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77 - 아이돌 메이커(15)
“부사장님… 흐읏, 으응…”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방문을 잠근 나는 부사장님과의 섹스… 를 상상하며 자위를 시작했다.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기에, 나는 평소보다 의욕이 넘치는 상태였다.
“하앗, 아앙… 하아앙…”
이런 식으로 자위를 하면 훨씬 더 섹시해지겠지? 부사장님의 레슨을 믿어 의심치 않은 나는 성장하기 위해 보지를 애무했다. 그런 다음 베개를 부사장님이라 생각하고, 그 위에 올라타 미친듯이 허리를 흔들었다.
“부사장님… 하아, 닿고 있잖아요…”
“…..변태.”
“으으응… 기분 좋아요?”
하지만 부사장님과 달리 베개엔 자지가 없어서 보지 쪽이 굉장히 허전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만큼 침대가 들썩였지만, 기분이 좋아지기는커녕 답답함만 커져 갔다. 상상 속에선 오르가즘을 느낀 내가, 현실에선 허무함에 아쉬움을 느꼈다.
……역시, 부사장님이 없으면 안 되는 걸까?
어제의 그 느낌을 되살리고 싶은데… 혼자서는 쉽지가 않았다. 이래서 부사장님이 필요한 건데… 하여튼 틀딱꼰대라 눈치가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몰래 찾아가서 자지를 빌려달라고 부탁해야 하나?
그렇게 침대 위에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불청객이 찾아왔다.
-똑똑똑
“은아야,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그건 바로 진희 언니였다.
***
“에에에에에에? 혼또오?!”
“미쳤다, 언니! 그 부사장님이 연기 레슨을 해 준다고?! 대박사건! 그럼 언니 이제 배우 일도 하는 거야? 와아… 언니 너무 잘됐다!”
“축하해, 언니.”
“후후… 고마워, 얘들아.”
멤버들을 불러낸 진희 언니가 ‘이상한 소리’를 했다. 부사장님한테 ‘연기 레슨’을 받기로 했다는, 아주 괴상한 소리를 말이다. 여유가 없어서 레슨을 중단한 부사장님이… 진희 언니를 따로 봐 준다고? 바보, 당연히 거짓말이잖아.
나는 당당하게 진희 언니의 말을 지적했다.
“……거, 거짓말.”
“응? 아니야, 진짜야! 시우 오빠랑도 얘기하기로 했어. 컴백이랑 시기가 겹치기는 한데… 오디션이 안 돼도 좋으니깐, 이번 기회에 기초를 가르쳐 주실 거래.”
“엑.”
그러나 언니는 고집이 셌다. 시우 오빠까지 들먹이면서 자기 거짓말에 신빙성을 높이려고 노력했다. 저러면 멤버들이 믿어 줄거라 생각하는 걸까? 언니답지 않게 은근히 유치한 구석이 있었다.
“좋겠다… 나도 연기하고 싶어. 여배우는 로망이잖아, 에헤헤.”
“유키, 너는 발음이 구려서 안 돼.”
“에에엣?! 시엘 쨩보단 영어 발음 좋거든?”
“뭐, 뭐래! 나도 영어 잘하거든?”
“푸흡… 자신감은, 시엘 쨩이 최고일지도…”
“뭐야, 그 반응은! 너 맞고 싶어?”
“으아아앙, 은하 언니! 시엘 쨩이 나 괴롭혀어!”
그런데 이게 뭐야, 다들 바보인 거야? 유키도 시엘도, 그리고 똑똑한 은하도 진희 언니 말에 꿈뻑 넘어갔다.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거짓말인데, 다들 순진해서 그런지 언니에게 속고 말았다.
으으…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지.
나는 이 대화를 끝내기 위해서 언니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즈, 증거 있어?”
“응? 증거? 뭐… 이게 증거라면 증거겠지? 세 달 후에 보는 오디션 대본이야.”
“엑.”
하지만 어째서인지 언니에겐 증거가 존재했다. 이, 이러면 언니 말이 맞다는 건데… 어라? 그럼 진짜로 부사장님한테 레슨을 받기로 했다는 거야? 순간 머리가 멍해져서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 그럴 리가 없는데…
부정하고 싶었지만 눈앞의 증거 때문에 더는 부정할 수 없었다. 정말로 인정하기 싫었지만 대본이 있는 이상 언니의 말을 인정해야만 했다. 여유가 없다는 부사장님의 말은 거짓말. 실제로는 나를 버린 거구나.
언니 손에 들린 대본을 바라보며 나는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으, 은아야? 너 괜찮아?”
“어, 언니! 얼굴이 창백해!”
“어떡해! 어디 아픈 거야?”
“생리.”
“”””아.””””
“나 먼저 들어갈게.”
적절한 핑계를 대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직도 머릿속이 복잡해서 그런지 숨 쉬는 게 쉽지 않았다.
부사장님은… 나 말고 언니를 선택한 거구나. 정말이지 씁쓸한 현실.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올 거 같았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한 건데도… 부사장님 눈에는 못 미더워 보인 모양이었다.
칭찬받고 싶었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재능이 없는 애는 대충 여기서 끝내고, 싹수가 보이는 애로 갈아타야겠다. 그렇게 생각했을까 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쩌면 부사장님에게 나라는 존재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그런 존재일지도 몰랐다.
나한테 부사장님은 정말로 중요한 존재인데 말이다.
“짜증나.”
그래서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 부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감히 틀딱꼰대 주제에… 나를 버리려고 해?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는 말했다. 내가 천하를 버릴지언정 천하가 날 버릴 순 없다, 라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할 거다. 내가 부사장님을 버릴지언정 부사장님이 날 버릴 순 없다, 라고 말이다.
솔직히 유비가 한 말인지는 헷갈렸지만 아무튼 나는 진심이었다.
- 철컥
[야, 귀찮게 좀 하지 마!]
그런데… 이건 또 뭐야.
분명 부사장님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모르는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
[부사장님은… 우욱, 배우 팀이라고… 이 눈치없는 년아!]
“?”
[적당히 배웠으면 꺼질 것이지… 윽, 우으으… 이 시간에 귀찮게 전화질을 해? 너 진짜 예의가 없구나? 어? 너네 팀장한테 그렇게 배웠어?]
“누구세요?”
[나? 나, 몰라? 나 한지영이야! 부사장님 담당 배우, 한지영!]
술 취한 냄새가 물씬 나는 목소리. 회식이라도 하는 걸까? 떠들썩한 주변 소리가 들리는 걸 보아 부사장님이랑 단 둘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일단은 다행이네. 안심한 나는 머릿속으로 한지영이 누군지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한지영의 존재를 떠올렸다.
그때, 나한테 싸가지 없이 굴었던 여자.
얘, 나보다 후배잖아.
상황을 파악한 나는 소중한 후배에게 귀한 잔소리를 들려 주었다.
“뭐래, 미친년아.”
[……미, 미친년? 너 지금 나한테 욕했어어?!]
“너 작년 3월에 데뷔했지? 난 재작년 12월에 데뷔했어.”
[어… 어어?]
“와아, 세상 많이 좋아졌다. 요새는 후배가 선배한테 반말도 하네.”
[뭐어어?]
“썅년아 눈치없어? 존대하라고.”
[………]
“야, 안 들리는 척하지 마.”
[………]
“부사장님이 제일 싫어하는 게 예의없는 년인 거 몰라? 어? 내가 직접 얘기해 줘? 한지영, 그년 존나 싸가지 없다고?”
[아… 아, 아니요.]
“씨발, 꼭 말을 해야 알아 들어요.”
[죄, 죄송합니다.]
진수 오빠한테 배운 후배 교육법인데 역시 효과가 있구나. 어깨 너머로 배운 욕을 적절히 섞어 주자, 한지영이 단번에 얌전해졌다. 그래도 이렇게 금방 고쳐지는 걸 보면 본성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속이 시원하지?
한바탕 욕을 쏟아내고 나자 우울했던 기분이 날아갔다. 이래서 진수 오빠가 틈만 나면 후배한테 잔소리를 한 거구나. 솔직히 보기 안 좋았는데 이제는 이해가 됐다. 앞으로는 욕을 해도 그냥 넘어가 줘야 할 거 같다.
“너… 조심해. 한 번만 더 나한테 지랄하면 그땐 가만 안 둬.”
[네… 조심할게요…]
“쯧… 근데 왜 네가 받냐. 부사장님은?”
[잠시 자리를 비우셔서… 제가 자리를…]
“미친, 네가 부사장님 애인이냐? 왜 네가 부사장님 자리를 지켜.”
[그, 그게… 아앗...]
“됐고, 부사장님 오면…”
[뭐야, 누군데? 가은이?]
“……”
[근데 표정이 왜 그래? 응? 아아, 일단 나중에 얘기하자. 우선 통화부터 할게. 어, 여보세요? 가은이니?]
“훌쩍…”
[응? 너 울어?]
“끊을게요.”
[자, 잠시만. 야, 한지영! 너 가은이 괴롭혔어?!]
분명 상쾌해졌었는데… 부사장님 목소리를 듣자 다시 기분이 나빠졌다. 나를 버려 놓고선 무슨 자상한 척이야. 이대로 있다간 괜스레 눈물이 나올 거 같아서 황급히 전화를 끊고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 지이이잉
- 지이이잉
하지만 그렇다고 전화를 안 받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
한숨을 내쉰 나는 떨리는 손으로 부사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어째서인지 한지영이 내게 사과를 했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데… 뭐어어, 좋은 거겠지? 대충 알겠다고 대답해 주자 다시 부사장님이 전화를 바꿨다.
[가은아, 괜찮아?]
“……네.”
[지영이 일은 내가 사과할게. 얘가 취해서 말실수를 한 모양이야.]
“그렇구나. 이해해요.”
[그래, 고마워.]
“네.”
[그으… 그런데 무슨 일이야?]
“……”
[가은아?]
“진희 언니… 레슨해 주신다면서요.”
[아, 그거?]
“……흥, 여유 없다더니 시간이 생겼나 봐요?”
[아니, 그게 아니라… 사실 그 오디션 준비 때문에 시간이 부족한 거였거든. 근데 보니깐 진희가 다른 애들보다 그 배역에 더 어울리더라고. 그래서 걔네들 대신에 진희를 챙겨 주기로 한 거야.]
“…그래요?”
[응. 그럼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했겠니?]
“그건… 아니죠.”
[기본기 가르치는데 한 두 달 정도 걸리니깐, 그때까지 넌 복습하고 있어.]
“계속… 가르쳐 주실 거예요?”
[뭐야, 배우기 싫어?]
“……아뇨.”
[그럼 혼자 착각해서 삐지지말고, 시간 날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
“……뭐래, 안 삐졌거든요.”
[삐진 거 아니야?]
“아니라고요.”
[흐음, 수상한데?]
“끊을게요.”
뭐야… 날 버린 게 아니었구나.
그러고 보면 레슨을 중단한 거지, 아예 그만둔 건 아닌데… 내가 너무 과민반응을 한 거 같다. 부사장님이 틀딱꼰대긴 하지만…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잖아. 진희 언니를 속이려다가 내 꾀에 내가 넘어 가고 말았다.
부사장님을 좀 더 믿었어야 했는데… 내가 바보였네.
사과의 의미로 셀카를 한 장 찍어서 보낸 나는 다시 자위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셀카는 조금 아닌 거 같아서 자위를 멈추고는 메시지를 삭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