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346화 (346/428)

Chapter 346 - 섹스를 하지 않으면 못 나가는 방(6)

하이토의 품 안에서 눈을 뜬 미나미가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알몸 차림의 하이토를 보자 어젯밤에 있었던 일이 생생히 떠올랐다. 두 손을 마주 잡고, 서로의 살갗을 맞댄 채, 몇 번이고 몸을 섞었던 그녀와 하이토. 미나미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우으으… 부끄러워…’

분위기에 취해 있을 때는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알 수 있었다. 마치 연인이라도 된 것처럼 하이토에게 매달렸던 미나미.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기분 좋다 소리를 질렀던 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다.

‘아아, 쇼 군…’

미나미가 진심을 담아 쇼헤이에게 사과했다.

“일어났어?”

그 때, 미나미가 깨어난 걸 확인한 하이토가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커다랗고 듬직한 하이토의 손. 그의 자상함을 느낀 미나미가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이제는 다 끝났으니 그만둬도 될 텐데… 하이토는 참 본성이 상냥했다.

“네에… 일어났어요.”

“몸은 좀 어때? 괜찮아?”

“으응… 그, 그런 거 같아요.”

“뭐? 그런 거 같아요는 또 뭐야. 괜찮은 거 맞아?”

“아하하… 사실 잘 모르겠어요. 하, 하이토 씨는 괜찮나요?”

대답 대신 피식 웃으며 천천히 기지개를 켜는 하이토. 첫 경험이었던 그녀와 달리 그는 무척 태연해 보였다. 혹시 여자를 많이 만나고 다니는 걸까? 그녀가 속으로 궁금해 할 때, 하품을 끝낸 하이토가 입을 열었다.

“닦아 주기는 했는데… 그래도 씻고 오는 게 덜 찝찝할 거야.”

“네에? 닦아 주셨다고요? 어디를…. 아! 읏, 으응… 네에…”

깜짝 놀란 미나미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 보니 그녀에게 질내 사정을 했던 하이토였다. 기절하는 바람에 미처 몰랐었는데… 역시 마지막까지 챙겨 줬었구나. 얼굴을 붉힌 미나미가 고맙다고 인사한 후 재빠르게 화장실로 달려나갔다.

***

-솨아아아아

“하아… 쇼 군…”

아직 질내에 남아 있는 하이토의 끈적하고 질척한 정액. 질내 사정의 증거를 확인한 미나미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섹.못.방’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해야만 했던 섹스지만… 그래도 죄책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용서해 줘…”

아무리 기분이 좋았더라도 어제의 섹스는 명백한 배신. 미나미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물론 하이토라면 ‘섹.못.방’에서의 일을 비밀로 해 줄 테지만… 그렇다고 어제 있었던 섹스가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었다.

“으읏… 느낌 이상해.”

지금 그녀의 보지 안에서 흘러 나오고 있는 하이토의 정액처럼 말이다.

“후우우…”

하지만, 쇼헤이한텐 정말 미안했지만… 어제의 섹스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경험이 많아서인지 아주 자연스럽게 리드를 해 준 하이토 덕분에, 미나미는 아파하지 않고 첫 경험을 즐길 수 있었다.

과연 쇼헤이랑 섹스를 했어도 그렇게 기분 좋을 수 있었을까?

미나미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경험도 없는 두 사람이 단편적인 지식만 가지고 하는 섹스잖아. 사랑이 있다고는 해도 기분이 좋을 가능성은 낮았다. 분명 아파하거나, 쾌감을 못 느끼거나, 서로가 서로한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바람에, 자칫하면 사이가 틀어질지도 몰랐다.

그러나 앞으로는 달랐다. 하고 싶었던 섹스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경험이 생긴 이상 이제부턴 그녀가 리드해 줄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제 있었던 섹스도 그렇게 나쁘다고는 볼 수…

“아하하… 너무 어이없어서 자기 변명도 잘 안 되네…”

-끼이익

샤워기를 잠근 후 작게 헛웃음을 친 미나미. 그녀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샤워 가운을 걸쳤다. 어떻게든 죄책감을 덜기 위해 시작한 변명인데, 오히려 자괴감만 더 커져 갔다.

***

“규칙 3. 섹스를 끝낸 후 합의 하에 현실로 돌아갈 시기를 정해야 합니다… 라고 적혀 있기는 한데, 어떻게 할래? 바로 돌아갈 거지?”

“으응… 그래야죠.”

“하하하, 나도 같은 생각이야. 같은 생각이긴 한데… 사쿠라, 우리 돌아가기 전에 잠시 이야기 좀 하지 않을래?”

웃음을 멈추고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한 하이토. 미나미가 예상했던 대로 하이토는 이 방에서 있었던 일을 비밀로 하고 싶어 했다. 조카한테도, 그리고 그녀한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 정말 다정한 사람. 미나미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이토가 몇 가지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혹시 트라우마 같은 게 생겼으면 언제든지 말해 줘. 내가 어떻게든 책임지고 도와줄게.”

“트라우마요…?”

“강제로 했던 섹스잖아… 마음이 다쳤을 지도 몰라.”

“으응… 그렇지는 않을 거 같은데… 알겠어요. 하이토 씨만 믿으면 되는 거죠?”

자그맣게 미소 지으며 하이토에게 대답하는 미나미.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했던 하이토와의 대화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의 본성을 알게 되어서일까? 그녀는 하이토같이 착한 사람과 친해질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하. 그러면… 이제 돌아갈까?”

“네에, 돌아가요.”

“아, 참. 그리고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어.”

“네에?”

“그게… 즐거웠어, 사쿠라.”

설마 하이토가 즐거웠다는 말을 꺼낼 줄이야… 당황한 미나미가 기뻐하며 대답을 하려고 할 때,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눈앞이 암전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익숙한 공간과 익숙한 사람이 그녀를 맞이해 주었다.

“저, 저도요!”

“으응? 저도요, 라니… 무슨 뜻이야?”

“아, 쇼 군! 그게… 아, 아무 것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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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저도요’라는 대답은 대체 왜 나온 걸까?

쇼헤이가 눈앞의 미나미를 바라보며 의문을 가졌다.

그냥 말실수라면 별 생각 없이 넘어가도 됐지만, 아까부터 계속 안색이 안 좋았던 미나미였기에 신경을 안 쓸 수 없었다. 역시 치아키가 무슨 악담이라도 한 걸까? 사이가 좋은 듯 좋지 않은 두 사람이라 쇼헤이는 걱정이 되었다.

“저기, 미나미… 괜찮아?”

그래서 용기를 내어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더니… 미나미가 짧게 비명을 지르며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로 질색할 것까지는 없는 데 말이다. 역시 스킨십을 별로 안 좋아하는 걸까? 소심해진 쇼헤이가 손을 거두자 미나미가 당황하며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쇼 군, 그게… 미안해. 쇼 군이 싫은 건 아닌데… 아하하…”

마치 큰 잘못을 들킨 사람처럼 말을 더듬는 미나미. 처음 보는 그녀의 약한 모습에 쇼헤이가 잠시 침묵했다가, 미나미가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알고 보니 손에 묻은 땀 때문에 부끄러워서 저러는 것이었다.

“괜찮아, 이해해. 그럴 수도 있지, 뭐.”

“으응… 역시 쇼 군도 상냥하구나… 고마워.”

“하하하, 그런가?”

“그래서 말인데… 일찍 돌아가도 될까? 피곤해서 그런지 공부에 집중이 안 되네… 집에 가서 푹 쉬어야 할 거 같아.”

“혹시 어디 아픈 거야?”

“그런 건 아닌데… 으응, 그냥 피곤해서 그래. 먼저 가볼게.”

그렇게 말하며 황급히 떠나가는 미나미. 쇼헤이가 그녀의 뒤모습을 물끄러미 쳐다 봤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미나미가 피곤하다 했으면 피곤한 거겠지. 쇼헤이는 자신의 여자 친구를 의심하지 않았다.

-벌컥

“시우, 이거 돌려줄게. 잘 썼어.”

“아, 으응… 근데 시우라고 부르지 말라니깐? 나는 쇼헤이라고, 쇼헤이.”

“네가 뭐라 하든 나한텐 시우니깐 그렇게 알아.”

“삼촌도 참… 작업은 다 끝났어?”

“응. 역시 최신형이라 빨라서 좋더라. 이거 얼마라고 했지?”

“왜? 삼촌도 하나 사게?”

미나미가 떠나가고 얼마 안 있어 하이토가 쇼헤이의 방으로 찾아왔다. 작업할 때 필요하다며 빌려갔던 그의 스마트폰을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이번엔 아까와 달리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며 의심을 하기 시작한 쇼헤이. 그 모습을 지켜 본 하이토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스마트폰에 깔려 있던 ‘섹.못.방’ 어플은 이미 지워진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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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팬티를 벗고 자신의 하복부 상태를 확인한 미나미. 다행히 허벅지에서 느껴졌던 그 어색한 감촉은 정액이 아니라 땀이었다. 당연히 처녀막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미나미. 그녀가 침대에 누워 자신의 스마트폰을 켰다.

“에휴… 이 어플 때문에…”

‘섹스를 하지 않으면 못 나가는 방’, 줄여서 ‘섹.못.방’. 미나미는 이 어플을 지워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본의 아닌 사고로 어플이 진짜라는 사실은 알게 됐지만, 언제 또 그런 사고가 일어날지 몰라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막상 지우자니 어플의 효능이 너무 아까웠다. 별 관심도 없던 하이토와도 결국 섹스를 하게 만든 어플이잖아. 그러니 쇼헤이와 매칭될 수만 있다면 훨씬 더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었다.

“후우… 어쩌지?”

장고 끝에 결국 고민하는 것을 포기한 미나미. 결정을 나중으로 미룬 그녀가 조심스럽게 ‘섹.못.방’ 어플을 열었다. 이렇게 된 거 ‘섹.못.방’에 대해서 확실하게 조사해 볼 생각이었다.

“상성률… 100%?”

그런데, 그러던 와중에 생각지도 못했던 정보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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