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70 - 아이돌 메이커(8)
“와아, 가은아 느낌 너무 좋은데?”
“그래요?”
“응! 내가 알던 가은 맞아? 언니 완전 감동했어!”
“오.”
“팔다리만 허덕이던 네가 이 정도로 따라올 줄이야… 이제 나머지공부는 졸업해도 되겠는걸? 진수 씨! 진수 씨도 그렇게 생각하죠?”
“하하하, 그럼요.”
오늘도 안무가 선생님께 칭찬을 들었다. 이번 주만 해도 벌써 네 번째 칭찬이었다. 이게 레슨의 효과구나. 진심으로 기뻐하는 안무가 선생님 덕분에 웃음이 나왔다. 그날, 본격적으로 ‘섹스 어필’ 레슨을 시작한 날부터 매일매일이 축제였다.
역시 부사장님… 믿기를 잘했어.
알몸으로, 아니, 브라만 차고 춤을 춘 지도 어느덧 3주 째. 나는 마침내 아무 지적 없이 댄스 레슨을 끝낼 수 있었다. 부사장님 덕분에 ‘섹스 어필’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춤 자체를 즐기게 된 효과였다.
이 정도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지 않을까? 심화 과정을 거쳐 숙련자 단계를 밟으면 얼마나 성장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바스트 모핑이나 시선 처리 등등, 아직도 배울 게 많잖아. 더 많이 성장해서 더 많은 칭찬을 듣고 싶었다.
“으, 은아 언니가 나한테 거짓말 했어!”
“응?”
“부사장님이랑 하는 레슨! 그거 특훈이지?!”
“엑.”
“잔소리만 듣는다길래 걱정했었는데… 이게 뭐야! 댄스 특훈이었잖아! 이잉, 괜히 걱정했어! 언니 주려고 몰래 마카롱도 훔쳤는데…”
“왓?! 헤이, 유키! 내 마카롱 가져간 거 너였어?!”
“엣, 에에에에?! 아차, 말해버렸다!”
“유, 라이어! 모른다더니, 순 거짓말이었잖아!”
“에헤헤, 고멘 시엘 쨩. 농담이었어!”
“너어어! 진수 오빠 시켜서 힘겹게 구한 한정 마카롱이었는데에!”
오늘도 사이가 좋아 보이는 유키와 시엘. 화기애애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자 마음이 따뜻해졌다. 본의 아니게 멤버들을 속였지만, 다들 크게 신경쓰는 분위긴 아니었다. 역시 우리 멤버들은 착하구나... 나는 자그맣게 미소 지으며 유키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처음엔 잔소리였는데… 그러다가 답답했는지 직접 가르쳐 주셨어.”
“에에에, 혼또? 어떻게? 설마 부사장님이 언니 앞에서 춤 췄어?”
“아니, 춤 출 때의 마음가짐… 응, 마음가짐 같은 걸 가르쳐 주셨어.”
“마… 마음가짐?”
“응. 마음가짐.”
“언니이… 잔소리잖아, 그거어!”
“웁스… 마카롱 그냥 언니 줘야겠다.”
“그런가?”
“당연하지! 춤 출 때마다 네가 GSB의 아이돌인 걸 명심해라! 뭐 이런 말을 했다는 거 아니야! 그러면 그게 잔소리지, 특훈이겠어? 쯧쯧쯧, 하여튼 은아 언니는 생긴 거랑 다르게 너무 순진하다니깐? 언니는 시엘 쨩처럼 독해질 필요가 있어!”
“뭐어어?! 나처럼 독해질 필요가 있다는 게 무슨 소리야!”
“그치만 시엘 쨩! 진수 오빠한테 심부름 시키는 일진이잖아!”
“그, 그건……”
“흥, 그러니 시엘 쨩은 독한 여자야!”
으으음… 굳이 사실대로 얘기할 이유는 없겠지? 부사장님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섹스 어필’을 위한 마음가짐. 괜히 말했다가는 부사장님이 쓸데없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이건 그냥 잔소리라 치고 넘어가야겠어. 오늘도 부사장님을 틀딱꼰대로 만든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은아가 혼자서 열심히 노력한 거네? 후후, 우리 은아 장하다.”
“그런가.”
“언니, 쟤 매일 혼자 남아서 늦게까지 연습하다가 퇴근하잖아요. 아마도 연습량만 따지면 여기서 제일 많을걸요? 1집 때랑 완전 달라요.”
“…그런가.”
“아아앗! 은아 언니 얼굴 빨개졌어! 흐흥, 부끄럽나 봐!”
“……오늘따라 덥네.”
부사장님이 내준 숙제 때문에 늦게까지 남아서 연습한 건데… 그게 멤버들 눈에는 좋게 보인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1집 때보다 훨씬 더 친해진 기분이 들었다. 만약 이것까지 노린 거면 부사장님은 진짜 천재인데… 음, 왠지 충분히 그럴 사람이란 말이지. 하여튼 변태 같이 생겨서는 일밖에 모르는 일 중독자였다.
……그래서 말인데, 레슨 시간을 조금 더 늘리는 건 어떨까?
이제 남은 시간은 약 3주. 3주가 지나면 부사장님과의 레슨이 끝나 버린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배울 게 많이 남아 있었다. 최소 두 달이라고 했으니 조금 더 늘려도 괜찮잖아. 부사장님과의 진지한 대화가 필요해 보였다.
“아핫, 시우 오니쨩! 나 보러 온 거야?”
“뭐래, 나 보러 온 거죠?!”
“너희 둘 다 보러 온 거야.”
“에헤헤, 들었지? 언니들 보러 온 거 아니래!”
그렇게 레슨 시간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데 어느샌가 나타난 시우 오빠가 흐뭇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곡 작업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크서클이 진하게 짙어져 있었다.
흐음, 역시 시우 오빠도 시트러스에 진심이구나.
날 아이돌로 만들어 준 GSB의 프로듀서 시우 오빠. 오빠가 없었다면 나는 멍하니 침대에 누워 드라마나 영화만 봤겠지… 내 삶의 은인이자 부사장님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 아무래도 멤버들뿐만 아니라 시우 오빠를 위해서라도, 부사장님과의 레슨 시간을 늘려야 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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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처럼 밝게 빛나는 미소를 가진 여자 아이. 유키와 하이 파이브르르 한 이시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토닥거려 주었다. 유키는 언제 봐도 에너지가 넘쳐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런 애가 무대 위에만 올라가면 멋있어진단 말이지… 가볍게 유키를 평가한 그가 이번에는 시엘을 바라봤다.
영국계 쿼터이자 연한 금발을 타고난 여자 아이. 혼혈답게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시엘은 자신에게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시트러스의 멤버로 낙점된 그녀. 노래까지 잘 부르는 그녀는 시트러스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디바였다.
“으응? 뭐야, 뭐야! 난다요 오니쨩! 뭘 그렇게 쳐다 봐?”
“웁스, 또 나한테 반한 거야?”
어린 아이답게 다소 촐랑거리는 면도 있지만, 어리기 때문에 그룹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그녀들. 이시우는 고개를 끄덕인 후 그녀들 뒷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후후, 오셨어요?”
“요, 늦었네. 금방 온다더니 처리할 게 많았나 봐?”
시트러스에서 랩을 담당하고 있는 은하, 성은 최 씨. 단발 머리를 하고 있는 그년 여자 팬이 더 많았는데, 그럼에도 남자 코어 팬을 대량으로 가지고 있어, 팬덤만 놓고 보면 시트러스에서 상위권이었다. 숏컷으로 자른다는 걸 이시우가 어떻게든 막은 놀라운 효과였다.
이제 좀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는데…
…하고 한숨을 내쉰 그가 리더 유진희를 쳐다보았다.
개성 넘치는 멤버들에 비해 약간은 밋밋한 외모의 그녀. 그래서 팬덤만 놓고 보면 최하위권이었지만… 시트로스 골수 팬들은 그녀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고 있었다. 멤버들이 흔들리지 않게 중심에서 꽉 잡아주는 진희. 마음 속으로 유진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그가 마지막으로 가은과 눈을 마주쳤다.
“하이요.”
“가은아, 실력 엄청 늘었더라.”
“인정.”
아우라가 느껴지는 그녀의 얼굴에 꿀꺽하고 침을 삼킨 이시우. 한층 더 성숙해진 그녀는 최근 들어 외모의 절정을 달리고 있었다. ‘소녀’다운 이미지에서, 한 명의 ‘숙녀’로 거듭난 가은. 1집 때보다 더 예뻐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은의 얼굴은 완벽했다.
이 아이돌이 시트러스의 멤버구나…
그 사실에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인 그가 멤버들을 불러 모아 그녀들에게 폭탄 선언을 했다. 그건 2집 타이틀 곡의 방향성을 멤버들끼리 정하라는 일종의 떠넘김이었다.
“진희야, 네가 중간에서 잘 중재해서… 결론 나면 나한테 알려 줘.”
요약하면 댄스냐, 보컬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시트러스 프로듀서의 명령. 고민에 빠진 멤버들을 흘겨본 그가 조심스럽게 연습실 밖으로 빠져 나갔다. 이번 일로 그녀들이 주체성을 가지기를 바란 프로듀서의 선택이었다.
“어, 어어, 언니! 어떡하지?!”
“춤이냐, 노래냐… 그것이 문제로다!”
“시엘 쨩! 나, 그거 알아! 스티븐 스필버그지?!”
“셰익스피어거든?!”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겨우 진정시킨 이시우. 그의 머릿속에는 시트러스의 성공밖에 없었다. 멤버들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그는 그렇게 활짝 웃으며 작업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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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에 어떤 게 더 좋겠냐는 동료들의 물음에 나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무엇 하나 잘하지 못 하는 나였기에 나한텐 선택권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춤을 잘 추는 유키와 노래를 잘 하는 시엘. 두 사람의 기싸움이 끝나야 방향성이 정해지지 않을까? 그때까지는 상담이나 받아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별 생각 없이 부사장님을 찾아갔다.
“하아… 이 사람은 또 어딜 간 거야.”
그런데 문 앞에서 생각지도 못한 방해꾼을 만났다.
“뭐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 신인이야?”
“?”
“귀 먹었어? 내가 묻고 있잖아. 신인이냐고.”
“아닌데요.”
“그게 끝이야? 신인이 아니면, 대화가 끝나? 네가 누군지 가르쳐 줘야 할 거 아냐! 하여튼 얼굴만 믿고 들어온 애들은 개념이 없다니깐.”
“……시트러스의 가은이에요.”
“……가은? 부사장님한테 레슨받는 그 가은? 하, 그게 너였어?”
“?”
“……흥, 예쁘긴 하네.”
“!”
“근데 그래 봤자 그게 끝이야. 연기엔 재능 없다며? 그러면 적당히 알아서 거리 둬. 아이돌 주제에 부사장님 귀찮게 하지 말고”
“……”
“뭐야, 불만이야?”
“……”
“미안한데 그게 팩트거든? 그러니 제발 눈치 좀 챙겨… 그럼 난 간다.”
그렇게 화를 낸 다음 부사장실에서 떠나가는 여자.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불쾌했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라 상당히 짜증났다. 배우 중엔 성격 파탄자가 많다더니 그 소문이 진짜였구나.
“불쌍해.”
오늘따라 부사장님이 안타까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