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17 - 아이돌 메이커(55)
곽학수는 아침부터 짜증이 나 있었다. 고작 한 명 때문에 제작사를 찾아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주연 오디션도 아닌 조연 오디션. 그것도 오직 한 명만을 위한 오디션. 그것을 위해 PD가 시간을 내야 한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갑질이었다.
-벌컥
“저 왔슴다.”
“아, 오셨어요?”
그래도… 곽학수는 최대한 이해하려고 했다. 오디션을 볼 배우가 GSB의 배우라는 소식을 들어서였다. 단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다는 GSB의 ‘배우 콜렉터’. 그의 배우라면 조금 불쾌해도, 이 정도 갑질은 인정할 수 있었다.
그래, 그의 배우라면 말이다.
“후우우… 시트러스라.”
하지만… 조금 있으면 찾아올 사람은 배우가 아니었다. 이제 곧 만날 사람은 시트러스의 멤버, 유진희였다. 아이돌 2년차, 연기 경력은 제로. 그런 평범한 아이돌이 오디션을 보러 온다고? 에휴, 진짜 너무하네. 곽학수는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로 시트러스를 홍보하려는 GSB의 속내가 뻔히 보여서였다.
“PD님. 유진희 얘, 얼굴은 예쁘잖아요. 비중 줄이고, 그냥 꽃병풍으로 쓸까요?”
“야, 그럴 거면 가은을 데려와야지. 찾아보니, 걔가 진짜 배우 마스크더만.”
“에이, 우리한테 선택지가 어딨어요.”
“후우우… 야, 인마. 네가 이름값만 좀 있었어도 가능했어.”
“흥. 언제는 싸게 부릴 수 있다고 좋아했으면서, 자꾸 그러기예요?”
그렇기에 메인 작가 역시 불만이 가득한 상황이었다. 아무리 주인공의 여동생이라 해도, 꽤나 비중이 높은 배역인데… 그것을 연기 한번 안 해 본 아이돌이 차지하게 되었으니, 싫은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말이 오디션이지, 사실상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닌가.
어차피 뽑을 거면서 거추장스러운 짓을 한다면서 두 사람이 GSB의 뒷담을 했다. 그리고 그걸 제작사 대표, 한정호가 애써 못들은 척하고 있을 때… 문이 열렸다. GSB의 배우 콜렉터와 유진희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
“안녕하세요! 시트러스의 유진희예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실물이 더 예쁘네, 라는 게 유진희를 본 곽학수의 감상이었다. 긴장을 해서 그런지, 조금은 상기되어 있는 얼굴과 풋풋함과 성숙함 사이에서 머물러 있는… 여자의 몸. 본능적으로 그녀를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생각한 곽학수가 헛기침을 했다.
그를 쳐다보고 있는 GSB 부사장의 시선을 느껴서였다.
배우가 아닌 아이돌을 데려왔음에도 아주 당당해 보이는 부사장. 그의 태도를 본 곽학수가 혹시, 하는 기대를 했다. 성격도 좋아 보이고, 자신감도 넘쳐 보이는데… 연기도 잘 하지 않을까? 유진희의 첫 인상이 좋다 보니 모든 것이 좋게 보였다.
“으응… 나는 괜찮으니깐, 오빠 좋을대로 해.”
“정말이야. 오빠는 내 히어로잖아.”
그리고 놀랍게도, 그 기대가 현실이 되었다.
정말로 동생이라도 된 것처럼, 애틋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진희. 무슨 일이 있어도 오빠를 응원하겠다는 그녀의 진심 어린 감정이 느껴졌다. 게다다 저, 울듯 말듯한 목소리… 저건 절대로 초보자의 연기가 아니었다.
유진희는 아이돌이면서 동시에 한 명의 배우였다.
“오빠아… 흑, 흐으윽…”
그리고… 보는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놀 줄 아는, 호소력 넘치는 배우였다.
“미안해. 미안해, 오빠… 실은 가질 않길 바랐어. 내 옆에 계속 있어 주기를 바랐어. 미안해… 흐윽, 흑… 내가 너무 이기적이지?”
자연스레 독백하며 눈물을 흘리는 그녀. 유진희의 연기에 매료된 곽학수가 입술을 깨물었다. 눈앞의 여자가 불쌍해서, 그리고 안타까워 보여서… 오디션 중인 것도 잊은 채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 그녀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그만큼 유진희의 연기는 설득력이 있었다.
모두에게 사랑 받는 아이돌이 어쩜 저런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주인공과 함께하기 위해 그의 동생이 되었지만, 그렇기에 주인공을 오빠로만 봐야 하는 그녀. 구차할 정도로 오열하고 있는 유진희를 보며, 곽학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혼신의 연기를 펼치고 있는 그녀를 카메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흐으윽, 오빠아…”
“오오…”
그리고… 그가 소리 내어 감탄했다.
화면 속의 그녀는 유진희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배역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 사실에 감동한 곽학수가 녹화 버튼을 눌러 촬영을 시작했다. 처음엔 스케치만 할 생각이었지만, 이대로 넘어 가기엔 그녀의 연기가 너무 아까웠다.
“오빠아아…”
하지만… 그게 곽학수의 실수였다.
“하아, 오빠아… 흑, 으읏… 오빠아아…”
‘저년 뭐야… 지금 보니깐 존나 꼴리잖아?’
저도 모르게 하게 된 저질스러운 생각. 렌즈 너머로 유진희를 바라본 그가, 그녀의 구석구석을 탐닉하며 더러운 음심을 품었다. 헐떡이면서, 온몸을 움찔거리면서… 오빠를 불러 대고 있는 유진희. 불쌍해 보이면서도, 묘하게 음란해 보이는 그녀의 애달픈 모습 때문에… 곽학수는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부드러워 보이는 저 입술.
저 입술을 빨 수만 있다면… 얼마나 짜릿할까?
“이야…”
그렇게… 유진희를 가지고 음흉한 망상을 하기 시작한 곽학수. 맛있어 보이는 건, 유진희의 입술만이 아니었다. 새하얀 티셔츠 안에 숨어 있는, 아직도 성장 중인… 소녀의 가슴. 어깨를 움직일 때마다 드러나는 그 가슴의 존재감을 음미하며, 그가 군침을 삼켰다. 흐르는 눈물에 젖어 모습을 드러낸 분홍색 속옷. 그것을 벗길 수만 있다면 감옥에 간다 해도 괜찮았다.
“오우…”
그리고 저, 허벅지… 그리고 저, 엉덩이… 맛보고 싶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유진희는 배우이기 이전에, 아이돌이기 이전에… 남자라면 누구나 따먹고 싶어할, 맛있는 여자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곽학수의 눈빛이 역겨워졌다.
“다음은… 씬 넘버 138. 오빠랑 화해하는 장면이에요.”
그리고 그건 한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울먹이는 유진희를 보며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을 하고 만 한정호. 그가 은근슬쩍… 그녀의 가슴을 만지기 위해 주인공을 연기하려고 했다. 씬 넘버 138은 주인공이 여동생을 안아 주는 씬. 잘만 한다면 실수인 척, 유진희의 말랑한 가슴을 주무를 수 있었다. 그리고 한성호는 그걸 해프닝으로 만들 능력이 있었다.
“대표님.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도와줘도 될까요?”
“아, 부사장님… 그, 그러면 영광이죠. 대본은…”
“괜찮습니다. 진희랑 같이 연습하면서 다 외웠습니다.”
“와아, 역시 다르시네요. 멋지세요!”
“하하하… 그렇게 아부한다고 민호나 진욱이는 못 데려옵니다, 작가님.”
“아, 너무 티 났나요? 호호호.”
하지만 그러기엔 GSB의 가드가 단단했다. 단호한 목소리로 자기가 하겠다고 말을 꺼낸 부사장. 안타깝게도 한 대표는 그것을 거부할 수 없었다. 연습까지 했다는데, 괜히 여기서 거부했다가는 이상한 오해를 살 수도 있었다.
결국 한 대표 대신 유진희를 끌어안은 부사장. 그것을 본 메인 작가가 소리 내어 감탄했고, 한 대표는 감탄 대신 탄식하며 두 사람의 연기를 지켜보았다.
“앗, 오빠아…”
한편, 그러거나 말거나 곽학수는 대만족하는 중이었다. 어차피 PD인 그는 그녀를 만질 수 없었다. 하지만 카메라만 있다면… 얼마든지 유진희를 강간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시간(視姦)을 위해 유진희의 가슴을 클로즈업한 상태였다.
“미안해, 많이 힘들었지?”
“으응… 아니야, 괜찮아. 나는… 읏?!”
“미안해.”
“오빠… 흣, 으흑…”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유진희의 가슴이 부사장에게 짓눌려…
……응? 뭐, 뭐야…
살짝 눌리는 정도가 아니잖아…!
예상과 달리, 온힘을 다해 유진희를 끌어안은 부사장과… 그런 부사장을 밀어내는 대신 온몸으로 받아 준 유진희. 서로의 몸을 밀착시켜 하나가 된 두 사람을 바라본 곽학수가… 마른침을 삼켰다.
저건 가족 간의 포옹이 아닌, 연인 간의 포옹이었다.
“오빠, 하아… 으응, 오빠아…”
거기다 저 달콤한 목소리는 대체 뭐란 말인가... 마치, ‘그렇고 그런 짓’ 중인 여자처럼, 귀엽게 아양을 떨며… 부사장 품속으로 파고든 유진희.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울음을 삼키던 불쌍한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는 아주 음란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야릇한 표정을 짓고선… 부사장의 굵은 다리를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끼운 그녀. 조금이라도 더, 그를 느끼기 위해 유진희가 온몸을 비벼 대자… 부사장이 그녀의 가냘픈 등허리를 부드럽게 만져 주었다.
그러자 유진희가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타액으로 젖은 입술을 벌리고선 그를 올려다보았다. 입술 밖으로 삐져나온 그녀의 질척한 혀와 무언가를 애타게 바라는 그녀의 눈빛을 보면, 유진희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를 수가 없었다.
“미, 미친…”
그리고… 그걸 받아 줄 생각인 건지, 그녀에게 얼굴을 내민 부사장. 서로의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가까워지자… 곽학수의 입에서 쌍욕이 나왔다. 뜨거운 숨결이 닿아 조금씩 촉촉해지고 있는 입술. 그것을 본 곽학수의 부러움과 질투심이 섞여 나온, 진심이 담긴 외침이었다.
“자, 여기까지 할게요.”
“아…… 네, 네네! 연기 잘 봤어요! 와아, 엄청 잘하시는데요?!”
허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두 사람이 키스를 하는 일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감정이 담긴 포옹을 나눴다.’ 라는 대본에 맞춰 연기를 한 두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 정도면 합격이죠?”
“물론이죠! 역시 GSB! 믿기를 잘했어요!”
“하하하.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그런데… 크흠, 합격해서 하는 말인데, 혹시 대본 수정도 가능할까요? 이게 보니깐 오해의 소지가 있는 대본이더라고요.”
“……네에? 대본 수정요? 갑자기요?”
“저희는 대본대로 연기했는데, 저기 저 두 사람 발기한 것 좀 보세요.”
“……네에에에?! 그게 무슨… 꺄아앗?! 대, 대표님! 설마 PD님도?!”
“아, 아, 아니 이건… 그게…”
“코, 콜록콜록!”
“한 대표님이랑 곽 PD님처럼 성실하고 열정적인 분들이… 저렇게 될 정도면 대본 내용을 조금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 싶네요. 안 그런가요?”
“자, 잠시만요… 대본대로 연기했다기엔 두 사람이 너무…”
“혹시나 해서 조금 격하게 해 봤는데… 컷을 안 하시더라고요. 하하… 그래서 불안해졌네요. 촬영할 때도 저러면 어쩌나 하고요.”
“어어어… 그, 그러게, 왜 컷을 안했지?”
얼굴이 빨개진 채, 곽 PD를 쳐다보는 메인 작가와 하반신을 가리기 위해 이상한 자세를 취한 곽학수. 그리고 둘 사이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는 한 대표. 일이 이상해졌음을 깨달은 메인 작가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억지를 부리기엔 그녀 역시 눈앞의 연기를 멈추지 않았었다.
비록 두 사람과 달리 연기 자체에 빠져서였지만…
저 두 사람은 다른 이유 때문이겠지.
결국 할 말이 없어진 메인 작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두 캐릭터를 가지고, 선정적인 장면을 쓸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깔끔하게 수정하면 그만이었다. 유진희의 연기력을 확인한 이상,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었다.
“그으… 제 선에서 수정하도록 할게요.”
“고마워요, 작가님.”
“하하… 수고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이건 그게,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자기 멋대로, 하하하… 이것 참, 민망하네요.”
“괜찮습니다, 대표님. 이해합니다. 원래 남자들은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저도 요즘 촬영 준비 때문에 날밤을 새웠더니…”
다행히도 부사장이 원하는 건 그거 하나였다. 그에 안심한 한 대표가 활짝 웃으며 부사장과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곽학수 역시 그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경고의 의미였구나. 그렇게 생각한 그가, 마지막 인사를 나누려고 하는데… 부사장이 정색을 했다.
“PD님.”
“……네에?”
“아까 찍은 거 좀 볼 수 있을까요? 돌아가기 전에 피드백을 하고 싶어서요.”
곽학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