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 네토리-324화 (324/428)

Chapter 324 - 시우; 연애조작단(9)

일본의 저명한 정치학자, 히키가야 하치만(比企谷 八幡)은 이렇게 말했다. 공동체의 내부 단결을 원한다면 외부의 적을 자처하라고, 그렇게 하면 그 누구도 상처 입지 않는 세계를 완성할 수 있다고. 모두를 위해서 나 자신을 희생하라는 그의 주장은 이기적이었던 나에게 큰 울림을 줬다.

‘용서해라, 시우… 이걸로 마지막이야.’

그리하여 나는 악역이 되기로 결심했다.

시우와 조셉을 괴롭히는 두 사람의 악당이 되기로 다짐했다.

그들의 미움을 사는 건 정말로 슬픈 일이었지만, 두 사람의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면 견딜 수 있었다. 맨날 받기만 했으니, 베푸는 날도 있어야 할 거 아냐. 오늘만큼은 나보다 시우가 더 중요했다.

“걷지 않습니다. 두 바퀴 더 달립니다. 실시.”

““실시…””

“목소리가 작습니다. 네 바퀴 더 달립니다. 실시.”

““실시!!””

그래서 나는 어디서 구해온 빨간 모자를 쓴 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심정으로 시우와 조셉을 굴렸다.

“목소리가 그것밖에 안 나옵니까? 여섯 바퀴.”

““실시이!””

“더 크게, 여덟 바퀴.””

““실시이이이!!””

아니… 딱히 개복치인 시우한테 열받아서 이러는 건 아니고… 원래 개빡센 조교가 제일 엿 같은 법이잖아. 옛 기억을 되살려 군인으로 돌아간 나는 끔찍한 악당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본 조교가 짐꾼이라 무시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본 조교가 훈련을 시키는 게 억울합니까?”

““아닙니다아!””

“그러면 두말 않고 여덟 바퀴 더 달립니다. 실시.”

““실시이이이!!””

뜬금없이 훈련을 강요하는 내게 우리의 주인공이 불만을 터뜨렸지만… 그래서, 뭐? 누가 나를 영입하래? 이것도 못 따라오면 탈퇴하겠다는 내 협박에 입술을 깨문 시우가 태도를 바꾸었다.

반면 조셉은 의외로 싫은 소리 하나 없이 훈련에 임했는데, 원체 몸이 약해서인지 시작부터 무척 위태로워 보였다.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얼굴이 굳은 걸 보면 속으로는 내 욕을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후우… 이게 악역의 아픔인가?

속이 쓰라렸지만 이 모든 게 다 ‘상처 입지 않는 세계’를 위한 것이라면, 이 정도 악의쯤은 이겨낼 수 있었다. 하치만 선생님도 밟아 온 길이잖아. 여기서 무섭다고 도망칠 순 없었다.

“중간에 멈추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알겠습니까?”

““으아아아악!””

물론 이 일로 두 사람 사이에 애정이 생길 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시우는 워낙 섬세한 놈이잖아. 그러니 우선은 친해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겠어? Be: 전우애부터 시작하는 두 사람의 사랑을 기대한 나는 속마음을 숨긴 채 호루라기를 불었다.

-삐익, 삑!

“좋습니다. 5분간 휴식합니다.”

“허억… 허억…”

“하아… 고맙다, 하아…”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시우가 상상을 초월하는 개복치라는 것이다. 짐꾼한테 대련에서 졌다고 혼자서 폭주해 버리는 놈이잖아. 그러니 훈련이라 해도 선을 넘어 버리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위험성이 있었다.

“시우 씨, 여기 수건이랑 얼음물이에요. 후훗, 많이 힘드셨죠?”

“아아, 레이첼… 아니야, 강해지려면 이 정도는 가볍게 해내야지!”

그래서 나는 소피아를 시켜 고생한 시우에게 당근을 주었다. 원래 남자들은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허세를 부리는 법이잖아. 아무리 힘들어도 소피아가 보고 있다면 시우도 열심히 훈련에 임할 게 분명했다.

“자, 조셉 씨. 여기 조셉 씨 것도 있어요.”

“하아아… 고맙다, 레이첼. 덕분에 살겠구나.”

문제는 아무 잘못 없이 시우한테 휘말린 조셉인데… 저거 괜찮으려나?

땀으로 젖은 로브를 벗은 후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조셉을 보자, 마음 한 구석이 아파 왔다. 괜히 시우 때문에 저렇게 힘들어하는 거잖아. 군말 없이 묵묵히 따라오는 걸 보면 성격은 참 좋아 보이는데, 저러다 갑자기 그만둔다고 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삐익, 삑!

“본 조교는 오늘 여러분들께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달라질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마무리 훈련 후 개인 정비 시간을 가지기 바랍니다. 그럼 이상.”

으음, 그러니 첫날부터 너무 빡세게 굴릴 필요는 없겠지?

조셉을 봐서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한 나는 소피아를 데리고 숙소로 돌아갔다. 굳이 두 사람한테 마무리 훈련을 시킨 건, 뒷담할 시간을 마련해 주기 위한 나만의 작은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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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랐어. 저렇게 진지한 얼굴도 하는 구나.

마냥 유쾌하고 경쾌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본업(?)을 시작한 더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엄청 엄격하고 체계적이잖아! 생각도 못했던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만 나는 다시 한 번 더크한테 반하고 말았다.

놀 때는 놀고, 할 때는 하는 그의 태도는 내가 항상 동경하던 소설 속 방랑 기사의 모습이었다. 거기다 저 얼굴… 그리고 저 근육… 일러스트보다 훨씬 멋있잖아! 역시 더크는 내가 만나 본 남자 중에 제일 멋있는 남자였다.

“하아, 하아… 으아아아앗!”

그러니 나도 힘을 내야겠지!

더크한테 감명받은 나는 이를 악물고 빈 공터를 달렸다.

“조셉! 허억… 힘들어도 어깨를 펴야 해! 그래야 덜 힘들어!”

“으응, 알겠다!”

솔직히 하기 싫은 마음도 없지는 않았지만… 체력이 부족하면 파티에 방해된다는 말이 신경쓰여 훈련을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여기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 더크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도 있잖아! 소설 속 방랑 기사한테 포상을 받던 막내를 떠올린 나는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훈련을 이어갔다.

-삐익, 삑!

“본 조교는 오늘 여러분들께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달라질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마무리 훈련 후 개인 정비 시간을 가지기 바랍니다. 그럼 이상.”

……비록 오늘은 아무 일 없이 끝났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상을 받을 수 있겠지? 그때를 위해 메모리 마법을 익혀 놔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비틀거리며 스트레칭을 했다.

“더크 씨도 진짜 너무하네… 어이없지 않아?”

“으음?”

“더크 씨는 훈련 내내 가만히 서 있었잖아. 할 거면 같이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더크 씨도 우리 파티잖아. 짐꾼이라고 체력이 덜 필요한 것도 아닌데 솔직히 좀 별로였어. 그렇지 않아?”

그런데… 뜬금없이 시우가 더크의 뒷담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훈련을 시작할 때도 짜증을 내면서 불평을 했었지. 첫 인상은 참 좋은 녀석이었는데, 의외로 성격에 하자가 있는 걸지도 몰랐다.

“더크는 더크고 우리는 우리다. 실제로 우리가 기초 체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니 굳이 불만을 가질 이유는 없다고 본다. 더크도 우리를 위해서 훈련을 계획한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

“그으… 그렇지만 조금 지나치지 않았어? 목소리가 작다고 막 화내고 그랬잖아.”

“소리를 높여 대답하는 것은 훈련 조교에 대한 예의다. 뿐만 아니라 소리를 질러 몸을 자극하는 효과도 있지. 기사단에서도 신입을 훈련할 때 쓰는 방법이니 문제될 것은 전혀 없다고 본다.”

“그래? …기사단들도 그렇게 하는 구나. 몰랐어.”

“오히려 우리는 더크의 기대에 못 미쳤으니 불만을 가질 게 아니라 부끄러워 해야 한다. 우리는 만티코어를 잡으려 하는 파티 아닌가. 여기서 더 강해져야 한다.”

“으응… 내가 너무 안 좋게 생각했나 봐. 고마워, 조셉. 덕분에 깨달았어.”

“그런데, 시우. 많이 힘든가? 고개를 계속 숙이고 있군. 하지만 힘들어도 어깨를 펴야 한다고 조언해 준 건 그대 아닌가.”

“으응? 아, 이건 그… 그렇지! 하하하… 딱히 다리를 보려고 한 게 아니, 크흠흠, 힘들어서 나도 모르게 자세를 이렇게 했나 봐. 지금 바로 고칠게! 하하하…”

그래도 사람이 나쁜 녀석은 아니니깐, 지적해 주면 금방 고치는 구나. 뒷담을 멈추고 고개를 든 시우를 보자 역시 더크네 파티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으음, 같이 씻자고 제안해 준 건 고맙지만 지금 당장 가야할 곳이 있다.”

“뭐어? 그 꼴로?”

“그렇다. 그러면 먼저 가 보겠다.”

마무리 훈련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시우가 내게 당황스러운 제안을 했다. 친목을 다질 겸 같이 욕탕에 들어가자고 말이다. 거기서라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그의 혼잣말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아무튼 나는 단호하게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씻을 때만큼은 남체화를 풀고 싶단 말야. 거기다 남자와 함께 욕탕에 들어가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기에… 나는 시우를 내버려둔 채 어제까지 내가 묵고 있던 숙소의 방으로 돌아갔다.

-덜컥

“후우우… 역시 원래 몸이 편해.”

그런데 바로 옆방에서 어디서 들어본 듯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하아, 으응… 아아앙!

-아앙! 하아아앙!

이건… 레이첼 목소리 아니야?

틀림없는 그녀의 목소리에 당황한 나는, 그 즉시 사역마 마법을 사용해 옆방으로 날려 보냈다. 레이첼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을 보아 무슨 안 좋을 일을 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한시라도 빨리 상황을 파악하여 그녀를 구해야 했다.

-너무 커… 아앙!

-오빠아아… 흐으응!

그런데 놀랍게도… 사역마를 통해 내가 확인한 것은 알몸의 레이첼 위에 올라탄… 알몸의 더크였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머릿속이 새하얘진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두 사람이 알몸인 것보다, 더크가 레이첼을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믿었던 더크한테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다.

더크… 실은 나쁜 남자였던 거야?

레이첼 같은 성녀가 신음 소리를 내게 하다니… 표정을 찡그린 채 아파하는 레이첼을 보자 마음이 울적해졌다. 방랑 기사처럼 멋진 남자인 줄 알았는데… 옆 방의 더크는 여자를 괴롭히는 질 나쁜 불량배였다.

-더, 하아… 더 세게 박아 줘, 오빠아!

-으으응! 하아… 너무 좋아아아!

그, 그런데 저건 또 무슨 소리지? 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러워 하던 레이첼이 더크를 껴안으며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걸 보면 절대로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설마 레이첼은… 고통받는 걸 즐기는 거야?

그래서 더크가 어쩔 수 없이 도와주고 있는 거야?

“하아… 하아아…”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 나는 말없이 옆 방의 두 사람을 훔쳐보았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가랑이 사이가 간지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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