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54 - 섹스를 하지 않으면 못 나가는 방(14)
후지카와 치아키는 자신의 오빠, 후지카와 쇼헤이를 사랑했다. 단순히 가족으로서, 동생으로서의 사랑이 아니었다. 그녀는 쇼헤이를 한 명의 남자로서 사랑했다.
잦은 해외 출장으로 집을 자주 비웠던 부모 탓에, 어렸을 적부터 서로를 의지했던 치아키와 쇼헤이. 그런 치아키에게 좋은 남자의 기준은 쇼헤이였다. 언제나 상냥하고, 자상하며, 의지가 되고, 믿을 수 있는, 그녀의 오빠.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 주변에 있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쇼헤이에게 미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쇼헤이는 애정의 기준에서 애정의 대상으로 바뀌어 버렸다.
‘오빠아, 헤헤… 같이 자자.’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렇게 쇼헤이를 사랑하게 된 치아키. 하지만 가족이란 벽 앞에서 그녀는 결국 자신의 사랑을 접어야만 했다. 그녀가 쇼헤이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쇼헤이가 상처입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아, 안녕? 나는 사쿠라 미나미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그렇기에 치아키는 미나미를 응원했다. 쇼헤이가 사랑하는 사람이자, 그 누구보다 쇼헤이와 잘 어울리는 여자. 마음이 아팠지만 쇼헤이의 첫 사랑인 사쿠라 미나미라면, 쇼헤이를 행복하게 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전폭적으로 둘의 사이를 밀어 줬던 치아키. ‘섹스를 하지 않으면 못 나가는 방’이라는… 다소 문란한 어플을 깔아 주면서까지, 치아키는 두 사람이 어서 깊은 사이가 되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단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여튼… 오빠는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분명 ‘섹.못.방’에 들어갔을 텐데도, 오히려 두 사람 사이가 더 어색해졌다. 어떻게 된 일인지, 미나미가 집에 놀러오는 경우는 줄어들었고, 쇼헤이의 얼굴엔 자꾸만 근심이 늘어났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정말로 혹시나 해서 추천인 제도를 사용한 치아키. 그녀가 보게 된 건 그녀의 삼촌, ‘후지카와 하이토’와 오빠의 여자 친구, ‘사쿠라 미나미’가 섹스를 하는 영상이었다.
“뭐, 뭐야… 삼촌?! 삼촌이 왜 여기서 나와?! 그, 그러면 언니랑 섹스를 한 사람이 오빠가 아니라 삼촌이었어?!”
다행인지 불행인지 첫 번째 기록밖에 볼 수 없었고, 그 영상 또한 음소거가 되어 있었지만… 두 사람이 섹스를 한 건 확실했다. 오랜 기간 동안 몇 번이나 망설이다 결국은 몸을 섞은 하이토와 미나미. 치아키가 깜짝 놀라 스마트폰을 떨어뜨렸다.
“아아,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왜 오빠가 아니라 삼촌이랑 갇힌 거냐구우!”
당황스러웠지만 동시에 이해가 갔다. 본의 아니게 하이토랑 섹스를 했으니 쇼헤이랑은 어색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쇼헤이네 집엔 하이토가 살고 있으니 쇼헤이네 집으로 놀러 오는 것도 그 빈도가 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저 두 사람…”
……라는 게 치아키가 내린 결론이었는데, 그 결론이 지금 막 깨지고 말았다.
마치 데이트를 하는 사람처럼… 행복한 얼굴로 백화점 안을 걷고 있는 하이토와 미나미. 손을 잡고 있지는 않았지만, 몸을 찰싹 밀착시킨 게… 누가 봐도 연인으로 보였다. 치아키가 배신감을 느꼈다.
“서, 설마… 언니 양다리 걸치는 거야?”
분노한 치아키. 그녀가 두 사람을 미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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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적으로 말만 하지 않았을 뿐 서로의 애정을 확인한 하이토와 미나미. 하지만 두 사람이 사귀는 일은 없었다. 미나미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하이토가 먼저 선수를 쳤다. 현실로 돌아가면 ‘섹.못.방’에서의 일은 전부 다 잊자고 말이다.
그에 상처받은 미나미.
그러나 이어지는 하이토의 말을 듣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네가 나한테 느끼고 있는 감정은 신기루 같은 거야. 달콤해 보이지만 정작 다가가면 사라지는, 그런 허무한 신기루. 그러니 일시적힌 현상에 속아 시우와의 관계를 무너뜨리지는 마. 그러다 후회할 거야.”
“하이토 씨…”
“나도 네가 좋고, 너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이 감정이 과연 영원할지는 모르겠어. 단지 너랑 하는 섹스가 너무 좋아서 너한테 반한 걸지도 모르잖아.”
“우으읏…”
“그러니 우리 시간을 가져 보자. 정말로 지금의 감정이 진심인지를… 우리 천천히 지켜 보자. 여기서의 일은 모두 잊은 채 말야.”
“여기서의 일을… 잊어요?”
“그러니깐 여기서는… 크흠흠, 그렇고 그런 일만 하고, 현실에서는 그런 걸 잊은 채… 으음, 이거 말하기 되게 부끄럽네. 그러니깐… 현실에서는 성욕이랑 상관 없이 너라는 사람을 제대로 마주하고 싶어.”
“……아아!”
한 마디로 제대로 썸을 타 보자는 하이토의 이야기.
미나미의 얼굴이 밝아졌다.
사귀는 게 아니라면, 그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는 거라면, 그녀도 부담이 덜했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쇼헤이에게 미안할 일도 없고, 그러다 정말로 하이토와 사귀게 된다면, 그때 일은 그때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그러니 적어도 당분간은 그녀가 마음고생할 일이 없었다.
“대신에 사쿠라, 너도 확실하게 해 줘.”
“…뭐를요?”
“더는 시우를 피하지 말고 똑바로 지켜봐 줘. 그래야 어떤 남자가 더 좋은 남자인지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거 아니야.”
“으으응… 그러다가 제가 쇼헤이한테 가면 어쩌려고요…”
“그러면 축하해 줘야지. 나 말고 시우를 골랐다면, 시우가 더 좋은 남자라는 소리니깐… 너한텐 좋은 일이잖아.”
“…반대로 하이토 씨를 고르면요?”
“그러면 시우한테 사과해야지. 얻어맞을 각오를 하고 말야.”
“으응… 상처에 바를 약을 미리 준비해 놔야겠네요… 헤헤…”
“사쿠라…”
“단 둘이 있을 때는… 미나미라고 불러 주세요.”
“미나미…”
“하아… 하이토 씨… 으응, 응…”
그렇게 한번 더 사랑을 나누고, 현실로 돌아온 두 사람. 하이토와 미나미는 쇼핑 날짜를 잡은 후, 서로의 번호를 저장한 뒤 헤어졌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 다시 주말이 찾아 온 오늘, 두 사람이 약속했던 백화점 앞에서 만났다.
***
하이토의 말대로 지난 일주일 동안 미나미는 쇼헤이를 지켜봤다.
하지만 그런다고 그녀의 마음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애인이 있는 걸 알면서도 쇼헤이에게 다가가는 여자들과… 애인이 있음에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 주는 쇼헤이. 생각해 보면 이런 점 때문에 불안함을 느꼈던 미나미였다.
사귀는 사이라면 좀 더 티를 내도 되잖아… 믿고 안심할 수 있게 조금이라도 스킨십을 해 주길 바랐던 그녀였지만, 쇼헤이는 끝까지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 뒀었다. 그리고 그건, 지난 일주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보니 쇼헤이를 의심하게 된 미나미.
과연 저 남자가 나를 여자로서 사랑하기는 하는 걸까? 제대로 된 데이트도 몇 번 안 해봤고, 둘이 모여서 하는 거라면 대부분이 공부였다. 아무리 진학이 목표라고 해도 그렇지, 이 정도면 ‘남자 친구’가 아니라 그냥 ‘친구’였다.
반면에 ‘섹.못.방’에서의 하이토는 틈만 나면 그녀를 안아 줬는데… 미나미는 그게 너무 좋아서 항상 따뜻함을 느꼈었다. 그리고 오늘… 데이트인 듯 데이트가 아닌 쇼핑 날에도 그녀에게 딱 달라붙어 애정을 보여 주는 하이토… 그는 천천히 지켜 보자고 했지만, 미나미는 오늘부로 확신하게 되었다.
그녀는 남자 친구인 쇼헤이보다 그의 삼촌인 하이토를 더 많이 사랑했다.
- 와아… 너무 잘생겼다. 연예인인가? 아니면 모델?
- 뭐가 됐든 둘 다 너무 잘 어울린다…
그리고 하이토가 아니라면 언제 이런 즐거움을 만끽하겠는가.
지저분한 더벅머리를 자르고 깔끔하게 헤어 스타일을 정리한 하이토. 그가 낡고 촌스러운 옷 대신 그녀가 추천해 준 옷으로 갈아입자, 눈에 띌 정도로 주변에서의 시선이 달라졌다.
- 부럽다, 부러워…
- 하아, 왜 내 주변엔 저런 남자가 없냐.
마치 남자 친구처럼 그녀를 에스코트해 주는 하이토 덕분에 느낄 수 있는 선망과 부러움이었다. 차오르는 여자로서의 자존감. 그녀가 활짝 웃으며 쇼핑을 이어갔다.
“앗…”
“으응? 갑자기 왜 그래요?”
“아니 그게…”
“응? 저기 뭐 있어요? 아무 것도 없… 아아…”
그렇게 행복할 줄만 알았던 데이트(?)였는데… 순식간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저 멀리서 하이토가 아닌 다른 남자를 껴안고 있는 그의 전 여친. 헤어진 지 일주일만에 새 남자 친구를 사귄 그녀였다.
“하아… 하하, 하… 어울리네…”
아니, 정말로 ‘새’ 남자 친구인 걸까? 자연스럽게 함께하고 있는 모습만 보면 벌써 사귄 지 몇 년는 되어 보였다. 즉, 양다리를 걸쳤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 딱딱하게 굳은 하이토의 표정을 보며 미나미가 마음 속으로 미소 지었다.
지금이라면 길게 끌 것 없이 하이토를 유혹할 수 있었다.
미나미가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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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행의 끝은 파국이었다.
정말로 사귀는 건지, 아니면 그저 사이가 좋은 건지… 헷갈리던 찰나, 스마트폰을 꺼내 든 미나미. 그리고 얼마 후 달라진 두 사람의 분위기를 보며 치아키가 확신했다. 지금 저 두 사람은 ‘섹.못.방’에 갔다 온 것이 확실했다. 따라서 저 두 사람은 사귀고 있는 사이인 게 분명했다.
그렇게 미나미의 외도를 확인하고 만 치아키.
그녀가 부들거리는 몸을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 미나미가 누구와, 어떤 짓을 하고 있는 지를, 쇼헤이에게 직접 알려 줄 생각이었다.
“응? 아아, 두 사람? 알고 있어. 삼촌이 미나미한테 패션 조언 좀 받고 싶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미나미보고 도와주라고 했어. 삼촌도 이제 슬슬 여자 친구 만들어야 할 거 아냐.”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었다.
이런 식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놨다고? 화가 난 치아키가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남매라서… 가족이라는 벽 때문에 꾹 참았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그녀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미나미 대신 쇼헤이를 가지기로 결심한 치아키.
-삐리릭
-철컥
“얘들아, 나 왔다.”
그녀가 ‘섹.못.방’ 어플을 열어 ‘매칭하기’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