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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 네토리-348화 (348/428)

Chapter 348 - 섹스를 하지 않으면 못 나가는 방(8)

미나미는 눈앞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쇼헤이가 아니라 하이토란 말인가.

혹시 몰라 스마트폰을 들고 있으라고 쇼헤이한테 부탁까지 했는데… 정작 매칭이 된 건 쇼헤이의 삼촌, 하이토였다. 망연자실한 미나미가 고개를 숙였다. 거기다 저 천생연분 미션은 또 뭐란 말인가. 이제는 하이토랑 키스까지 하게 생긴 미나미가 서러워서 눈시울을 붉혔다.

“저기, 사쿠라… 혹시 네가 매칭하기를 누른 거니?”

“…네, 네에에?!”

그런데 그 때, 하이토가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놀랍게도 그의 폰엔 ‘섹.못.방’ 어플이 깔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할 말을 잃고 만 미나미. 키스를 강요하는 저 미션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에, 미나미의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 버렸다.

“사실, 그 날 이후로 계속 ‘그 방’에 대해서 조사를 했었어. 가만히 있다가 또 그런 사고에 휘말리면 곤란하잖아? 그래서 며칠 동안 네가 말했던 소문을 찾아 봤는데… 그러다 보니 ‘섹스를 하지 않으면 못 나가는 방’이라는 어플이 나오더라고.”

“아아…”

“그 어플을 지금 막 깔아서 조사하던 중이었어. 근데 갑자기 눈앞이 어두워지더니… 하하, 정신을 차리니깐 또 여기네.”

“으읏.”

“그래서 묻는 건데… 혹시 네가 매칭하기를 누른 거야?

“그, 그게…”

설상가상으로 미나미가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당황한 그녀의 얼굴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그녀에게 매칭하기를 눌렀냐고 묻는 것은, 쇼헤이랑 ‘섹스’를 할 생각이었냐고 묻는 것과 같았다. 그렇기에 미나미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 그으… 러니까…”

매창하기를 누른 건 맞았지만… 차마 그 사실을 밝힐 수는 없었던 미나미. 그녀가 부들부들 떨어 대며 말을 더듬자, 한숨을 내쉰 하이토가 고개를 내저으며 그녀를 달래 주었다.

“하아, 아니야... 시우도 모르는 어플인데, 네가 매칭하기를 눌렀을 리가 없지. 미안, 사쿠라. 내가 오해했어. 아마 어플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걸 거야.”

“아, 아니에요…”

“그런데… 너는 애초에 이 어플도 처음 보는 거겠구나?”

“네에, 처… 처음 봐요.”

“안 믿기지? 근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어플이 실존하더라고… 하아아, 그래서 큰일이야. 나나 시우는 괜찮지만 치아키가 이 방에 갇히기라도 하면, 후우… 아, 맞아. 그리고 조심해. 이게 자기 멋대로 깔리는 경우도 있더라고.”

“……자기 멋대로요?”

“응. 바이러슨지 뭔지, 시우도 모르는 사이에 시우 폰에 깔려 있더라고. 일단 지우기는 했는데 또 깔릴까 봐 걱정이야. 그러니 사쿠라, 너도 시간날 때마다 확인해. 잘못하면 지금처럼… 아니다, 이미 늦었구나… 젠장…”

“뭐, 뭐라고요?!”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 미나미. 그녀는 이제서야 눈앞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이토의 말이 사실이라면 모든 것이 다 말이 됐다. 아아, 확실하게 하려면 쇼헤이의 폰에 깔린 ‘섹.못.방’ 어플을 확인했어야 했는데… 이번에도 너무 성급하게 판단을 내렸던 게 문제였다.

하이토가 쇼헤이 대신 그녀와 ‘섹.못.방’에 갇힌 것은 안타깝게도 미나미의 실수였다. 그리고 그 실수의 대가는 키스… 그것도 인생의 첫 번째 키스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미나미가 눈물을 흘렸다.

“사, 사쿠라?! 아아, 미안해… 내가 이 어플을 깔지만 않았어도…”

“아니에요… 하이토 씨 잘못이, 흐윽… 아니에요…”

“아니, 누가 봐도 내 잘못이야. 조사를 할 거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했어야 했어. 그런데 멍청하게 집에서… 그것도 하필이면 네가 놀러왔을 때 해서… 제기랄, 다 나 때문이야. 정말 미안해....”

“자책하지 마세요, 흐윽… 하, 하이토 씨 잘못이 아니래도요…”

울음을 터뜨린 미나미와 그런 그녀를 위로해 주는 하이토. 하지만 그가 위로하면 위로할수록 미나미의 죄책감이 커져만 갔다. 실수를 저지른 건 그녀인데… 아무런 잘못도 없는 하이토가 미안해 하고 있으니… 미나미는 그게 너무 죄송해서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사쿠라…”

“흐윽, 흑… 하이토 씨…”

“후우… 그래, 내 잘못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고 사쿠라 네 잘못인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 우리 진정하자. 나도 진정할 테니깐, 사쿠라 너도 울지 마.”

“하이토 씨이…”

하이토가 두 팔을 뻗어 떨고 있는 미나미를 안아 주었다. 포근한 그의 품에 안긴 미나미가 잠시 동안 망설였다가… 이내 곧 하이토를 끌어 안았다. 쇼헤이는 아니었지만, 그만큼 믿을 수 있고 의지가 되는 남자인 하이토. 미나미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하이토의 손길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눈을 감았다.

***

“진정이 됐어?”

“네에… 고마워요… 아앗?!”

“응? 하하… 셔츠가 다 젖었네. 많이 울었구나?”

“그, 그게…”

“괜찮아, 괜찮아. 그것보다 진정됐으면… 이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하는데…”

“우으으… 미션 말하는 거죠?”

“응. 천생연분 미션이라… 이것도 버그 같은 거겠지?”

그렇겠죠, 라면서 어색하게 대답한 미나미.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미나미와 하이토의 상성률은 100%. 천생연분 미션은 버그가 아니었다. 물론 천생연분이라 해도 속궁합을 말하는 거지만… 아무튼 두 사람은 이제 섹스뿐만 아니라 키스도 해야만 했다. 그것도 1시간 동안 말이다.

“웬만하면 무시하고 싶은데… 왠지 해야만 할 거 같네.”

“저도요…”

“그래서 물어 보는 건데… 혹시 시우랑은 해 봤어?”

“……아니요.”

“하아… 그렇구나. 이거 큰일났네. 그냥 가볍게 하는 거면 몰라도… 후우, 미안한데 사쿠라. 나 맥주 한 캔만 해도 될까?”

“네에?”

“저번에 보니깐 냉장고에 맥주도 있더라고. 하하… 도저히 답답해서 술 없이는 못 버티겠네. 딱 한 캔만 할게.”

“으응… 괜찮아요.”

미나미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선 하이토. 그가 젖어 있는 셔츠의 단추를 풀고는 터벅터벅 걸어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맥주를 꺼내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벌컥벌컥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목젖이 움직였다. 미나미는 그 모습이… 어째선지 정말 매력적으로 보였다.

“푸하아… 이거 완전 생맥주네. 너무 맛있다.”

그러고 보면 원본은 잘생긴 사람이었지… 더벅머리에 가려진 그의 얼굴을 떠올린 미나미가 얼굴을 붉혔다.

“정말요? 술이 그렇게 맛있어요?”

“으음, 맛만 놓고 보면 아니지만… 맥주는 청량감이랑 목넘김도 중요하거든.”

“흐응… 저도 한 캔 마셔도 될까요?”

“뭐어?”

“저도 답답하단 말이에요… 맛이 궁금하기도 하고…”

“좋지. 같이 건배나 할까?”

미나미의 부탁에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오는 하이토. 맥주를 건네 받은 미나미가 조금 전의 하이토를 따라했다. 캔을 딴 후 거침없이 들이켜다가… 콜록콜록거리며 기침을 했다. 맛있다더니 완전 거짓말이잖아… 미나미가 아랫입술을 내밀었다.

“하하하. 그 표정은 또 뭐야.”

“맛 없어요…”

“그러니깐 맛으로 먹는 게 아니래도.”

그러거나 말거나 맥주를 들이켜는 하이토. 신기하게도 그 모습을 보자 또 맥주가 맛있어 보였다. 이 사람은 CF를 찍어도 되겠어… 마음 속으로 중얼 거린 미나미가 다시 한번 맥주 캔에 손을 가져다 댔다.

“크으…”

“푸핫, 뭐야 그 소리는. 아저씨야?”

“흥, 하이토 씨 따라한 거거거든요.”

여전히 맛은 없었다. 하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맛있을 거란 기대를 버려서 그럴까? 청량감과 목넘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마시다 보니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거친 탄산이 목을 타고 흐르자 답답했던 그녀의 마음이 조금씩 시원해졌다.

“야, 야. 적당히 마셔. 한 캔만 마신다며.”

“한 캔 마신다고 했지이… 흣, 한캔만 마신다고 한 적은 없거든요…”

이래서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는 걸까? 맥주의 맛을 알게 된 그녀가 두 번째 캔을 따더니… 얼마 안 가 세 번째, 네 번째 맥주 캔을 들이켰다. 지난 며칠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런지, 미나미는 도통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히끅… 맥주 더 없어요?”

“그래, 더 없으니깐 여기까지만 하자. 많이 마셨어, 너.”

“그런가… 헤에… 근데 왜 자꾸 고개를 흔드세요?”

“하아… 이거 완전 취했네.”

“저요? 안 취했는데… 헤헤, 나보고 취했대. 아, 웃겨… 푸흐흐, 무슨 소리야, 그게.”

그러다 보니 결국 취하고 만 미나미. 기분이 좋아진 미나미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하이토 앞에서 배시시 웃어 댔다. 그녀를 괴롭혔던 불쾌한 고민 따위는 벌써 사라진 지 오래였다. 텐션이 오른 그녀는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안 되겠네. 미션은 나중으로 미루고 오늘은 일단 자자.”

“미션… 아, 맞다… 미션해야 하지… 하이토 씨, 잠깐만 이리 와 보세요.”

“응? 또 왜 그래?”

하지만 술에 취하는 바람에 생각이 너무 단순해지고 만 그녀. 키스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하이토를 부른 미나미가 고개를 들어 그와 입을 맞추었다.

“읏… 너어, 괜찮은 거야?”

“하아… 키스 해 버렸다… 헤헤, 어떡하지…”

“사쿠라, 으읍?!”

부끄러움이나 민망함은 없었다. 쇼헤이에 대한 죄책감도 없었다. 다만 짜릿해서 기분이 좋았다. 이게 키스구나… 자그맣게 중얼 거린 그녀가 하이토를 끌어안았다.

이윽고 하이토 역시 그녀를 안아 주었다. 그 행동에 설렘을 느낀 미나미가 입술을 벌렸다.

첫 키스는 맥주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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