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342화 (342/428)

Chapter 342 - 섹스를 하지 않으면 못 나가는 방(2)

후지카와 하이토.

사쿠라 미나미의 남자 친구인 후지카와 쇼헤이의 삼촌.

미나미와는 쇼헤이네 집에서 몇 번 정도 인사를 한 사이.

해외 파견 중인 쇼헤이네 부모님을 대신해서, 어른 역할을 하기 위해 찾아 왔다고 하는데… 솔직히 크게 믿음은 안 간다고 쇼헤이가 말했었다. 미나미도 그의 말에 동의했는데, 하이토가 항상 꾀죄죄한 모습만 보여 줬기 때문이었다.

재택 근무를 한다고 해도 도저히 사회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하이토.

그런 하이토와 ‘섹스를 하지 않으면 못 나가는 방’에 갇힐 줄이야…

자그맣게 한숨을 내쉰 미나미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자기 몸 상태를 확인했다. 의식을 잃은 동안 하이토에게 불미스러운 일을 당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하이토는 미나미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으으음… 괜찮은 거겠지?’

하지만 미나미의 우려와 달리, 그녀의 몸에 특별한 흔적은 없었다.

“이게 뭐야. 섹스를 하지 않으면 못 나가는 방이라고? 하, 참 나… 어이가 없네.”

그런데 그때, 그녀의 맞은 편에서 하이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규칙 1. 이 방에 들어온 남녀는 섹스를 해야지만 현실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규칙 2. 섹스는 남녀의 정사를 뜻하고, 질내 사정을 해야지만 섹스로 인정됩니다.”

“규칙 3. 섹스를 끝낸 후 합의 하에 현실로 돌아갈 시기를 정해야 합니다.”

“추신. 이 방에 있었던 일은 현실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임신 걱정 없는 즐거운 섹스되시길 바랍니다… 라니, 씨발 진짜 장난도 정성스레 하는 구나.”

조금은 언짢은 듯한 그의 말투.

무언가를 읽던 하이토가 욕을 하며 짜증을 냈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섹.못.방’의 규칙이 적힌 종이 같았다. 그리고 하이토는 그 규칙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아니, 그 이전에 ‘섹.못.방’을 인정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는 걸까?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됐는데, 치아키의 말대로라면 ‘섹.못.방’은 어플을 깐 유저만 들어올 수 있었다. 따라서 지금 하이토의 반응은 잠에서 깨어난 미나미를 속이기 위한 연기인 게 분명했다.

‘여, 역시… 음흉한 사람이었구나!’

그에 미나미가 하이토를 크게 경계했다.

-부스럭

“앗, 너, 너어… 정신이 좀 드니?”

“아, 네, 네에!”

“으, 으응…”

그런데 놀랍게도 하이토 역시 그녀를 경계했다.

미나미 몰래 읽고 있던 종이를 뒤로 감추는 하이토. 그가 미나미의 안부를 물으며 규칙이 적힌 종이를 뒷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미나미가 똑똑히 목격했다.

도대체 왜 감추는 걸까?

의문이 들었지만 쉽사리 물어볼 순 없었다.

“그으… 이름이 미나미였나?”

“네, 네에. 사쿠라 미나미예요.”

“그래, 사쿠라. 몸은 좀 괜찮아? 갑자기 쓰러지길래 깜짝 놀랐어.”

“아… 네에, 괜찮아졌어요.”

“그렇구나… 다행이네.”

“저기… 하이토 씨가 침대에 눕혀 주신 거예요?”

“응? 아, 으응… 가만히 놔둘 수가 없어서… 미안해, 불쾌하지?”

“아, 아뇨?! 고맙습니다. 덕분에 편하게 잤어요.”

하이토의 말에 깜짝 놀란 미나미.

감사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솔직히 조금 불편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이토가 음흉하다는 걸 알게 되자 의식을 잃었던 순간이 계속 거슬렸다. 자고 있는 동안 마구 만져 댔으면 어쩌지? 머릿속이 복잡해진 미나미가 어색해하며 말을 돌렸다.

“저어… 그런데 여기는 어디인가요?”

“그러게…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하아, 시우라면 알 거 같은데… 연락이 안 되네.”

“네에? 쇼 군이라면 알 거라고요?”

“응. 갑자기 시우 폰이 밝게 빛나길래, 뭔가 하고 쳐다봤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여기더라고. 후우… 그래서 연락을 하려고 하는데, 이것 봐. 통화권 이탈이야.”

“쇼… 쇼 군 폰이네요?!”

“응? 아, 으응. 작업할 때 필요해서 잠시 빌렸었어.”

하이토의 대답에, 미나미가 소리 없이 경악했다.

당연히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하이토의 말은 진실이었다. 커플로 맞춘 케이스와 그립톡. 하이토가 들고 있는 건 쇼헤이의 스마트폰이 맞았다. 치아키가 ‘섹.못.방’ 어플을 깔아 놨다는, 그 스마트폰 말이다.

충격을 받은 미나미가 비틀거렸다.

“어어… 사쿠라! 괜찮니?!”

“아… 하하… 괜찮아요.”

그러면 뭐야, 정말로 여기가 어딘지 모르는 거였어?

이제서야 하이토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뜬금없이 ‘섹스를 하지 않으면 못 나가는 방’에 갇혔다고 하면, 누구나 어이없어 하겠지. 말도 안 되는 장난이라면서, 화를 내는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회원 가입을 할 때 별다른 개인 정보를 입력하지 않았었다. 따라서 쇼헤이 폰에 깔린 ‘섹.못.방’ 어플로 하이토와 매칭되는 게, 마냥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었다.

“그, 그랬군요… 아하하…”

그것도 모르고 사람을 의심하다니… 미나미가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이 남아 있었다. 그러면 대체 왜 규칙이 적힌 종이를 숨겼단 말인가. 그 종이를 이용한다면 ‘섹.못.방’이라는 걸 핑계로 그녀에게 섹스를 요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이토는 미나미를 협박하는 대신 오히려 그 종이를 숨겼었다.

‘호, 혹시… 나랑 섹스해야 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너무나도 자기중심적인 생각이었지만… 가능성이 있었다.

만약 쇼헤이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테니깐… 그의 삼촌인 하이토도 쇼헤이처럼 남한테 상처 주기를 싫어하는 성격일지 몰랐다. 아니, 확실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굳이 그 종이를 숨길 이유가 없었다.

하이토가 쇼헤이처럼 상냥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하아… 우선 문 같은 걸 찾아 볼까? 어째선지 갇힌 거 같은데… 그래도 분명 나갈 수 있는 곳이 있을 거야.”

“네에!”

그리고 하이토가 탈출구 이야기를 꺼냈을 때… 미나미는 확신했다. 하이토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 사실에 안심한 미나미가 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아하하…”

하지만 당연하게도 ‘섹스를 하지 않으면 못 나가는 방’에 탈출구는 없었다.

***

“후우… 이거 안 되겠다. 미안해, 사쿠라.”

“네, 네에?!”

한 시간쯤 지났을까? 탈출구를 찾던 하이토가 미나미에게 사과했을 때, 미나미는 이제 ‘그것’을 할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하이토가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평생 여기에 갇혀 있을 순 없잖아.

‘섹.못.방’에 갇힌 이상 ‘섹스’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미나미가 입술을 깨물며 하이토와 섹스를 할 각오를 했다.

“도저히 방법이 안 보여. 아무래도 밖에서 구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할 거 같아.”

“아아, 네에…”

“너무 걱정하진 마. 시우도 있고, 치아키도 있잖아. 두 사람이 어떻게든 구하러 와 줄 거야. 그러니 우리, 두 사람을 믿고 기다리자.”

“으응, 그래요.”

그런데 정작 하이토 입에서 나온 것은 ‘기다리자’였다.

만에 하나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시도해 보려고 하는 하이토. 그 모습에 미나미가 쇼헤이를 떠올렸다. 역시 같은 후지카와 가문 사람이라서 그런지, 두 사람은 닮은 부분이 있었다.

“하으음…”

“아아, 피곤하지? 아무래도 내일까지 기다려야할 거 같은데… 후우, 어쩔 수 없지. 사쿠라, 오늘은 여기서 그만 자자.”

“우으… 그, 그럴까요?”

그러나 이제는 쇼헤이라 해도 포기할 상황.

몇 시간이 더 지난 후, 하이토가 ‘이제 그만 자자’라고 말을 꺼냈을 때… 미나미는 이번에야말로 ‘그것’을 할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하필 침대도 하나 뿐이라 같이 자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결국 ‘섹스’를 하게 될 게 분명했다.

그래서 미나미는 다시 한 번 하이토와 섹스를 할 각오를 했다.

“그럼 잘 자, 사쿠라.”

“하, 하이토 씨? 어디 가세요?”

“으응? 아, 나는 욕실에서 자려고. 같이 자는 건 부담스러울 거 아냐.”

“아… 그, 그래도 불편할 텐데!”

“아냐 아냐.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같이 자는 게 더 불편해.”

하지만 이번에도 하이토는 ‘섹.못.방’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여기서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눈치였다.

-철컥

“으음, 진짜 쇼 군 같네… 하하…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것까지 똑같아. 이쯤 되면 가정 교육의 영향인 걸까? 고맙긴 한데… 후우, 곤란하네…”

그 탓에 미나미가 한숨을 내쉬었다.

한참 전부터 탈출하는 걸 포기했던 미나미로서는 정말이지 애가 타는 상황이었다. 물론 쇼헤이가 아닌 다른 남자와… 그것도 쇼헤이의 삼촌과 섹스를 하는 건 정말 최악이었지만, 어쩔 수 없잖아.

결국은 해야 하는 섹스였기에 각오를 했던 미나미였다.

“하아아…”

그런데 하이토가 자꾸 섹스를 회피하니 미나미는 화가 났다.

‘누구는 뭐 하고 싶어서 각오한 줄 아나. 나도 하기 싫은데… 그래도 좋은 사람이니깐… 믿을 수 있으니깐… 그래서 하기 싫어도 결심한 거라고!’

다만 그렇다고 먼저 말을 꺼낼 순 없었다.

괜히 ‘섹.못.방’의 정체를 밝혔다간, 섹스를 하기 위해 사고를 친… 음란한 여자라고 낙인 찍힐 수도 있었다. 따라서 미나미는 사고에 휘말린 척, 연기를 해야만 했다. 쓸데없이 나섰다가는 후지카와 가문 사람들과 멀어질 수 있었다.

“제가 미안해서 그래요. 오늘은 같이 자요, 하이토 씨.”

“아니야, 그럴 순 없지. 자다 보니깐 욕탕에서 자는 것도 괜찮더라고.”

그런데 그러다 보니 이상한 눈치 싸움이 시작되었다.

“하아… 덥지 않아요? 으응…”

“감기 걸렸나 봐. 이불 속에 들어가 있어.”

‘섹.못.방’인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섹스를 하지 않으려는 하이토와, ‘섹.못.방’인 걸 알기에 어떻게든 섹스를 하려 하는 미나미. 두 사람이 계속해서 평행선을 달렸다.

“하이토 씨… 악몽 때문에 그래요… 잘 때 옆에 있어 주시면 안 돼요?”

“미안해. 나 코 골면서 이 갈거든. 옆에 있으면 민폐야.”

그렇게 하이토와 미나미는 5일이라는 시간 동안 ‘섹.못.방’에 갇혀 있었다. 다행히 ‘섹.못.방’ 안엔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넘쳐 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이토 씨, 저기… 아파서 그런데 밥 좀 먹여 주세요…”

“미안해. 지금 갑자기 양 팔이 부러졌어.”

하지만 그 싸움도 일주일을 넘기지는 않았다.

“하아… 젠장…”

“하이토 씨? 갑자기 왜 그러세요?”

“후우, 저기 사쿠라… 오해하지 말고 들어 줬으면 하는데…”

최종 승리자는 미나미였다.

‘해냈다!’

결국 자존심을 지켜낸 미나미.

그녀가 하이토 몰래 박수를 치며 크게 기뻐했다. 이제 그녀는 하이토와 섹스를 할 수 있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그녀가 계속 바라 왔던 것처럼 말이다.

‘어라… 그런데 이게 기뻐해야 할 일이야?’

하지만 그게 과연 미나미한테 좋은 일인지는 미지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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