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7화 (7/260)

EP.7 007─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

예상했던 대로 로젠베르크 자작가의 막내딸은 브뤼테인에서 머무르고 있었기에, 나는 얌전히 응접실에 앉아 그녀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굳이 다른 사체를 준비할 필요는 없겠지.’

바닥에 놓인 고급스러운 관.

저기에 잠들어 있는 이사벨 론 피에르 제노바의 시신으로 대결을 하면 되리라.

어차피 나나 그녀나 이사벨의 시신을 사역한 적은 없으니, 해당 시신에 대한 숙련도는 전무하다.

똑똑.

지루함이 슬슬 길어지려던 찰나, 형식적인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로젠베르크 자작가의 막내딸이 시중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

사람이 북적거리는 사교계는 페르젠에게 있어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부여하는 곳이라, 당연히 참석한 적이 한 번도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로젠베르크 자작가의 막내딸, 그녀의 모습을 페르젠으로서도 처음 보는 것이기에 나는 신기한 듯 그녀의 외관 전체를 흐릿하게 눈에 담았다.

‘알비노인가?’

다른 용어로는 백색증.

몸의 색소가 부족해, 피부를 비롯한 체모들이 눈처럼 새하얗게 변화하는 유전 질환.

“라우라…… 드 샤를…… 로젠베르크가 이, 인사를…… 드립니다……”

거북이가 기어가듯, 느리다 못해 늘어지는 억양.

“반갑다. 말하는 속도가 많이 느린데 원래 그러나?”

당차게 청출어람을 시도하겠다는 포부 때문에, 무척 자신감 넘치고 활발한 이미지를 상상했었는데.

“죄, 죄송…… 하, 합니다. 빠, 빨리 마, 말을 하면 더, 더듬거리는 게 시, 심해져서……”

알비노라 그런지,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지는 것도 무척이나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니다. 바로 눈치 채지 못하고, 굳이 치부를 스스로 드러내게 해서 미안하군.”

본적은 없어도 선천적으로 몸이 허약해 로젠베르크 자작이 무척이나 애지중지하며 키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것에 더해 말더듬이, 알비노라 햇빛이 강해지는 여름날 때는 더워도 긴 옷을 입어야 하는 피로함 등등.

아주 안쓰러운 것들은 죄다 달고 태어난 듯하다.

‘다만……’

동정심보다도, 한쪽 머리만 묶어 내린.

사이드 테일 형태의 헤어 스타일이 상당히 거슬린다.

일부러 초점을 흐린 채로 바라보고 있어도, 저 정도 특징은 곧바로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머리채를 잡아챈 뒤 끈을 풀어버리고 싶다는 욕구가 치밀었다.

꽈악!

‘참을 만은 하다.’

힘을 주어 꿈틀거리는 손으로 주먹을 말아 쥔 뒤, 나는 태연하게 입을 열어 그녀에게 말했다.

“포부가 상당히 당찼던 걸로 들었는데, 먼저 하겠나?”

쥐면 뚝하고 부러질 것만 같은 가느다란 목이 느릿하게 앞뒤로 움직이며 긍정을 표한다.

“하계(下界)──케테르 등급의 흑마법사 일 테니, 마력의 기준은 네게 맞추도록 하겠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말고 최선을 다하도록.”

“시, 시신은……”

“이사벨의 시신으로 할 것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라우라를 바라보았다.

서로가 동등한 격, 동등한 양의 마력을 소모한다고 했을 때 사역하는 시체의 생전 구현율은 이해도와 숙련도에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숙련도는 일반적으로 동일한 혈통이라는 요소를 제외했을 때, 얼마나 자주 사역했는지가 커다란 지분을 차지한다.

때문에 핵심은 이해도.

흑마법사의 사체 사역술은, 해당 사체의 생전 능력을 구현해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정확히는 그 시신의 삶 자체를 흉내 내는 것과 같았다.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

어떤 습관이 있었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무엇을 싫어했는지.

사역하려는 시신에 대한 여러 요소를 흑마법사 본인이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는 만큼, 생전 구현율은 올라간다.

실제로 육신을 남긴 브뤼테인의 전대 가주 중에서, 일기가 남아 있는 자들과 그러지 않은 자들 간의 생전 구현율 차이는 상당했다.

이사벨 론 피에르 제노바는 악명이 자자했던 마녀인 만큼 관련 문서가 적잖게 남아 있을 것이고, 라우라는 그걸 토대로 이사벨이라는 여인의 자아를 나름대로 인식했으리라.

‘얼마나 일치할지는 의문이겠지만…… 핸디캡을 줘도 상관은 없겠지. 이긴 뒤에 이걸 빌미로 자그마한 부탁을 들어달라고 요구해서 저 머리끈을 풀면 될 것이다.’

상념을 접고 라우라를 바라보자, 다소곳하게 무릎을 쭈그리고 앉더니 관을 열고서 곧바로 마력을 운용한다.

“라우라 드 샤를 로젠베르크.”

“네?”

“다른 확인은 하지 않는가?”

“네……”

대단한 자신감이다.

입수한 문서를 통해 나름대로 이사벨의 자아를 자세히 만들어 인식하고 있어도, 시신을 확인한 뒤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텐데.

‘과연……’

구현율 : 12.9%

혹시나 될까 싶어 수치화를 발동시키자, 라우라가 구현한 이사벨의 생전 구현율이 눈에 들어온다.

물론, 아직 초반인 만큼 구현율은 계속해서 높아졌다.

18.7%

21.9%

24.3%

그리고 마지막, 라우라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수치화가 알려주는 생전 구현율은 27.3%였다.

이사벨은 아폴리온 등급의 원소 마법사이니, 27.3% 정도면 케테르 등급의 원소 마법사 수준의 능력은 거의 온전히 뽑아낼 수 있는 만큼 구현을 한 것이다.

기준이 페르젠이 아니었다면, 그야말로 천해의 재능.

이것은 이해력보다는 숙련도가 더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는 것 같아, 어쩌면 페르젠의 사체 친화력과 유사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의심이 들었다.

“끝인가?”

“최, 최선을 다…… 해, 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탈취에 성공하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의 여부로 결과가 갈리겠군. 너무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 계속해서 유지 하고 있어라.”

내심 쫄리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걸음을 내딛어 이사벨의 시신 앞으로 다가섰다.

“뭐, 뭐하시는……?”

이사벨의 시신을 더듬는 나를 보며, 라우라가 이해할 수 없다는 의문을 제시한다.

“이사벨 론 피에르 제노바의 시신은, 사망했을 때의 상태 그대로 보관되었다가 경매로 내놓아 진 것이기에…… 시신에 남아 있는 선명한 흔적들로도 그녀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변색된 오른쪽 검지의 색깔.

‘상당히 연초를 많이 피웠나 보군.’

옅은 누런색으로 변색이 되어 있으며, 유독 오른쪽 부근에만 치우쳐진 상태이니 자연스레 연초를 쥐는 손 모양이 어떠했는지 떠오른다.

그리고 손톱 부근에 흰색 반달무늬가 커다란 것으로 보아 평소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 같았다.

꿈틀.

사역하려는 이사벨의 시신에 대한 장악력이 극도로 미세하기는 했어도 늘어나는 게 느껴졌다.

이처럼 사역하려는 시신의 생전에 대한 이해도는 장악하는 과정에서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는다.

때문에 흑마도를 정말 진득하게 파고 드려는 흑마법사들은 상당한 지식을 머리에 보유하고 있었다.

그게 잡지식이라 해도.

“……”

“아……”

“뭐하는 짓이지.”

“그, 그, 그게……”

“손을 치워라.”

이사벨의 시신, 하체 쪽을 건드리려고 하니 육신을 통제해 방해를 하는 라우라를 보며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 그래도……”

“라우라 드 샤를 로젠베르크. 너는 이사벨과 관련된 문서들을 읽고 정보들을 취합해 임의적으로 그녀의 생애를 미리 유추하지 않았나. 헌데 즉석에서 정보를 얻으려는 나를 방해하려 드는가?”

“죄, 죄송…… 하, 하, 합니다……”

“쯧.”

혀를 차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깊게 빠져들지 마라.”

사체를 보다 원활히 통제하고, 구현율을 높이기 위해서 흑마법사는 해당 시신의 생애를 최대한 이해해야만 한다.

그리고 당연히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이 사역하는 시신에 대해 애정이 생겨나는 이들도 존재했다.

실제로 되짚은 역사에서 자신이 사역하는 시신과 결혼을 해버린 흑마법사도 있었고, 사역하는 시신을 희롱했다고 상대방을 죽여 버린 흑마법사도 있었다.

“아무리 깊게 이해해도, 이 여자는 이미 죽어버린 시신이다. 인간이 아니라 시체라는 말이다.”

“……”

내 말에 납득을 한 건지 고개를 푹 숙이는 라우라를 보며 나는 이사벨의 시신이 입고 있는 바지를 벗겨 내린 뒤 탐색을 마저 이어 나갔다.

그리고 그 과정을 모두 끝내고 난 뒤, 나는 손을 뻗어 이사벨의 머리를 짚었다.

페르젠이 눈썰미가 좋은 듯 하나, 이것이 사체 이해력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체 이해력을 정확히 풀이 하자면, 시신에 한정하여 1회 발동할 수 있는 사이코 메트리(Psychometry).

물론, 해당 능력을 통해 읽어내는 건 성격의 뼈대를 만들어 준 생전의 기억 일부다.

아마 이 몸 페르젠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강박 증세로 인해 자신의 친형을 죽일 뻔 했던 기억을 보여주겠지.

‘!’

그리고 이사벨 론 피에르 제노바.

24년 전, 악명을 떨친 극악무도한 마녀의 기억 일부를 읽어냈을 때 나는 차오르는 구역질을 참기 위해 입가를 틀어막고 숨을 멈췄다.

‘제노바 백작가가 극도로 폐쇄적이었던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나. 이사벨이 살인마라는 것은 변함이 없어도 그 앞에 쾌락이라는 수식어는 빼야하는 게 옳겠군.’

꿈틀!

이사벨의 성격, 특히나 생애를 관통하는 핵심 기억을 이해하자 즉각적인 피드백으로 오르는 구현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치솟는다.

“으응? 앗! 아…… 어, 어……?”

거기에 더해 어떠한 시신이라도 동일한 혈통처럼 사역할 수 있는 사체 친화력이라는 재능이 추가되니, 나는 순식간에 라우라로부터 이사벨의 시신을 탈취할 수 있었다.

“이, 이럴 리가…… 어, 없는데……”

“라우라 드 샤를 로젠베르크.”

“……”

“청출어람은 아직 이르다.”

말은 이리 하면서도, 나는 식은땀을 살짝 흘렸다.

왜냐하면 그녀가 얻었을 이사벨의 정보는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상당히 많았을 테기에.

때문에 그녀가 달성했던 27.3%의 구현율.

이것은 페르젠의 사체 친화력과 비슷한, 시신을 사역하는 데 있어서 특정 메리트를 받는 재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만약, 라우라가 혼자 유추한 이사벨의 생애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면 동등한 격, 동등한 양의 마력을 사용한다는 이 대결에 있어서 내가졌을지도 몰랐다.

“자, 자, 잠시…… 마, 만요……!”

“득이 있었다면 네 쪽에 있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졌는데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 추하지 않은가.”

“……”

“아니면 나 또한 공정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나?”

“저, 저, 정보를 취, 취득 하려 했던 거라면…… 어, 어째서 상체는 화, 확인을 하지 아, 않으셨나요?”

이사벨의 시신을 확인하는 과정이, 정보를 취득하기 위함이 아니라 모종의 수단을 부리기 위한 연막이었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기야 의외로 합리적인 의심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질문에 나는 곧이 고대로……

──짝가슴이면 곤란해서 그랬다. 뜯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라고 대답을 할 수는 없었기에.

“그곳을 봐서 얻을 단서가 뭐가 있겠다고 보겠나.”

라고 말했다.

내뱉고 보니 제법 설득력이 있는 것 같아 나는 속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이사벨은 죽을 때 까지 독신이었지만, 그게 정확한 사실인지는 모른다.

때문에 하복부를 관찰하여 남성 경험의 유무를 얼추 짐작한 뒤 이해를 하는데 도움을 얻으려 했다.

하지만 가슴은?

“이걸로 대답이 충분했으면 그만 딴죽을 걸고 돌아가도록 해라. 나는 오늘 브뤼테인에 도착해 여독을 풀기도 전에 너를 만나 준 것이다.”

“가, 감사……”

“그리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거슬렸던 라우라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끈을 풀어내 보기 편한 긴 생머리로 만들어주었다.

“차후, 내 강의를 들으러 들어 올 때는 이런 걸 머리에 달고 오지 마라. 미리 말했음에도 그러고 온다면 주기적으로 너를 지목해 발표를 시킬 것이다.”

그녀는 말더듬이니까, 발표를 시킨다고 협박을 해버리면 다시는 내 앞에서 사이드 테일 같은 헤어 스타일을 하지 않겠지.

양쪽 다 끈으로 묶어 내리는 거라면 상관이 없으나, 초면에 양 갈래 머리가 더 잘 어울린다고 말하는 것 보다는 이게 나은 듯 했다.

‘아……’

그러고 보니, 만약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수가 23명 이런 식이면 어떻게 해야 하나.

2명씩 앉힐 수도 없었고, 3명씩 앉힐 수도 없었다.

‘그러자고……’

다양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떠올랐지만, 나는 애써 가라앉히며 이사벨의 시신을 관에 눕힌 뒤 아공간으로 회수했다.

그리고는 응접실을 나가 깔끔히 목욕을 하며 쌓인 여독을 풀어낸 뒤, 브뤼테인을 구경시켜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유페미아를 보러 걸음을 옮겼다.

다음화 보기―――――――――――――――――――――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