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43 - 섹스를 하지 않으면 못 나가는 방(3)
몇 번이나 머뭇거렸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고는 ‘섹.못.방’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하이토. 그가 증거라면서 구겨진 종이를 보여 주자, 미나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제부터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그녀가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으읏… 하이토 씨…”
쇼헤이가 아닌 그의 삼촌과 섹스를 해야 하는 상황. 눈치 싸움에서 이겼다고 해서 그녀가 기뻐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막연히 했던 각오는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았다. 당황한 미나미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사쿠라… 역시 못 믿겠지? 나도 마찬가지야. 그냥 이런 게 있었다는 걸 알려 주는 거지… 절대로 너한테 ‘그걸’ 강요하는 게 아니야. 그러니깐, 너무 걱정하지는 마.”
섹스는 알몸이 되어 상대방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허락하는 행위. 하이토는 분명 믿을 수 있는 좋은 남자였지만… 그렇다고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섹스를 할 수는 없었다. 각오가 무너져 내린 미나미가 하이토 앞에서 절망했다.
“하아, 이래서 이 얘기를 안 꺼내려고 했던 건데… 후우, 사쿠라. 강요하는 거 아니라니깐? 울지 말고…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시우랑 치아키가 우리를 구해 줄거야.”
“흐으윽… 하, 하이토 씨…”
그러나 놀랍게도 절망한 건 미나미뿐만이 아니었다.
미나미 못지않게 괴로워하며 입술을 깨무는 하이토. 그의 표정에 분노와 억울함, 그리고 죄책감이 물든 것을 확인한 미나미가 조심스럽게 울음을 그쳤다. 하이토 앞에서 마냥 울고 있기에는 그녀가 잘못한 게 너무 많았다.
생각해 보면 하이토는 그저 이 사고에 휘말린 피해자 아닌가.
섹스를 해야 한다는 게 그에게도 상처가 될 수 있는데… 미나미는 그 사실을 너무 간과했다. 쇼헤이처럼 상냥한 하이토라면… 그녀한테, 그리고 쇼헤이한테, 엄청난 죄책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 미나미는 그 책임을 져야만 했다.
적어도 그 행위는 미나미로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저어… 믿을게요… 흐윽, 믿을게요 이거… 그러니… 우리 해요, 그거.”
결국 미나미가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다. 불안했지만, 그리고 또 무서웠지만, 이번에는 무너지지 않으리라… 그녀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
떨리는 목소리로 자그맣게… 하지만 확실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한 미나미. 그녀의 제안에 얼굴을 굳힌 하이토가 잠시 동안 침묵하더니,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양팔을 뻗어 긴장한 미나미를 안아 주었다.
그에 흠칫 놀란 미나미.
“사쿠라… 자기 몸은 자기가 아껴야지. 그렇게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 돼.”
그러나 하이토는 미나미와 달리 섹스를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부드럽게 그녀의 등을 토닥여 준 하이토가 자상한 말투로 미나미를 진정시켰다.
“그, 그치만… 방법이 그거뿐이잖아요.”
“확실한 건 아니잖아. 그러니 네가 무리할 필욘 없어.”
“아니요, 확실해요. 사실… 이 방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요. 당연히 거짓말인 줄 알고 무시했었는데… 지금 보니 그 방이 바로 여기 같아요. 세, 세… 그거를 하지 않으면 못 나가는 방이요…”
“…정말이야?”
“네, 네에… 정말이에요… 그러니 여기서 벗어나려면, 흐윽… 해, 해야만 해요.”
“후우… 사쿠라, 일어날 수 있겠어?”
침착하게 미나미를 일으켜 준 하이토. 재차 미나미를 토닥여 준 그가 허리를 숙여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러고는 진지한 얼굴로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울지 말고… 따뜻한 물로 씻으면서 천천히 잘 생각해 봐. 그런 소문이 있었다곤 해도 결국 소문이잖아? 그러니 너무 성급하게 결론짓진 말고… 마음 추스른 다음에 다시 생각해 보자. 응?”
하지만 미나미는 생각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정말이지 상냥한 사람. 지난 며칠 동안 항상 그녀를 우선시해 주었던 사람. 그녀를 위해 불편한 곳에서 잠을 자고, 심심할 때마다 찾아와 재미난 이야기를 해 주었던 사람. 그러면서도 그녀에게 불만 하나 없었던 사람. 자기 자신보다 그녀를 더 아껴 준 사람. 후지카와 하이토.
샤워를 하며 ‘섹.못.방’에서의 일을 떠올린 미나미가 결심을 굳혔다.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섹스를 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그 상대가 하이토라면 가능했다. 알몸이 되어 상대방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허락해야 했지만, 그래도 그 상대가 하이토라면 가능했다.
쇼헤이에겐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은 해야 할 섹스라면 하이토가 그 상대여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미나미의 떨림이 멈추었다.
‘미안해… 쇼 군.’
마침내 모든 준비를 끝낸 미나미가 샤워 가운을 걸치고 밖으로 나섰다. 하이토와 섹스를 할 각오를 마쳤다는 의지를 직접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조금은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견딜 수 있었다. 하이토라면… 믿을 수 있었다.
***
“사쿠라, 너… 후우, 진심이구나?”
밖으로 나온 미나미를 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하이토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표정만 보면 미나미와 섹스하는 걸 굉장히 꺼려하는 눈치였다. 그만큼 미안해서 저러는 거겠지. 그 이유를 짐작한 미나미가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네에… 어쩔 수 없잖아요.”
“사, 사쿠라?”
“쇼 군한테는 미안하지만… 이건 사고 같은 거니까요… 부탁해요 하이토 씨. 저와 쇼군을 위해서라도, 여기서 벗어날 수 있게… 저와 세, 섹스를 해 주세요…”
“……진심이야?”
“진심이에요…”
“후우우… 그래, 알겠어. 그러면… 하아, 나도 씻고 올 테니깐 잠시 기다려 줄래?”
결국 미나미에게 넘어간 하이토.
한참을 망설이던 그가 미나미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화장실로 걸어갔다. 미나미는 그 뒷모습이 쓸쓸해 보여 마음이 아팠다. 하기 싫은 건 하이토도 마찬가지일 텐데 억지를 부리고 말았다. 쇼헤이한테도 미안했지만, 하이토한테도 미안한 그녀였다.
-벌컥
“우으으…”
하지만 어쩌겠는가. 미안하다고 물러날 순 없었다.
침대로 걸어가 털썩 주저앉은 미나미가 앞으로 있을 섹스를 준비했다. 분명 섹스라는 것은 남자의 성기를 여자의 성기 안에 넣는 것. 그리고 서로 허리를 흔들어 서로를 흥분시킨 끝에… 남자가 여자의 질내에 사정을 하는 것.
미나미가 눈을 감고 그 과정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했다.
‘하읏… 부끄러워어…’
상상 속 상대가 쇼헤이가 아닌 하이토였지만… 그녀는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벌컥
“하아아…”
그렇게 미나미가 하이토와의 섹스를 대비하고 있을 때, 샤워를 마친 하이토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미나미처럼 샤워 가운을 걸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미나미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 어어… 어어어?!”
“사쿠라? 무슨 일 있어?”
“대박…”
덥수룩한 머리를 위로 넘기자 드러난 잘생긴 얼굴.
샤워 가운 사이사이로 보이는 근육질 몸매.
눈앞의 하이토는 그녀가 알고 있던 꾀죄죄한 하이토가 아니었다. 샤워를 마치고 그녀 앞에 나타난 하이토는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매력적인 남자였다. 그 사실에 충격을 받은 미나미가 헤에에, 하고 입을 벌렸다. 기껏 진정시켰던 그녀의 가슴이 다시 두근거리며 날뛰었다.
“응? 뭐가?”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처음부터 잘생긴 걸 알고 있었다면 이 정도로 놀라지는 않았을 텐데…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했던 바람에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당황한 미나미가 붉어진 얼굴을 숨기고자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는 숨길 수 없었다.
‘어, 어떡해…’
남자를 볼 때 외모는 크게 신경쓰지 않던 그녀였다. 하지만 미나미도 사람인 이상 외모의 영향을 안 받을 순 없었다. 보기보다 듬직한 체형과 잘생기고 중후한 얼굴. 미나미가 혼란에 빠졌다.
“민망해서 그러지? 하하하… 그러면 불 끌게.”
-덜컥
“읏…”
당황한 미나미를 보고 불을 끈 하이토. 이번에도 그녀를 위해 배려를 해 준 모양인데… 잘생긴 그의 얼굴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미나미가 아쉬움을 느꼈다. 그러나 아쉬움도 잠시, 스르륵 하는 소리가 들리자 미나미의 신경이 곤두섰다.
두꺼운 옷이 살을 스치고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하이토가 샤워 가운을 벗은 게 분명했다.
“너무 긴장하지는 마.”
“네에? 네, 네에…”
긴장하지 말라고 해도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하이토는 알몸인 게 분명했다. 이제 곧 섹스를 한다는 게 실감난 미나미. 그녀가 침대 위에서 몸을 움츠렸다.
“사쿠라, 벗길게.”
“에에엣?!”
“아, 미안해. 네가 직접 벗을래?”
그런데 하이토의 입에서 뜬금없는… 아니, 뜬금없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나왔다. 하이토가 알몸이 되었다는 것은 그녀 역시 알몸이 되어야 한다는 건데, 미나미가 그 사실을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 그게에… 우으읏…”
그 탓에 당혹하고 만 미나미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으음… 긴장했구나? 무서우면 눈 감고 있어.”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미나미에게 다가간 하이토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가운을 벗기고는… 손을 뻗어 그녀의 몸을 마구마구 더듬기 시작했다. 그에 충격을 받은 미나미가 그의 손길을 느끼며 야릇한 신음 소리를 터뜨렸다.
“하읏… 하, 하이토 씨이… 아앙, 거기는…”
“앗, 미, 미안… 속옷도 벗은 상태였구나…”
“으응…”
아무래도 그녀의 속옷을 벗기려고 한 모양. 그 사실에 안심한 그녀가 숨을 고르고 있을 때, 하이토가 미나미의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그녀를 긴장시켰다.
“그러면… 준비가 다 된 거네?”
“네에… 자, 잘 부탁드려요.”
“그래, 나도 잘 부탁할게.”
그러고는 손에 힘을 주어 미나미를 침대에 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