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92 - 아이돌 메이커(30)
일주일간의 짧은 연애를 마치고, 다시 원래 사이로 돌아간 우리 두 사람. 솔직히 말해서 마지막 날엔 부사장님과 ‘그렇고 그런 짓’을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역시나 부사장님은 공과 사가 아주 철저한 사람이었다.
애무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나를 설득한 부사장님. 남자 친구로서 나를 사랑해 줄 땐 아주 진심이었던 그가… 내가 선을 넘으려고 하자 성실한 어른이 되어 나에게 아주 따끔한 충고를 해 주었다.
‘진희야, 너무 조급해 하지 말고 천천히 잘 생각해 봐.’
정말이지… 좋은 사람. 덕분에 나는 감정에 휩쓸려 선을 넘는 것을 멈출 수 있었다. 만약 한지영을 따라잡겠다고 억지로 부사장님과 섹스를 했다면… 결국은 왜 그런 짓을 했냐면서 자책하지 않았을까?
물론 부사장님은 자상하고, 상냥하고, 부드럽고, 키스도 잘하고, 애무도 잘하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지만, 그래도 첫 경험인데 좋아하는 남자랑 해야 할 거 아냐. 그러니 섹스는 부사장님이 담배도 끊고, 살도 빼고, 잠도 많이 자서, 건강해 졌을 때, 그래서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을 때 하는 게……
…맞는 건데, 쟤는 또 왜 여기 있는 거야?
“아, 언니 왔어?”
부사장님과 레슨을 하려고 왔는데, 은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부사장님은?”
“화장실.”
“…그래?”
“응.”
“……”
“……”
“으음, 레슨은 잘 받았어?”
“응.”
“……”
“……”
“그렇구나… 근데 안 내려가?”
“후후, 가야지.”
대화를 하려는 건지, 마려는 건지, 자꾸만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은아. 그러면서도 싱글벙글 웃으면서 나를 쳐다 보는 게… 상당히 기분 나빴다. 뭐, 어쩌라는 거야? 분명 레슨은 30분 전에 끝났을 텐데, 왜 안 가고 남아서 저렇게 웃고 있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혹시 데리러 오기로 한 진수 오빠가 늦는 걸까?
짜증이 난 나는, 대충 그렇게 생각한 다음에 은아를 무시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은아에게서 처음 맡아 보는 은은한 향기가 흘러나왔다. 얼마 전에 쇼핑을 했다더니 새로운 향수라도 산 모양이었다.
“응? 은아야, 너 향수 뿌렸어?”
“아니.”
“…그래?”
“후후, 내가 뿌리진 않았어.”
“…그으래?”
“응. 아, 연락 왔다. 그럼 나 먼저 가 볼게.”
“으응… 수고했어.”
“후후. 언니도 수고해.”
알 수 없는 말만 하곤 사라진 은아. 나는 멍한 얼굴로 연습실에 남아 부사장님을 기다렸다. 오늘따라 은아가 한층 더 이상해 보였지만… 뭐어 한두 번 저러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부사장님과의 레슨에 집중할 차례였다.
-벌컥
“후우… 아, 왔어? 은아는 먼저 갔나 보네.”
“헤헤, 네, 저 왔어요 부사장…… 니임…”
“응? 갑자기 왜 그래?”
“향수…… 바꾸셨어요?”
“아, 으응. 은아가 선물해 줬어. 어때? 냄새 좋아?”
그런데… 아하하, 참… 진짜 어이가 없네.
이거 알려 주려고 기다린 거였어?
사흘만에 만나는 부사장님에게서… 아까 맡은 냄새랑 정확히 똑같은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즉, 은아는 부사장님한테 선물한 향수를 내게 자랑하려고…… 아니, 잠깐. 자기가 뿌리진 않았다고 했잖아.
그럼 부사장님이 직접 뿌려 줬다는 거야?
그, 그것도 아니면, 설마… 냄새가 밸 정도로 진한 스킨십을 했다는 거야?
“…우욱.”
소름 돋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무조건 내 생각이 맞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오늘따라 이상해 보였던 은아를 생각하면… 은아가… 나를 비웃으면서, 나를 기만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착한 줄 알았던 은아가 말이다.
“냄새 너무 별로예요.”
“그, 그래?”
“죄송한데 환기 좀 해 주세요.”
배신감에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
“……그래서 말인데, 이번 오디션은……”
은아가 나를 견제했던 건 사실이다. 부사장님처럼 좋은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속였었잖아. 그때, 표정 하나 안 바꾸고 거짓말을 했던 걸 생각하면… 은아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마냥 순진한 아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을 넘는 애는 아니었는데
독점욕이라도 생긴 건지,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설마 부사장님과 같은 냄새를 공유한 다음에, 그걸 나한테 과시할 줄이야… 이미 자기랑 부사장님은 그렇고 그런 걸 하는 사이니깐, 나 보고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라는 거잖아. 우으으… 당황스러워서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부사장님, 이게 이번 타이틀 곡 안무인데요…’
‘으, 은아야?’
‘이렇게 추는 건데… 어머, 지금 어딜 봐요?’
‘갑자기 무슨.’
‘제 가슴이 그렇게 보고 싶으세요? 후후… 변태. 보여드려요?’
이런 식으로… 레슨 중에 갑자기 평가해 달라면서 춤을 췄겠지?
당연히 유혹하기 위해 노브라였을 거고, 어어, 어쩌면… 부사장님이 보는 앞에서 직접 벗었을지도 몰라. 그래서 충격을 받은 부사장님은 은아를 혼냈지만, 은아는 멈출 생각이 없었고… 그러다가 부사장님을 덮쳐 그의 옷을 벗긴 다음에…
“……자, 이게 대본이야.”
“쇄골을…”
“응?”
“아, 아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아, 망상이 너무 심했나?
향수 냄새 때문에 두 사람을 흉보다니, 죄책감이 들었다. 부사장님처럼 공과 사가 철저한 사람이 은아랑 그렇고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없잖아. 그리고 은아처럼 예쁜 아이돌이 부사장님한테 그런 감정을 가졌을 리가 없잖아.
다시 생각해 봐도 너무 억지였다.
그냥 은아가 장난친 거겠지.
숨은 의미가 있다고 해도, ‘언니도 받은 게 있으면 돌려 줘야하는 거 아니야?’ 라는 뜻으로, 자기가 선물한 향수를 강조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종종 이상한… 모습을 보여 줘서 그렇지 은아도 본성은 착한 애잖아.
감사의 의미로 향수까지 산 걸 보면 은아는 순수한 애가 맞았다.
후우… 반성해야지.
망상을 멈춘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부사장님이 건네 준 대본을 읽었다.
[나영: 제발, 이러지 마세요!]
(나영이 울먹이면서 호진을 바라본다.)
[호진: 얌전히 있어. 흐흐… 내가 너 하나 때문에 돈을 얼마나 쓴 줄 알아?]
(벨트를 푼 호진이 떨고 있는 나영 위에 올라탄다.)
(이윽고 바지가 벗겨지고, 팬티를 내린 호진이 나영에게 다가간다.)
[호진: 너 하나 때문에 돈을 얼마나 쓴 줄 아냐고!]
(포효하는 호진. 그런 호진을 바라본 나영이 조용히 흐느낀다.)
[나영: 호진 씨 제발… 호진 씨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
[호진: 하하하…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반라가 된 호진이 나영 위에 올라타 그녀의 뺨을 때린다.)
(그때 나영은 호진의 손이 떨리고 있다는 걸 눈치챈다.)
ㄴ이게 중요한데, 이때 눈빛으로 호진을 무서워하면서도 그를 동정하는… 나영의 복잡한 심정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해. / 몇 대 몇으로요? / 지금은 한 8 대 2 정도? 이게 갈수록 동정하는 비율이 더 올라갈 거야. / 이해했어요.
[호진: 네가 뭘 알아? 응? 네가 뭘 안다고 나를 평가해!]
[나영: 호진 씨… 제, 제발… 아아아!]
(머뭇거리던 나영의 치마를 벗긴 호진이 그대로 자기 물건을 삽입한다.)
(당황한 나영이 발악을 하지만 호진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ㄴ부사장님… 해 주실 거죠? / 꼭 해야 해? / 당연하죠.
그런데 이거… 내가 알던 대본이 아니었다.
“아아, 미안. 실수했네. 이게 네 대본이야.”
“바, 방금 거는…”
“그게… 미안한데 그냥 잊어줄래? 하하…”
“한지영이랑 레슨할 때 쓰는 대본이죠?”
“그으… 으응, 맞아.”
둘이 그렇고 그런 걸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직접적으로 알게 되자 속이 울렁거렸다. 진짜로… 하는구나, 두 사람. 빈 곳에 쓰여 있는 낙서들을 보자, 불쾌한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ㄴ근데 부사장님 너무 잘하는 거 아니에요? / 너 그거 성희롱이야 / 성희롱하는 건 부사장님이잖아요 뺨 때리고, 강간하고… 아 이건 성희롱이 아니라 성폭행이네 / 야, 내가 아니라 호진이거든? / 아앙, 부사장니임! / 에휴
ㄴ 부사장님 너무 커서 아파요 / 그건 어쩔 수 없어 / 상대 배우도 부사장님처럼 클까요? / 촬영할 땐 시늉만 하잖아 / 아니 그냥 궁금해서요 / 몰라 인마 / 연락처 이름 대물이라고 바꿀까요? / 죽을래?
하라는 대본 분석은 안 하고 시덥잖은 농담을 나누는 게 너무나도 꼴 보기 싫었다.부사장님은 그저… 레슨을 도와 주는 건데… 그것도 모르고 역겨운 애교를 부리는 한지영이 미웠다.
공과 사가 철저한 부사장님이랑 이런 얘기를 주고받는다고?
거짓말... 나보다 가까워 보이잖아.
부사장님은 나만의 치트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의 착각이었다. 나라는 존재는 부사장님에게 레슨을 받는… 그저 그런 평범한 배우일 뿐이었다. 반면에, 한지영은 부사장님이랑 진심을 주고 받는… 나보다 훨씬 더 소중한 존재였다.
그러니 부사장님이 둘 중에 누굴 더 원할지는 안 보고도 뻔했다.
“한지영이랑 되게 친하네요?”
“응? 아아, 뭐어… 가르친 지 거의 1년이 넘었으니깐 친할 수밖에 없지.”
“거짓말.”
“으응?”
“오래돼서 그런 게 아니라… 섹스해서 친한 거잖아요.”
“……뭐어?”
“한지영이… 부사장님이랑 섹스할 정도로 연기에 진심이니깐… 그래서 챙겨 주는 거고, 그래서 더 친한 거잖아요. 그런데 난, 섹스가 무서워서 피했으니깐… 진심이 아닌 것처럼 보여서 거리를 두는 거잖아요.”
“아니야, 진희야. 너 갑자기 왜 그래?”
“그치만… 나도 진심이에요!”
“진희야.”
“연기에도, 부사장님한테도 진심이라구요!”
“……뭐라고?”
“그러니 나도 부사장님이랑 섹스할래요… 저랑도 해 주세요! 부사장님이… 제 첫 상대여도 좋으니깐, 나랑도 섹스해 줘요. 어른의 사랑, 그거 아직 미완성이잖아요. 그러니 제대로 배울래. 네? 자, 어서! 가르쳐 주세요. 얼른요!”
나는 부사장님이 보는 앞에서 옷을 벗었다.
땀을 흘리는 부사장님에게서 아직 남아 있는 은은한 향기가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