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85 - 아이돌 메이커(23)
다음날, 레슨을 시작한 나는 복습의 의미로 부사장님에 안겨 불쾌한 감각을 느꼈다. 가슴이 짓눌리고, 아랫배가 희롱당하는… 역겨운 상황. 하지만 어제처럼 불편함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조금 힘들어도… 이 감각에 익숙해져야 하는 거잖아.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부사장님을 껴안으며 레슨에 집중했다.
“어때, 진희야? 버틸만 해?”
“네에… 괜찮아요.”
“그래? 그럼 이제 진도 좀 나가도 될까?”
“네에에?! 아, 네에…”
그런데… 내가 미처 적응하기도 전에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 손으로 내 허리를 감싸더니 나를 끌어당기는 부사장님. 안그래도 딱 달라붙어 있던 우리의 두 몸이 한층 더 밀착되어… 끈적하고 불쾌한 감각들이 증폭되었다. 부사장님에게 짓눌린 내 가슴은 제 형태를 잃었고, 내 아랫배를 찌르던 그것은… 눈치없이 단단해져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부사장님은 연애를 할 때, 이런 식으로 포옹하는 걸까?
당황한 내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자, 어떻게든 내 몸을 느끼려 하는 부사장님이… 남은 한 손을 들어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물론 어디까지나 연기일 테지만… 그 모습이 마치 나를 진심으로 애정하는 거 같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진희야, 괜찮지?”
“어… 네, 네에… 괘, 괜찮아요.”
“오케이, 그러면 조금만 더 해 볼게.”
“아아…”
거, 거절했어야 했는데…
으읏,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모르게 괜찮다고 대답해 버렸다.
그러자 본격적으로 스킨십을 하기 시작한 부사장님... 우으으으, 방금 전의 그것도 정말로 견디기 어려웠는데, 순식간에 장르가 바뀌고 말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청춘 로맨스였던 장르가… 지금은 격정 멜로가 되고말았다.
“하읏, 응…”
허리를 끌어당기던 손이 천천히 내려와 내 엉덩이를 쓰다듬었고… 얼굴을 어루만지던 손이 귓볼로 다가와 내 부드러운 그곳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어젯밤, 내가 봤던 외국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굉장히 끈적끈적하고, 질척한, 부사장님의 손놀림.
하지만 그건…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으읏?!”
그렇고 그런 짓을 하듯… 내 엉덩이를 움켜잡은 부사장님의 손. 그리고 헐떡이는 숨소리와 이제는 완전히 딱딱해진 부사장님의 그것… 더는 매너도 무드도 없었다. 이제부턴 더럽고 저질스러운 욕정의 시간이었다.
“아, 안 돼요오!”
그래서 나는 참지 못하고 부사장님을 밀쳐 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레슨이라고 해도 이건 좀 아니잖아… 포옹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새빨개졌던 내가 견디기에는, ‘어른의 사랑’이라고 하는 스킨십의 수위가 너무 강했다.
***
“죄, 죄송해요…”
“많이 놀랐어?”
“네에… 엉덩이에다가… 가, 가슴까지 만지려고 하시길래 그만…”
“잘했어. 의사는 확실하게 표현해야지. 진정될 때까지 잠시 쉬고 있어.”
“네에…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부사장님을 밀쳐 버렸지만… 다행히 혼나는 일은 없었다.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걸 미리 알고 계셨던 걸까? 상당히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부사장님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 주셨다.
하아… 다행이야…
순간 이대로 레슨을 못 받게 되는 줄 알고, 진심으로 걱정했었다.
레슨 내용이 조금… 아니, 많이, 저질스럽고 외설적이지만 그래도 나한테 도움이 되는 레슨이잖아. 이왕 시작한 거, 엄청 부담스럽더라도 끝을 보는 게 현명했다.
“아, 그리고 진희야. 쉬면서 이걸 좀 봐 줄래?”
“네에?”
“참고용으로 가져 온 영화 편집본이야.”
“참고용이요?”
부사장님이 내게 보여 준 건, 어제 본 외국 드라마처럼 상당히 수위가 높은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짧게 입을 맞춘 후 서로를 바라보며 진한 스킨십을 나누는 두 사람. 가슴을 주무른다든가, 옷 안으로 손을 넣는다든가… 그런 야한 짓은 없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끈적하고 아찔한, 그런 모습이었다.
“이게 이번 레슨의 목표야.”
“헉… 이게 목표…”
“그리고 이게 네 현주소야.”
그에 반해 얼굴이 빨개진 채 얼어붙어서는 꼼짝도 못하고 있는 나… 놀랍게도 부사장님이 두 번째로 보여 준 건, 방금 우리가 한 레슨의 녹화본이었다. 구석에 있는 저 카메라, 왜 가져왔나 했더니 지금을 위해서였구나.
덕분에 보고 싶지 않았던 비교 영상을 보게 되었다.
비슷한 구도인데도 분위기가 전혀 다른 두 영상. 영화 속 여주와 달리 나는… 으읏, 완전 저질이었다. 저질스러운 짓을 하는 건 부사장님이었지만, 진짜 저질은 따로 있었다. 아니… 이걸 지금 연기라고 한 거야? 스킨십에 적응하는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연기 레슨인데, 영상 속 내 모습은 너무 터무니가 없었다.
‘촬영 중이라 생각하고 최대한 감정을 잡아 봐.’
분명 부사장님이 그렇게 말했었는데… 스킨십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내 할 일을 잊고 말았다. 하다 못해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척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바보같이 긴장하는 바람에, 못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우으으…”
반성해야지.
부사장님한테 죄책감이 들었다.
- 타악!
“히잇?!”
“혼자 또 이상한 망상하지 말고, 자, 여기. 대본이야.”
“…대본이요?”
“지금까지는 그냥 한번 테스트해 본 거고, 이제부터는 저 장면을 찍는다 생각하고 본격적인 레슨에 들어갈 거야. 시간 줄 테니깐 읽어 봐. 대사는 별로 없고 지문이 대부분이긴 한데… 그래도 대본이 있는 편이 더 몰입하기 쉽잖아? 그러니 진짜로 촬영한다 생각하고 준비를 해 봐.”
“네, 알겠습니다!”
아하, 이럴 생각이셨구나.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대본을 받자, 이제서야 연기 레슨이라는 느낌이 물씬 들었다. 감독님과 작가님들이 고심해서 준비한 대본. 그것을 대충 훑어 본 난 부사장님에게 부탁해 방금 그 영상을 다시 돌려 보았다.
[나, 왔어요.]
[……]
[나, 왔다니깐, 으읏… 하아, 바보… 보고 싶었어요?]
[안 올 줄 알았어.]
그리고 진심으로 감탄했다.
되게, 자연스럽구나.
정말로 사귀는 사이도 아닐 텐데… 자연스럽게 몸을 맡긴 후 스킨십을 나누는 두 배우. 그래선지 훨씬 더 몰입감 있게 영상을 지켜볼 수 있었다. 마치 내가 저 장면 속 캐릭터가 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가 저 여주였다면… 저 느낌을 살릴 수 없었겠지.
직접 영상으로 보자 부사장님이 한 말이 무엇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스킨십에 익숙해져야 하는 건… 배우로서 필수덕목이었다. 그러니 부끄럽다고 도망칠 것이 아니었다. 그 상대가 부사장님이어도, 달리 부탁할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든 꾹 참고 이번 레슨을,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했다.
- 타악!
“히잇?!”
“망상하지 말고 대본 읽으라니깐?”
“마, 망상 안 했어요!”
“그럼 뭐 했는데?”
“……반성요.”
“뭐? 반성?”
“부사장님, 저 열심히 할게요! 그러니 지켜봐 주세요!”
“그, 그래, 알았어.”
그렇게 의욕을 얻은 나는 굳게 다짐을 한 다음 대본을 분석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이번엔 ‘지연’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부사장님에게… 아니, ‘민호’에게 안겼다. 다행히 키스는 생략하기로 했기에 나는 안심하고 노력할 수 있었다.
다짐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키스는 좀 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단 말야.
아무튼 나는 그렇게 본격적인 레슨을 시작했다.
“나, 왔다니깐, 으읏… 하아, 바보… 보고 싶었어요?”
“안 올 줄 알았어.”
“……거짓말. 기다리고 있었잖아요.”
“응…”
“앞으로는 기다리지 마세요.”
“……”
“오늘부터 여기서 살 거예요.”
위기를 겪은 커플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 한 후, 새로운 시작을 함께하는 감동적인 장면. 여자가 집으로 돌아오자, 남자가 그녀를 안아주고 짧게 키스를 한다. 그 후, 남자를 보며 미소 지은 여자가 행복한 얼굴로 남자를 안아준다.
그리고 시작되는 스킨십.
서로를 껴안고는 몸을 밀착시킨 채… 아쉬웠던 만큼 서로를 느끼고자 몸을 움직여 서로를 탐하는 두 명의 성인남녀. 어른의 사랑. 지연이가 된 나는 부사장님의… 가, 아니라, 민호의 손길을 즐기며 키득키득 웃었다.
허벅지를 쓰다듬는 게… 솔직히 말해서 부담이 됐지만, 못 견딜 건 아니었다. 나 역시 민호에게 몸을 기댄 후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덕분에 가슴이 뭉개졌지만… 이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잖아.
나는 당황하는 대신 손을 뻗어 민호의 단단한 가슴팍을 어루만졌다. 얼마 전부터 운동을 시작했다더니 확실히 달라진 티가 나서 보기 좋았다. 나는 내친김에 얼굴까지 묻고는 숨을 들이켰다. 역시나 상쾌한 냄새가 나서 기분이 좋아졌다.
“컷, 오케이.”
“아… 벌써요?”
“여기서 더 나가면 19금이야. 그건 아직 힘들잖아.”
“1, 19금… 그건 좀, 네… 그렇죠.”
그런데… 지금 갑자기 생각난 건데… 이 레슨, 과연 어디까지 하게 되는 걸까? 아까 들은 걸 생각하면 키스는 무조건 하게 될 텐데… 저 19금이란 말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지가 궁금해졌다.
가슴을 만지고, 옷을 벗기고… 적당히 그런 선에서 멈출까? 아니면 팬티마저 벗긴 다음에, 침대 위로 데려가서… 그, 그렇고 그런 짓까지 하게 되는 걸까?
당연히 전자겠지만, ‘어른의 사랑’이라는 말 때문에 후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고 그런 짓은, 절대로… 절대로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부사장님이 상대라 해도 그건 결코 불가능했다.
첫경험은 평생 기억에 남는다던데… 그걸 부사장님이랑 할 순 없잖아. 그러니 그렇고 그런 짓을 해야 할 경우, 나는 반드시 거절할 생각이었다. 농담하는 게 아니라, 진심이었다.
“후후.”
하지만, 뭐… 부사장님이잖아.
적당히 알아서 조절해 주시겠지.
나는 쓸데없는 걸 걱정하는 대신 부사장님을 믿기로 했다. 이때까지 한 번도 선을 넘은 적 없는 부사장님이, 이제 와서 날 배신할 리 없었다. 그러므로 부사장님이라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신용할 수 있었다.
나와 부사장님 사이엔 그런 믿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