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355화 (355/428)

Chapter 355 - 섹스를 하지 않으면 못 나가는 방(15)

야구 팬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한 문장이 하나 있다.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

실점 위기를 넘기고 나면 사기가 올라 득점할 가능성이 올라간다는 뜻인데, 사실 야구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적용할 수 있는 아주 명문장이다.

비슷한 말론 ‘액땜’이라는 단어도 있는데, 이것을 내가 지금 왜 이야기하냐면… 바로 지난주에 있었던 기분 나쁜 사고가 결국 내게 큰 행운이 되었단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다.

짜악, 소리가 울려 퍼질 만큼 풀스윙으로 내 뺨을 때렸던 여자. 그 여자가 웬 샌님처럼 생긴 남자와 껴안고 있는 모습 덕분에, 미나미의 오해를 유도할 수 있었다.

내가 적당히 슬퍼하는 표정을 짓자, 자기가 먼저 전화를 걸어 나를 ‘섹스를 하지 않으면 못 나가는 방’으로 데려간 미나미. 그 방에서 잠시 머뭇거렷던 그녀가 내게 사랑을 고백했고, 나 역시 그녀를 받아 주면서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쇼 군한텐 제가 말할게요.’

‘괜찮겠어?’

‘으응… 전부 다 이야기하는 건 아니고… 그냥 더 이상 너랑 못 사귀겠다고 하면서 헤어지면 되지 않을까요? 헤어지고 난 후에 제가 누구랑 사귀든… 쇼 군이 알 건 없잖아요.’

‘냉정한데?’

‘흥… 별로 신경도 안 쓸걸요? 저 없이도 맨날 여자를 끼고 사는 애예요.’

‘그래? 시우가 그럴 줄은 몰랐네.’

‘아무튼… 쇼 군 얘기는 이제 됐으니, 우리 미션이나 깨요.’

그렇게 메인 히로인 함락과 동시에 달성한 B등급. 하지만 ‘도전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선 적어도 A등급을 받아야만 했다. 즉, 시우헤이에게 정신적인 타격을 줘야만 하는 상황. 맨날 고생하는 시우에겐 정말 미안했지만… 어쩌겠어, 나도 먹고 살아야지. 나는 흐르지 않는 눈물을 삼키며 집으로 돌아왔다.

“얘들아, 나 왔다.”

-띠링

[매칭 완료!]

[지금부터 ‘섹.못.방’으로 끌려갑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그런데 이건 또 뭐야, 자동 매칭이 걸렸네?

이러면 어쩔 수 없지. 시우헤이 눈치를 살피는 건 뒤로 미뤄야겠다. 지금은 나를 찾아온 변태녀를 상대하는 게 우선이었다. 자아, 그러면 매칭하기를 누른 여자가 누군지 살펴 볼까, 라고 생각하면서 눈을 떴는데…

“사… 사, 삼촌?!”

놀랍게도 치아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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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카와 치아키의 입장에서 그녀의 삼촌, 후지카와 하이토의 존재는 그저 기분 나쁜 방해꾼이었다. 그가 치아키네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남매간의 돈독한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필이면 재택근무를 하는 직업이라 하루의 대부분을 집에서 보내는 삼촌. 그러다 보니 쇼헤이랑 함께하는 시간보다 하이토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길어져, 치아키는 계속 불만을 가졌었다.

그래도 어른이라고 자주 용돈을 챙겨 줬었기에 따로 불평을 늘어놓진 않았지만, 그녀의 마음 한 구석에선 삼촌이 오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존재했다.

그리고 지금, 그 아쉬움은 분노가 되어 치아키의 마음을 들끓게 했다.

“사… 사, 삼촌?!”

하이토의 얼굴을 보자마자 화가 치밀어 오른 치아키.

폭발한 그녀가 하이토에게 달려갔다. 왜 갑자기 삼촌이 눈앞에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따지는 것이 우선이었다. 감히 쇼헤이의 여자 친구를 뺏어간 하이토를, 치아키는 용서할 수 없었다.

“이이… 쓰레기! 변태! 죽어어어어!”

“치아키?! 갑지기 왜 그래?!”

“죽어어어! 이 나쁜 놈아! 이이익!”

치아키가 울분을 토해내며 주먹을 휘둘러 댔다. 하지만 솜방망이나 다를 것 없는 치아키의 주먹에, 하이토가 아파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자기가 먼저 지치고 만 치아키. 작전을 바꾼 그녀가 하이토의 팔을 깨물었다.

“아아악! 치아키!”

“구거어어어어!”

“하아… 당황해서 그래?”

“구거어! 구거어어어!”

“치아키, 진정해.”

“구거어! 구거… 허억, 허어억…”

그러자 크게 당황한 하이토가 어쩔 줄을 몰라 했지만… 이번에도 먼저 지친 쪽은 치아키였다. 어떻게 된 건지 아무런 타격도 없는 하이토. 생각보다 몸이 튼튼하단 사실을 알게 된 치아키가 뒤로 물러났다.

“하아… 나아… 나, 다 봤어!”

“뭘 봤다는 거야.”

“삼촌이 미나미 언니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걸! 내가 다 봤다고오!”

“뭐… 뭐어? 오해야, 치아키. 네가 뭘 본 건진 모르겠는데 방금은…”

“둘이서 ‘섹.못.방’에 갔다 온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이렇게 된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정신 공격뿐이었다. 스마트폰을 들어 두 사람이 ‘섹.못.방’에 갇혔을 때의 영상을 공개한 치아키. 하이토의 얼굴이 심각해진 것을 확인한 그녀가 목소리를 높여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방금 전에도 갔다 왔지? 나 다 봤어. 언니랑 삼촌 사이가 한순간에 가까워지는 걸! 그거 ‘섹.못.방’에 갔다 와서 그렇게 된 거잖아! 내 말이 틀렸어?!”

“……맞아. 설마 들킬 줄은 몰랐네.”

부정할 수 없는 증거 덕에 결국 하이토가 인정을 했다. 그제서야 흥분을 가라앉힌 치아키. 그런데… 정신을 차린 그녀가 주변을 둘러 보다가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처음 보는 쇼파와 침대, 그리고 가구들. 생각해 보니 조금 전 ‘매칭하기’를 눌렀던 그녀였다.

“어… 어어?! 잠깐, 뭐야?!”

따라서 여기는… ‘섹스를 하지 않으면 못 나가는 방’이었다.

“왜 삼촌이 여기 있는 거야아아아아!”

쇼헤이가 아닌 하이토랑 매칭이 되고 만 치아키. 이제 그녀는 미나미처럼, 삼촌과 섹스를 해야만 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치아키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다고 달리지는 건 없었다.

***

“이제 좀 진정이 돼?”

“진정이 될 거 같아?!”

“하하하… 미안, 실언이었네.”

“으으으읏, 진짜 이게 뭐야! 오빠를 배신한 삼촌이랑… 섹스를 해야 한다니, 진짜 최저야! 최악! 삼촌은 어떻게 그렇게 양심이 없어?! 아니이이! 이제 미나미 언니랑 사귀는 사이라며! 그러면 적어도 자동 매칭은 꺼 놔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 나도 꺼 놓은 줄 알았어…”

“이 멍청아아! 그리고 오빠 폰에 있는 어플을 지웠으면 지웠다고 말을 해 줘야지! 하마터면 처음 보는 사람이랑 섹스를 할 뻔했… 아니, 차라리 그게 낫나… 아아아! 나도 몰라! 아무튼 간에, 삼촌은 진짜 쓰레기야!”

긴 대화 끝에 전후 사정을 알게 되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어쨌든 삼촌과 섹스를 해야 하는 치아키. 그녀가 빼액 소리를 지르며 하이토를 원망했다. 처음부터 그가 쇼헤이 폰에 깔린 어플을 지우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이 치아키를 미치게 만들었다.

‘왜 쓸데없이 오지랖을 부려서 이 상황을 만드는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하이토를 원망만 할 수는 없었는데, 애초에 미나미에게 ‘섹.못.방’을 권유했던 것은 치아키,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걸 따져 보면 사고와 사고가 겹쳐서 일어난 비극. 한 명에게만 탓을 돌리기에는 잘못한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미나미 언니는 쓰레기보다 더한 쓰레기, 개쓰레기야!”

그러나 화가 난 치아키에겐 분노의 대상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녀는 사쿠라 미나미를 증오하기로 결심했다.

가슴 아파도… 오로지 쇼헤이를 위해서 두 사람 사이를 응원하고 지지했었는데… 돌아온 결과가 바람이라니, 치아키는 미나미를 용납할 수 없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고백도 미나미가 먼저 했다는데…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쇼헤이라는 멋진 남자 친구가 있으면서도 다른 남자한테 눈을 돌린다고?

지금부터 치아키에게 있어 미나미는 정신 나간 미친 여자였다.

“너무 그렇게 욕하지는 마… 미나미도 많이 힘들어 했어.”

“하아, 지금 쉴드치는 거야?! 삼촌! 정신 차려! 한 번 배신한 여자가 두 번은 안 할 거 같아? 삼촌보다 괜찮은 남자가 보이면 바로 갈아탈 여자라고!”

“치아키, 미나미는 그럴 애 아니야.”

“와아아! 진짜 푹 빠졌나 봐?! 그래… 둘 사이가 그렇게 알콩달콩하다 이거지?!”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이토에 대한 원망이 줄어든 치아키. 데이트를 한다고 꾸며서 그런지, 평소보다 멋있어 보이는 삼촌을 바라보며… 그녀가 머리를 굴렸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리고 바람에는 바람.

얼마 안 가 미친 여자한테 복수할 방법을 생각해 낸 그녀가 옷을 벗었다. 어차피 해야 하는 섹스, 죽어도 하기 싫었지만… 복수를 위해서라면 참을 수 있었다. 감히 쇼헤이 오빠한테 상처를 준다고? 용서 못 해... 내가 그걸 지켜만 볼 거 같아?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고, ‘섹.못.방’에 갇힌 것을 반전의 계기로 삼은 그녀가 침대 위로 올라갔다. 이제 미나미는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게 될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가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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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미나미.

몸도 마음도 너무나 피곤했지만, 행복해서…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웃음을 참지 못했다. 얼마 만에 가슴 뛰는 하루를 보낸 건지, 여자로서의 즐거움을 잔뜩 만끽한 그녀가 침대에 누워 조금 전의 일을 떠올렸다.

애틋한 고백과, 뜨거운 키스, 그리고 서로를 바보로 만든 격렬한 섹스.

“헤헤… 하이토 씨이… 사랑해요…”

미나미가 저도 모르게 팬티 안으로 손을 가져갔다.

-띠링

그런데 그때, 미나미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혹시 하이토가 문자를 보낸 걸까? 설레는 마음을 가다듬고 알림을 확인한 그녀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이내 경악한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깜짝 놀라 스마트폰을 떨어뜨리고 만 미나미. 충격을 받은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다시 한번 화면 속 사진을 확인했지만… 착각한 게 아니었다.

치아키가 그녀의 삼촌, 하이토와 섹스를 하고 있었다.

[얏호-☆!, 언니 남친이랑 섹스하는 중이야! 아핫, 남친이 두 명이라 헷갈리려나? 아쉽지만 오빠가 아니라 삼촌이야. 그런데 있지, 삼촌이랑 하는 것도… 생각보다 나쁘진 않더라고! 헤헤헤, 막 이래. 아무튼 언니… 삼촌이랑 사귄다며! 축하해. 참고로 이 사진은 선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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