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65 - 아이돌 메이커(3)
새로 얻은 스킬, ‘가스라이팅’의 효과는 엄청났다. 내 앞에서 옷을 벗고 알몸이 된 가은. 고작 말 몇 마디 섞었을 뿐인데 보지를 보여 준다고? 이 정도면 사기 스킬을 넘어 개사기 스킬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스킬을 사용하려면 그럴듯한 말을 덧붙여야 하지만, 그거야 뭐,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내 지위가 ‘기획사 부사장’인 이상, 단순한 개소리를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둔갑시키는 건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러기 위한 빌드업으로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일했었잖아. ‘관측’과 ‘신뢰’, 그리고 ‘반박귀진’ 등을 이용하여 만든 유능한 부사장 이미지. 이 이미지가 있다면 아이돌 하나 속이는 건 정말로 쉬운 일이었다.
“……부사장님.”
그런데 이게 또 무적은 아니란 말이지. 벗기는 것과는 별개로 만지기 위한 논리도 필요한 상황. 행동 하나하나에 다 이유를 만들어야 하다 보니, 완전히 함락시킬 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았다.
“이러면 되나요?”
하지만… 굳이 급할 건 없잖아. 나는 여유를 가지고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언제 또 기획사 부사장이 되어 보겠어. 수많은 연예인들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는 삶. 이 기회를 잔뜩 누리기로 결심한 내가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로 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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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부사장.
그냥 이대로 신고를 할까? 얼굴과 가슴, 그리고 시선을 내려 내 거기를 바라보는 부사장 때문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너무 노골적인 거 아냐? 레슨이 필요하다고 날 설득하더니, 반응만 보면 그냥 변태 아저씨였다.
“그 상태로 포즈를 취해 봐.”
“포즈?”
“아무 포즈나 좋으니깐… 아니지, 네가 가장 자신 있는 포즈를 취해 봐.”
에이, 그래도 기획사 부사장인데 설마 이렇게 대놓고 성희롱을 하겠어? 멤버들과 비교가 됐던 직캠을 떠올린 나는 애써 생각을 고쳤다. 부끄럽기는 하지만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레슨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다.
2집도 망하면 해체각인데… 그건 피해야지.
나는 찝찝한 생각을 떨쳐 내고 가장 자신 있는 자세를 취했다.
“……가은아. 그게 제일 자신 있는 포즈야?”
“네.”
“차렷 자세가?”
“네.”
“하아… 너는 화보 촬영할 때도 그렇게 서 있을 거야?”
“그때는 디렉팅을 따라야죠.”
“그, 그래. 최소한의 상식은 있구나.”
“?”
어쩌라는 거야. 가장 자신 있는 자세를 취하라길래 차렷 자세를 취한 건데, 이유도 모르고 잔소리를 들었다. 혹시 뭐, 기선 제압… 그런 걸까? 나랑 하는 레슨은 처음이니깐 주도권을 잡으려고 저러는 걸지도 모르겠다.
“저 상식인이에요.”
“하하하… 미안, 그걸 내가 몰랐네.”
“다음부턴 조심해 주세요.”
“그래, 조심할 테니깐… 자세를 취했으면 그대로 가만히 있어 볼래?”
“가만히요?”
“응.”
“알겠어요.”
“그래.”
“……”
“……”
“……”
“……”
“부사장님.”
“왜?”
“근데 너무 대놓고 보는 거 아니에요?”
시키는 대로 가만히 서 있었는데… 부사장이 하는 꼴이 참 가관이었다.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내 가슴과 엉덩이, 그리고 허벅지와 거기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부사장. 대충 넘어가려고 했는데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역시 성희롱이잖아, 이거.
숨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서 내 알몸을 직관하고 있는데… 이거를 참아야 해? 나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부사장에게 내 불만을 피력했다. 참고로, 피력하다라는 말은 생각하는 것을 털어놓고 말하는 걸 뜻하는데, 이렇게 어려운 단어도 아는 걸 보면 나는 역시 상식인이 맞았다.
“맞아, 대놓고 보는 중이야.”
“엑. 변태.”
“이게 대중의 시선이거든.”
“……대중의 시선?”
“야, 가은 봤냐? 오늘도 존나 예쁘더라. 병신, 가은은 가슴이지. 시트러스에서 제일 크잖아. 가슴도 좋긴 한데 나는 허벅지가 더 좋더라. 나는 엉덩이. 존나 탐스럽지 않냐. 씨발 탐스러운 건 보지지. 죽기 전에 꼭 한 번 따먹고 싶다.”
“미친....”
“네 팬들이 커뮤니티에서 하는 이야기를 요약한 거야.”
“…대박.”
“이런 애들이 너를 볼 때 어디를 보겠어.”
“부사장님이 지금 보고 있는 곳이요.”
“그래, 그래서 대중의 시선이라고 한 거야.”
“헐…”
“어때, 역겨워?”
“네.”
“그런데 네가 연예인을, 아니 아이돌을 할 거면 이 시선에 익숙해져야 해. 널 이런 식으로 보는 걸 알면서도 네 자신을 드러낼 줄 알아야 해. 아니지, 오히려 이렇게 음흉한 시선을 유도할 줄 알아야 해.”
“?”
“뭘 모르는 척 해. 그게 바로 ‘섹스 어필’이야.”
“!”
“그리고 그게 이 레슨의 진짜 목적이야. 얼굴만 예쁘고 나머진 다 별로인 너한테 딱 맞는 레슨. 단기간에 춤이나 노래 실력을 늘릴 수 있을 거 같아? 아니, 전혀. 불가능하지. 그러니 너는 이 레슨으로 ‘섹스 어필’을 배워야 해.”
“진심으로 하는 소리예요?”
“’섹스 어필’을 즐길 줄 아는 아이돌이 무대 위 생활도 즐길 수 있는 거야. 가은아, 방금 내가 너한테 한 말을 네가 몰랐을까? 아니, 너는 알고 있었을 거야. 남자들이 네 다리랑 가슴만 쳐다 보는데, 네가 그걸 모를 리 없잖아.”
“……”
“그런데 그게 너무 역겨우니깐… 애써 모른 척했을 거야. 애써 모른 척하면서 네 자신을 숨기려고 했을 거야.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성희롱을 당하니깐… 너 자신을 숨기는 게 하나의 방어책이었던 거지. 아니야?”
“……”
“대부분의 연습생들이 너랑 같은 고민을 해. 그리고 대부분의 연습생들이 너처럼 자기 자신을 숨기려고 해. 그런데… 그거 알아? 그런 애들은 데뷔 못 해. 데뷔하더라도 절대 성공 못 해. 팬들이 그걸 모를 거 같아?”
“……”
“본능적으로 다 알아 봐. 아아, 쟤는 가면을 쓰고 있구나, 나한테 진심이 아니구나, 나한테 속이는 게 있구나… 하고 말야. 그래서 그런 애들은 코어 팬 없어. 철새 팬들만 있지. 시트러스의 누구처럼 말야.”
“……”
와아, 소름 끼쳐.
이게 기획사 부사장? 날카로운 지적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칠 뻔했다. 진짜 완벽하게 분석했구나. 부사장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소 불편하고 불쾌한 얘기였지만… 부사장의 주장엔 설득력이 있었다. 아니, 설득력이 정말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부사장의 말에 100% 신뢰가 갔다.
그래서 ‘섹스 어필’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거구나.
나와 우리 멤버들의 차이, 그리고 시트러스와 다른 걸그룹들의 차이. 그 차이점을 깨달은 내가 조심스레 자세를 바꾸었다. ‘섹스 어필’을 해야 하는데 차렷 자세는 좀 아니잖아. 그래서 나는 차렷 대신 1집 때의 엔딩 포즈를 취했다.
“이해했어요. 열심히 해 볼게요.”
“굿. 좋은 태도야. 좋은 태도긴 한데… 갑자기 왜 그래? 어디 아파?”
“……”
“표정은 또 왜 그래? 진짜 어디 아픈 거야?”
“……”
나는 다시 정색을 하고 차렷 자세를 취했다.
***
그로부터 20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차렷 자세를 한 채로, 부사장에게서 지독한 음담패설을 들었다. 이것도 레슨의 일부라곤 하는데, 솔직히 도움이 되는 건지 의심이 됐다.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말 하는 거 아니야?
“오늘 가은 의상 실화냐? 씨발 존나 따먹고 싶네.”
“……”
“아가방에 내 좆물 채워서 10개월 동안 배부르게 해 준 다음에, 아가 전용 유아식 번갈아 가면서 쪽쪽 빨아 먹고 싶다.”
“신고해도 되죠?”
“오해하지 마. 댓글 보고 읽는 거야.”
“엣… 실화?”
그런데 놀랍게도 전부 다 내 팬들이 커뮤니티에서 한 말이었다.
……아니, 이 정도면 팬이 아니라 안티 아냐? 강간하고 싶다는 말을 천박하게 풀어 놨는데, 이걸 보고도 ‘섹스 어필’을 해야 되는지 고민이 됐다. 여기서 더 자극하면 진짜로 범죄자가 될 거 같은데… 괜찮은 거 맞아?
“그리고 이건 탑 티어 아이돌들한테 달리는 댓글 모음집이야.”
“……제 팬들은 정말로 착한 편이었네요.”
응, 괜찮은 거 맞아. 적어도 우리집 주소는 모르잖아. 다시 보니 선녀로 보인다는 말이 딱 이거였다. 강간하고 싶다는 말을 보고 안심하게 되다니… 역시 아이돌은 힘든 직업이었다.
- 띠리리리리링!
- 탁!
“수고했어, 시간 다 됐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엑. 오늘 하루만 하고 끝 아니었어요?”
“너는 이걸 하루만에 끝낼 수 있을 거 같아?”
“…그건 아니죠.”
“최소 두 달은 보고 있으니깐 그렇게 알아 둬.”
“두 달이나요?”
“야한 거에 대한 내성도 길러야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섹스 어필’도 연습해야 해. 컴백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깐, 팀 연습에 방해되지 않게 두 달 동안 열심히 해.”
“……확인.”
“아, 참. 그리고 숙제도 있어. 다음주 이 시간까지 오늘 했었던 거 복습하고 와.”
“복습? 어떻게요?”
“방금 내가 들려준 거 녹음한 거야. 매일매일 샤워하기 전에 거울을 보면서, 내가 앞에 있다고 상상하고 이걸 들어. 부담스럽겠지만 이렇게라도 연습을 해야 해.”
“……꼭 해야 해요?”
“두 달만에 끝내려면 해야지. 더 길게 하고 싶으면 안 해도 돼.”
“……확인.”
그러니깐 매일매일 자기 생각을 하라는 거잖아. 짜증이 났지만 이제 와서 멈출 순 없었다. 나는 한숨을 내쉰 다음 녹음기를 건네 받았다. 털컥, 타악… ‘아가방에 내 좆물을 채워서…’, 털컥. 하아… 극혐이야 진짜.
쓸데없이 목소리는 또 좋아서 두 배로 짜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