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25 - 은밀하고 음란하게(2)
원래부터 무공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위지혜. 그렇기에 그녀는 내가 사는 현실에 왔다고, 딱히 수련을 한다든가 대련을 하지는 않았다. 강해지기 위해서 헌터가 된 소피아와 달리, 그저 자택경비원을 자처한 그녀. 그러나 내가 헌터 일로 집을 자주 비우자, 그녀는 곧 ‘심심함’이란 것을 마주하게 되었다.
‘백랑… 잘 갔다 오세요.’
‘응, 집 잘 지키고 있어.’
‘흐흥, 언니! 그럼 우리 갔다 올게!’
‘그래… 조심히 갔다 와…’
-벌컥
‘……’
아무리 기다려도 흘러가지 않는 시간과 맛있는 걸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 물론 그렇다고 위지혜 혼자 집에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째서인지 세실리아도, 이현아도, 바빠 보였기에 그녀는 혼자서 쓸쓸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한 가지 빛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이현아가 그녀에게 추천해 준 OTT라는 천재지보였다.
‘언니, 심심하시죠? 오빠 올 때까지 이거라도 보고 계세요.’
‘이건…’
‘넷플렉스라는 건데… 으음, 설명은 나중에 해 드릴 테니깐, 일단 이거 1화부터 봐 보세요. ‘너의 아저씨의 이름은’이라고 진짜 재밌는 드라마거든요? 이거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를 거예요.’
‘으응… 알겠어.’
난생 처음 보는 영상 매체. 벽에 걸린 커다란 TV에서 흘러나오는 막장 드라마는… 심심함에 빠져 있던 그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봐도 봐도 끊기지 않는 무한한 분량과, 그녀의 취향을 분석해 다음 볼거리를 추천해 주는 AI의 알고리즘. 상대적으로 문화를 즐기지 못했었던 위지혜는… 현대 문명에게 그만 굴복하고 말았다.
‘어머… 시간대가 다른 거였어? 그럼 아저씨는?! 살아 있는 거야?’
‘이, 이럴수가…! 저렇게 지나친다고?!’
결국 영화, 예능, 드라마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스포츠, 게임 등에도 빠지고 만 위지혜. 얼마 안 가 그녀는 감자칩과 맥주를 끼고 사는 훌륭한 히키코모리로 진화했는데… OTT에 한참 빠져 살 때는 며칠 연속으로 밤을 샌 적도 있었다.
‘너무 재밌다… 한 편만 더 볼까?’
‘뭐, 뭐야 여기서 끊는다고?!’
‘으음… 이번 편은 조금 질리네. 다른 것도 도전해 볼까?’
‘야아! 그냥 한가운데 던져! 뭐하는 거야! 네가 그러고도 프로야?!’
‘그렇구나, 문어는 심장이 3개구나.’
‘슈우웃! 아아, 제발! 어떻게 축구 선수가 저것도 못 넣어?!’
‘요리라… 흐음, 이것도 은근 재밌네.’
‘아, 진짜! 거기서 텔을 타면 어떡해! 본진! 본진! 넥서스 다 깨지잖아아아!’
그런데… 그녀의 행보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OTT에 이어 웹툰, 웹소설, 웹드라마에도 빠지게 된 위지혜. 그중에서도 그녀는 웹소설, 특히 무협지를 즐겨 읽었는데… 재미나게도 그녀는 열렬한 정파 혐오자였다. 그녀 자신이 위지세가 출신의 정파 무인이면서 말이다.
‘그치만… 치사하잖아요! 정파면 정파답게 정정당당해야지! 뒤에서 수작을 부리는 게 어딨어요! 정말… 현실에서든 소설에서든 정파는 극혐이에요!’
‘으응… 그렇구나.’
아무튼 그렇게 하루종일 문화 생활만 즐기고 있는 위지혜.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그녀를 말리지는 않았다.
혼자서 심심해 하는 것보다는 저렇게 즐기는 게 더 좋잖아. OTT에 빠졌다고 해서 나랑 섹스를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야한 장면을 따라하면서 나를 유혹하는 일도 생겼는데… 사람도 아닌 OTT에게 내가 질투를 할 이유는 없었다.
“어머! 미, 미안해요, 백랑! 괜찮아요?!”
“하아, 하아… 죽는 줄 알았어.”
“미안해요. 깜짝 놀라는 바람에… 헤헤헤.”
대신에, OTT에 집중한다고 나를 잊는 건 사양이었다.
-똑똑똑
“오빠, 여기 있어요?”
“현아니?”
“네에. 론 길드 건으로 상담할 게 있어서 그런데, 잠시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지금 나갈게.”
하아… 또 그 녀석들이야? 잠시 쉴까 했는데, 쉬고 있을 여유가 없어졌다. 짜증이 난 나는 마지막으로 위지혜의 가슴을 한 번 빨아 준 다음에, 투덜투덜거리며 거실 밖으로 걸어갔다. 오랜만에, 이현아와 일 얘기를 할 시간이었다.
***
지난 1년 동안 가장 바빴던 사람을 고르자면… 단언컨대, 이현아였다.
헌터 일을 그만두고 내 매니저가 된 이현아. 그러면서 그녀는 헌터가 된 소피아의 매니저이기도 했는데… 소피아가 워낙 인기인이다 보니, 자연스레 그녀가 할 일도 늘어났었다. 던전 일정을 잡는 것부터 길드 대응까지, 오만가지 일을 맡게 된 그녀. 그런데도 그녀의 하는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식사 준비, 빨래, 청소, 기타 등등, 딱히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힘이 약하다 보니, 그녀는 우리 집의 가정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굉장히 미안한 상황.
오랜만에 그녀를 보게 된 나는 울컥하는 마음에 이현아를 안아 주었다.
“하읏?! 오… 오빠?”
“많이 힘들지?”
“바보… 제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그래도, 너 혼자서 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잖아.”
“그렇긴 한데… 언니들에 비해서 제가 능력이 없잖아요. 그러면 어떡해요. 집안일이라도 해야죠. 그리고… 그렇게 미안하면 오빠가 저를 도와주면 되잖아요.”
“그… 그건, 그렇긴 한데…”
“푸흡, 농담이에요.”
정말로 괜찮다는 듯이 활짝 웃고서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이현아. 그녀가 귀여워서 머리를 살짝 어루만져 주자, 현아가 꺄르르 웃으며 나를 끌어안았다.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는 그녀. 이 기특한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범죄나 다름 없었다.
“그것보다 론 길드 말인데요… 이번에도 선물을 보내왔어요.”
“하아아… 또?”
“네에. 와인이랑 치즈를 받았는데… 이거 어떻게 할까요?”
“으음… 뭐, 선물을 준다는데 거절할 것까지는 없지. 챙겨 놔.”
“네에. 근데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될까요?”
“필요한 게 있으면 따로 연락을 하겠지. 지금은 그냥 호감작만 하는 거 같으니깐,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 론 길드 말고 연락한 길드 없어?”
“아직까지는요. 아, 길드 말고 협회에서 연락 온 건 있어요.”
“협회? 거기서 뭐래?”
“혹시 기부할 생각 있냐는데요?”
“하아… 진짜 돌겠네.”
하여튼 길드나 협회나 다 거기서 거기였다. 아니, 인력이 부족한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기부 강요는 좀 아니잖아. 아, 물론 강요까지는 아니었지만… 에휴, 안 보내면 또 이걸로 나중에 지랄하겠지. 날이 갈수록 기득권 혐오가 치솟았다.
“어떡하죠?”
“그냥 내버려 둬. 지랄 좀 듣지, 뭐.”
만약에 단순한 지랄로 안 끝난다면 세실리아한테 가서 얘기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기득권이라 해도 그렇지, 하는 짓이 너무 깡패잖아. 적당히 넘어가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 이상 봐줄 생각은 없었다.
“그럼… 일단 여기까지만 할까?”
“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고마워, 부탁할게.”
그러니… 만약을 위해서 세실리아를 찾아가 볼까? 이현아와 이야기를 마친 나는 간만에 내 딸을 만나러 갔다. 한참 연구한다고 바쁘겠지만… 그래도 잠깐 정도는 괜찮겠지. 나는 착한 내 딸을 믿었다.
***
이런 것을 밝히기는 조금 미안했지만… 세실리아가 지금 연구 중인 것은 ‘가슴을 키울 수 있는 방법’ 이었다. 대놓고 거유인 위지혜와 이현아, 그리고 그녀들 못지 않은 소피아와 달리… 상대적으로, 아니, 객관적으로도 빈유인 세실리아. 그녀는 아닌 척하면서도 빈유라는 사실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그러다 보니 어느날부터 본격적으로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단백질. 과연… 그렇군요. 그럼 어쩔 수 없네요.’
‘…리, 리아야?’
‘아버지. 당분간은 제 입 안에 싸 주시겠어요?’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식단부터 시작해서
‘가슴 마사지라… 이런 것도 있었군요.’
‘그으… 아무리 봐도 그건 미신 같은데…’
‘시도는 해 봐야죠. 그러니 자아… 후훗. 부탁드릴게요, 아버지.’
가슴을 키울 수 있다는 마사지와 운동까지. 거유가 되고 싶었던 세실리아가 시도하지 않은 방법은 없었다. A가 안 되면 B, B가 안 되면 C, 이런 식으로 세실리아는 끊임없이 가슴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어머… 노력한 게 그거야? 어떡해… 백랑이 실망하겠다.’
‘언니! 적당히 좀 하세요. 푸흡, 리아도 작고 싶어서 작은 게 아니잖아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가슴이 자라는 일은 없었다.
‘둘 다… 그만 살고 싶으세요?’
‘히이이익! 오, 오오, 오빠! 언니들이 싸워요!’
그러나 세실리아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나도 남자인지라, 빈유보단 거유를 더 좋아한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방에 틀어박혀서 연구를 하기 시작한 세실리아.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처음부터 분석을 하겠다는데 솔직히 말해서 걱정이 되었다.
가슴 크기라는 거… 결국 DNA가 제일 중요한 거잖아.
하지만 그런 걸 말했다간 세실리아가 서운해 하겠지. 적당히 눈치를 챙긴 난 현아에게 받은 간식거리를 들고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세실리아의 연구를 응원할 겸 그녀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버지… 아, 아버지…”
“리아야?”
“드디어… 방법을 찾았어요! 저도 이제 거유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뜻밖의 희소식을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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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받은 세실리아 일러스트입니다.
성장 버전이라고 생각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