된다.”
“네, 네……”
예술 또한 어느 정도는 기본 소양이다.
그래서 페르젠의 몸에는 나쁘지 않은 미술 실력이 베여들어 있었고, 나는 그걸 다행이라고 여겼다.
아무리 상세히 설명을 해줘도, 말을 온전히 그림으로 담아내는 건 한계가 존재했으니까.
자칫 잘못하면 초상화가 아니라 추상화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특징을 담은 밑그림을 그려준 덕분에, 눈앞의 화가는 내가 말해주는 묘사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집은 뒤 시엘 미드포드를 완벽히 그려냈다.
아니, 100% 완벽하지는 않았으나 이 정도면 충분하다.
“괜찮군.”
“가, 감사합니다!”
“보수는 크리스에게 받도록 해라.”
초상화를 챙기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크리스에게 보수를 조금 더 넉넉히 챙겨주라고 말한 뒤 친형이자 가주인 제레미아가 머무르고 있을 집무실로 향했다.
“이건……”
“양이 조금 많기는 하지만, 가능하면 읽도록 해라.”
시엘 미드포드의 초상화를 건네주고 나니, 제레미아는 나에게 수북한 서류뭉치를 건네 왔다.
“너처럼 교수로 선정 된 이들 중에서 거절 하지 않은 자들과, 입학이 예정된 자제들의 대략적인 정보니까.”
“……감사합니다.”
사교계에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던 페르젠이기 때문에 이런 정보는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상당히 귀한 것이었다.
때문에 꾸벅 허리를 숙이고서 집무실을 나온 나는, 저택 밖의 정원에 앉아 차례대로 서류를 읽어 나갔다.
“……”
아니, 읽다가 잠시 접었다.
인쇄술 자체가 나름 발달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리 개인적인 정보는 당연히 수기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해당 서류에 적힌 정보들의 글자는, 전부다 좌우대칭이 어긋나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내게 안겨주었다.
물론, 거슬리기만 할 뿐 찢어 버리고 싶은 충동 까지는 들지 않았기에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억지로 읽으니……
“……”
머리가 아파왔다.
좌우대칭이 어긋난 글자 때문이 아니다.
첫 페이지부터 최상단에 기록된 인물 두 명.
그 두 인물에 관한 정보가 두통을 안겨준 것이었다.
─────
1. 리지 폴 리아나 클로디아 ( 18세 )
클로디아 자작가의 막내딸.
1 ~ 2년 내로 유클리드 등급의 흑마법사로 승격할 만큼 재능이 출중하다는 소문이 돌고 있음.
본 클로디아 남작은 3개월 전에 사망했고, 차남이 현재는 작위를 승계한 상태이며 장남은 이번 년도 황실 기사단에 소속되었음.
─────
“리지, 리지……”
페르젠의 기억에 있는 인물이다.
그도 그럴게, 굳이 따로 표기를 해둘 정도면 확실히 나도 알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
당연히도 그것이 긍정적인 쪽은 아니었다.
페르젠이 강박장애 때문에 자신의 형인 제레미아와 있었던 일 이후, 둘 사이의 관계는 서먹서먹하기 그지없었다.
사실 좋은 게 이상한 거겠지.
그래서 제레미아의 17살 생일──성인식을 축하하는 연회가 열렸을 때 페르젠은 처음으로 먼저 용기를 내서 사과를 하고 축하를 건네주었다.
지금의 둘 사이가 나름대로 평탄한 건 이때의 일 덕분.
하지만 문제는, 페르젠은 거기서 빨리 나왔어야 했다.
자신의 형인 제레미아와의 관계가 회복된 것에 기뻐 바보 같이 우애를 나눌게 아니라 말이다.
‘돌아버리겠군……’
제레미아와 다르게, 사석에서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 없는 차남인 페르젠.
그런 페르젠이 우연찮게 모습을 드러내자, 은근슬쩍 자신의 딸을 곁으로 보내 인사를 시키는 귀족들이 많았다.
당시 클로디아 남작도 그 중 한 명이었고.
문제는 딸인 리지가 인사만 했던 거라면 모를까, 함께 춤을 춰주시지 않겠냐고 요구를 해온 것이다.
그게 클로디아 남작의 욕심이 서렸던 명령이었을지, 정말 페르젠을 처음 보고서 느낀 호의에 자신도 모르게 그런 요청을 했던 것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결과만큼은 참담했다.
춤을 추는 도중, 리지가 실수를 하여 페르젠이 리지의 밟을 밟아 발목을 접질리게 했으니.
사실 여기 까지는 문제가 없다.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울면서 절뚝거리며 나가는 리지의 뒤를 따라가, 그녀의 반대쪽 발을 페르젠이 똑같이 만들어 주지만 않았다면.
움찔!
그 때의 기억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떠올라, 나는 손끝을 떨며 이마를 짚었다.
당시 리지의 나이는 고작 10살.
그 어린 여아의 발목을 사정없이 짓밟으며 뭉개버리는 페르젠의 행동이 너무나도 섬뜩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공감이 되는 건 어째서 일까.
아니, 이건 공감을 넘어서 이해를 하고 있다.
그런 나 자신이…… 처음으로 무서워졌다.
‘이런 걸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 있나?’
다음 단락을 읽을 자신이 없어졌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시발……”
알프레드 가(家).
그 한 단어가 보이는 순간, 나는 서류를 집어 던졌다.
브뤼테인 가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후작가.
기억을 되짚는 게 두려워졌다.
사실, 여기가 소설 속 세계가 아니라면 내가 이리 머리가 아프고 위가 쓰라릴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여기는 소설 속 세계이고…… 나는 악당이다.
그렇기에 서류에 표시 되었던 두 인물이, 시엘 미드포드의 징검다리가 되어 내 심장을 찌를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포석」 으로 보였다.
“……”
뭐라고 해야 할까?
새삼스레 페르젠이라는 캐릭터에게 부여 되었던 역할은 악(惡)이라는 걸 선명하게 자각하게 된다.
유페미아 한 명만 신경을 쓰면서 주인공을 견제할 수만 있다면 일이 쉽게 풀려 나갈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건 철저한 오산에 불과했다.
“하, 하하……”
사실 서술 트릭을 이용한 페이크일 가능성은 없을까?
진짜 주인공은 페르젠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의미 없는 가능성을 놓아 주었다.
왜냐하면 페르젠이 주인공이었다면, 저지른 악행들이 세탁기를 돌렸을 때 깔끔히 세탁 될 수준이었을 테니.
‘없다……’
저지른 일에, 무언가 오해가 있다거나.
저지른 일에, 무언가 외부의 개입이 있었다거나.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악행.
강박장애라는 요소가 존재하고는 있지만, 이것이 밝혀진다고 해서 세탁기가 돌아갈 것 같지는 않았다.
비누라도 된다면 다행 일 터……
그저 높은 확률로 이용당할 약점이 되겠지.
그래……
나는 악당(惡黨)이다.
소설의 제목이었던 악착 같이 살아남는다는, 과연 누구를 뜻하는 것이었을까.
‘회귀…… 하고 싶다.’
한 줌의 푸념이, 봄바람에 살포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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