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00 - 아이돌 메이커(38)
도대체 언니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오늘도 진희 언니를 남들 몰래 의식하고 있는데, 쓸모없는 방해꾼이 나타났다. 이시우… 불쾌한 인간. 진수 오빠는 그래도 순수한 면이 있었지만, 저 사람은 달랐다.
마치 자기가 우월한 존재인 것처럼 우리를 내려다 보는 쓰레기.
다른 멤버들은 저 사람의 본성을 잘 모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시우, 저 사람은 음흉한 속내를 가지고 있는 더러운 인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소중한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시트러스의 ‘누구’처럼 말이다.
うぅ… 気持ち悪い。
동족혐오 때문인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유키, 잠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에에엣, 와따시?!”
“응.”
“なになに(뭐야뭐야)? 무슨 일 있어요?”
“아, 별 건 아니고…”
그런데, 대화를 나누자 더더욱 속이 불편해졌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내게 고민을 물어 보는 이시우. 자기만 믿으라면서… 나를 도와 주겠다는 눈앞의 남자 때문에 머리에서 발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대체 뭘 알고 저러는 걸까?
이시우를 한층 더 경계하게 된 나는 그의 눈치를 보며 말을 돌렸다. 괜히 도움을 받았다가, 나한테 이상한 걸 요구할 수도 있잖아? 그러니 이시우한테 도움을 받을 바엔, 차라리 나 혼자 해결하는 게 맞았다.
“大丈夫だよ(괜찮아요)! 고민 같은 거 없어요!”
“…그래? 알겠어. 그래도, 혼자서 못 버틸 거 같으면 언제든지 찾아 와.”
“헤헤헤, 고민이 생기면 그렇게 할게요!”
“으응. 그리고 조금 있으면 N-라이브지? 방송 잘하고.”
“はい(네)!”
내 어깨를 툭툭 건드리고는 떠나가는 이시우. 성희롱으로 고소하고 싶다는 생각을 겨우겨우 참은 난, 진희 언니를 떠올리며 다시 레슨실로 돌아갔다. 이시우 때문에 피곤했지만 진희 언니가 울고 있는 모습을, 흐응… 상상하면, 하아아… 언제라도, 다시 기운을 낼 수 있었다.
====
====
N-라이브에 시트러스 완전체가 뜬다는 소식에, 흥분한 박수민이 미친듯이 날뛰며 컴퓨터를 켰다. 얼마 전부터 격주로 방송을 해 왔던 N-라이브. 가끔 가다 게스트로 멤버들이 나온 적은 있었지만, 완전체로 방송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은하야, 하아, 은아야, 하아, 은하야, 하아, 은아야, 하아]
[완전체 ㅋㅋㅋㅋ 왔다아아아 ㅋㅋㅋㅋㅋㅋ]
[에루 쨩! 에루 쨩! 에루 쨩! 에루 쨩!]
[급함) N-라이브 자꾸 튕기는데 이거 어케해야 해? ㅠㅠㅠㅠ]
[타갤가서 분탕치는 놈들 다 밴입니다. 조심하세요.]
그래서인지 커뮤니티 역시 폭발해 있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시트러스 완전체 방송. 모든 멤버들이 다 나온다는 건 팬들한테 전달할 말이 있다는 거니, 시트러스 팬이라면 흥분을 안 할 수 없었다.
혹시 드디어 컴백 날짜를 공지하는 걸까? 기대를 품고 녹화 세팅을 마친 박수민이 황홀한 얼굴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공지도 공지였지만, 언니들이 있을 때만 볼 수 있는 유키시엘의 동생 모먼트. 그걸 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박수민은 이미 배가 부른 상태였다.
[곤니치와! 안녕, 안녕-!]
[시엘 쨩, 바카! 곤니치와는 점심 인사라구우!]
[으응? 아, 알고 있어! 웃자고 농담한 거잖아!]
[에에에에… 우소! 시엘쨩이 그걸 알고 있을 리가 없잖아!]
[뭐어? 야, 아무리 나라도…]
[하잇, 미나상 곰방와~!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시트러스예요!]
[야, 야아아!]
[2주만이지? 헤헤, 놀랍게도 오늘은… 쨔잔-! 언니들이랑 같이 하는 방송이야!]
[유키, 너 자꾸 나 무시할 거야?!]
[시엘, 시끄러워.]
[으, 은아 언니?!]
“후후후, 아 귀여워…”
안정적인 유키시엘 콤비의 만담으로 시작된 방송. 언니들과 함께라서 그런지 두 사람 다 텐션이 평소보다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언니들 역시 유키시엘의 장난을 받아주면서 역대급 방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역시 완전체가 최고라니깐...
그렇게 생각하며 박수민이 움짤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 그러면 시트러스의 리더! 누구보다 언니 같은 우리의 진희 언니부터! 인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박수, 박수-! 짝짝짝짝!]
[아하하… 여러분 안녕? 진희예요.]
[언니이! 존댓말 금지!]
[응? 아아, 맞아. 그랬지. 후후, 여러분 안녕? 운 좋게 시트러스의 리더를 맡고 있는 진희라고 해. 다들 잘 지냈어? 요즘 많이 춥지? 다들 감기 조심하고…]
[언니이! 날씨 얘기는 너무 틀딱 같잖아!]
[으응? 트, 틀딱?!]
[시엘 쨩! 언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틀딱이 아니라 늙은이라고 해야지!]
[느, 늙은이?!]
[푸흡.]
시엘을 혼내는 척 진희를 약올리는 유키. 그 모습이 너무너무 귀여워서 박수민이 미소를 지었다. 작년에만 해도 언니들은 건드리지 못했던 유키였지만, 1년 사이에 많이 친해진 건지 유키의 스스럼이 훨씬 연해졌다.
[앗, 은아 언니 지금 비웃었지!]
[아니.]
[뭐래애, 웃었잖아! 다 들었거든?]
[안 웃었어.]
[흥, 유키! 너도 들었지?]
[에에엣, 못 들었는데? 은아 언니가 뭘 했다고 그러는 거야.]
[……하아? 으, 은하 언니! 언니는 들었지?]
[자, 그러면 내가 인사할 차례지? 얘들아, 안녕. 시트러스에서 랩을 담당하고 있는 래퍼, 은하야. 오늘도 잘 부탁해.]
[아아앙, 은하 언니까지 왜 그래애!]
“에루 쨩… 초 카와이!”
그리고 다른 멤버들 역시 작년보다 사이가 더 좋아 보였다. 아무렇지 않게 시엘을 가지고 놀기 시작한 멤버들. 리엑션 담당답게 공격을 받은 시엘이 어쩔 줄을 몰라 하자, 박수민이 감탄하면서 그녀의 반응을 저장했다. 진희를 약올리는 것도 재밌었지만, 역시 시엘을 놀릴 때가 제일 재밌었다.
[가은 오늘은 평범하네? 평범하게 존나 예쁘다고 ㅇㅇ…]
[존나 예쁘긴 한데 그 움짤만큼은 아니네. 아숩아숩.]
[회사 차원에서 자제시킨 거 아니야? ㅋㅋ 그때 진짜 미쳤었는데 ㄷㄷ]
한편 시트러스가 만담을 하든 말든, 유동팬들의 관심사는 가은이었다. 대다수가 지난 방송의 ‘그 움짤’을 기대하고 들어온 상황. 하지만 오늘의 가은은 ‘파탈’이란 별명이 생긴 거에 비해 다소 평범… 이라기엔 말도 안 될 정도로 예뻤지만, 아무튼 지난 번처럼 ‘동정을 죽이는’ 섹시한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진희 언니 ㅠㅠㅠ 존예보스 ㅠㅠㅠㅠ]
[솔직히 진희가 더 예쁘지 않나요? 엄청 사랑스러운데…]
[하아… 개소리긴 한데 사랑스러운 건 ㅇㅈ. 오늘 장난 아니네.]
그렇기에 팬들의 주목을 산 건 진희였다.
오늘따라 엄청 당당해 보이는 진희. 남들의 눈치를 보던 모습이 사라져서 그런지, 진희가 한층 더 사랑스러워져 있었다. 그리고 흐뭇하게 동생들을 바라보는 맏언니다운 모습까지 더해지자, 진희에게서 따뜻한 모성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혹시 SW한테 상담이라도 받은 걸까?
역시 리더는 저래야지, 라며 박수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다음에, 아이 컨택을 하는 유키와 진희의 모습을 캡쳐한 뒤, 상기된 얼굴로 두뇌를 회전시켰다. 언니를 동경하는 유키와 그런 동생을 챙겨 주는 진희. 하아… 유키시엘 조합도 좋았지만… 유키진희 조합도 만만치 않았다.
역시 시트러스는 아무렇게나 조합을 짜도 흥하는 최고의 그룹이었다.
[그래서… 응! 날씨가 따뜻해졌을 때! 그때 볼 수 있을 거예요!]
[아이 참! 진희 언니, 날씨 얘기는 그만 하래두!]
[아, 아앗! 나도 모르게…]
[우우우, 시엘 쨩! 너 자꾸 언니 괴롭힐 거야?!]
[으응?!]
[시엘 쨩 코와이! 무서워! 나쁜 사람!]
[자, 잠시만… 괴, 괴롭힌 게 아니라, 야아! 갑자기 배신하기 있어?]
[푸흡.]
[앗, 은아 언니 또 비웃었지?!]
[아니.]
[웃었잖아!]
[아무튼 오늘 방송은 이걸로 끝이야.]
[아이잉, 진짜 은하 언니까지 왜 그러는 거야아!]
[시엘 쨩! 자꾸 그러면 사장님한테 혼나!]
[ㅋㅋㅋㅋ 에루 쨩 존나 귀엽네 ㅋㅋㅋ 가은 보러 왔다가 입덕함 ㅋㅋ]
[1시간 순삭 엌ㅋㅋㅋㅋㅋㅋㅋㅋ]
[뭐임? 벌써 끝남???? 봄에 컴백한다는 거지? 그런 거지?]
“하아… 최고였어.”
완전체다운 아주 훌륭한 방송이었다. 덕분에 움짤로 만들 장면들을 왕창 획득한 박수민이 싱글벙글 웃으며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방송이 끝나기 30초 전에, 팬들의 심장을 고장내는 위험한 장면이 찾아왔다.
[은나 언니! 이거 하나는 확실히 하고 끝내!]
[응?]
[언니 웃은 거 맞잖아!]
[……]
[……]
매혹적인 표정으로 시엘을 바라보고는, 아름답게 눈웃음 치는 가은. 그녀의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시엘의 작고 귀여운 귓볼을 어루만지자… 시엘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 올랐다. 그러나 가은은 멈추지 않았고, 천천히 시엘에게 다가가 야릇한 목소리로 그녀의 물음에 대답해 주었다.
[후후, 웃은 거 맞아.]
그 순간 사고를 멈춘 박수민이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미친 사람처럼 괴성을 질러 대며 집 안을 뛰어다녔다. 그리고 커뮤니티 역시 잠시 동안 침묵하더니… 서버가 마비될 정도로 트래픽이 증가 되어, 얼마 안 가 터지고 말았다.
마지막의 마지막에서야 드러난 가은의 진짜 매력.
평범하기는 개뿔… 존나 야하잖아!
[엣, 앗, 읏, 어어? 에… 그, 그… 그럼 여기까지야 다들 안녕!]
첫눈에 반한 사람처럼 수줍어하는 시엘과, 그런 시엘을 잡아먹을 것처럼 음란하게 쳐다보는 가은. 두 사람의 므훗한 모습이 커뮤니티를 초토화시켰고, 둘의 모습이 담긴 움짤이 온갖 사이트에 퍼져나가며 시트러스의 이름을 홍보했다.
[얘네 누구임? 표정 봐, 미쳤네;; 존나 따먹히고 싶다 ㄷㄷ]
[와아… 배우 수준이네 얘는…]
[미친 ㅋㅋㅋㅋㅋㅋ 시트러스 미쳤냐고 ㅋㅋㅋㅋㅋ]
[얘 걔 맞지? 그 움짤로 유명한 애.]
[진짜 팜므파탈이네 ㅇㅇ… 나였으면 바로 ㅇㅇ…]
얼마 후, 정신을 차린 박수민이 주먹을 불끈 쥐며 확신했다. 몇 달 후 공개될 시트러스의 2집은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1집 때는 부족했던 캐릭터성까지 잡았으니, 시트러스에겐 이제 대박날 일만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