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을 강탈한 악당이 되었다-2화 (2/260)

EP.2 002─페르젠 폰 슈바이크 브뤼테인

춥다.

이대로 계속 서있다가는 동상이라도 걸리지 않을까 싶었기에, 동화되는 페르젠의 기억을 되짚어 본디 가려 했던 집무실로 걸음을 내딛었다.

“초라하군.”

볼품없는 탁자의 재질.

슬며시 풍겨오는 퀴퀴한 냄새.

쌓여있는 서류를 보니, 종이가 아닌 양피지다.

일단 현재 중요한 건 몸을 데우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싶어, 초라한 내부와 어울리지 않는 세련된 벽난로 앞으로 걸어가 불을 피운 뒤 장작을 넣었다.

그리고는 의자에 앉아,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벽난로를 바라보며 지독히도 싸늘한 냉기를 밀어낸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

조용히 속으로 읊조리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자각을 하지 않으면, 너무나도 자연스레 페르젠의 어투가 베어 나와서 괴리감이 느껴진다.

24년의 시간이 녹아들었으니 당연한 거기도 하겠지만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위화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관건은 이게 아니었기에, 나는 편하게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악착같이 살아남는다, 57화로 연재 중지 상태.

그리고 패배한 주인공은 히로인인 유페미아의 도움을 받아 영지 밖으로 탈출한 시점이다.

초반부가 아닌, 이미 물이 엎질러진 시점에서 시작 한다는 건 불행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나마 행복회로를 돌려 본다면 엔딩까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는 것.

주인공이 페르젠에게 와신상담하는 마음으로 복수심을 품고 있을지라도, 그 복수가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소설 속의 세계이기는 하나, 엄연히 현실.

주인공을 죽이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겠지.

완벽히 사지로 끌어 들인다면, 주인공 버프 따위로 살아나간다는 시나리오가 펼쳐질 가능성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아니면……”

유페미아를 죽은 것처럼 위장해서, 자유로이 놓아주는 방법도 있었다.

콰득!

“으읍!”

거의 반사적으로 입술을 깨물어버린 나는 솟구치는 통증에 흘러내리는 피를 손으로 닦았다.

그리고는 당황할 여유도 없이, 유페미아는 이 영지에 대한 애착이 심하니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다는 등등.

방금 전 내가 고려했던 사안을, 나 스스로가 논리를 만들어 깨부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유페미아를 향한 강렬한 소유욕과 집착, 성욕과 애정 등이 솟구쳐 나는 일순간 찾아오는 현기증에 이마를 짚어야만 했다.

‘도대체……’

지끈거리는 아픔에 관자놀이를 짚어 꾸욱 꾸욱 누르다, 이쯤 되면 에르네스어를 완벽히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상태창으로 다시금 눈을 돌렸다.

「 재능 」

▶사체 친화력

▶사체 이해력

▶명필

▶용모단정

「 성격 」

▶강박장애

▶아집

▶독불장군

「 특수능력 」

▶???

▶수치화

사체(死體).

사람이나 동물의 죽은 몸뚱이를 뜻하는 단어.

그러한 사체와 친화력이 높아지고, 사체에 대한 이해력이 상승하는 재능이 왜 있을까 싶었으나 페르젠이 유클리드 등급의 흑마법사라는 걸 어렵지 않게 떠올리고서 납득해버렸다.

“성격이 개판이군……”

강박장애, 아집, 독불장군.

죄다 긍정적으로 볼 수는 없는 것들이다.

특히나 강박장애와 관련해서, 어떤 부분에 강박을 가지는지 알고 싶어 손을 뻗었으나 불친절하게도 자세한 설명 따위는 나오지 않았다.

“……”

강박장애, 쉽게 풀이 하면 특정 불안이나 거슬림을 반드시 해소하려드는 정신적인 질환.

대표적인 예로 결벽증이 여기에 속한다.

강박을 일으키는 발작 버튼은 사람마다 다양한데, 페르젠이 어디서 강박을 가지는지 그걸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딱 봐도 해당 강박과 관련하여 독불장군과 아집이라는 성격이 부정적인 시너지를 낼 게 확실해 보였으니.

‘소설 속에서 페르젠은 제대로 묘사가 되지 않은 시점이니 소설 내용으로 유추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

때문에 입안에 아릿하게 맴도는 피 맛을 느끼며, 나는 페르젠의 모든 것들이 온전히 용해되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리하여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페르젠의 자아가 온전히 스며들었음을 확신한 나는 강박과 관련된 발작 버튼이 무엇인지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소유(所有)와 대칭(對稱).’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 걸 반드시 손에 넣기 전 까지는 끊임없이 그것이 뇌리에 맴돌아 불안과 거슬림을 선사하고.

어떤 것의 대칭이 어긋났다고 느낀 순간, 그것이 자신의 눈에 완벽한 평형을 이루었다고 확신 하지 못하면 미련을 떨칠 수가 없다.

“……”

재능에 기입된 명필과 용모단정이, 대칭과 관련한 강박증 때문에 후천적으로 생겨난 재능이니 얼마나 중증인지는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끼익!

“미쳤군.”

해당 강박으로 페르젠이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에 대해 넋을 놓고 있다, 정신을 차리니 좌우대칭이 어긋난 집무실의 탁자를 이리저리 옮기며 평형을 만들고 있었다.

성격에 어째서 강박증이 아니라 「 강박장애 」 로 기록 되어있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이건 중증을 넘어선 수준이었다.

“아직 이군.”

몇 번째인지도 모를,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가며 탁자의 평형을 맞추고 있었으나 계속해서 미묘한 어긋남이 보인다.

중증 강박으로 인한 착시 현상일까.

차라리 창가 쪽에 탁자를 돌려 붙여 버리면, 완벽한 평형을 이루게 될 테니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 판단을 내렸을 때, 시야에 숫자가 떠올랐다.

R : 2.3°

L : 1.4°

‘각도인가……’

그러고 보니 특수 능력에 수치화라는 게 존재했다.

아마 그것의 능력일거라 생각하며, 왼쪽과 오른쪽의 각도가 모두 0°가 되게끔 탁자를 조금 움직이니 거슬리던 느낌이 말끔히 사라졌다.

“……”

확실히, 이 정도 강박 증세라면 성격에 독불장군과 아집이 충분히 기입 될 만하다고 생각하며 허리를 피우고 주변을 둘러보자 나는 그만 반사적으로 욕지거리를 내뱉고 말았다.

“이런 시발……”

예법에 어울리지 않는 천박한 말이었지만, 페르젠의 자아가 온전히 녹아든 시점에서 바라본 이 집무실의 내부는 평형이 어긋난 물건이 너무 즐비해있었다.

때문에 나는 극도의 짜증을 느끼면서도, 수치화의 도움을 받아 집무실 내부의 물건들이 전부 평형을 이루게끔 만들고 의자에 앉아 짙은 피로를 호소했다.

‘이로써……’

유페미아를 놓아주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나는 깨달았다.

그녀를 향한 강박에 뒤섞인 집착과 애정은, 죽은 시신이 되더라도 곁에 두려 할 것이다.

흑마법사는 시신이 영구적으로 부패하지 않도록 할 수 있으며, 해당 시신을 통제하여 사역할 수 있으니까.

정상적인 성벽을 네크로필리아로 바꾸고도 남을 수준의 소유 강박, 때문에 나는 다른 선택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제일 좋은 건, 주인공인 시엘 미드포드가 성장하기 전에 찾아내서 죽이는 거지만 여름이 찾아오지 않은 에르네스의 북부 지방을 탐색하는 건 현재 끌고 온 병력으로 어림도 없다.

주인공이 현재의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렸을 가능성도 있겠으나, 가정은 항상 최악으로 해야 한다.

절벽에서 떨어진 주인공을 보고 죽었을 거라 판단했던 적들의 최후가 매번 어떠했는가.

하지만 문제는 내가 찾고 싶다고 해서 바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면 자연스레 소거법으로 지금 내가 취할 수 있는 스탠스는 하나, 목적의식을 잃게 하는 것이다.

소설은 57화에서 연재가 중단 되었고, 유페미아를 만난 시점이 32화이기에 주인공과 히로인이라 하더라도 서로가 유대를 쌓은 분량은 25화에 불과했다.

때문에 주인공이 유페미아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은 자신을 도와주고 보살펴준 은혜에 대한 고마움이 가장 컸다.

연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처음부터 자신과 유페미아에 대한 신분적 차이를 자각하고 있던 주인공이라 해당 감정은 52 화에 가서야 간신히 묘사 된다.

반면, 시점을 바꾼 유페미아의 관점에서는 주인공 보다 많은 호감을 가지고 있는 걸로 서술이 되지만 그게 더 발전하기 전에 현재의 ‘나’ 페르젠이 등장한다.

한마디로, 유페미아가 나를 사랑하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주인공은 복수라는 목적의식을 잃게 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납치당한 공주를 구하기 위해 마왕의 성으로 돌격한 용사이지만, 공주가 마왕하고 진심으로 사랑을 나누고 있다면 무슨 수로 검을 빼들어 목을 베겠는가.

심지어 그 마왕은 공주를 억지로 납치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죄가 없다.

허나, 발상은 좋지만 억지로 혼인을 하고 자신을 겁탈한 남자를 좋아할 수가 있나?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이라고, 인질이 범인에게 동조하고 감화되는 현상이 실제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같은 방을 쓴다면 유페미아에게 암살당하지는 않을지 걱정해야 할 판국이다.

“……”

멍하니 고개를 올려, 어둠이 드리운 천장을 바라보며 한참을 생각하다 나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차피 전자가 안 되면 후자를 이뤄야하고, 후자가 안 되면 전자를 이뤄야 한다.

너무 깊게 생각할 건 없다고 생각하며, 나 또한 벽난로의 따스함에 몸을 맡긴 채 뒤늦은 잠을 청했다.

* * * * *

“으……”

외투를 입은 채로 잠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벽난로의 불이 꺼져서 그런지 으슬으슬한 추위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6시 20분.

숨을 내뱉으니 입김이 살살 올라온다.

‘과연, 그 어떤 귀족 여식도 시집을 가려 하지 않는 최악의 북부 영지답군.’

루에르그의 영주는, 괜찮은 상단의 딸과 결혼을 하면 가문의 경사라 해도 손색이 없는 곳이었다.

“충분하군.”

앉아서 잠이 들었던 의자가 평형을 이루게 정리하고서 집무실을 나와 유페미아가 있는 방으로 찾아 간다.

노크는 딱히 필요 없어 보였기에 곧장 문을 열고 들어서니, 침상에 걸터앉아 멍한 시선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유페미아가 보인다.

“유페미아.”

“내 이름을, 입에 담지 마.”

“네 요구를 들어줘야 할 이유가 딱히 없군. 그래도 배려를 해주자면…… 부인으로 불러주지.”

그에 유페미아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고개를 돌려 내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

확실히, 엄청난 미인이다.

봄을 품은 듯한 녹색 머릿결, 별을 빼다 박은 듯한 금색 눈동자, 오밀조밀한 붉은 입술, 오뚝한 코.

허나 그 모든 걸 뒤로 하고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전체적인 비율이 흠잡을 데가 없이 완벽하다는 것이다.

눈과 눈 사이의 거리.

코와 입술의 위치.

자그마한 머리가 신장하고 이루는 밸런스.

특히,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두 팔과 다리의 길이가 정확히 일치하지 않을 텐데 유페미아는 그런 게 없어 보였다.

그야말로 황금 비율.

얼굴만 가리고 마네킹과 함께 서 있는 다면, 누가 사람인지 제 3자는 감히 알아 볼 수도 없으리라.

실제로 수치화를 발동시켜 응시한 유페미아는, 한 치의 어긋남도 잡히지 않았다.

“아……”

정신을 차리니, 유페미아의 두 손을 붙잡고 나신을 덮은 이불을 치운 뒤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품평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수치심 가득한 얼굴과 경멸 서린 눈동자.

“실례했군.”

손목에 자국이 남을 만큼 거세게 붙잡았던 손을 풀어주니 곧장 이불 안으로 손을 집어넣은 그녀가 나이프를 꺼내 들어 내 심장을 찌르려 한다.

절도 있는 동작이었다면 상당히 위협적이었겠지만, 나는 비스듬히 옆으로 몸을 돌린 뒤 나이프를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을 오른손으로 내리쳤다.

“읏!”

“어설프군. 뼈와 근육으로 보호 받고 있는 심장을 여인의 힘으로 꿰뚫으려면, 두 손을 이용하거나 한 손을 이용한다 해도 역수로 쥐어야 할 텐데.”

짜악!

이 말이 비웃음으로 여겨진 건지, 유페미아는 표독스런 눈동자로 내 왼쪽 뺨을 후려쳤다.

그 사실에 어안이 벙벙해져 화가 난다기 보다는……

짜악!

마주 보고 있는 상태에서, 유페미아의 기준으로 왼쪽 뺨을 후려쳐 대각으로 올바른 대칭을 만들었다.

그녀의 손바닥으로 인해 부어올랐을 내 왼쪽 뺨과, 내 손바닥으로 인해 부어오른 그녀의 왼쪽 뺨을 생각하니 잠시 불편해졌던 마음이 잔잔한 호수처럼 가라앉는다.

‘이쯤 되면 정신병자라 해도 손색이 없겠군.’

내게 뺨을 얻어맞고 침상에 널브러져 죽은 시체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울음을 흐느끼는 유페미아를 보며, 주변에 널브러진 옷가지를 주워들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옷을 입어라. 감기에 걸릴 테니.”

“……”

“입지 않는 다면, 어제 밤을 되풀이 할 것이다.”

그 말에 유페미아는 부어터진 입술로 울음을 참으며, 자신의 옷을 황급히 어거지로 입기 시작했다.

“그만.”

“네 말대로 입고 있잖아……!”

“반대로 입었다. 드레스도 아니고, 가난한 평민들이나 입을 법한 거적 데기의 앞뒤를 헷갈리는가.”

보다 못한 내가, 그녀의 옷을 억지로 벗겨 세 살 아이를 다루듯 정성스레 입혀주었다.

“……”

반쯤 내 품에 안긴 유페미아는, 거의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몸을 맡기고 있는 상태.

하지만 정작 다 입히고 나니, 불편한 점이 없잖아 있어 다시금 손을 뻗어 옷매무새를 바르게 정돈해주었다.

재능(才能)──용모단정의 영향 때문인지, 마치 다리미를 사용하는 것처럼 옷의 주름이 깔끔하게 펴진다.

“미친 자식……”

그리고 지금까지와 다른 아주 상냥한 이중성에 유페미아가 낮게 욕을 읊조리지만,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누구보다 나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어서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1 + 1 = 2 라는데, 딴죽을 걸 사람이 있겠는가.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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