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64 - 아이돌 메이커(2)
“꺄아.”
“꺄아는 무슨 꺄아야, 안 벗어?”
“……부사장님 혹시 변태예요?”
이런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생긴 것만 보면 변태가 맞았다. 변태상(?)이라고 해야 하나? 못 생긴 얼굴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부사장은 그 중에서도 변태에 가까운 외모였다. 음흉한 얼굴과 뚱뚱한 몸매. 그래서 본능적으로 부사장을 싫어하는 연습생들이 많았다.
그런데 진짜로 변태였구나.
다짜고짜 성희롱을 하다니, 역시 관상은 과학이었다.
“변태? 너는 내가 변태로 보여?”
“그럼 아니에요?”
“하아아… 지금 여기서 네가 비명을 지르면 어떻게 될까?”
“으음…… 사람들이 몰려 오겠죠?”
“그리고 네가 펑펑 울면 어떻게 될까?”
“으음…… 사람들이 저를 걱정해 줄 거예요.”
“그렇지? 그러고 나선 날 의심할 거야. 도대체 얘한테 무슨 짓을 저질렀냐고 말야. 그러니 난 너한테 아무런 짓도 할 수 없어. 고작 너 하나 때문에 감옥에 들어갈 순 없잖아. 이 정도는 좀 제발 알아 주라.”
“으음…… 그런가?”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연습실이라 해 봤자 방음도 잘 안 되는 낡은 연습실. 게다가 직원들이 잔뜩 머무르는 5층이라, 조금만 소리를 질러도 도와 줄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쨌든 옷을 벗으라고 한 건 사실이잖아.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됐다.
“후우… 너한테 옷을 벗으라고 한 건, 전부 다 레슨을 위해서야.”
“레슨?”
“내가 말했지, 기본 중의 기본을 가르쳐 주겠다고.”
“네.”
“너는 연예인의 기본이 뭐라고 생각해?”
“……얼굴?”
“정답은 노출이야.”
“뭐야, 변태 맞잖아요.”
“그 노출 말고! 자신의 매력을 노출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야.”
“……자신의 매력?”
“네가 대답한 얼굴을 예시로 들어 볼게. 흐음, 너처럼 예쁜 여자가 마스크를 끼고 광고를 찍는다고 생각해 봐. 사람들이 좋아할까?”
“아뇨, 저는 마해자니깐 싫어하겠죠.”
“그래, 잘 아네. 바로 그거야.”
“?”
“얼굴이 매력 포인트라면 그 얼굴을 드러내야지 숨기면 안 된다는 거야.”
“아하.”
“이제 좀 알겠어?”
“네. 앞으로는 마스크를 벗고 다니라는 소리잖아요.”
“하아…”
그거 아니었어? 대화 도중에 한숨을 내쉬는 부사장.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내가 더 답답했다. 매력 포인트를 숨기면 안 된다며, 그럼 마스크를 쓰지 말라는 소리잖아. 완벽하게 이해한 거 같은데 부사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네가 광고 모델이라면 그렇겠지. 근데 넌 아이돌이잖아.”
“그렇죠.”
“아이돌의 매력 포인트가 뭐야?”
“……얼굴?”
“아니, 아이돌의 매력 포인트는 존재 그 자체야.”
“존재 그 자체?”
“얼굴만 예쁘다고 다가 아니야... 아이돌 뜻이 뭐야? 우상이잖아, 우상. ‘아이돌’은 대중들의 ‘우상’이 되어야 해. 그러기 위해선 존재 그 자체로 빛이 나야 한다고. 자, 그럼 아이돌은 무엇을 노출해야겠어?”
“존재 그 자체?”
“바로 그거야! 아이돌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노출시켜야 해. 얼굴, 몸매, 성격, 재능… 끝도 없지만 그게 바로 팬들이 원하는 거고, 그게 바로 아이돌이 살아남는 방법이야. …그런데 가은아, 너는 그걸 보여 주고 있어?”
“……아뇨.”
“그래서 네가 욕을 먹는 거야. 얼굴만 믿고 아무것도 안 하는 아이돌이라고.”
아하, 그래서였구나.
이제야 욕을 먹는 이유를 알았다. 노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원인은 내 태도에 있었다. 혼자 고상한 척 꽁꽁 싸맸으니 보기 거슬렸겠지. 역시 부사장. 고인물답게 업계 생태계를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인정.”
“…뭐?”
“인정한다고요, 욕 먹는 거. 이유가 있었네요.”
“크흠, 그래...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다, 유명한 말이지. 머리에 새겨 둬.”
“확인.”
“너 근데 아까부터 말이 좀 짧다?”
“확인했어요.”
“에휴… 아무튼 그래서 너한테 이 레슨을 하려는 거야.”
“노출이요?”
“그래, 정확히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연습이지. 아, 물론 강요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이것도 못 따라 오면… 하아아, 너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을 생각이야.”
뭐래, 그게 강요잖아… 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부사장은 지금 진심으로 나를 도우려고 하고 있었다. 그 방법이 조금 불쾌했지만… 믿어도 되는 거겠지? 아이돌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 라는 문장을 다시 한번 떠올린 나는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해 볼게요.”
혹시나 분위기가 이상해지면 비명을 지르면 될 거 아냐…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 울음을 터뜨릴 준비를 끝낸 후, 나는 레슨을 위해서 옷을 벗었다.
***
“야, 너는 옷 벗는 것도 제대로 못 해?”
“?”
“전부 다 벗어. 속옷까지.”
“미친.”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이건 성희롱을 넘어 성폭행이었다. 아무리 레슨이라 해도, 알몸은 아니었다. …이 정도면 노망난 거 아니야? 내가 의구심을 가지고 부사장을 쳐다보자, 그가 뻔뻔한 얼굴로 말을 내뱉었다.
“왜? 부끄러워?”
“네.”
“뭐가 부끄러운데?”
“?”
“말해 봐.”
“아니 그러면 안 부끄럽겠어요?”
“계속해 봐.”
“부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으음… 부사장님은 저한테 부사장이군요. 아무튼 부끄럽잖아요. 보여 주기 싫어요. 부사장님이 제 알몸을 보고 이상한 상상을 할까 봐 무서워요. 그리고 이런 걸 묻는 것도 불쾌하고요.”
“그래?”
“네.”
“그럼 이 사람들은 왜 옷을 벗었을까?”
“?”
그렇게 말하며 내게 스마트폰을 들이미는 부사장. 화면 속엔 유명한 영화의 베드 신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와아아, 영상으로 보는 건 처음인데… 엄청 야하잖아. 나는 멍한 얼굴로 두 인기 배우가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수십 명의 스태프들 앞에서 알몸이 된 배우들이야. 촬영 중이니 당연히 카메라도 켜져 있었지. 영화에선 은밀한 부위들이 절묘하게 다 가려져 있지만… 과연 원본에서도 가려져 있을까? 아니, 원본에선 적나라하게 다 드러나 있을걸?”
“대박.”
“자, 그럼 여기서 질문. 이 사람들은 변태라서 이렇게 노출한 걸까?”
“으음.”
“이 사람들도 부끄러워했을 거야. 감독이나 스태프들이 ‘이상한 상상’을 할까 봐 무섭기도 했을 거고, 이런 영상을 찍는 거 자체를 불쾌하게 생각했을지도 몰라.”
“흐응.”
“그런데… 그럼에도 이렇게 노출했잖아. 왜 그랬겠어?”
“직업이니깐?”
“그거야. 배우는 연기하는 캐럭터를 온전히 드러내는 직업이니깐, 그 캐릭터들의 본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이 베드 신 장면을 부끄러워도 연기한 거야. 이제 조금 알겠어? 노출을… 그냥 부끄럽다고만 생각해서는 안 돼.”
“그런가.”
“특히 아이돌들은 조금 변태 같아도 노출을 즐길 줄 알아야 해. 1집 때 시트러스가 입은 의상, 그리고 지금 잘 나가는 아이돌들이 입고 있는 의상을 봐. 노출이 없는 옷이 하나라도 있어?”
“없죠.”
“그렇지? 그래서 옷을 다 벗으라는 거야. 트레이닝복이나 속옷 차림으로는 효과가 없어. 파격적으로… 네 자신을 다 드러내서, ‘너라는 존재’를 보여 주는 것에 익숙해져야 해.”
“……그런가.”
말이 안 되는데, 뭔가 말이 되는 거 같기도 했다. 인기 여배우가 전라를 노출한 게 컸다. 직업 정신이 뚜렷하다는 게 저런 거구나. 나라면 절대로 못 할 텐데… 역시 프로 의식이 있는 사람은 달랐다.
“이것도 한번 볼래? 1집 때 올라온 시트러스 직캠이야.”
“헐.”
“옆에 있는 유키랑 비교해서 봐 봐. 네 표정이랑 유키 표정, 그 차이를 알겠어?”
“……확인.”
“자신을 드러낼 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야. 이때의 너는 춤도 못 추고 노래도 못 부르는데, 무대 위에서 웃을 줄도 몰랐어.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설마 컴백 무대에서도 이렇게 뻣뻣하게 움직일 생각이야?”
“……아니요.”
“이제 이 레슨이 필요한 이유를 알겠어?”
“……인정.”
그런데 놀랍게도 프로 의식은 나한테만 없었다. 혼자만 웃지 못했던 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되게 꼴볼견이었다. 옷이 생각보다 야해서 불편했었는데, 그게 화면에 다 찍혔구나. 이제는 부사장의 의견에 동의해야만 했다.
“컴백까지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그러니 조금은 극단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너는 바껴야 해. 그러니 이제 그만 인정하고 따라와 줘. 너와 시트러스를 위해서야.”
“……확인.”
“크흠, 가은아… 근데 다 좋은데… 확인, 그거는 쓰지 마. 여러모로 위험해, 그거.”
“?”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튼 이제 시작하자.”
“오케이.”
부끄럽지만… 그래도 참아야겠지. 나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킨 후, 부사장 앞에서 속옷을 벗었다. 사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속옷이 바닥에 떨어졌다. 차가운 공기가 내 몸에 닿자 조금씩 숨이 거칠어졌다.
“고개 들어, 민망해도 꾹 참고 이겨내.”
“으으…”
“나를 쳐다 봐. 나를 보면서, 네 자신을 드러내 봐.”
“……하이(はい).”
나는 그렇게 회사 연습실에서 알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