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66 - 아이돌 메이커(4)
“은아야, 레슨 잘 받고 왔어?”
“응.”
“언니, 언니! 부사장님이 뭐래? 연기 가르쳐 준대?”
“아니, 그냥. 열심히 하래.”
“에에엣? 뭐야, 그게! 재미없어.”
“언니, 설마 잔소리만 듣다가 온 거야?”
“그런 셈이지.”
“왓 더… 부사장님 완전 틀딱꼰대잖아!”
“쉿! 바보야, 진수 오빠가 듣고 있잖아!”
“웁스, 오빠 못 들은 척해 줄 거지?”
“하하하, 부사장님이 틀딱꼰대긴 하지.”
시끌벅적한 차 안… 그 안에서 나는 ‘군중 속의 고독’을 느꼈다. 다들 오늘 있었던 레슨이 궁금한가 본데, 나는 차마 사실대로 밝힐 수 없었다. 부사장 앞에서 알몸이 되었다고 이야기하면 난리가 날 거 아냐.
유키랑 시엘은 울음을 터뜨릴 거고, 진희 언니는 패닉에 빠질 거다. 그리고 은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경찰에 신고하겠지. 안 봐도 뻔했기에 나는 대충 말을 돌렸다.
아아, 참. 여기서 ‘군중 속의 고독’은 미국의 사회학자가 만든 단어인데… 그 사회학자 이름이… 아무튼, 미국의 사회학자가 만든 단어다.
“은아야, 그럼 레슨은 오늘로 끝이야?”
“아니, 두 달 동안 받기로 했어.”
“뭐어어어? 두 달?! 언니, 괜찮겠어?”
“홀리… 잔소리할 게 그렇게 많대?”
“응.”
“부사장님… 틀딱꼰대 중에서도 혼모노였구나…”
“야, 진수 오빠가 듣고 있다며!”
“괜찮아. 나중에 오니쨩이라고 불러 주면 돼.”
“맞지, 맞지.”
“왓 더… 진수 오빠, 브로는 안 돼?”
“응, 그건 안 돼.”
“홀리 쉿! 영어 차별이야, 이거!”
언제 봐도 귀여운 시엘과 유키. 쟤네들을 울린 순 없지. 불쾌한 레슨이었지만 역시 숨기는 게 맞았다. 그리고… 괜히 말했다가 레슨이 중단되면 나만 손해잖아. 다소 역겹더라도 도움이 되는 레슨이니깐, 나는 어떻게든 견딜 생각이다.
“야… 힘들면 말해.”
“?”
“히, 힘들면 말하라고! 잔소리 듣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 아냐.”
“맞지, 맞지. 나도 군대에 있을 때 정신 교육이 제일 힘들었어.”
“아아, 시작됐다! 진수 오빠의 군대 이야기!”
“다들 귀 막아!”
“후우, 내가 다음 달엔 꼭 담당 바꾸고 만다.”
“에에엣, 오니쨩! 우리 버릴 거야?”
“후우우우…”
“손나… 오니쨩, 다메요! 오니쨔앙!”
“젠자앙, 안 버려! 버리고 싶어도 못 버려!”
“에헤헤헤, 쵸로이요, 오니쨩.”
쵸로이(ちょろい), 쉽다는 뜻. 나는 고개를 끄덕여 유키의 말에 동의했다. 오니쨩 한 마디로 함락되는 매니저라니, 190cm가 넘는 키와 험상궂은 얼굴이 아까웠다. 우리 회사에는 얼굴값 못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변태 아저씨처럼 생겨 놓고서는 굉장히 논리적이었던 부사장을 떠올린 나는, 그럼에도 변태는 맞는 거 같다고 생각하면서 은하에게 대답했다. 맨날 아닌 척 하면서 나를 챙겨 주는 은하. 시트러스에는 정말로 좋은 사람들밖에 없다.
“고마워.”
“아니, 뭐. 고맙다는 말 들으려고 한 건 아니고…”
“그럼 안 고마워.”
“야, 그렇다고 취소하는 건 아니지!”
“후후.”
그러니 나는 최선을 다할 거다.
기대와 달리 큰 사랑을 받진 못했던 1집. 그때와 같은 결과를 반복할 수는 없잖아. 뒤늦게 합류한 나를 마치 가족처럼 대해 준, 내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난 부사장과의 레슨을 통해 한 명의 아이돌로 거듭날 거다.
***
그렇게 결심을 했기에 하기 싫은 숙제까지 해 왔는데… 그런 나를 맞이한 건 난생 처음 보는 야동이었다. 알몸으로 남자 위에 올라타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는 여자. 굉장하구나. 베드 신도 엄청 야했었는데… 야동은 말 그대로 급이 달랐다.
“벗으면서 들어.”
“엑. 또 벗어요?”
“그럼 내가 벗을까?”
“여기가 지옥이네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벗으면서 들어. 이 체위, 그러니깐 이 자세… 어디서 본 적 있는 거 같지 않아?”
“?”
이건 뭐, 신종 괴롭힘일까? 야동을 보여 주면서 그런 걸 묻다니,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그냥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본인이 다 설명해 줄 거 아냐. 나는 대답하는 대신 조심스럽게 옷을 개서 한쪽 구석에 쌓아 두었다.
“모르겠어? 그러면 직접 보여 줄게. 시트러스 1집 무대 영상이야.”
“?”
“여기, 이 부분. 반복 재생으로 보여 줄 테니깐 잘 봐. 비슷하지 않아?”
“?”
“그래도 모르겠어? 자, 비교 영상이야.”
“!”
뭐야… 똑같잖아?!
남자 위에서 섹스를 하고 있는 야동 배우와,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나. 놀랍게도 우리 두 사람은 같은 동작을 하고 있었다. 다리를 벌린 다음 앞뒤로 허리를 흔드는 그녀와 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컬쳐쇼크를 받고 말았다.
“너도 알겠지만, 이 춤, 이거 생각보다 되게 흔한 춤이야.”
“엑.”
“그래선지 시트러스 말고도 많은 아이돌들이 이 춤을 췄어. 정확히 똑같진 않지만 하나같이 다 이런 느낌의 춤이었지. 그런데 가은아, 이 춤이 섹스 체위와 비슷하단 걸 과연 기획사들이 몰랐을까?”
“으음… 알았겠죠?”
“그래, 다 알고 한 거야. 다 알면서 이 춤을 추도록 시킨 거야.”
“소름.”
“왜 그랬을 거 같아?”
“으음… 사장님이 변태라서?”
“아니, 이 춤이 ‘섹스 어필’을 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춤이라서 그래.”
“헐.”
“이 밑에 남자가 누워 있다고 생각해 봐. 그럼 이 야동이랑 크게 다를 거 있어?”
“……”
“없지? 그걸 노리고 이 안무를 짠 거야.”
“대박.”
“물론 이게 춤이란 건 다들 알고 있지. 근데 춤인 걸 알아도 연상이 되잖아. 뭐야, 얘네들. 마치 섹스하듯이 춤을 추고 있네? 씨발, 존나 꼴린다. 허리 돌리는 것 좀 봐. 아아, 얘네랑 섹스하고 싶다…”
“……”
“그렇게 만드는 게 이 춤의 목적이야.”
“그렇구나…”
충격의 연속이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 기분이 들었다.
아아, 여기서 판도라의 상자가 뭐냐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건데… 아, 몰라… 지금은 상식을 뽐낼 기운이 없었다. 우리가 췄던 춤이… 대중들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춤이었다니…
알고 싶지 않았던 정보를 알게 되었다.
“역겨워? 더러워? 근데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내가 말했지? ‘섹스 어필’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대중들의 욕망이 담긴 시선까지 이겨낼 줄 알아야 아이돌이야. 너는 그걸 명심해야 해.”
“아이돌, 이거 굉장히 어려운 직업이었네요.”
“몰랐어? 그래서 배우가 편해. 대본에 적힌 캐릭터만 연기하면 되잖아.”
“배우나 할걸.”
“너는 연기 못해서 안 돼.”
“……유감.”
그런데 말야, 부사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시우 오빠도 같은 생각을 했다는 거겠지? 안무 선생님을 우리한테 소개시켜 준 건 시우 오빠잖아… 얼굴만 보면 되게 순진하게 생겼는데, 의외로 음흉한 구석이 있었구나.
어쩌면 우리 회사는 얼굴값 못하는 사람들밖에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까지는 서론이고 이게 내 본론이야.”
“이건…”
“유키랑 네 비교 영상이야. 참담하지?”
“비교 대상이 너무 악의적이네요.”
“아까 말했던 ‘섹스 어필’. 둘 중에 누가 더 효과가 좋을 거 같아?”
“저요. 제가 더 이쁘잖아요.”
“본심은?”
“……유키겠죠.”
“그래, 야동이랑 별 차이가 없지? 알고 이렇게 허리를 흔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섹스랑 비슷할수록 ‘섹스 어필’의 효과도 커져.”
“흐음.”
“반면에… 너는 완전 별로지?”
“흥.”
“이걸 보고도 섹스가 떠오르기는 할 거야. 그런데 분명 내용이 다르겠지. 아, 쟤랑 하면 아프기만 할 거 같네… 뭐, 이런 느낌일걸?”
“……”
“그래서 오늘, 이걸 고쳐 줄 거야.”
“……이건 1집 때 안무잖아요.”
“’섹스 어필’의 기본이 되는 춤이야. 배워 두는 게 좋아.”
“부사장님 댄스 레슨도 가능했어요?”
“아니, 근데 이건 ‘섹스 어필’ 레슨이라 괜찮아.”
“?”
“내가 가르쳐 주려는 건, 유키처럼 춤을 잘 추는 법이 아니라… 이 야동 배우처럼 허리를 잘 흔드는 법이거든. 자, 그러니 여기로 와 봐.”
“!”
그렇게 말하면서 자켓을 벗는 부사장. 순식간에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설마 지금 나랑 섹스할 생각은 아니겠지? 그건… 그거는 진짜 아니잖아. 불안한 마음에 내가 꿀꺽하고 침을 삼키자, 부사장이 변태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근데 넌 안 덥냐? 에어컨 좀 틀어도 되지?”
- 삑
- 휘이이잉
아, 맞아. 원래 저렇게 생겼었지.
찬바람이 나오자 부사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
“지금부터 실습을 할 거야.”
“신고할게요.”
“그 실습이 아니니깐 좀 진정해 줄래?”
커다란 가방에서 베개 하나를 꺼내는 부사장. 변태지만… 그렇다고 더러운 변태는 아닌, 참 이상한 사람. 홀딱 벗고 있는 날 보고도 반응 하나 없는 부사장을 보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혹시… 변태지만 발기는 못 하는 불쌍한 변태 아닐까? 그렇게 마음 속으로 눈앞의 고자를 동정하자, 부사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화를 냈다.
“너 지금 이상한 생각했지?”
“전혀요.”
“했잖아.”
“뭐래. 레슨이나 해요. 그 베개는 왜 꺼낸 거예요?”
“하아… 그래, 레슨이나 하자. 자, 여기 위에 올라타.”
“?”
“지금부터 이 야동을 따라할 거야.”
“엑.”
“야동 배우가 됐다 생각하고, 베개 위에서 허리를 흔들어 봐.”
“!”
정말로 관음밖에 못하는 변태 고자 아니야?
의심이 점점 커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