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87 - 아이돌 메이커(25)
청소년의 사랑에는… 풋풋한 설렘과 어리숙한 기싸움이 가져다 주는 특유의 간질간질한 재미가 있었다. 예를 들어, 부끄러워서 자리를 피한다든가, 그러면서 은근슬쩍 뒷모습을 지켜본다든가 하는… 그 나이대만의 독특한 감성이 있었다.
그에 반해 어른의 사랑에는… 보다 끈적끈적하고 질척질척한 얽힘이 있었다. 더는 순수하지 않은 어른들의 놀이라고 해야 하나? 서로를 속고 속이면서도… 서로가 솔직하기를 원하는, 지저분하면서도 중독되는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어느 사랑이 더 마음에 드냐고 묻는다면, 사람마다 대답이 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른의 사랑’ 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청소년의 사랑은… 솔직히 좀 귀찮잖아.
연애를 하는 건지, 자존심 싸움을 하는 건지, 모르겠을 정도로 엉망진창인 경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레슨 때문에 피곤해 죽겠는데… 연애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으으, 너무 싫어. 물론 ‘시은이’를 연기할 땐 가슴이 두근거려서 정말 신났었지만… 현실에서는 좀 더 마음 편한 연애를 하고 싶었다.
- 벌컥
“나 왔어…”
“일찍 왔네?”
“응. 그렇게 됐어.”
“그래? 잠시 쉬고 있어. 이것만 처리하고 놀아줄게.”
“……오늘 처음 보는 건데 그게 끝이야?”
“하아아… 5분 줄게.”
“헤헤, 그러면 5분 동안 무릎 베개 해 줘!”
그래… 바로 이렇게 말이다.
귀찮아하면서도 나를 받아 주는 부사장님. 쇼파 위에 앉아 옆 자리를 팡팡 치자, 부사장님이 다가와 내게 무릎 베개를 해 줬다. 공과 사는 철저히 지키는 부사장님이지만… 그래도 여자 친구의 부탁 정도는 들어 주는 센스가 있었다.
“머리도 쓰다듬어 줘.”
“희진아… 오늘 무슨 일 있었어?”
“그냥… 조금 그랬어.”
“너무 무리하지는 마.”
“……응.”
안심이 되는 커다란 손과 언제 맡아도 기분 좋은 향수 냄새. 부사장님에게 애정을 받다 보니 스르륵 잠이 쏟아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레슨 받아야 하는데… 어제오늘 지칠 정도로 연습을 한 게 문제였다.
“자, 5분 끝.”
“벌써…?”
“피곤하면 그냥 자. 시간 되면 내가 깨워 줄게.”
“……싫어. 버틸래.”
“후우… 그래, 그러면 쉬고 있어.”
“키스는… 안 해 줄 거야?”
“5분 지났어.”
“칫.”
용기를 내서 부탁한 건데… 하여튼 철저하다니깐? 나는 부사장님을 떠나보낸 후, 그의 코트를 이불 삼아 쇼파에 누웠다. 잠을 잘 생각은 아니고… 그냥 잠시 이렇게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
타닥타닥 거리는 타자 소리와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운 황금빛 노을.
아아, 행복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런 게 바로… 어른의 사랑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여유’라는 거겠지? …내가 진희가 아니라 ‘희진’이가 되고, 부사장님이 ‘다른 회사의 부사장님’이 되는, 그런 연기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나는 그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
‘교차로’를 통해 어른의 사랑을 알게 된 나는, 그 후로도 몇 주 동안 다른 여주들을 연기했고, 그 결과 부사장님한테 합격점을 받으면서, 드디어 마지막 레슨… 정확히는, 마지막 유사 연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부사장님과 연애를 하는 것.
비록 실제로 사귀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나는 다른 회사의 ‘희진’이라는 아이돌이 되어, 그 회사의 ‘부사장님’과 비밀 연애를 하는… 그런 발칙한 캐릭터를 연기하게 되었다. 그것도 대본 없이, 프리스타일로 말이다.
‘……꼭 해야 해요?’
‘나랑 사귀는 건, 네 일상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그러니 이걸 해내고 나면, 그 어떤 어려운 배역도 맡을 수 있을 거야. 그래서 어디까지나 너한테 ‘권유’하는 거야. 정 못하겠으면 유사 연애는 여기서 끝내도 돼.’
‘그으… 그렇게 말하면 안 할 수가 없잖아요.’
‘아니, 진희야. 강요하는 건 아니라니깐?’
‘……에휴, 도움이 된다면서요. 그러면 해야죠. 할게요, 그거.’
솔직히 말해서 하기 싫었지만… 이제 와서 그만둘 순 없잖아. 가장 어려운 레슨이라고 하는데, 도전도 안 해 보고 포기할 순 없었다. 그리고… 다른 캐릭터도 아니고 ‘부사장님’과 연애를 하는 연기잖아. 망상 속의 남주가 아닌, 부사장님을 상대로도 몰입할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짧은 고민 끝에 부사장님과 유사 연애를 하기로 결심했다.
‘희진아, 사랑해.’
‘나, 나도… 푸흡, 흡… 아하하, 아하하하하!’
‘……’
‘아, 죄, 죄송해요… 생각보다 너무 느끼해서… 푸흡…’
‘미안, 나도 좀 어색해서 말야… 크흠, 흠. 감정 좀 잡고 올게.’
‘아… 네에… 생각보다 되게 열심이시네요.’
‘내가 열심히 해야지 너도 열심히 할 거 아냐.’
‘……후후, 그렇죠. 죄송해요. 저도 열심히 할게요.’
그리고 그 결과,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는 결국 부사장님과의 연애에 진심으로 몰입할 수 있었다.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부사장님이 좋은 사람이란 걸 알았기에 가능했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희진아, 자?”
“으응… 아니, 아직… 으읏?! 응… 츄읍, 하아…”
“일 끝났어.”
“아저씨도 참… 하아, 으응… 일 끝나자마자 이렇게 달라지기 있어?”
“계속 이러고 싶었단 말야.”
“……흐응, 그랬어?”
그래서 지금 이렇게… 내 위에 올라탄 부사장님과 어른의 키스를 해도… 불쾌함을 느끼는 대신에,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처음 부사장님과 만났을 때만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후후, 지금은 케이크를 먹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
“하아, 으응… 츄읍, 츄릅… 후으… 만질 거야?”
“만져도 돼?”
“으응… 주름생기니깐… 먼저 벗겨 줘.”
“고마워.”
“츄읍, 츗… 하아아… 대신에 부드럽게, 하아앙!”
하지만 애무는 아직도 적응하기 어려웠다. 대본에 완벽히 몰입했을 땐 가슴 정돈 만져져도 괜찮았지만… 읏, 하앙… 연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아, 아니… 연기는 맞았지만, 아무튼 대본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자꾸만 얼굴이 뜨거워졌다.
“예쁘다…”
“벼, 변태!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지 마!”
“그치만 예쁘단 말야.”
“바보… 읏, 하아… 만질 거면, 흣, 아앙… 부드럽게 만져!”
“이렇게?”
“으응… 그렇게… 하아, 응…”
“기분 좋아?”
“……모르겠어.”
“나는 기분 좋아.”
“……변태.”
브라까지 벗겨서는 정성스레 애무를 해 주는 부사장님. …그래도 선을 지켜 주는 부사장님이었기에 여기가 진도의 끝이었지만… 그래도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였다. 대놓고 내 가슴을 음미하는 부사장님 때문에 안 그래도 민감했던 젖꼭지가 한층 더 민감해진 기분이 들었다.
“하아아… 내 가슴이 그렇게 좋아?”
“응, 너무 좋아.”
“…빨아도 돼.”
“……뭐?”
“다, 다들 그런 짓도 한다며. 우, 우리도 연인이니깐, 뭐… 하앙?! 잠깐만, 그렇다고 깨물라고는 안 했거든?!”
그래도… 그렇게 음미해 줘서 기쁘달까? 상대가 부사장님이었지만… 어, 어쨌거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생각하니… 부사장님에게 더 많은 것을 해 주고 싶었다. 부사장님한테 더 많은 것을 받고 싶었다. 우리가 연인 사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부사장님과 모든 것을 공유하고, 또 함께하고 싶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사랑하는 게 즐거워서, 사랑받는 게 기뻐서,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계속되도록, 부사장님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이게 바로… 사랑이겠지?
“하아… 으응, 츄릅, 하아… 아저씨…”
“희진아…”
“나 사랑해?”
“…응, 사랑해.”
“그래서 이렇게 발기한 거야?”
“이, 이건…”
“후후… 나랑 하고 싶은데, 하아… 나를 위해서 참아 주는 거지?”
“……”
“고마워요, 배려해 줘서… 정말로… 사랑, 하아, 부사장님… 츄릅, 하아…”
“……진희야?”
“……”
“……”
“뭐, 뭐야, 아저씨! 전 여친 찾는 거야?”
“아니, 너…”
“됐으니깐… 좀 더 만져 줘… 이거 기분 좋아, 으응… 츄릅, 하아아…”
역시… 부사장님의 레슨은 틀린 적이 없구나.
지금 이 거짓 연애도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래서 난 이 순간에 충실하기로 다짐했다. 이제 며칠 안 남은 연인 놀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지. 나는 행복한 얼굴로 부사장님을 끌어안았다.
***
“그럼 다음주부턴 다시 오디션 준비로 넘어가는 거야?”
“그래야지.”
“우으으… 몸이 열 개였으면 좋겠어. 컴백 준비도 힘든데, 오디션 준비까지…”
“괜찮아. 희진아, 넌 할 수 있어.”
“……진희한테도 그렇게 말해 줄래요?”
“하하하. 그래. 진희야, 뭘 걱정해. 너 재능충이잖아.”
“헤헤… 재능충…”
레슨… 인지 그저 꽁냥거린 건지 모르겠는 시간이 끝나고, 이성을 되찾은 우리는 앞으로의 레슨 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잠겨있던 문이 열리면서 뜻밖의 불청객이 나타났다.
- 철커덕, 철컥.
- 벌컥
“부사장님 이거…… 뭐야, 선객이 있었네요.”
“……아, 안녕하세요?”
“………뭐야, 당신.”
부사장님의 제자로 유명한 신인 배우, 한지영이었다.
“죄송한데 아직 레슨 중이거든요, 그러니 나가 주시겠어요?”
“하, 걱정마세요. 물건만 전해 주고 바로 나갈 거니까요.”
“……물건?”
“팬티랑, 칫솔이랑, 슬리퍼랑… 대충 집에 있는 부사장님 물건 챙겨 왔어요. 오늘 엄마가 찾아온다고 해서요. …아, 콘돔 깜박했다. 그건 제가 알아서 버릴게요.”
“……팬티, 칫솔… 코, 콘돔?!”
“그리고… 이름이 진희 씨였나? 단추 엉망이에요. 머리카락도 마찬가지고요. 바보같이 잔 거 티내지말고 조심하세요. 괜히 스캔들 나면 나만 손해니깐.”
“……하아?”
“그럼 저 갈게요.”
이해가 안 돼서… 눈앞이 새하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