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374화 (374/428)

Chapter 374 - 아이돌 메이커(12)

“하아아… 진희야, 지금 같은 일이 있으면 딱 잘라서 거절할 줄 알아야지. 정말로 나쁜 사람 만나면 어떡하려고 그래. 응?”

“어… 어어?”

“이 팀장한테 그런 거 안 배웠어?”

“부, 부사장님?”

“뭐야, 반응이 왜 그래. 너 설마 내가 진심인 줄 알았어?”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 따뜻한 홍차를 건네는 부사장님. 무서웠던 분위기가 단번에 가라앉았다. 그러니까 지금… 나를 속인 거야? 아니, 속였다기보단 나를 시험을 해 본 거 같은데… 으읏, 바보같이 멍청한 모습을 보여 주고 말았다.

부사장님… 분명 실망했겠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부사장님이 나한테 그런 걸 강요할 리 없는데… 은아한테 들은 이야기 때문에 큰 착각을 하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진희야, 사과는 네가 아니라 내가 해야지. 내가 너한테 성희롱 했잖아.”

“하, 하지만 그건…”

“후우우… 답답하네 진짜.”

“으읏…”

“쯧, 우선 사과부터 할게. 미안해, 많이 당황했지? 진희, 네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해서 한번 테스트해 본 거야. 표현이 조금 더럽긴 한데… 이렇게 하면 상대방 에고를 알 수 있거든. 그래서 신인들 상대할 때 종종 쓰는 레슨 스킬이야.”

“레슨… 스킬요?”

“그래, 주로 자기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확인할 때 써.”

“아아…”

“보통 이야기를 듣자마자 거절해야 정상인데… 자신감이 없는 애들은 나랑 타협을 하려고 해.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모르고 말야.”

“……저처럼요?”

“응? 에이, 아니지. 넌 대답이 느려서 그렇지 거절할 생각은 했었잖아.”

“……네?”

“그렇지?”

“……네, 네에.”

나름 위로해 주려는 걸까? 너무 당황해서 아무런 생각도 못했었는데… 부사장님이 나를 좋게 봐 줬다. 분명 다 알면서… 그냥 넘어가 주는 거겠지? 부사장님은 생긴 거랑 다르게 의외로 자상한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진희야, 대답이 느린 것도 문제야.”

“우으읏…”

“너는 아이돌이잖아.”

“……네.”

“무대 위에서 그 누구보다 빛나는 아이돌. 그러니 넌 네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해. 이런 일이 일어나면, 바로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고.”

“죄, 죄송합니다…”

“너부터가 널 사랑하지 않는데 팬들이 널 사랑해 줄까?”

“아아…”

“가은이 성장하면서 초조해진 건 알겠는데, 우선 넌 마인드부터 바껴야할 거 같아. 그리고 뭔가 착각하는 거 같은데 내가 은아한테 알려 준 것도 대부분 이런 거였어. 마인드 이야기. 걔는 연습생 시절이 짧아서 그런지 들려 줘야 할 게 많더라고.”

“……”

그렇구나… 사실 당연한 건데… 마음이 조급해져서 당연한 걸 잊고 있었다. 우선은 나부터 사랑해야겠구나. 부사장님한테 쓴소리를 듣고 나자 조금이지만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도 이렇게 이야기해 주는 걸 보면, 그만큼 나를 믿는다는 거잖아.

걱정도 많았지만 용기를 내서 찾아오기를 잘한 거 같다.

“그런데 설마 리더인 너한테도 들려 줘야 할지는 몰랐어.”

“으읏…”

“진희야.”

“네, 네에…”

“누가 뭐라 해도 넌 시트러스의 리더야.”

“……네.”

“자신을 가져.”

“네에…”

“근데 말만 하고 이렇게 넘어가면 도움이 안 되잖아.”

“네?”

“그래서 내가 몇 가지 팁을 줄게.”

“네에? 정말요?”

“간단한 거니까 새겨 들어.”

“가, 감사합니다!”

자존감을 키우는 아주 소소한 방법들. 하지만 확실하게 도움이 될 법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따지고 보면 말도 없이 찾아와서 징징거린 건데… 이걸 이렇게 열심히 도와주는 구나.

비호감이었던 부사장님이 오늘 따라 참 좋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선입견 때문에 부사장님의 좋은 모습을 놓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진희야, 너는 네가 데뷔한 게 그냥 짬이 차서라고 생각해?”

“글쎄요…”

“지금 와서 밝히는 건데 GSB 연습생 중에서 네가 제일 평균치가 높았어. 그 많은 애들 중에서 네가 가장 완성형에 가까웠다는 뜻이야.”

“아…”

“그리고 진희야, 넌 네가 개성 없다고 생각하면 안 돼. 어느 한 쪽으로도 뛰어나지 않다는 건, 반대로 뭐든지 될 수 있다는 소리야. 생각해 봐. 악역만 가능한 배우와 배역을 가리지 않는 배우. 누가 더 뛰어날 거 같아?”

“아아…”

“초조해하지 말고 생각의 관점을 바꿔 봐.”

“……네!”

처음부터… 내 고민이 뭔지 알고 계셨구나. 아무렇지 않게 담담한 목소리로 나를 위로해 주는 부사장님. 조금만 방심해도 눈물이 흐를 것 같아 위험했다. 이 사람은… 나를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한 명의 아이돌로 봐 주고 있었다.

이러니… 은아가 그렇게 달라지지. 부사장님 같은 사람이 옆에서 응원해 주는데, 자신감이 안 생기는 게 이상했다. 늦었지만 이제서야 은아의 변화가 이해가 됐다.

“아, 그리고 이건… 내가 최근에 읽고 있는 대본인데, 시간 나면 한번 읽어 봐.”

“대본이요?”

“그래, 아이돌이라고 연기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혹시 알아? 연기에도 재능이 있을지. 막힐 때면 길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니깐 한번 연습해 봐.”

“네에… 감사합니다.”

“시간은 일주일 줄게.”

“……네에에?!”

“’지연’이라는 캐릭터니깐 까먹지 말고 연습해 와.”

“저, 정말이에요?!”

시트러스에 진심이라는 말이 사실이었구나… 연기 레슨이라는 말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부사장님은 GSB에서도 유명한 연기 선생님이잖아. 그, 그런 부사장님한테 연기 레슨을 받을 수 있다니… 솔직히 믿기지가 않았다.

“아니, 확인만 해 보자는 거야.”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어깨를 짓누르던 부담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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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히로인 한 명으로 만족하기에는 시트러스 멤버들이 너무 아깝잖아. 그래서 가은 말고도 몇 명 더 네토리 각을 만들고 있었는데 운 좋게도 오늘, 진희가 나를 찾아왔다. 기특하게도 내게 레슨을 요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은아가 성장한 스노우볼이 이렇게 굴러가나?

내 입장에서는 정말로 좋은 상황이었다. 저번에 슬쩍 들은 건데… 리더인 진희가 연기에 재능이 있다 하더라고. 그래서 가은 다음으로 노리고 있던 게 진희였는데, 타이밍이 아주 적절했다.

‘뭐야, 반응이 왜 그래. 너 설마 내가 진심인 줄 알았어?’

’그래, 주로 자기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확인할 때 써.’

‘아, 그리고 이건… 내가 최근에 읽고 있는 대본인데, 시간 나면 한번 읽어 봐.’

그래서 난 먼저 진희의 멘탈은 건드려 진희를 가스라이팅 하기 쉬운 상태로 만들었고, 그 다음에는 대충 있어 보이는 말을 던져 믿을 수 있는 사람인 척 연기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슬쩍 본론을 꺼내 진희에게 연기 레슨을 강요했다.

이 정도면 좋다고 레슨을 받으러 오겠지?

이제 남은 건 연기 레슨인 척 스킨십 시간을 늘리는 것뿐이었다.

당연히 모솔일 테니깐 연애 경험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접근할 수 있을 거고, 후후… 그 다음은 뭐 평소처럼 하면 되겠지. 아이돌이라 해 봤자 갇혀 사는 반 사회인. 어린애 한 명을 가지고 노는 건 일도 아니었다.

대신에 이제 조심할 것은 조교 진도인데… 이게 ‘성감 자극’을 못 쓰다 보니, 어느 타이밍에 진도를 나가야 할지 감이 잘 안 왔다. 그리고 조교도 순수 내 실력으로 해야 하다 보니, 제대로 느끼고 있는 건지도 알기가 어려웠다.

으음, 그래도 시간은 많으니깐… 천천히 하면 되겠지? 아직 컴백까지는 많이 멀었으니깐, 그때까지 즐긴다 생각하고 한 단계씩 밟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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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이 팀장님.”

“응? 무슨 일 있어?”

“최근 들어서 진희가 좀… 기운이 없어 보이더라고요. 아무래도 은아가 요즘 치고 나오다 보니깐 혼자 조급해 하는 거 같아요. 그래선지 레슨에 집중도 잘 못하고… 보기 안쓰럽던데, 괜찮을까요?”

“예상대로네.”

“네에?”

“괜찮으니깐, 그대로 가만히 냅둬.”

“아니… 그, 그래도 돼요?”

“내가 말했잖아. 진희는 슬로우 스타터라고. 어차피 나중 가면 다 해결될 문제야.”

“아, 아무리 그래도…”

“그리고 이번 뮤직 비디오. 진희를 메인으로 할 거야.”

“…네에에?!”

“이것도 말했잖아. 진희가 연기 쪽에 재능이 있다니깐? 그걸 본인은 잘 모르는 거 같은데, 이번에 뮤비 찍으면서 내가 알려줄 거야. 다른 애들한텐 없는 재능이니깐 그걸 알고 나면 진희도 자신감이 생길걸?”

“아하… 역시 팀장님은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아부는 됐으니깐 너는 가서 애들이나 챙겨.”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 몰래 간식 챙겨 주는 건 좋은데 칼로리 계산하고 줘. 못 먹는 거보다 살 빼는 게 더 스트레스야.”

“아, 하하하… 아, 알겠습니다.”

도망치듯 떠나가는 매니저를 보면서 이시우가 한숨을 쉬었다. 대답하는 걸 보아 고칼로리 간식이라도 바친 눈치였다. 하여튼 덩치값을 못 한다니깐. 그렇게 마음 속으로 매니저를 비난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곡 컨셉을 확정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90%는 다 만들어 놨지만 그래도 의견을 듣는 게 좋겠지. 멤버들의 자주성을 강조한 프로듀서다운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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