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15 - 아이돌 메이커(53)
유진희와 가은에 이어서 은하의 유대 단계도 떨어진 것을 확인한 이시우. 패닉에 빠진 그가, 두 다리를 비틀거리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2집 성공을 위해 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노력했는데… 그 결과가 유대 단계 하락이라니… 이시우는 끔찍한 악몽을 꾸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진 그는 한숨을 내쉬며 최근에 있었던 일을 돌이켜 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자신은 잘못한 게 없었다. 표현이 조금 거칠기는 했지만… 전부 다 부사장을 향한 말이었잖아.
변태 보고 쓰레기라고 한 건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거야?
이시우는 억울해서 정말로 미칠 것만 같았다.
“후우우…”
하지만… 이미 유대 단계는 떨어진 상황이었다. 여기서 그가 화를 낸다고, 유대가 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전자 담배를 피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달은 이시우. 떨리는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한 그가… 얼마 안 가 모든 원인을 부사장에게서 찾았다.
“그래… 그 새끼가 레슨을 해 준다고 했을 때부터가 문제였어.”
가족처럼 친했던 아이들인데… 나한테 정색을 한다고?
분명 부사장이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그와 멤버들 사이를 갈라놓았을 것이 확실했다. 그렇지 않고선 고작 몇 달만에 유대 단계가 떨어질 리 없었다.
순진한 애들이니 어른이 하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겠지… 정말이지 역겨운 상황. 이시우는 부사장이란 권력을 이용해 가스라이팅을 한 그 놈을 용서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선 부사장의 더러운 실체를 밝혀야만 했다.
“개새끼…”
그러나… 지난 번처럼 바보같이 흥분해서는 안 됐다. 이미 멤버들이 넘어간 이상, 괜한 오해를 사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뭣도 모르고 부사장의 욕을 했다간, 괜히 또 나쁜 사람으로 몰릴 수 있었다.
그렇기에, 우선은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부사장이 쓰는 레슨실로 찾아간 이시우. 가은과 시엘이 안에 있었지만 그의 목적은 난입이 아니었다. 이시우는 비어 있는 회의실에서 숨어 있다가, 레슨실이 비었을 때… 슬쩍하고 감시용 카메라를 설치할 생각이었다.
-끼이익
“우으으… 느낌 이상해…”
“그래도 좋았지?”
“그렇긴 한데… 히잉, 걷기 힘들어…”
그런데… 레슨실에서 나온 가은과 시엘의 반응이 뭔가 수상했다.
싱글벙글 웃고 있는 가은과 어째서인지 제대로 ‘걷지를 못하고’ 있는 시엘. 이상할 정도로 상기되어 있는 두 사람의 얼굴을 목격한 이시우가… 알 수 없는 불안함을 느꼈다. 두 사람 다 이시우에겐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었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들이 굉장히 야하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별 생각도 안 들었던 가은의 다리가 오늘따라 음란하게 보였고, 평소엔… 아니,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어리게만 보였던 시엘이… 지금은, 이제 막 ‘여자’가 된 것처럼 풋풋한 색기를 뿜고 있었다.
그것을 본 이시우의 심장이 쿵쿵거리며 날뛰기 시작했다.
“부축해 줄까?”
“……으응.”
“자.”
“하으읏… 이, 이상한 곳 만지지 마!”
“에잇.”
“아앙! 마, 만지지 말라니깐!”
그리고 그런 이시우에게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났다.
대체 무슨 레슨을 받았길래… 저렇게 땀을 흘리고 있는 걸까? 송글송글 맺혀 있는 땀방울들과… 그와 반대로 멀쩡해 보이는 트레이닝 복. 회의실에서 나온 이시우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해가 안 되는 두 사람의 복장에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몸은 땀투성이가 되어 있는데… 옷은 그대로라고?
뒷목을 타고 흐르는 가은과 시엘의 땀. 순수한 남자로 하여금 불순한 마음을 품게 만드는 그 야릇한 모습에… 이시우가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뽀송뽀송해 보이는 트레이닝 복이… 그녀들을 믿으려고 하는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설마… 아니지?
“하아아… 빨리 숙소에 가서 자고 싶어…”
“그렇게 힘들었어?”
“응… 언니야 익숙하겠지만… 나는 처음이었잖아.”
“하다 보면 즐기게될 거야.”
“우으으… 아, 몰라! 이런 레슨은 진짜 사양이야!”
너무나도 심각해진 이시우의 마음.
하지만 그는 가은와 시엘을 믿기로 했다. 그냥… 통풍성이 좋은 옷이겠지. 끔찍한 상상을 해 봤지만, 그렇다기엔 두 사람의 반응이 생각보다 멀쩡했다.
만약 ‘그’ 부사장한테 ‘그렇고 그런 짓’을 당했다면, 절대로 저렇게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가스라이팅을 당했다 해도, 저건 결코 ‘그것’을 당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시우는 안심할 수 있었다.
레슨이라고 했으니… 조금 격하게 굴린 거겠지. 떠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본 그가, 억지로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벌컥
“후우… 나도 좀 씻고 올까?”
그런데 그때 부사장이 타이밍 좋게 레슨실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그의 마음이 다시 흔들리고 말았다. 어째서인지… 두 사람 못지 않게 땀투성이가 되어 있는 부사장. 대체 무엇을 가르쳐 줬길래 저런 꼴이 된걸까? 평범한 레슨이라고 넘어가기엔 세 사람의 모습이 너무나도 수상해 보였다.
다시 또 불안해진 이시우가 비어 있는 레슨실 안으로 달려갔다.
“윽?!”
그리고 저도 모르게 우욱, 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굽굽한 냄새를 억지로 덮고 있는 탈취제 냄새. 쓰레기통을 뒤져 봐도 사용이 완료된 ‘그것들’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레슨실 안은 완전히 엉망이 되어 있었다. 여기저기가 다 알 수 없는 액체들로 젖어 있었고, 불쾌한 습기 때문에 거울이 뿌옇게 변해 있었다.
“이건…”
뿐만 아니라 레슨실 안 곳곳엔 무언가를 찍기 위한 카메라들이 놓여져 있었는데… 각각의 각도들이 굉장히 불순해 보였다. 마치 축축하게 젖어 있는 어느 한 장소를… 집중적으로 찍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 아니지?”
그에 이시우가 홀린 듯이 카메라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떨리는 손을 내밀어, 카메라의 메모리를 확인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카메라에는 그 어떠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카메라가 뜨거운 것만은 확실했다.
따라서 방금 전까지 촬영을 했을 게 분명한 상황. 초조함을 느낀 이시우가 고개를 돌려 레슨실 안을 둘러 보았다. 그리고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노트북을 발견했다. 그것을 확인한 이시우가 서둘러 노트북으로 뛰어갔다.
-벌컥.
“이 팀장? 너 거기서 뭐 해?”
그러나 이시우는 노트북 안을 확인할 수 없었다. 씻으러 간 줄 알았던 부사장이… 갑작스레 나타나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시우의 눈앞이 깜깜해 졌다.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프라이버시 몰라? 개인 노트북이잖아.”
“죄송합니다…”
“2집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는거 아는데, 그래도 우리 선은 넘지 말자. 응?”
“죄송합니다…”
“하아… 그리고, 야. 내가 시트러스 2집을 왜 유출해. 그거 한다고 주가가 오르냐? 아니면 뭐 내가 작전이라도 걸 줄 알았던 거야?”
“그게… 그런 소문을 들어서…”
“소문? 어떤 개자식이 그래?”
“진수가… 아, 아닙니다. 헛소문일 겁니다.”
“허허, 거 참… 너 시트러스로 성공하는 게 사장님 소원인 거 알지?”
“네.”
“그리고 그게 내 소원이야. 그러니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정신 차려.”
“죄송합니다. 정신 차리겠습니다.”
누군가 시트러스의 2집 타이틀 곡을 유출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게 부사장일 수도 있다… 라는 헛소문을 들었다고 핑계를 댄 이시우가, 가까스로 위기를 극복했다. 멍청한 부사장은 되도 않는 그의 이야기를 믿는 눈치였다.
덕분에 부사장을 속이게 된 이시우.
본인 대신 박진수를 곤궁에 빠뜨린 그가 은근슬쩍 부사장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물어 봤다. 이렇게 된 이상, 적어도 레슨실이 왜 이 꼬라지가 됐는지 정도는 알고 넘어가야 그의 마음이 편했다.
“아? 이거? 히터를 풀로 틀어서 그래.”
“……네?”
“이열치열 정신 몰라? 복귀하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날씨가 더워질 거 아냐. 그땔 대비해서 실수하지 않도록 극한 훈련을 시킨 거야. 너 내가 특전사 나온 거 알지? 그때 배운 건데… 이게 어느 직업에나 다 통하는 훈련이거든.”
당당한 얼굴로 개소리를 펼치는 부사장… 터무니 없는 진실을 알게 된 이시우가 허무함을 느꼈다. ‘그렇고 그런 짓’은 개뿔, 부사장은 말 같지도 않은 레슨을 시킨 것이었다. 그러니 레슨실 안이 이렇게 되지. 이시우가 헛웃음을 쳤다.
“아, 카메라? 내가 보니깐 요새 애들이 카메라 울렁증이 있는 거 같더라고. 그래서 분위기도 살릴 겸, 치료도 할 겸 녹화 버튼을 눌러 놨어.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와야 애들이 집중을 하더라고.”
카메라가 켜져 있었던 것도 부사장만의 독특한 생각 때문이었다. 무대 위에 올리지도 않고, 고작 이런 걸로 울렁증을 고치려고 하다니… 그가 진심으로 부사장을 역겨워 했다. 게다가 시트러스는 그 누구도 울렁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이건 그저 부사장만의 자기 만족이었다.
이런 틀딱이 유능하다고?
역시 개소리였어.
부사장의 유능함이 꾸며진 사실인 걸 확신한 그가, 한층 더 밝아진 얼굴로 레슨실에서 빠져나왔다. 가은과 시엘의 옷이 멀쩡했던 것은 자기가 모르는, 그리고 사실 별 거 아닌, 평범한 이유 때문일 게 분명했다.
“후후후.”
약점을 찾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기분이 좋아진 이시우. 싱글벙글 웃으며 사무실로 돌아가는 그의 눈앞에… ‘띠링-!’ 하는 소리와 반투명한 알림창이 나타났다.
[시엘의 유대 단계가 2단계로 하락했습니다.]
“……씨발?”
샤워실에서 씻고 있는 가은이, 시엘 앞에서 그의 뒷담을 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