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49 - 섹스를 하지 않으면 못 나가는 방(9)
맥주를 마시면 마실수록 답답했던 고민들이 사라져 갔다. 쇼 군에게는 정말 미안했고, 나 때문에 휘말린 하이토 씨한테도 죄송했지만, 그런 죄책감들이 점점 희박해졌다. 나라고 뭐 하고 싶어서 섹스를 한 줄 알아? 나도 어쩔 수 없었단 말야. 한 모금씩 맥주를 들이켜며 울분을 토해내자 갑갑했던 가슴속이 시원해졌다.
“미션… 아, 맞다… 미션해야 하지… 하이토 씨, 잠깐만 이리 와 보세요.”
그와 동시에 모든 것들이 사소하게 느껴졌다. 이미 섹스도 한 사이인데… 키스야 뭐, 가벼운 거잖아. 첫 키스라고 머뭇머뭇할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해야 하는 거라면 빠르게 하고 끝내는 게 맞았다. 그래서 나는 주저없이 하이토 씨를 불렀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그와 입을 맞추었다.
“읏… 너어, 괜찮은 거야?”
그러자 눈에 띄게 당황하는 하이토 씨.
붉어진 그의 얼굴을 보자 어째선지 웃음이 나왔다. 생각보다 순수한 그의 태도가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하이토 씨도 부끄러워하는 구나. 기분이 좋아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이토 씨를 끌어안았다.
“하아… 키스 해 버렸다… 헤헤, 어떡하지…”
“사쿠라, 으읍?!”
하아아, 따뜻해. 그리고 포근해. 계속 이렇게 있고 싶어. 듬직한 하이토 씨의 품에 안기자 너무너무 행복해졌다. 키스를 해서 그런지 하이토 씨가 몇 배는 더 사랑스러워 보였다. 정말이지 상냥하고 자상한 사람... 촉촉했던 그의 입술을 떠올리며, 이게 키스구나… 하고 중얼거리고 있자, 하이토 씨가 나를 안아 주었다.
“하, 하이토 씨…”
그에 깜짝 놀란 내가 저도 모르게 입술을 벌렸다.
“하읏?! 읏, 으응…”
그런데 그걸 신호라고 판단했는지, 이번에는 하이토 씨가 내게 입을 맞춰 주었다. 그러고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던… 뜨겁고 격렬한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프, 프렌치 키스를 말이다. 입 안을 파고드는 하이토 씨의 끈적한 혀. 나는 바보가 되어 그만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고 말았다.
“하아, 으읏… 하이토 씨이… 츄읏, 아앙…”
그리고… 사실, 그 후로는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프렌치 키스가 아찔할 만큼 기분이 좋았다는 것은 생각났지만… 그것 말고는 별로 떠오르는 게 없었다. 마치 필름이라도 끊긴 것처럼 단편적인 장면들만 기억날 뿐,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에에엣?!”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알몸이 되어 누워 있는 하이토 씨와 그의 옆에서 눈을 뜬 나. 그리고 보지 안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누군가의 정액. 어제의 우리는 질내사정 섹스를 했었다. 그 사실만큼은 틀림없는 진실이었다.
***
“미안해, 사쿠라… 내가 미쳤었나 봐. 아무리 취했어도 지켜야 할 선이 있는 건데… 하아, 나도 모르게 정신 나간 짓을 하고 말았어… 정말 미안해…”
일어나자마자 내게 허리를 숙여 사과하는 하이토 씨.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그를 보자 당황했던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하이토 씨도 나처럼 취했었구나. 어쩐지 하이토 씨답지 않게 거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괜찮아요… 실수잖아요.”
물론 취했다고 다 용서가 되는 건 아니지만… 난 하이토 씨의 본성을 알고 있잖아. 누구보다 착하고 상냥한 하이토 씨를 강간마라고 매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먼저 유혹을 했던 건 나잖아. 판단력이 흐려져 있는 남자를 끌어안고 키스를 해 댔으니, 사실 섹스까지 하게 된 건 내 책임이 더 컸다.
“그렇지 않아, 사쿠라. 실수라고 넘어가기엔 너한테 너무 큰 상처를 줬어. 이건… 하아, 절대 그렇게 가볍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야. 나는 너한테…”
“에이, 괜찮대도요? 너무 그렇게 자책하지 마세요.”
“사쿠라… 너는 진짜…”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하이토 씨처럼 자상하고 친절한 남자가… 나 때문에 이성을 잃은 거잖아. 취했다고는 하지만 내게 욕정을 느끼고 만 하이토 씨를 생각하면, 알 수 없는 짜릿함이 느껴져 웃음이 나왔다. 여자로서의 자존감이 채워지는 기분이랄까? 쇼 군 옆에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라 가슴이 두근거렸……
……아니, 어쩌면 술 기운이 남아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내 남자 친구는 하이토 씨가 아니라 쇼 군이잖아. 근데 왜 자꾸 하이토 씨만 생각하는 거야!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린 난 황급히 말을 돌렸다. 어차피 끝난 일이고 어차피 해야 했던 섹스인데 길게 생각할 것 없었다.
“됐어요. 그것보다… 키스도 하고 세, 섹스도 했으니깐 다 끝난 거 맞죠? 이제 돌아갈 수 있는 거죠?”
“그게… 하아,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말야.”
“으응? 어… 어라? 아직 미션이 안 끝났네요?”
[천생연분 미션: 1시간 동안 키스하기]
[미션 보상: 최고급 레스토랑 풀코스 정식]
[남은 시간: 17분 34초]
맞아… 키스를 한 번으로 끝나는 미션이 아니었지.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는데… 안타깝게도 아직 해야 할 게 남아 있었다. 하이토 씨와 내가 ‘천생연분’이라 생긴 특별한 미션이 말이다.
우으으, 이걸 어쩌면 좋지? 술에 취했을 땐 아무렇지 않게 했던 키스인데, 맨정신에서 하려고 하니 쉽지가 않았다. 아아, 쇼 군… 나 어떡해. 이제부터 하이토 씨와 키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떨려 미칠 것 같았다.
“일단… 먼저 씻고 생각할까?”
“네, 네에에…”
첫 섹스를 할 때도 지금처럼 긴장되지는 않았는데… 키스의 설렘과 쾌감을 미리 알고 있어서 그런 건지, 기대가 되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
“준비 됐어요. 이제 그만 시작해 주세요…”
준비 됐다는 말은 거짓말. 실은 아직도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키스를 안 할 수는 없잖아. 용기를 낸 나는 두 눈을 꿈 감았고, 하이토 씨의 입술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우으읏…”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드러운 그의 입술 감촉이 느껴졌다.
“응?”
“푸하아… 하, 하이토 씨?”
“이거 아무래도 딥 키스만 되나 본데?”
그런데… 시작과 동시에 그가 내게서 입술을 떼더니, 이해하기 힘든 말을 꺼냈다. 혀와 혀를 섞는 딥 키스만 인정 된다고? 말도 안 돼. 그런 게 어딨어. 둘 다 똑같은 키스잖아. 그렇게 부정하고 싶었지만 몇 번이나 입술을 부딪혀도 남은 시간, 17분 34초라는 시간은 바뀌지 않았다.
이런 변태 같은 어플! 어째서 이런 걸 미션이라고 주는 거야! 부끄럽고 민망해서, 그리고 미안해서,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어제는 기억도 나지 않았던 쇼 군의 얼굴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아아, 쇼 군… 용서해 줘. 죄책감이 배가 되어 다리가 부들거렸다.
“괜찮으니깐… 아앗, 으응… 하이토 씨?”
“무리하지는 말고. 시간 많으니깐 너무 서두르지는 마.”
“으응… 고마워요…”
내가 긴장하고 있는 걸 눈치 챈 건지, 하이토 씨가 나를 안아 주었다. 안심이 되는 그의 품에 안기자 조금이지만 힘이 났다. 하이토 씨는 역시… 상냥한 사람이구나. 따뜻하게 나를 감싸 주는 하이토 씨. 그에게 안겨 천천히 눈을 감자, 위태로웠던 마음 속에 평화가 찾아왔다.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이토 씨랑 하는 키스잖아. 첫 섹스도 첫 키스도 나와 함께 했던 하이토 씨잖아. 그러면 믿어도 되는 거 아니야? 맞아, 내가 두려워할 게 뭐 있어. 하이토 씨는 의지해도 돼. 하이토 씨는 믿어도 돼. 하이토 씨는 안심해도 돼. 하이토 씨는 내, 천생연분이잖아.
“하앙… 츄읍, 츗… 하이토 씨이…”
조심스레 입술을 벌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오는 하이토 씨의 입술. 그를 맞이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자 하이토 씨가 손을 뻗어 내 허리를 잡아 당겼다. 이윽고 시작되는 딥 키스. 질척한 그의 혀가 침을 흘려 대며 내 입 안을 핥아 댔다.
“하으응… 츗, 츄릅… 푸흐… 하아, 하아앙… 츗, 츄읍…”
그게 너무 아찔해서 그만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하이토 씨이, 하아… 하이토 씨이… 츄릅, 하아…”
자세가 무너진 나는 침대 위에 몸을 눕혔고, 그 상태 그대로 딥 키스를 이어가던 하이토 씨가 내 몸 위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커다란 그의 두 손으로 작고 가냘픈 내 손을 마주 잡았다.
“하읏… 읏, 으응… 츄릅, 하아… 츄읏, 츕… 으으응…”
그렇게 첫 섹스를 할 때처럼 몸을 겹치고 만 하이토 씨와 나. 자지 대신 혀를 집어 넣는 그를 위해 나 역시 혀를 내밀어 보지처럼 그를 감싸 주었다. 그러자 하이토 씨가 기뻐하며 내게 체중을 실었다.
“읏, 으응… 하아, 츄릅, 하아아… 하, 하이토 씨이…”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이거… 하이토 씨의 자지겠지? 내 처녀를, 그것도 두 번이나 가져갔던 하이토 씨의 자지… 하아앙, 딱딱해… 딱딱해서 기분 좋아. 민감한 곳을 계속 찔러 대서, 진짜로 섹스를 하는 거 같아…
이러면 안 되는데… 키스만 할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어느새부터 추잡한 소리를 내며, 서로를 끌어안고 몸을 비벼 대는 우리 두 사람. 삐걱거리는 침대 소리와 함께 발기한 그의 자지가 내 보지를 문질렀다.
“아앙, 응… 하, 아아앗! 하앙… 읏, 으으응!”
“사쿠라… 으윽…”
“하이토 씨이… 하아, 츄릅, 흐응… 하아, 아아앙!”
입을 맞추기 전까지만 해도 긴장했던 내가 스스로 허리를 들어 그와 호흡을 맞추었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기분이 너무 좋아서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쉬지 않고 침을 빨아 대며 하이토 씨를 받아 들였다.
상성률 100%는… 괜히 나온 수치가 아니었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이성을 잃고 만 하이토 씨와 나. 어제도 이런 식으로 키스를 하다가 쾌락에 빠졌던 거겠지? 넘쳐흐르는 쾌감을 느끼며 생각하는 것을 멈춘 나는 이윽고 하이토 씨와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