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3화 (3/260)

EP.3 003─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

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려 했으나, 차마 추위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방으로 돌아와 장작을 집어넣은 벽난로 앞에서 유페미아와 단란한 식사 시간을 가졌다.

“잘 들어라 유페미아. 데려온 세바스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나면, 우리는 곧장 브뤼테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

“루테인 산맥에서 내려오는 몬스터들을 그대가 지금까지 죽여 왔다고 들었는데 그 점은 걱정할 것 없다.”

“……”

“브뤼테인 후작가는 황금으로 산을 만들 수 있는 재력을 가진 곳이다. 이런 낙후된 영지 정도야 사람 살 수 있는 수준으로 가꾸는 건 어렵지 않지.”

먹는 둥 마는 둥, 음식을 깨작거리며 내 말을 듣기만 하던 유페미아가 고개를 든다.

“나는 굳이 데려가지 않아도 되잖아…… 가족들에게 나라는 전리품을 자랑이라도 하고 싶나 보지?”

유페미아를 통해 어느 정도 변수를 통제할 수 있는 터라 가능하면 곁에서 떨어트려 놓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주인공인 시엘 미드포드를 내가 찾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그쪽에서 직접 유페미아에게 접근할 가능성이 높았기에.

그 점을 고려하여 나는 유페미아 앞에서 주인공의 이름과 특정할 수 있는 외형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아무런 관심이 없고,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여야 비교적 허술하게 행동할 테니까.

사실 유페미아도 끝까지 싸우겠다는 주인공을 보고 “당신은 나의 기사가 아니니 여기서 개죽음을 당할 필요는 없어.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고 싶다면 기사가 되어 찾아와.” 라고 했지만 정말 그런 일이 일어 날거라 믿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 말이 그대로 실현 될 거라 믿는다.

왜냐하면 그 말을 듣고 떠밀리듯 도움을 받아 영지를 탈출하던 주인공의 감정선이 어떻게 서술 되었는지를 명백하게 기억 하고 있으니까.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융해된 페르젠의 자아를 배제한 지극히 현실적인 관점에서 유페미아를 데려가려는 핵심적인 이유였다.

“음……”

그래서 이걸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기에 말끝을 흐리자, 유페미아는 자조 섞인 어투로 내게 말했다.

“나를 반드시 데려 가고 싶다는 건, 브뤼테인으로 향하는 도중 사고로 위장해서 깔끔히 죽일……”

“그럴 일은 없으니 안심해라.”

페르젠의 자아가 완전히 스며든 시점에서 내가 유페미아를 죽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 몸뚱이는 상상이상으로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고, 그것이 방금 전의 핵심적인 이유를 제외하고 그녀를 데려가려는 부차적인 이유였으니까.

소유(所有)와 대칭(對稱)에 한한 중증 강박 장애.

그 중에서도 우열을 가린다면 대칭이 우위다.

실제로 페르젠은 사람의 신체와 관련된 부분에서 대칭적 강박을 느낄까봐, 의도적으로 시력을 떨어트리는 짓을 어릴 때부터 꾸준히 해왔다.

시력이 나쁘다면 일정 거리를 유지 했을 때, 대칭이 올바른지 아닌지 확실히 알 수 없게끔 흐릿하게 보일 테니까.

사람의 신체 부위에 대칭적 강박을 느낀 뒤, 그것을 어떻게든 수정하고 싶다는 욕망이 들끓기 시작하면 살인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실제로 미수에서 그친 적이 있었고.

그래서 페르젠은 시력이 나쁨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마주했을 때 일부러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 않는다.

마음 편히 안심하고 바라볼 수 있는 건, 하늘과 잔잔한 물결이 퍼져나가는 호수뿐.

그러나 유일하게, 유페미아는 페르젠에게 있어서 그러한 자연광경과 동일한 안락함을 선사해주었다.

하지만 이 감정을 사랑이라 칭하기에는 어폐가 있었다.

굳이 따진다면 극상의 애용품을 대하는 마음.

때문에 페르젠이 최소한의 명분만을 들고, 루에르그를 습격하여 강제적인 혼인을 맺은 뒤 그녀를 안은 것이다.

감정의 교류 따위를 바랐던 게 아니었기에.

“그러면 대체 왜……”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스탠스를 계속 취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취하지 않기로 했다.

이서진의 자아는 페르젠보다 훨씬 일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에게 충분한 호감도 있는 상태니 두 자아가 뒤섞인 지금이라면 보다 친절히 그녀를 대할 수 있으리라.

그래, 보다 친절히 그녀를 대할 수 있겠지만……

억지로 혼인을 한 뒤 겁탈한 여자에게 무슨 말을 해야 사이가 가까워 질 수 있는지 도저히 떠오르지가 않았다.

“신혼부터 떨어지고 싶지 않을 뿐이다.”

때문에 최대한 머리를 굴려 내뱉은 대답이 이거였으나, 유페미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하다는 듯 들고 있는 나이프를 거세게 움켜쥐었다.

“내려놔라. 네가 나를 죽인다면 너는 처형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루에르그 영지는 다른 누군가에게 하사되기 전 까지 제국령으로 편입 될 테고, 임시로 파견된 관리는 이곳을 조금도 정성스레 돌보지 않겠지.”

“그리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내 앞에서 다시는 뻔뻔하게 사랑하는 척 말을 내뱉지 마. 당신은 그럴 자격 없어……”

유페미아의 그 말이 공감은 가지만, 어째서인지 극도로 기분이 불쾌해져 입을 열었다.

“루에르그에서 태어나고 자란 여인일 텐데, 의외로 머릿속이 꽃밭이군. 네가 아무리 고생을 해봤자 지금만한 안전과 여유를 이 영지에 줄 수 있다고 생각하나? 과정이 불쾌했을지라도 결과만큼은 최상이다.”

“……”

“만약에 죽은 네 아비가 살아 있었다면, 내가 너를 원한다고 했을 때 거절했을 거라 생각하는가?”

입맛이 떨어졌다.

그에 식사를 마치고, 냅킨으로 입가를 닦은 뒤 유페미아를 싸늘히 노려보며 몸을 일으켰다.

“유페미아 엘 로렌느 루에르그. 내가 그대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라. 자격? 브뤼테인 후작가라는 이름값으로 충분하고도 남을 터다. 네 몸 값에 과연 얼마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군.”

“……”

“메마른 사막에 비가 내린다면, 그 사실에 의심 없이 감사를 해야 하지 않나? 몇 대에 걸쳐 평민의 피가 뒤섞인 순수하지도 않은 혈통──잡종 따위가.”

“……”

“주제를 알아라.”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면, 내 말이 틀린 건 없었기에 유페미아는 어깨를 떨며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아……’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어째서 급발진을 한 걸까.

유페미아가 자신에게 대드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나?

소시민인 자신과 자아가 뒤섞였는데도 이 정도라면, 본래는 어느 정도로 개 같은 성격이었을지 감도 안 잡힌다.

어찌 되었든 더는 같이 있을 분위기가 아니다 싶어, 나는 얌전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아침 식사는 맛있게 즐기셨습니까?”

“먼저 먹고 일어났을 뿐이다. 안에서 유페미아가 신호를 주면 그 때 하녀들을 불러 치우도록. 그리고…… 고용했던 용병들에게 저택의 뒤뜰로 모이라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용건을 전달하고 세바스를 지나쳐 복도를 걷던 나는, 해가 떠올라 어느 정도 물러간 추위에 옷깃을 여미며 품에서 주섬주섬 서신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작가가 계획 했던 다음 에피소드와 관련이 있을까.’

황실의 인장이 찍혀 있는 서신.

그 안의 내용은 곧 수도에 완공될 아카데미에 흑마도학 교수로써 나를 임명하고 싶다는 요청이 적혀 있었다.

의사를 묻는 뉘앙스이기는 하지만, 거절하면 막대한 불이익을 줄 테니 사실상 통보나 다름이 없다.

브뤼테인 가(家)로서도, 현재의 황실에게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

페르젠의 기억 속에 작금의 황실이 얼마나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다양한 근거 들이 스며들어 있지만, 굳이 그걸 되새기지 않아도 봉건제에서 아카데미를 설립한다는 것 자체가 황실의 위상을 증명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말이 좋아 귀족 자제들의 배움터지, 사실상 몇 년간을 억지로 수도에 볼모로 잡는 것이니까.

조금 극단적인 비유를 들자면 미국에만 유일하게 학교가 있고, 다른 나라의 시민들은 억지로 그 학교의 졸업장을 따기 위해 입학을 해야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어릴 때부터 유능한 개인 가정교사들에게 교육을 받는 귀족 자제들이, 새롭게 배울 무언가가 있기나 할까.

아마 배움터인 학교 보다는, 인맥을 늘리는 사교장으로 변질 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황실도 브뤼테인 가문의 차남인 나를 교수로 임명하고 싶어 하는 것이리라.

브뤼테인 가(家)의 귀족이 교수라면 아무리 콧대 높은 가문의 자제라 하더라도 선생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은연중에 무시를 하지 않을 테니까.

‘후원자가 있다는 전제하에, 평민도 입학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으니…… 여기서 주인공과 마주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설사 마주할 수 없다 하더라도 각 지역의 귀족 자제들이 모여드는 곳이니 원하는 정보를 얻기가 상당히 수월 하겠지.

사박사박.

서신을 고이 접어 품안에 넣고, 뒤뜰로 나온 나는 눈들을 즈려밟으며 정렬해 있는 용병들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 * * * *

‘하……’

레플스 용병단의 대장, 로엠은 눈살을 찌푸리며 덜덜 떨고 있는 새내기 용병을 내려다보았다.

브뤼테인 가(家)에서 들어온 장기 의뢰.

대부호 가문인 만큼 보수도 상당해서 어제 까지는 계속 기분이 들떴으나, 지원 받은 방한 장비를 빼돌려 팔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머리가 아플 뿐이었다.

“대, 대장……”

“닥쳐라.”

방한 장비는 지원을 받은 것이기에, 엄연히 브뤼테인 가문의 소유 물자다.

의뢰가 끝이 나면 손상 된 것을 제외하고는 고스란히 반납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차라리 자신에게 지급 될 한 벌의 방한 장비만을 팔아 치운 것이라면 조용히 넘어 갈 수도 있겠으나, 간도 크게 여유분에 손을 대서 그럴 수도 없게 되었다.

어제 밤, 창고로 방한 장비를 옮기며 수량이 맞지 않았을 때 자신들을 조용히 노려보던 집사의 눈초리가 어떠했는지 로엠은 아직까지도 명백히 기억한다.

“대장. 그래도 브뤼테인 가문이 그 몇 벌의 방한 장비를 팔아 치운 걸로 노발대발 할까? 무, 물론 은빛 갈기 늑대의 가죽으로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미친 소리 하지 마라. 재력가들은 씀씀이가 클 뿐이지 돈을 하찮게 낭비하는 족속들이 아니다. 게다가 이건 그들의 명예와 관련된 일이다. 평민들이 자신들의 물건을 빼돌려 팔았다는데 그냥 넘어 간다면 주변에서 비웃음을 사겠지.”

여름을 제외하면 엄동설한의 추위가 지속되는 곳.

하지만 의뢰의 보수만큼은 상당해서, 제대로 된 실전 경험을 쌓게 해줄 생각으로 새내기 용병들을 몇몇 데리고 왔으나 그게 오착이 되었다.

“너희들은 귀족이란 존재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직까지 모르는 것 같은데, 이번 기회에 잘 지켜보도록 해.”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는 로엠.

그리고 그 때,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 로엠은 고개를 돌려 걸어오는 페르젠을 확인하고서는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이 용병은 왜 이러고 있지?”

“그게……”

노련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로엠은 침묵을 유지하는 페르젠의 대답을 잠자코 기다렸다.

* * * * *

“죽여야겠군.”

이서진의 자아가 결합되었기 때문에, 도덕적 관점에서 설령 죄를 지은 범죄자라 해도 죽이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고 망설임이 발목을 붙잡기는 했다.

하지만 곧 수도로 내려가야 하니, 영주가 자리를 비웠다고 용병들이 헤이 해져 다른 짓거리를 하면 안 되기에 기강을 잡기 위해 본보기를 보여줘서 나쁠 건 없다고 판단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내 말에 용병단의 대장이 검을 빼들고, 안색이 파리해진 용병의 옆으로 서서 팔을 들어 올린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제, 제게는…… 제게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 아내도 죽었기 때문에 제가 없으면!”

“죽여라.”

“제발──!”

저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른다.

이 상황을 외면하기 위해 즉석에서 지어낸 말일 수도 있고, 진짜 다른 영지에서 아비가 돌아오길 간절히 기다리는 자식이 있을 수도 있겠지.

실제로 동정심이 얼추 피어오르기는 했으나, 그것 보다는 어미가 없다면 차라리 애비도 없는 게 대칭적으로 깔끔한 족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강박증의 발작 요소는, 정신적인 질환인 만큼 절대적인 기준이 세워져 있지 않다.

대칭이 어긋났을 때, 소유하고 싶은 게 있을 때.

반드시 그러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낄 때도 있지만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미약한 욕망을 느낄 때도 있다.

이번에는 후자에 속했지만, 어차피 죽이기로 결정을 한 상황에서 보다 편안함을 추구 하고 싶은 게 잘못된 건 아니지 않겠는가.

촤악!

이내 고통 없이 베여 들어간 일격에, 무릎을 꿇고 있던 용병의 목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져 새하얀 눈을 붉게 적신다.

“음……”

옷에 피가 묻지 않도록 잠시 뒤로 걸음을 물린 상태에서 잘려나간 목 단면을 바라보니, 깔끔하지가 않다.

일자 형태의 직선이 아닌, 비스듬한 사선.

“이봐.”

“예! 하명하십시오!”

“다시 베어라. 아니다. 내가 직접 선을 그어주지. 단검이 있나? 있으면 이리 내놔라.”

내 반응에 의아해 하는 얼굴들이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단검을 받은 뒤 울컥울컥 피가 흘러나오는 목 단면에 단검으로 조심스레 선을 그었다.

수치화를 발동시켜 보조를 받고 있는 터라, 무척이나 깔끔한 절단면이 그려진다.

“이 선을 따라 목을 한 번 더 베도록.”

“……”

“내 말이 들리지 않나?”

“아, 아닙니다!”

내 말에 기겁이라도 하듯, 우렁찬 목소리로 황급히 대답한 용병단의 대장이 검을 들고 그려준 선을 따라 목을 다시금 베어 나간다.

아니, 저건 잘라 나간다고 해야겠지.

“시신은 알아서 치우도록 해라.”

“예……”

어긋남 없이 깔끔하게 잘려져 나간 목의 단면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입 꼬리가 씰룩인다.

그리고 이런 나를 보며, 눈앞의 용병들은 마치 귀신이라도 보는 듯한 눈빛을 지었으나 이제는 저런 시선에 익숙해져야 하는 게 이 페르젠의 몸을 차지한 나의 숙명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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