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336화 (336/428)

Chapter 336 - 혼돈, 파괴, 망가(4)

“근데 얘는 해가 중천인데 아직도 자는 거야? 좀 별로다.”

“후후후… 제가 마법으로 재워 놔서 그래요. 피로가 풀리기 전까진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그런 마법이거든요.”

“마법? 술법 같은 거니? 흐으응… 제, 제법이구나, 너?”

“그럼요.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천재라고… 어머, 일어나셨나 본데요?”

“......”

이현아는 눈앞의 광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저 사람들은 누구지?

세 명의 미인들. 그것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아름다운 세 사람의 모습에 이현아가 할 말을 잃었다. 도무지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외모였다. 저 사람들이 왜 날 내려다 보고 있는 거지? 이현아는 자기가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흐응… 예쁘긴 하네. 오빠가 반할 만 해.”

“후우우, 다시 재우고 싶네요.”

“흠, 그 정돈가?”

하지만 꿈이 아니었다.

눈에 익은 벽지와 가구들. 거기다 익숙한 아로마 향까지. 여기는 덕배네 방이었다. 그 사실을 이현아가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어제 오빠랑 술을 마셨었지? 이현아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오빠네 집에 몰카랑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다가… 그래, 그건 아니다 싶어서 그만 뒀었어. 대신에 오빠랑 술을 마셨었어. 조금이라도 진도를 나가려고 한 건데… 어라? 술을 마시기는 했나? 숙취가 하나도 없는데… 아아, 진짜 뭐지?’

기억이 나기는 했는데, 반쪽짜리 기억이었다.

가장 중요한 기억이 나질 않았다.

술을 마시고… 과연 떡을 쳤을까?

이현아는 어젯밤의 일이 궁금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눈앞의 사람들이 누군지 궁금했다. 분명 오빠네 집이 맞는데… 왜 여자가 있지? 덕배한테 여자가, 그것도 세 명이나 있다는 말은 못 들어 봤던 이현아의 기분이 크게 나빠졌다.

“안녕하세요, 이현아 씨.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아버지의 딸, 세실리아라고 해요.”

“세, 세실리아?!”

어디서 들어본 것만 같은 이름.

듣기만 해도 굉장히 화가 나는 이름.

그 이름에 이현아가 얼굴을 굳혔다.

“세실리아라… 세실리아… 그, 그래 당신의 이름이 세실리아인 건 알겠어요. 근데 정체가 뭐죠? 왜 오빠네 집에 있는 거죠? 옆에 있는 두 사람은 또 누구고요!”

“후후후… 말씀드렸잖아요. 아버지의 딸, 세실리아라고요.”

“......뭐어? 아, 아버지?! 그러니까… 오빠의 딸이라고?!”

“맞아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딸이랍니다, 후훗.”

이현아의 머릿속이 뜨거워졌다.

갑자기 딸은 또 무슨 딸이란 말인가.

덕배를 상상하며 딸은 쳐 봤어도, 덕배한테 딸이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그런데 눈앞에 덕배의 딸을 자처하는 여자가 나타났다. 그것도 자신과 그리 나이 차가 나지 않을 것만 같은 여자가 말이다.

이현아가 크게 당황했다.

“저, 정말이야? 거짓말이지?! 오빠한테 딸이 어딨어!”

“후후후… 여기 있잖아요.”

“그, 그러면 여기 이 사람들도 오빠네 딸이야? 그런 거야?”

“흐응? 뭔 소리야. 내가 왜 오빠네 딸이야. 나는 오빠랑 딸을 만들 사람이거든?”

“백랑의 딸이라… 흐음, 그런 설정으로 정을 나누는 것도 재밌겠네요. 맨날 백랑이 아들 역할만 했었는데, 가끔씩은 새로운 설정을 즐기는 것도 좋아 보여요.”

“뭐… 뭐라는 거야?! 백랑은 또 뭐고, 오빠랑 딸을 만들 사이라고오?!”

대화를 주고 받았지만 의문이 해결되지는 않았다.

이현아는 세 사람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같은 언어를 쓰는 건지가 헷갈릴 정도였다.

“후훗, 장난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장난? 그… 그래, 다 장난이었던 거지?!”

“맞아요. 그러니 사실대로 말씀드릴게요. 여기 있는 저희 세 사람은 감덕배 씨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는 여자들이랍니다.”

“……뭐어어어어?!”

그리고 이어지는 말 역시 이해할 수 없었다.

결혼을 전제로… 사, 사귀고 있는 여자들이라고?

발끈한 이현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자신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시끄럽잖아요… 왜 소리를 지르시나요. 교양없게.”

“헤에… 이것도 마법이야? 장난 아니네, 너.”

“허, 허공섭물(虛空攝物)… 꿀꺽.”

이현아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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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겠지?

걱정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었다. 현아도 헌터긴 하지만 등급이 높은 것도 아니고, 상대가 워낙 괴물들이잖아. 잘못해서 싸움이라도 나면 큰일이었다. 특히 세실리아와 트러블이 생긴다면 문제가 심각했다.

세실리아는 역대급 천재 괴물이잖아.

딸한테 괴물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지는 않지만, 그때… 혼자서 경호대대를 완전히 괴멸시켰을 때를 생각하면, 사실 괴물이라는 말도 부족했다. 세실리아는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니 제발…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나는 거실에 홀라 남아 정실 면접이 무사히 끝나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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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오빠한테 그런 능력이 있었군요…”

“흐응… 매니저라면서. 근데 그것도 몰랐어? 이건 좀 실망인데.”

“그치만 오빠가 비밀로 했단 말이에요! 억지로 물어 보는 것도 조금 그래서…”

“후훗. 그건 잘했어요. 감히 아버지한테 억지를 부리면 안 되죠. 아버지한테 억지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저 한 사람뿐이에요.”

“뭐래. 나도 있거든?”

“그, 그래… 나도 있어!”

“……정정할게요. 여기 이 세 사람뿐이에요.”

차원 유랑자라니, 쉽게 믿을 수 없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무시하기에는 확실한 증거들이 눈앞에 있었다. 지구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세 명의 미인들. 소피아와 세실리아, 그리고 위지혜가 바로 그 증거였다.

이현아는 인정해야만 했다.

오빠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구나.

하지만 그렇다고 여자들을 불러온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그러면… 다들 오빠랑… 그,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건가요?”

“말했잖아요. 아버지랑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요.”

“그, 그치만! 세실리아 씨! 당신이랑 오빠는 부녀사이였다면서요! 그… 그러면 근친상간이잖아요! 근친상간은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후훗, 글쎄요? 사랑만 있다면 문제 없는 거 아닐까요?”

“뭐라고요?!”

“그리고… 그쪽 세계에서 근친이라고, 이쪽 세계에서도 근친인 건 아니랍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그 과정을 이해하기 싫었다.

어쨌거나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진 건 그쪽 세계에 있을 때 일이잖아. 그러면 결국 근친인 거 아니야? 그렇게 따지고 싶었지만… 아직도 계속 허공에 떠 있는 이현아로서는 쉽게 꺼낼 수 없는 이야기였다.

괜히 그녀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간 정말로 위험해 질지 몰랐다.

그래서 이현아는 타겟을 바꾸었다.

“저기, 소피아 씨?”

“왜?”

“워, 원래 살던 세계를 버려도 괜찮은 건가요? 가, 가족이 있을 거 아니에요. 친구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이쪽 세계로 넘어오다니요. 잘못된 거 아닌가요?!”

“뭐래. 그만큼 오빠가 중요하니깐 그렇지. 너, 사랑 안 해 봤어?”

“아… 실언이었어요.”

“그리고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는 것도 아니거든? 너 자꾸 이상한 소리하는데, 그만 정신 차리고 인정해. 우리들은 오빠랑 결혼할 사이야. 정실이라고.”

허나 이번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소피아가 말하는 건 정론이었다.

사랑이 있는데 주변 환경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녀 역시 지구 대신 덕배를 선택할 여자였다. 할 말이 없어진 이현아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조금씩 눈물이 차올랐다. 오빠한테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구나.

이현아가 울음을 삼켰다.

“어머… 울지 마세요. 저희가 괴롭히려고 찾아온 줄 아시면 큰 착각이에요. 저희는 이현아 씨에게 기회를 드리려고 온 거랍니다.”

“…기회요?”

“야… 이, 일단 내려 주고 말해. 겁 먹은 거 안 보여?”

“푸흡, 겁 먹은 건 위지혜 씨 같은데요?”

“소, 소피아 씨?! 오해예요. 허공섭물이 뭐 어떻다고… 흐응! 안 쫄았거든요?!”

“훗, 잘 들으세요. 저희는 이현아 씨를 저희와 같은 정실로 받아들일 생각이에요.”

“저… 정말요?!”

그런데…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자기를 정실로 받아들일 생각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세실리아의 말에 이현아가 감동을 했다. 당연히 자신을 견제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세실리아는 상냥한 면이 있었다. 울음을 그친 이현아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세실리아가 그녀를 원래 있던 곳으로 내려 주었다.

“저도 그렇고 이현아 씨도 그렇고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은 똑같잖아요.”

“세, 세실리아 씨…”

“후훗, 그러면 이현아 씨한테도 정실이 될 자격이 있는 거랍니다.”

“흐윽… 세실리아 씨…”

“하지만… 같은 정실이라 해도 급은 나뉘는 법이잖아요.”

“맞지 맞지. 어떻게 같을 수 있겠어.”

“맞는 말이에요.”

“…네에?”

“아닌가요?”

“아아, 맞아요! 네, 그렇죠. 어떻게 같겠어요.”

“후훗, 그렇죠?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딱 한 가지예요. 이현아 씨를 정실로 받아 줄 테니깐… 자기 주제를 알아 주세요. 아시겠죠?”

차가울 정도로 냉혹하게 웃으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세실리아.

그녀의 모습을 보고 얼어붙은 이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릴 정도로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그녀 덕분에 덕배의 정실이 될 수 있다면 충분히 참을 수 있는 굴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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