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89 - 아이돌 메이커(27)
지영이를 이용하기로 한 건 정답이었다.
유사 연애를 통해 진희와 키스를 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건 상당히 어려워 보였거든. 은근히 ‘정조’ 관념만은 확실했던 진희라 솔직히 난감했었는데… 이미 나와 섹스를 하는 사이인 지영이 덕분에, 특정 상황에서만 ‘유교걸’인 진희의 신념을 건드릴 수 있었다.
‘네. 그러니 키스만 할 게 아니라… 끝까지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허벅지에 손만 대도 얼굴을 굳히던 진희가, 먼저 신호를 보냈었지. 배움을 위해… 섹스를 하는 배우도 있다는 걸 알고는 생각을 바꾼 거 같던데… 나로서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변화였다. 이제 진희는 ‘섹스’에 대한 고집을 ‘키스’ 수준까지 내렸을 게 분명했다.
- 따악!
‘하읏?!’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손을 대는 건, 하수나 할 짓이었다.
기껏 얻은 신뢰인데, 끝까지 지켜야 할 거 아니야. 기회가 왔다고 냉큼 따먹으면, 냉정을 되찾은 그녀가 나를 의심할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진희와의 섹스는 아주 자연스럽게 진행하는 게 맞았다.
실수인 척 베드 신 대본을 떨어뜨리고, 그걸 진희가 읽게 한 다음에… 어디까지나 ‘레슨’인 걸 강조하면… 아무 탈 없이 따먹을 수 있겠지? 이미 내가 자기 올라타는 건 별 저항도 안 하는 상황이니… 단계만 순서대로 잘 밟으면 손쉽게 함락시킬 수 있을 거다.
[알았어요. 다음주에 봬요.]
한편, 은아는 이미 마지막 단계를 밟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제 다음주부터 다시 레슨을 시작하는데…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날 바로 따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아니… 굳이 마음을 안 먹어도 따먹을 수 있지 않을까? 만나자마자 자기랑 섹스해 달라고, 은아가 내게 부탁할 가능성도 높았다.
폰섹과 거리두기로 두 달 가까이 애를 태운 효과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따먹으면 재미가 없잖아.
주도권이 완벽히 나한테 있는 상황. 가은이라는 S급 아이돌을 내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데, 그 기회를 날리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었다. 이왕 따먹을 거, 은아를 좀 더 변태로 만들면… 훨씬 더 맛있게 따먹을 수 있었다.
그러니… 우선 펠라부터 가르쳐야겠지?
아아, 그 모습을 상상하자 벌써부터 아랫도리가 터질 거 같았다.
“전화 끝났으면 빨리 와서 박아 주세요. 약속했잖아요… 아침까지 하기로.”
그러면 그때까지는 지영이랑 놀면서 시간을 보내 볼까? 통화를 끝낸 나는 바지를 벗고 그녀 위에 올라탔다. 평소엔 적당히 하고 끝냈지만, 오늘은 나를 도와줬으니… 그 상으로 지영이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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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드디어, 부사장님과 레슨을 할 수 있는 날이 찾아왔다. 달로 치면 두 달. 일수로 치면 61일만이었다. 그리고 또, 시간으로 치면…… 뭐래, 거기까진 알 필요 없잖아. 아무튼 중요한 건 드디어 부사장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팀 레슨을 끝내자마자, 옷을 갈아 입고는 부사장님한테 달려갔다.
“은아 왔어?”
그런 다음 아주 자연스럽게 다시 옷을 벗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뭐하는 짓이냐며 소리치겠지만, 이렇게 레슨 중에 알몸이 되는 게 우리 둘만의 약속이었다. 그러니 나는 그 약속을 지켜야 했다. 절대로 부사장님한테 내 알몸을 보여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네, 저 왔어요. 옷은 쇼파 위에 둘게요.”
오랜만에 보는 부사장님의 얼굴. 여전히 변태 같이 생겼지만, 놀랍게도 두 달만에 달라진 부분이 있었다. 갑자기 생겨난 다크서클과 어째서인지 홀쭉해진 뺨. 바빴다더니… 그래서일까? 기분 나쁜 변태에서 피곤해 보이는 변태로 바뀌어 있었다.
“하아음… 응, 거기에 둬.”
틀딱답게 대놓고 하품을 하는 부사장님.
하지만… 딱히 불쌍하지는 않았다.
진희 언니한테 자기 냄새를 묻힌 사람이, 바로 저 사람이잖아. 변태답게 징그럽고 저질스러운 레슨만 했을 사람이… 저렇게 ‘나 고생했어’란 티를 내 봤자 욕만 나올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걱정해 주는 대신 부사장님에게 물건 하나를 건넸다.
“응? 그건 뭐야?”
“오다 주웠어요.”
“엑. 주운 물건은 좀 그런데…”
“그럼 돌려 주든가요.”
“하하하, 아니야. 고마워, 뭔진 모르겠지만 잘 쓸게.”
“지금 뜯어 보세요.”
부사장님은 변태 같이 생긴 변태지만… 그래도 나의 레슨 선생님이잖아.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 빈손으로 올 순 없었다. 그래서 적당히… 진짜 적당히 아무거나 하나 골라서 부사장님에게 선물로 줬다.
“오오… 이거 비싼 향수 아냐? 아직 정산 안 됐을 텐데… 괜찮아?”
“용돈 모아서 산 거예요.”
“은아야…… 고마워.”
“저랑 레슨하기 전에 꼭 써 주세요. 무조건이요.”
“설마…… 지금 나, 냄새 난다고 돌려말한 거였어?”
“그걸 이제 아셨어요?”
“야! 안그래도 아저씨 냄새 난다고 해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씻거든?!”
“윽, 냄새.”
“아, 안 난다니깐?!”
“됐고… 춤이나 봐 주세요. 2집 타이틀 곡 안무예요.”
푸흐흐, 나이값 못하고 발끈하기는… 부사장님답지 않게 귀여운 투정을 깔끔하게 무시한 나는, 노래를 튼 다음 지난 두 달간 열심히 연습했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댄스에 흥미를 느끼면서 쉬지 않고… 아아, 쉬기는 했구나. 자위랑 폰섹하는 시간 빼고는 하루종일 연습했던 2집 안무였기에 자신이 있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바로 섹스를… 이, 아니라, 유사 섹스를 하고 싶었지만… 우선은 두 달 후에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겠단 약속을 지켜야 했다. 유사 섹스는 부사장님을 깜짝 놀라게 한 다음에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
두 달 동안 동작 하나하나에 나의 매력을, 정확히는 섹스 어필을 담는 것을 노력했던 나. 나는 그것을 부사장님한테 보여 주기 위해, 그의 앞에서 춤을 췄다.
- 삐이익.
“아, 잠깐만요.”
그런데 이거…… 역시 브라는 입어야겠구나. 조금만 움직여도 가슴이 출렁거려서 굉장히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잠시 양해를 구한 다음 다시 브라를 입었다. 매력 포인트 하나가 가려졌지만 뭐, 어쩔 수 없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었다.
“오… 많이 늘었네? 잘 봤어.”
“……뭐야, 그게 끝이에요?”
“응?”
“흥. 어이 없네.”
“아니, 뭐가?”
“몰라요.”
하지만…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나는 기대했던 성과를 얻지 못했다. 정말로 안타깝게도 부사장님의 바지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진수 오빠는 내 춤을 보자마자 레슨실 밖으로 도망쳤는데 말이다.
안 보는 사이에… 고자 병이 다시 재발한 걸까?
여러모로 상당히 굴욕적이었다.
“늘긴 했는데… 조금 아쉽네.”
“…아쉽다고요?”
“음… 이제 확실히 아이돌 티는 나는데… 그래서 더더욱 아쉬워.”
“왜요?”
“은아야, 너 과유불급이란 말 알아?”
“알아요.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잖아요.”
“정확히는,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야.”
“어라?”
“네가 아직 어려서 사자성어을 잘 모르나 본데……”
갑자기 사자성어는 또 왜 쓰는 거야? 하여튼 틀딱꼰대. 사용하는 단어가 너무 올드했다. 그래서 나는 부사장님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런데… 지나친 게 나쁜 거야? 다다익선이란 말도 있잖아.
그렇게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말대꾸한다고 혼날까 봐 그냥 참았다.
새삼 느끼는 건데… 나처럼 착한 아이돌도 별로 없을 거다.
“……아무튼 그래서 요약하면, 네 춤이 딱 과유불급이야.”
“이해를 못하겠어요.”
“으음… 그러니까… 강속구만 던지는 투수랑 변화구를 번갈아 던지는 투수랑…”
“저 야구 몰라요.”
“으으음… 그러니까… 왜 연애를 할 때도 밀당이 중요하다고 하잖아.”
“아, 그건 알아요.”
“왜, 계속 밀거나 계속 당기면 재미가 없어서 하는 말이잖아.”
“그렇죠.”
“그게 바로 완급조절인데… 너는 그 완급조절이 부족해.”
“제가요?”
“생각해 봐. 시작부터 끝까지 섹스 어필만 하는 아이돌이랑, 무대에서 딱 한 번만 섹스 어필을 하는 아이돌. 어느 쪽이 더 임팩트가 클까?”
“……아하?”
“내가 너한테 섹스 어필을 알려 준 건 후자를 위해서였지, 전자를 위해서가 아니었어.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춤 추는 내내 섹스 어필을 하기보단, 임팩트 줄 장면을 정해서 섹스 어필을 하는… 그런 연습을 하는 게 더 좋을 거야.”
“…아하.”
“이걸 미리 알려 줬어야 했는데…”
“그러게요.”
“뭐, 그래도 덕분에 기본기 연습은 확실하게 한 거 같아서 다행이야.”
“……?”
“어차피 완급조절을 하려면 기본기는 필수니깐… 뭐, 잘 됐다고 생각하자. 결국은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연습이잖아? 원래라면 데뷔하기 전부터…..”
“아, 진짜 듣기 싫다.”
“……”
“아, 죄송. 입 밖으로 나왔네요.”
뭐어… 대충은 이해가 갔다. 그러니깐… 팬들이랑 밀당을 하라는 거잖아. 시작부터 모든 걸 다 보여주면 김이 새니깐,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보여 주라는 거 같은데… 으음, 솔직히 굳이 그래야 하나 싶었다. …그냥 시작부터 보여 주면 안 돼? 이해가 되지만 이해가 잘 안 되는 이상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레슨 도중에 멈춰서 그런지 섹스 어필도 아직은 조금 부족해 보여.”
“그래요?”
“네가 보여 주는 ‘색기’가 자극적이긴 한데… 아는 사람은 아는, 굉장히 미묘하고 어색한 ‘색기’라 많이 아쉬워. 다르게 말하면… 남자를 모르는 ‘색기’라 해야 하나?”
“엑.”
“그래서 오늘부턴 남자를 알아 가는 시간을 가져 볼까 하는데… 어때? 괜찮겠어?”
“헉.”
“은아야?”
“으음… 뭐, 괜찮아요. 부사장님이랑 하는 거죠?”
“그렇지.”
“그러면 됐어요. 대신에 하기 전에 먼저 향수부터 뿌려 주세요.”
흐응, 좋아. 평소의 상쾌한 냄새 대신 은은한 냄새가 풍기자 안심이 되었다. 지금부턴 부사장님과 나와의 둘 만의 시간이었다. 완급조절은 잘 모르겠지만, 부사장님을 알아 가는 시간이라면 환영이었다.
여기서 잘만 하면 유사 섹스로 넘어갈 수도 있겠지?
나는 기대에 찬 얼굴로 부사장님이 보는 앞에서 브라를 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