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005─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
마력을 품은 이들의 길로는 크게 세 가지가 존재하며,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원소 마법사다.
자신의 마력을 불(火), 물(水), 뇌(雷)로 변환할 수 있고, 대기를 비롯한 대지에 간섭이 가능한 이들.
물론, 그 가능성을 모두 품은 사람은 일반적으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마력을 품고 태어나느냐 그러지 않느냐처럼, 마력이 어떤 형질로 변환되는가 어디에 간섭할 수 있는가 또한 선천적인 자질이었기에.
화륵!
늘어선 에르베트 아라크네의 거미줄에 자그마한 불꽃이 점화되고, 잠시 동안 넘실거리던 그 불꽃은 이내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았다는 듯 거미줄 전체를 불선으로 뒤바꾸며 뻗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타닥!
고온을 이기지 못한 거미줄이 도중에 끊어지며, 달려들던 새끼 에르베트 아라크네들이 황급히 바닥으로 떨어져 눈 속에 자신의 모습을 숨긴다.
화악!
그러나 몰려드는 불꽃은 마치 해일처럼 주변을 쓸어 덮치며 눈 속에 숨은 새끼들을 처참히 불살라버렸다.
타올라 바스러지는 죽음에 대한 고통을 표현조차 하지 못한 채, 물속에 녹아 융해되는 한줌의 가루처럼 기화되어 퍼져나가는 수증기를 따라 말끔히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그에 나는 계속해서 뇌리를 맴돌던 새끼 아라크네들의 어긋난 무늬가 전부 사라졌다는 사실에, 자연히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기쁨을 표현했다.
콰직!
그러나 그 기쁨의 여운을 천천히 만끽하기도 잠시, 단단하기 그지 없는 북부의 나무를 처참히 꺾어버리며 3m 가량 되는 거대한 몸을 드러낸 성체──어미 에르베트 아라크네가 흉포히 달려든다.
에르베트 아라크네는 거미인 만큼 세 쌍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데, 그 눈동자의 색은 품은 감정에 따라 색이 바뀐다는 신비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 중에서도 슬픔에 잠들었을 때, 푸르게 바뀌는 에르베트 아라크네의 눈동자를 적출할 수 있으면 수집가들에게 제법 고가에 팔리는 재료가 된다고 들었다.
“말 못하는 괴물이라도 모성애를 가지고 있는가.”
마치 물결이 일렁이는 듯한 에르베트 아라크네의 푸른 눈동자를 보며 나는 꾸깃 접혀 들어간 소매를 바로 잡았다.
페르젠은 극도의 강박 장애를 가졌을 뿐, 감정이 말라비틀어진 것은 아니었기에 자식이 죽은 것에 대해 느끼는 애절한 슬픔에 충분히 공감을 할 수는 있는 몸이지만……
역시, 그 어긋났던 무늬들이 뇌리에 떠오르자 나는 어미 에르베트 아라크네가 분노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적어도 페르젠의 관점에서 그런 건, 생물이 낳은 새끼가 아니라 단순한 불량품에 불과했기에.
화르륵!
불결이 군무를 추듯 일렁이며 어미 아라크네를 감싸 안고, 피하기 위한 움직임을 따라 널찍하게 퍼져 나간다.
그 불꽃의 일렁임은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한 꽃이 꽃봉오리를 피며 개화하는 것처럼 아름다웠기에, 어미 아라크네의 움직임이 굼떠져 점점 불길이 꽃이 지는 것처럼 수축하기 시작했을 때는 묘한 아쉬움마저 들었다.
타닥!
더는 일말의 저항조차 없이 얌전히 타들어가는 에르베트 아라크네의 몸뚱이가 질척하게 불똥을 튀기며 떨어져 내리기 시작하자, 나는 주섬주섬 천 조각을 꺼내들어 안경을 닦은 뒤 도로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브뤼테인 가(家)의 27대 가주──바이에른 폰 그리엘 브뤼테인은 자신과 동등한 유클리드 등급의 원소 마법사이기에 그를 사역하여 생전의 능력을 구현해내는 건 상당한 마력을 소비해야만 했다.
때문에 나는 몸을 짓누르는 짙은 피로에, 27대 가주를 향한 목례를 취하고서는 그를 움직여 관으로 모신 뒤 얌전히 아공간으로 집어넣고 마차에 올라탔다.
“……”
급정거했던 영향 때문인지, 유페미아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기댄 채 새근새근 숨을 내쉬고 있다.
그에 나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왼쪽으로 자리를 옮긴 뒤 “출발해라.” 라는 한 마디를 내뱉고서 잠깐 눈을 붙였다.
* * * * *
“브뤼테인…… 아니, 이제는 루에르그 공이라 불러야겠군요. 그 보다 벌써 돌아가시는 겁니까? 저희 영지에 잠깐 들리셨던 게 4일 전이셨는데.”
“황실의 부름에 거역할 수는 없으니.”
“확실히……”
노숙을 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기에, 저녁쯤에 도착한 로베론 남작의 영지에 들려 하루를 묵고 출발하기로 했다.
‘큰일이군.’
페르젠이 다른 건 몰라도, 3인 이상과 함께 식사 자리를 가지지 않는다.
나야 굶으면 그만이지만 그것을 유페미아에게도 강요할 수는 없었기에 권해 오는 저녁 만찬을 거절하지 않았는데 솔직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섰다.
“오…… 나왔군요. 맛있게 드십시오. 저희 북부가 다른 건 몰라도 와인만큼은 자신이 있기에 아끼던 걸 준비했습니다.”
“그런가.”
무시하기는 그래서 짧게 짧게 대답을 하며, 나는 힐끔 옆에 앉은 유페미아를 쳐다보았다.
‘왼 손으로 나이프를 쥐고, 오른손은 포크를……’
페르젠은 양손잡이다.
정확히는 오른손잡이지만, 후천적으로 양손잡이가 되었다.
‘이러면 나는 오른손으로 나이프를 쥔 뒤, 왼손으로 포크를 쥐면 된다. 문제는……’
건너편에 앉은 남작과 남작 부인이다.
다행히도 남작은 자신과 대칭 되는 자리에 앉은 상태에서 유페미아와 동일하게 왼 손으로는 나이프를 쥐고 오른손으로는 포크를 쥐었다.
그러면 남작 부인이 자신과 동일하게 나이프와 포크를 쥐고 식사를 시작 한다면, 아무런 탈 없이 술과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단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
하지만 그런 간절한 애원이 무색하리만큼, 남작의 부인은 왼손으로는 나이프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포크를 쥐었다.
‘하……’
이리 되면 내가 양손으로 무슨 개지랄을 하든, 올바른 대칭을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속이 뒤집어 지고, 숨이 가빠진다.
입술을 짓씹으며 억지로 금단 현상과 같은 이 발작을 억누르려 해보지만, 그 반동으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편두통이 찾아와 나는 자연히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술……’
그래, 이럴 때 필요한 것이야 말로 술이 아니겠는가.
코르크 마개를 뽑아낸 뒤, 시종들이 따라주는 와인을 잔으로 받으며 그 알싸한 향을 은은히 맡은 후 입가로 가져다 목 뒤로 흘려보냈다.
“으음……”
도수가 상당히 높은 건지 목이 타오르듯 뜨거워진다.
몇 잔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살짝이나마 취기가 도는 것을 보아하니, 적당히 조절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잔을 내려두고 식사를 시작했다.
물론, 맛은 제대로 느낄 겨를이 없었다.
* * * * *
한 공간에 있음에도 자신은 없는 사람 취급을 하듯 오고 가는 대화에, 유페미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묵묵히 식사를 이어 나갔다.
시중을 들기 위해 주변에 서있는 하인들조차, 지금의 자신 보다 훨씬 세련되어 보여서 그런지 본능적으로 주눅이 들어 어깨를 움츠리게 된다.
‘아……’
찢어진 부분을 바늘로 꿰맨 흔적.
깔끔히 빨았음에도 불구하고 혼탁해진 색.
악착같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왔던 자신의 발자취들이 오늘 따라 유난히 초라하고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스스로가 살아왔던 삶을, 타인도 아닌 자기 자신이 수치스럽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 유페미아는 속으로 울컥하는 마음이 치솟았다.
차라리 경박하게, 예법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해서 옆에 앉은 남자의 명예라도 실추시키면 한결 편해지지 않을까.
일단, 자신은 그의 아내였으니까.
그런 마음을 품고 시선을 옆으로 돌렸으나, 유페미아는 순식간에 풀이 꺾여버렸다.
자신이 아무리 경박하고, 천박하고, 비참하게 그의 옆에 앉아 있는다 한들 저 남자의 독선적인 고고함을 더럽힐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정확히는 제 3자들이 그와 자신을 묶어 부부라는 관계로 절대 바라보지 않으리라.
아마 이 남자도 그런 생각 때문에 자신을 볼품없는 초라한 상태로 방치해둔 거겠지.
본인의 가치를 드높이는 물건으로서, 손에 끼고 있는 저 자그마한 반지보다 못한 게 현재의 자신일 것이다.
「 주제를 알아라. 」
문득, 싸늘한 어투로 내뱉었던 페르젠의 한마디가 떠올라 유페미아는 더더욱 자존감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유페미아.”
“……!”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을 나지막하게 부르는 페르젠의 말에 유페미아는 몸을 떨며 고개를 들었다.
“배는 충분히 채웠나?”
독하디 독한 술 냄새가 진하게 풍겨온다.
이 남자가 언제 이리 취할 만큼 술을 많이 마신 걸까 싶다가도,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만큼 상당히 불쾌한 표정을 하고 있다는 걸 곧바로 알아차렸기에 유페미아는 떨리는 목소리를 최대한 가다듬어 대답했다.
“아, 아직……”
“그런가.”
불쾌한 기분을 끌어안고 술에 취했다면, 필히 자신을 감정 배설구로 여기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유페미아는 속이 더부룩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라는 대답을 하고서는 억지로 식사를 이어 나갔다.
물론, 그 이후에도 페르젠은 계속해서 유페미아에게 같은 질문을 건네 왔다.
그리고 그럴 때 마다 유페미아는 차라리 페르젠이 완전히 술에 취해 잠들기를 바라며 한사코 똑같은 대답을 되풀이했다.
“마, 많이 취하신 것 같습니다. 루에르그 경.”
“그래 보이나……”
“제가 마련한 만찬을 즐겨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몸이 상하시면 본말전도이지요. 황실의 부름에 수도로 내려가셔야 하는 몸이니 이쯤 하시고 일어나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그리 하지……”
안색이 파리해진 얼굴로, 유페미아는 몸을 일으키는 페르젠을 바라보았다.
입안이 바싹 말라 들어가는 느낌이다.
“유페미아…… 어깨 좀 빌려다오.”
“……”
몸은 당장이라도 넘어질 듯 비틀거리지만, 발음만큼은 정확하게 새어 나오는 그의 말에 유페미아는 가까이 다가가 페르젠을 부축했다.
“흑!”
건장한 성인 남성의 무게가 온전히 자신에게 쏠리자, 당연히 굳은 일을 꿋꿋이 해왔던 유페미아로서도 상당히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조, 조심……!”
쨍그랑──!
기어코 저택의 홀, 방으로 올라가기 위한 계단 앞에서 장식품으로 놓여 있던 꽃병을 휘청거리는 몸으로 건드린 페르젠이 부숴버린다.
“아……”
걱정되는 마음에 조마조마하며 뒤를 따르던 로베론 남작은 사색이 된 얼굴로 탄식을 내뱉었으나, 페르젠이 브뤼테인 가(家)의 차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속으로만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게 되었다.”
“괘, 괜찮습니다. 어차피 이 꽃병은 옆에 놓인 것과 한 쌍이라…… 가치가 조금 떨어질 뿐이니까요.”
한 쌍으로 하나의 작품이라면, 사실 한쪽이 부서진 시점에서 완전히 가치를 잃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애써 부정하는 로베론 남작은 시종들을 부른 뒤, 부서진 꽃병의 파편을 치우도록 지시했다.
“한 쌍인가……”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페르젠은, 올라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옆에 놓여 있는 꽃병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직후, 로베론 남작이 어찌 말릴 새도 없이──
쨍그랑──!
해당 꽃병을 들어 올려 바닥으로 시원하게 내동댕이쳐버렸다.
“……”
“남작.”
“……”
“자고로 한 쌍이라면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게 아름답지 않겠나. 그런 의미에서 한쪽이 부서져서 가치를 잃었을 땐, 양쪽이 모두 부서지면 동등한 가치를 도로 회복하는 게 아닌지?”
술에 취한 건 사실 연기인 게 아닐까.
그리 느낄 만큼, 페르젠의 말은 꼬임이 없었다.
하지만 술에 취하지 않고서야,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나?
로베론 남작 입장에서는 페르젠에게 미움 받을 만큼 원한을 산적이 없었기에, 더더욱 울화통이 터질 뿐이었다.
“남작. 내가 묻지 않나.”
“오,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래…… 심미관이 같아서 즐겁군. 비용은 나중에 브뤼테인 가(家) 앞으로 청구하도록.”
굳이 그가 잘못한 게 있다면, 자신의 부인이 페르젠이 바라는 대로 나이프와 포크를 쥐지 않은 것에 더불어 약간의 불운이 겹쳤을 뿐이리라.
“……”
그리고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본 유페미아는 손짓으로 자신을 부르는 페르젠을 보며, 보다 창백해진 안색으로 다가가 떨리는 몸을 숙여 부축했다.
끼익!
이어 로베론 남작이 배정해준 방으로 들어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단 둘이 남았을 때, 유페미아는 그가 시선으로 자신의 목을 졸라 죽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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