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81 - 아이돌 메이커(19)
매일매일을 함께하며 가슴 떨리는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이지만, 우재와 시은이는 아직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다. 둘 다 처음하는 사랑이었기에 섣불리 고백하는 게 두려웠던 두 사람.괜히 말을 꺼냈다가 자기 혼자 진심이란 걸 알게 될까 봐, 어리숙한 우재와 시은이는 그저 썸에 만족하며 지금 이 순간을 즐겼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태도는 서로에게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두 사람의 동아리 후배, 민지가 우재에게 고백하면서 둘 사이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입학한 그 순간부터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한 민지. 그녀는 시은이와 달리 굉장히 저돌적이었다. 자신이 매력적이란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그녀는, 우재와 시은이 사이에 틈이 있다는 걸 알자마자 주저없이 우재에게 접근한다.
‘선배, 여자 친구 없죠?’
‘뭐… 아직은 없지.’
‘그럼 저랑 사겨요.’
‘…뭐?’
‘저랑 사귀자고요. 나는 선배 좋은데, 선배는 저 싫어요?’
그리고 그 결과, 민지와 우재가 사귄다는 소문이 전교에 퍼져 나간다. 하굣길 교문에서 당당하게 고백했던 민지 탓에, 모두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거, 거짓말이지?’
물론 그건 헛소문이었지만… 뒤늦게 그 소문을 듣게 된 시은이가 불안해하기 시작하고, 그 후 이런저런 오해가 이어지면서 두 사람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그런데… 이거 그냥 직접 물어보면 안 돼?
왜 지레짐작 겁먹고 후회하는 거야!
나라면 우재를 찾아가서 오해를 풀 텐데… 답답하고 소심한 시은이는 고구마라도 먹었는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고, 우재를 볼 때마다 혼자 울먹이면서 자리에서 도망치고 만다.
‘꺄앗?!’
‘야, 너 왜 자꾸 나 피해.’
‘이, 이거 놔!’
‘싫어.’
‘놓으라니깐!’
‘싫다고.’
그러나 얼굴도 잘생겼고,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키도 큰 우리의 킹갓우재는 그런 시은이를 뒤에서 껴안으면서… 와아! 와아! 우재야! 시은이가 혼자 고민하던 오해를 단번에 풀어준다.
‘너 이러는 거 민지가 알면 어떡하려고 그래!’
‘걔가 왜? 걔가 내 여자 친구라도 돼?’
‘……뭐?’
‘걔가 내 여자 친구라도 되냐고!’
‘두, 둘이 사귀는 거 아니었어?’
‘어, 아니야.’
‘…뭐어?’
‘민지 고백, 그거 내가 거절했어.’
‘…지, 진짜?’
‘그래. 좋아하는 사람 있어서 못 사귄다고 했어.’
‘......그게 누군데.’
‘너.’
드디어 시은이에게 고백한 우리의 우재! 답답한 고구마 대신에 시원한 청량감이 느껴졌다. 이걸 위해서 민지라는 캐릭터를 넣은 거겠지? 아무튼 덕분에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면서 시은이와 우재는 연인이 된다.
“진희야, 준비됐어?”
“엣.”
“아직 멀었어?”
“아, 아뇨. 잠시만요!”
그런데… 이걸 지금부터 부사장님이랑 연기해야 한다는 거지?
설레였던 마음이 짜게… 아, 아니지. 차게 식었다.
***
손을 마주잡고, 깍지를 끼고, 손등을 쓰다듬는… 그런 간단한 스킨십은 매일같이 했었지만, 지금처럼 포옹을 하는… 부담스런 스킨십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연애를 배우기 위한 하는 레슨이라… 스킨십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결국, 부사장님을 허락하고 만 나.
그러나 나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여자 경험이 전무했던 부사장님이 나를 안자마자 흥분하시더니… 레슨을 핑계로 이곳저곳을 주무르면서 나를 추행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허리, 그 다음은 다리, 그러다가 엉덩이에서… 한 손으론 내 가슴을,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론 내 거기를…
아아, 안 돼요, 부사장님!
나는 울먹이면서 저항했지만 부사장님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고… 오히려 내 옷을 벗기더니 본격적으로 내 몸을 가지고 놀았다. 나는 장난감이라도 된 것처럼 부사장님 품에 안겨 그의 추행을 견뎌야만 했다.
흐흐흐, 이것도 다 연기를 위해서야.
거, 거짓말하지 마세요!
크크크, 배우라면 강간당하는 경험도 겪어 봐야지.
그럴수가… 시, 싫어어어!
결국 나를 쇼파에 눕히더니 내 위에 올라탄 부사장님. 발정난 짐승처럼 침을 질질 흘린 그가 과시하듯이… 자기 바지를 내렸다. 그러고는 팬티마저 벗으며 나를…
“이 변태!”
“…뭐라고?”
“……어라?”
“……”
“……”
“너 지금…”
“벼, 변태! 곤충들은 변태를 통해 성장하는 거 아시나요! 되게 신기하죠?!”
“……”
“헤, 헤헤… 갑자기 생각이 나서요. 어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잤더니…”
“잡담은 그만하고 레슨에 집중해.”
“죄송합니다!”
아아, 또 과몰입해 버렸어… 어제 심야 영화를 보고 자는 게 아니었다. 나름 연기 공부를 한다고 매일 밤 영화를 챙겨 보고 있는데… 하필 어제 봤던 영화가 상당히 외설적인… 그렇고 그런 영화였다.
아니… 여주를 인질로 삼은 괴한이 남주가 보는 앞에서 여주를 막 희롱하더라고. 그게 너무 자극적이어서 보자마자 채널을 돌렸는데, 그 짧은 순간이 뇌리에 남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마침 비슷한 상황이 찾아오자 그런 식으로 망상을 하고 말았다.
부사장님은 좋은 사람인데… 으휴, 조심해야지. 나는 헛기침을 한 후 얌전히 차렷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큐 사인이 들어오면서 부사장님이 나를 껴안았다.
“야, 너 왜 자꾸 나 피해.”
그런데 이거… 목소리만 들리니깐… 엄청 몰입되네.
대본을 읽으면서 상상하던 그 순간이 찾아왔다. 듬직하게 나를 안아주는 우재. 깜짝 놀라 저항하는 척 해 보지만, 보기와 다르게 힘이 센 우재는 그런 날 놓아주지 않았고… 오히려 내 귓가를 희롱하면서 내 마음을 가지고 놀았다.
나는 시은이라도 된 것처럼 우재 품에 안겨 그의 고백을 들어야만 했다.
“그래. 좋아하는 사람 있어서 못 사귄다고 했어.”
“......그게 누군데.”
“너.”
아, 미쳤다, 이거.
미쳤다고.
우재의 잘생긴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자 두근거리던 심장이 날뛰기 시작했다. 너무 설레여서… 연기를 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런 게 연애구나… 대본인 걸 알면서도 머릿속이 하얘져서 순간 대사를 잊고 말았다.
“……”
그런데… 떨고 있는 건 나 혼자가 아니었다.
뒤에서 날 껴안고 있는 우재 역시 떨고 있었다. 완벽해 보이는 우재에게도 두려운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내게 거절당하는 것. 무뚝뚝한 우재의 순진한 모습을 알게 되자, 그게 너무 사랑스러워서 마음이 애틋해졌다.
스킨십을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소중한 정보였다.
말로는 전달할 수 없는 감정.
이래서 스킨십을 하는 거구나.
목뒤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숨결, 의외로 향긋한 향수 냄새, 보기보다 듬직한 가슴, 의지가 되는 커다란 손, 그리고 그에게 안겨 안심한 나.
아아… 너무 좋다.
나는 우재의 손을 잡아 주며 연기를 이어갔다.
“신기하네… 나도 좋아하는 사람 있는데.”
“…누군데.”
“너.”
“…진짜?”
“응… 헤헤, 나 너 좋아해, 우재야.”
“나도… 나도 너 좋아해, 시은아.”
“그럼… 우리 사귈까?”
그렇게 오늘부터 1일이 된 우재와 나.
그게 너무 좋아서 우재에게 몸을 기댄 나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달콤한 연애도 연애였지만… 지금 내 연기가 너무 만족스러웠다. 이게 연기인지 현실인지 구분도 못할 정도로 우재에게 몰입했던 나… 헤헤, 부사장님도 엄청 만족했겠지?
“컷. 처음부터 다시 가자. 너무 쓰레기 같았어, 방금.”
……라는 건 내 착각이었다.
***
쓰레기같다는 소리에 순간 울컥했지만, 이어지는 설명을 듣자 나 역시 나를 비난하게 되었다. 시은이가 아니라 우재한테 몰입한 거 같다는 부사장님의 지적. 역시 부사장님은 프로였다.
“여기서 중요한 건 시은이지, 우재가 아니야.”
“그렇죠…”
“우린 지금 사랑에 빠진 여자를 공부하는 중이잖아.”
“맞아요…”
“우재보단 시은이를 더 신경써 줘.”
“알겠습니다.”
조금 전에 있었던 두 사람은 우재와 시은이가 아니라 우재와 진희였다. 그 사실에 수치심을 느낀 난 처음부터 다시 감정을 잡았다. 시은이가 고구마를 주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잖아.
좀 더 아껴줬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초보였다.
“야, 너 왜 자꾸 나 피해.”
하지만… 나와 시은이 사이의 간극을 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재에게 푹 빠져 버린 나와 우재에게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시은이. 나는 그 차이를 알기 위해 몇 번이나 더 안겨야만 했다.
“……진희야?”
“아, 죄송해요. 감정 잡기가 어려워서요.”
그런데 이게… 몰입이 깨지니깐 우재가 아니라 부사장님인 게 너무 체감되더라고.
목뒤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숨결, 의외로 향긋한 향수 냄새, 보기보다 듬직한 가슴, 의지가 되는 커다란 손, 그리고 그에게 안겨 안심한 나…… 어라? 뭔가 이상한데?
아, 아무튼 그러다 보니 집중이 안 돼서 레슨이 길어져 갔다.
“후우우… 진희야.”
“네, 부사장님…”
“내가 이런 말 진짜 평소에 잘 안 하는데…”
“네…”
“너 진짜 재능충이다.”
“……헤헤.”
“나는 이거 한 달 봤는데… 와아, 이걸 한 주만에 한다고?”
그러나 놀랍게도 나는 부사장님 공인, 재능충이었다.
통과하기 힘들 거라 여겼던 이번 레슨도 나는 일주일만에 통과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말인즉슨 일주일 내내 부사장님한테 안겼다는 소리지만… 어쨌든! 나는 레슨을 통해 사랑에 빠진 여자가 느끼는 특유의 설렘을 이해할 수 있었다.
“헤헤…”
“너는 나중에 배우해도 되겠다.”
“헤헤…”
“그래서 말인데… 진희야, 심화 과정도 밟아 볼래?”
“…심화 과정요?”
“응, 배우 할 거면 어른의 사랑도 알아두는 게 좋잖아.”
“어, 어른의… 사랑?”
이제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배우가 되려면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