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83 - 아이돌 메이커(21)
시우 오빠 덕분에 용기를 얻은 나는 ‘어른의 사랑’을 배워 보겠냐는 부사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결과, 드디어 레슨을 시작한 나는… 부사장님에게서 의미를 알 수 없는, 굉장히 난해한 질문을 받았다.
“진희야, 사람의 3대 욕구가 뭔지 알아?”
갑자기 사람의 3대 욕구는 왜 물어 보는 걸까? 뭔가 시작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한 주만에 레슨 수준이 확 달라진 느낌이랄까? 지난 주까지 배운 내용이 중학교 수준이었다면, 오늘부터는 대학생 수준인… 그런 기분이 들었다.
“아, 그거 알았는데…”
“식욕, 수면욕, 그리고 성욕이야.”
“아아, 맞아. 식욕, 수면욕, 성욕. 알고 있었어요. 진짜예요.”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아?”
“…네?”
“먹는 거랑 자는 건,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해야 하는, 반드시 필요한 행위들이야. 생각해 봐, 밥을 안 먹고 잠을 안 자면 사람이 죽잖아.”
“그렇죠?”
“그런데 성욕은 달라. 사람이 섹스 좀 안 한다고 죽어?”
“헉.”
“스님들은 죽으려고 절에 들어간 거야? 응? 섹스리스 부부들은 자살 중인 거냐고. 아니잖아. 섹스 그거 안 한다고 사람이 죽지는 않아.”
“그… 그, 그렇죠?”
“그런데 왜 성욕이 사람의 3대 욕구 안에 들어가 있는 걸까?”
“그… 그러게요? 아하하… 이상하다, 왜 그렇지…”
“그건 바로 사람의 DNA 안에 내재되어 있는 번식 욕구 때문이야.”
“…와우.”
이상하다, 이거 연기 레슨 맞아?
부사장님 입에서 평소엔 듣기 힘든, 뭔가 어려워 보이고 복잡해 보이는… 딱 봐도 귀찮은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보다 전문적인, 그런 이론들을 가르쳐 주실 생각인 거 같은데… 역시 프로들은 배우는 것부터가 달랐다.
“인간도 결국 동물.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2세를 낳고 싶어 해. 이건 유전자 단위에 새겨진 본능이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욕구를 가지고 있어. 물론 성장하면서 이런 본능을 이겨내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그렇게 설계된 채 태어나. 이건 부정할 수 없는 팩트야.”
“……흐응.”
“그리고 그 증거가 바로 섹스의 쾌감이야.”
“푸흡, 켁, 컥… 뭐, 뭐라고요?”
“집중해서 들어. 그 증거가 바로 섹스의 쾌감이라고.”
“아…… 네, 네에…”
“너도 알겠지만 섹스는 굉장히 기분 좋은 행위야. 쾌감을 느낄 수 있는 많은 신경 세포들이 남녀의 성기에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지. 그런데 왜, 왜 그렇게 밀집되어 있는 걸까? 그건 바로 섹스를 유도하기 위해서야.”
“허억.”
“생각해 봐, 일단 섹스를 해야 임신도 할 수 있을 거 아냐.”
“……그, 그렇겠죠?”
“그러니 따지고 보면, 번식을 유도하기 위해 사람 몸이 그렇게 진화한 거라고 볼 수 있어.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번식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말야.”
“그렇구나…”
“그런데, 섹스가 기분 좋다고 무조건 섹스를 할 거라는 보장은 없잖아?”
“으읏, 그, 그렇죠…”
“그래서 사람에겐 섹스가 하고 싶어지는 ‘성욕’이란 것이 존재하는 거고,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성욕’이 사람의 3대 욕구 안에도 들어가는 거야.”
“오, 그렇구나.”
알아듣기 어려운 긴 문장과 듣기 민망한 이야기 때문에 정신이 혼미했지만… 그래도 부사장님이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과 어쨌거나 성욕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뭔가 이해는 잘 안 갔지만… DNA니 뭐니, 설계니 뭐니… 있어 보이는 단어들이잖아. 그래서 믿음이 갔다.
그리고 섹스니, 임신이니… 말하는 사람도 부끄러운, 그런 단어들인데 부사장님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잖아. 그만큼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서 신뢰가 갔다. 부사장님은 레슨을 핑계로 성희롱을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진희야. 내가 이 이야기를 왜 했을 거 같아?”
“으음, 그, 그게…”
“많은 작품들이 이 성욕을 활용하기 때문이야.”
“에엣.”
“감독들이 멋진 남자와 예쁜 여자를 배우로 쓰는 건, 단지 그들이 인기가 많아서가 아니야. 그런 배우들을 사용해야 관객들이 번식 욕구를 느끼기 때문이야.”
“……헐.”
“아까도 말했지만 성욕은 곧 번식 욕구라고 볼 수도 있어. 그런데 사람들이 누구랑 번식을 하려고 하겠어. 생존에 도움이 되는, 유용한 능력이나 보기 좋은 매력을 가진 사람들일 거 아냐.”
“……”
“그걸 알기에 감독들은 최대한 번식하고 싶어지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그리고 그걸 본 관객들은 자기도 모르게 번식 욕구를 느끼게 되면서… 자기가 반한 캐릭터가 나오는 작품에 더 빠져들게 되지. 이게 바로 아주 기본적인 캐릭터 조형 방법이야.”
“……그렇구나.”
“그래서 이걸 알고 가는 게 진짜 중요해.”
“네, 그렇겠네요… 하나 배웠어요.”
“그런데, 진희야.”
“네, 네에…”
“그러면 번식하고 싶어지는 매력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어…… 대본 분석을 잘해서? 그리고 그걸 연기로 잘 표현해서?”
“그건 당연한 거고, 무엇에 더 집중해야 할까?”
“……잘 모르겠어요.”
“바로 스킨십이야.”
“스킨십요?!”
“흔히들 정서적 교감을 위해 스킨십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 그걸 보다 원초적으로 분석해 보면… 스킨십은 서로가 번식에 적합한 대상인지 확인하는… 그런 과정을 담은 행위야.”
우으으, 머리가 이상해질 거 같아. 뭔가 굉장히 수상쩍지만… 그래도 맞는 이야기겠지? 듣기 불쾌한 이야기들이 나오다 보니 속이 울렁거렸지만… 부사장님 말에 틀린 부분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또, 별로 알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배우가 되어 성장하기 위해서는 꼭 알아 둬야 하는, 그런 내용 같았다.
요약하면, 연기학 개론… 이란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자꾸 민망한 이야기가 나와도 대수롭지 않게… 아니, 정확힌 대수롭지 않은 척 연기를 하면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배우들은 스킨십을 할 때 자기 매력의 200%는 보여 줘야 해.”
“200%...”
“그래야 관객들이 그 스킨십의 대상이 되려고 몰입하거든.”
“몰입…”
“세 줄 요약으로 하면 이거야. 감독은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 배우는 매력적인 스킨십을 보여 줘야 한다. 그리고 관객은 그걸 보고 번식 욕구를 느껴야 한다. 이게 3대 성공 요소야.”
“3대 성공 요소…”
“그리고 이게 바로 내가 말하는 어른의 사랑이야. 보다 원초적인 본능을 건드리는 원색적인 사랑. 어때, 이제 좀 이해가 가?”
“가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
“…네에.”
“괜찮아, 하다 보면 알게 될 거야.”
“…으응, 알겠어요.”
“아무튼 그래서 지금 말한 어른의 사랑이란 걸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스킨십에 익숙해져야 해.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건 감독이나 작가가 할 일이야. 물론 케이스에 따른 해석법을 가르쳐 줄 순 있지만 그럴 시간은 없잖아? 그러니 내가 가르쳐 주려는 건 스킨십. 지금부터 진희, 네가 스킨십에 익숙해지도록 내가 도움을 줄 거야.”
“네, 네에…”
“하지만 부담스러울 수 있잖아? 그러니 지금 확실하게 말해 줬으면 해. 나랑 하는 스킨십, 견딜 수 있겠어? 네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그런 스킨십들을 지금부터 나랑 하게 될 거야. 힘들겠지만 너를 위해, 그리고 배우기 되기 위해서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도 해. 그러니 고민되겠지만 확실하게 얘기해 줬으면 해.”
“우으읏…”
“어때, 진희야. 할 수 있겠어?”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그 고민은 짧았다.
시우 오빠가 말했잖아.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부사장님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니, 사실이겠지. 그러니 해야만 해. 어차피 하게 될 스킨십들, 미리 연습한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물론 그걸 부사장님이랑 하는 건 조금 불편했지만… 그래도, 얼굴은 잘생겼어도 믿을 수 없는 배우와 하는 것보단… 얼굴은 별로여도 나를 진심으로 믿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랑 하는게 더 안심이 돼.
어디가서 이상한 소리는 안 할 거 아냐. 그리고 부사장님이라면 다른 사람과 달리 무조건 배려해 줄 테니깐… 응, 맞아. 차라리 부사장님이랑 연습하는 게 더 좋아.
“할 수 있어요.”
나는 확신에 찬 얼굴로 부사장님에게 대답했다.
“좋아, 그럼 포옹부터 시작해 볼까?”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부사장님 품에 안기게 되었다.
지난 한 주 동안 내내 안겼던 부사장님의 품. 하지만 이번엔 서로 마주보고 안는 거라 긴장이 됐다. 은근히 포근하고 기분 좋은 냄새가 나는 부사장님의 몸. 앞으로 안겨도 크게 다른 건 없구나…
가, 아니라.
내 가슴이 부사장님의 가슴팍에 짓눌리고 있었다.
“으읏, 읏…”
그리고 부사장님의 물컹거리는 그, 그, 그것이 내 아랫배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이래서 스킨십 연습이 필요한 거구나. 뒤에서 안길 때는 몰랐던 굉장히 불쾌하고 기분 나쁜 감각. 으, 으으… 벗어나고 싶어. 시작부터 마음이 꺾일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